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폐기 혹은 사초실종사건.

2013년, 재작년에 벌어진 일이니, 정치적 기억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우리 국민들에게는 벌써 옛날 일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남북정상회담 대화 녹취록 초본을 노 대통령이 폐기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의 사건이다.

서해북방한계선(NLL) 관련 민감한 발언 내용을 숨기기 위해 참여정부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은밀하게 초본을 삭제했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은 2013년 11월 15일 검찰이 공소제기해, 1년 3개월만인 올 2월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났는데 엊그제 11월 24일 항소심에서도 무죄판결이 났다.

정확히 2년 만이다.

이 사건은 한 마디로 국정원이 대선에서 이용해 먹기 위해 국가기밀인 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하고, 거기에다 문서내용을 위조까지 한 국기문란사건을 덮기 위해 날조한 사건이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사초유출과 사초위조를, 있지도 않은 참여정부의 사초폐기로 되치기 한 것이다.

박근혜까지 나서서 그 해 8월6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중요한 사초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었다.

그런데 법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초안의 대화 내용 중 김 위원장이 한 말을 내가 한 것처럼 돼 있는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탈오자를 잡을 필요가 있다’며 별도의 문서로 지시하고 있으니, 그 후에 작성된 문서가 사초이지 그 전의 기록을 사초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무죄판결을 내린 것이다.

처음에 새누리당이 처음 이 사건을 만들었을 때는 세상이 뒤집어 질 것처럼 요란을 떨면서 노 대통령과 문재인 의원 쪽의 의혹을 부풀리던 언론들이, 막상 무죄가 나자, 1심 때도 그렇고 2심 때도 거의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언론은 이런 식으로 새누리당의 정치공작에 공범이 되는 것이다.

무죄가 났지만 피고인 쪽은 전혀 즐겁지 않다. 재판 비용만 2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검찰이 상고까지 할 것이 분명하므로 앞으로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상당 기간 심적.물적 괴로움을 계속 겪어야 할 것이다.

무죄가 났지만 검찰 쪽이 전혀 슬플 것 같지도 않다. 이미 얻을 것 다 얻은 박근혜 등 고객들이 대단히 만족해하고 있고, 담당 검사가 잘못 했다고 징계를 먹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검찰은 천하무적이다.

* 2015년 11월 23일(월)부터 [국민라디오] 강기석의 생각 하나가 주중 매일 오전 9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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