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해킹 의혹 속에 자살한 직원의 유서가 공개된 직후인 19일 입장자료를 내고 정치권 등을 향해 울분과 정면 비판을 쏟아냈다.

국정원은 직원 일동 명의로 된 보도 자료를 통해 근거 없는 추측성 의혹이 극단적 선택을 불러왔다며, 죽음을 정치 공세로 이어가는 현상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도 자료는 국정원으로 인해 빚어진 논란에 대한 책임감이나 국민적 의혹에 대해 진실을 신속히 밝힌다는 의무감은 생략한 채 숨진 직원, 임 모 씨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과 함께, 정치권을 향해 공세적 반론으로 도배된 모습이다.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직원 일동'' 명의로 성명을 낸 행위에 국가공무원법 및 국가정보원법 위반 소지가 있는 불법 집단행위이자 불법 정치관여 가능성이 있다고 CBS노컷뉴스가 보도한 것을 우선 국정원은 유념해야 한다.

CBS노컷뉴스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박주민 변호사가 "공무원들이 집단으로, 특히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볼 수 있는 행동을 한 만큼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으며 국가공무원법 제66조는 "공무원은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면서 원칙적으로 공무원의 집단행위를 금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국민을 위한 무한 봉사가 그 책무다. 따라서 오늘날 왜 이토록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자성과 국민적 의혹에 대해 관련 자료를 공개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번 사태는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해 거래를 한 이탈리아 해킹팀의 서버가 해킹되어 공개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국정원은 명심해야 한다. 설령 잘하려 했다고 해도 화근을 국정원이 만든 것이다. 이런 점을 국정원이 인정하는 기본적인, 성숙한 책임의식을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국정원은 특히 2012년 대선 불법 개입 사건으로 원세훈 전 원장이 구속 상태 이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으로 국격을 훼손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국정원에 대한 생생한, 부정적 기억이 현실인데도 국정원이 직원의 자살까지 이어진 이번 사태에 대해 ‘네 탓이요’라는 자세만을 보이는 것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이번 사태는 이탈리아 업체가 해킹을 당해 관련 거래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다면 그냥 묻혀 지나갈 뻔 했었다. 국정원은 막대한 외화를 써가면서 외국 업체에 스마트폰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해야 했던 이유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다. 국내 업체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더욱이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사실로 비춰 국내 해킹 의혹이 커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닌가.

국정원은 그런데도 국가안보를 앞세우면서 잘못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울부짖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안보가 최고의 가치라 해도 그런 최고의 가치를 앞세우는 국정원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국정원의 성숙도가 보도자료에 나타난 정도라면 매우 아쉬운 일이다.

특히 자살한 직원의 유서는 공개된 그 내용만을 살필 때 그 직원이 왜 자살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국정원은 살펴야 했다. 이 직원의 유서대로라만 잘못한 일이 전혀 없고 오해 살만한 자료는 지웠다는 것인데 이런 표현은 의혹을 더 부추기는 것 아닌가. 국정원이 진정 이 직원을 아끼고 사랑했다면 이탈리아 업체가 해킹당해 국정원 관련 사실이 공개된 직후부터는 국정원 전체 기구 차원에서 대처해서 이 직원의 짐을 덜어주어야 했다.

국정원이 진정 직원을 아끼고 보호하려 했다면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따라서 국정원은 이탈리아 해킹팀의 서버에 남겨진 이메일과 로그 기록 등에 대한 해명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잘못된 조직의 논리는 무슨 큰 일이 벌어지면 조직원에게 부당한 책무를 지우는 일이 흔하다. 국정원과 같은 특수 조직의 경우 확고한 존립 근거에 대한 인식의 공유와 그것이 결국 국민에 대한 무한 서비스로 귀결되어야 하는 정신자세가 기본이다. 조직의 조직을 위한다는 식의 배타적인, 잘못된 논리는 반드시 배제되어야 한다. 거듭, 자살한 국정원 직원의 명복을 빌면서 그 가족에 위로의 말씀을 보낸다.

* 이 글은 미디어라이솔 http://www.lisal21.co.kr/ 등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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