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과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또래는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교과서에서 배웠다.
한국전쟁 중에 지리산 자락 거창의 한 마을에 군경이 쳐들어가 무고한 마을 사람들을 수 백명 몰살시킨 사건 말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양민 학살''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로 이름 붙여져야 한다는 사실을 난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양민 학살''이란 프레임에서의 ''양민''이란 단어는 그 반대인 ''불량민'', 즉 빨갱이나 부역자들은 정당한 절차없이 죽여도 된다는 흉칙한 의도에서 고르고 고른 불순한 단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그 당시 거창 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광범위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피살자들이 양민이냐, 아니냐의 프레임에 걸려 학살자에 대한 단죄는커녕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안 된 측면이 있다.
조선일보가 전교조 위원장이 ''인민''이란 단어를 썼다고 난리를 쳤다가 사과한 소동을 보며 갑자기 떠 오른 생각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또 민주주의에 대한 링컨의 정의를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라고, 분명히 ''인민''을 사용해 배웠다.
그런데 어느 사이 ''인민''이란 단어는 사용해서는 안 되고, ''양민이냐, 아니냐''로 국민을 가르는 세상이 됐다.(''양민''은 사라졌다지만 그 보다 더 무서운 ''국민'' ''비국민''이 머리를 들지 않는가?)

언어는 ''생각이 사는 집''이라고 한다.
조선일보 등 수구세력이 "이 말은 써도 좋고, 저 말은 쓰면 안 된다"고 계속 프레임 짓는 이유다.

그래도 좋다.
아직은 ''민주''와 ''공화''라는 말만은 아무도 못 건드리고 생생히 살아 남아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인민''이 없으면 ''시민''이 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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