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시위와 프락치 - 자유언론실천재단

나는 지난 14일 밤 청계광장에 있었다.

분명히 말하건데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총궐기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물줄기를 맞을만한 용기도 없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 차벽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결국은 구경만 하는 꼴이 됐다.

경찰이 쳐놓은 차벽 앞은 텅텅 비어 있었다.

수십명 정도의 시위대들만이 경찰차에 밧줄을 걸고 물대포를 맞아 가며 영차영차 줄당기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나는 마치 한 장면의 퍼포먼스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않은 것은 우선 시위대로부터 꼭 버스를 끌어내야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사 그 차벽을 넘어가도 또 다른 차벽이 있을 것이고 경찰들이 쫙 깔려 있을 터이다.

또 그런 장애물들을 다 뚫고 일부가 청와대까지 진출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때문에 내게는 얼굴을 가린 채 열심히 줄당기기를 하는 시위대가 이슬람국가 테러범은커녕 마치 ‘집회 및 시위’라는 테마의 행위극에 출연한 배우들로 비쳤다.

경찰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 물줄기가 그다지 세지 않은 것 같았다.

현장은 그렇게 전혀 긴박하거나 심각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럴 이유가 없었다.

마치 “우리 열심히 시위 하고 있소” “우린 열심히 막고 있소” 서로 과시하는 광고영화를 찍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관찰이 얼마나 어리숙한 착각이었는지는 바로 다음날 알았다.

조중동과 종편을 통해 민중총궐기는 완전 폭력시위로 둔갑해 있었다.

다른 시위 현장에서는 쇠파이프가 난무했던 모양이다.

살인적인 직사 물대포로 백남기 씨가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기도 하다.

문득 1933년 2월 27일 발생한 독일제국의회 화제사건이 떠올랐다.

공산주의자가 불을 지른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히틀러 일당의 자작극이 분명한 그 사건을 계기로 나치는 비상사태법을 동원해 공산당은 물론 사회민주당까지 무력화시킨 후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한다.

큰 폭력을 가진 자들은 그 폭력을 사용하기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렇게 작은 폭력을 기다리기도 하고 사주하기도 하고 심지어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날 앞장 서 버스를 당기던 복면시위대가 끓어오르는 분노와 열정을 삭이지 못한 순수 시민들인지, 아니면 경찰 프락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구별해 낼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우리에겐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진짜 시민의 폭력이라면 어리석은 짓이고 조작된 폭력이라면 사악한 것이다.

* 2015년 11월 23일(월)부터 [국민라디오] 강기석의 생각 하나가 주중 매일 오전 9시 방송됩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