토요일의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는 평화리에 잘 끝났다.

십만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이슬람국가 테러범처럼 복면을 하거나 가면을 쓰고 도심을 가로 질러 횡단했음에도 테러는커녕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았다.

만일 경찰이 원래 의도대로 이날의 집회와 시위를 원천봉쇄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임계치에 달한 시민과 노동자들의 분노가 어떤 형태로든 표출됐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최악의 경우 게릴라식 시위가 도심 곳곳에서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걸 막는답시고 또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를 쏘고 백골단을 동원했다면 큰 혼란과 심지어 우려했던 폭력사태가 빚어졌을 지도 모른다.

2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이처럼 대규모이면서도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이틀 전 급박했던 순간에 내려진 서울행정법원 김정숙 재판관의 현명하고도 용기있는 판결에 힘입은 바 크다.

김 판사는 집회를 금지한 경찰의 처분이 부당한 이유를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비판했다.

지난달 14일의 민중총궐기대회와 이번 대회 주최 측이 겹친다는 이유, 교통불편이 우려된다는 이유 등이 모두 집회를 원천금지하는 이유에 합당하지 않다면서 “집회의 금지는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모든 수단을 다 써 본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라고 했다.

이런 지극히 사리에 맞는 당연한 판결에 대해 ‘용기있는 판결’이라고 칭송해야 하는 상황이 대단히 씁쓸하다.

상식을 지키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

무엇보다 김정숙 판사는 왜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나오는가,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가를 잘 알고 있다고 여겨진다.

정부가 ‘노동개혁’이라고 밀어부치는 노동법 개악 시도, 쌀값폭락, 역사교과서 국정화, 취업난과 생활고 등등 도탄에 빠진 민생의 아우성을 무턱대고 막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김 판사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범국민대책위가 12월 19일에도 또 다른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판사의 이번 판결은 참으로 소중하다.

문득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떠오른다.

의로운 사람 열 명이 없어서 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하느님이 멸망시켰다는 성경 이야기.

좋은 판사 만나기가 로또 당첨되기 보다 더 어려운 세상에 김정숙 판사같은 이가 바로 의인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법원에 더 많은 의인들이 나타나고, 검찰에도 나타나고, 국정원에도 나타나고, 새누리당에도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을 것 같다.

턱도 없는 기대일지 모르겠지만 청와대에도 의인이 하나쯤은 나타나야 하지 않겠나.

* 2015년 11월 23일(월)부터 [국민라디오] 강기석의 생각 하나가 주중 매일 오전 9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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