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 김영삼 대통령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한 시대를 굵게 수놓았던 인물이 영면하는 것이다.

유난히 고집세고 솔직했던 반면, 언론의 평판에 약하고 지적 소양이 크게 부족했던 인물인지라 생전의 그의 언행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최근 방송인 김종찬 씨가 펴낸 ‘정치는 사기다’ 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그가 아주 오래 전 미국의 한 교포방송을 위해 국내 정치인들을 연쇄 인터뷰할 때 이야기다.

YS와 인터뷰를 끝내고 장비를 꾸리고 있는데 YS가 느닷없이 “내 인터뷰, 잘 했어요” 묻더란다.

김종찬 씨가 솔직하게 잘 못했다고 하자 “내 그럴 줄 알았는기라. 내 말을 몬한단 말야” 낙담하더란다.

그리곤 뒤의 스케줄을 몽땅 취소하더니 한 번 더 인터뷰를 하자고 떼를 쓰더라는 것이다.

그 다음이 가관이다.

첫 질문을 하자마자 YS가 “잠깐 그 녹음기 좀 끄소” 하더니 “김 형, 내가 여기서 우찌 대답하면 좋겠소” 묻더란다.

황당하긴 했지만 워낙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뭐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라고 정치해설가다운 조언을 했더니 “와! 우째 그리 내 생각과 같소? 딱 그거요. 그런데 난 와 그런 말이 생각이 안 날까” 라면서 김종찬 씨가 한 말에 자기 생각을 좀 붙여서 답하더라는 것이다.

인터뷰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식으로 했다는 것이다.

방송 인터뷰 정도는 그렇게 남의 머리를 빌려서 훌륭하게 할 수 있었지만 대통령의 일은 남의 머리를 빌릴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의 민주화에 대한 헌신의 공은 3당 합당으로 날아가 버렸고, 하나회척결·금융실명제의 업적은 IMF 구제금융으로 말아 먹었다.

자식농사도, 친아들 현철씨가 한보게이트로 망쳐 버렸고, 정치적 양자라고 떠들어 대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마저 독재의 딸랑이로 전락해 버렸다.

인간의 죽음 앞에 누구나 겸손해져야 한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죽음 앞에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일반 개인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큰 정치인일수록 죽음과 상관없이 그의 과오를 철저히 물어야 한다.

YS에 대한 과도한 칭송이 불온한 이유다. 그는 실패한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올바른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평가해야 한다.

* 2015년 11월 23일(월)부터 [국민라디오] 강기석의 생각 하나가 주중 매일 오전 9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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