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기록의 서언

한국 언론사는 언론인들의 투쟁과 그에 따른 불법해직, 그리고 원상회복 거부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신군부, 그리고 이명박 정권아래서도 언론인투쟁과 해직이 반복되었다. 언론인 투쟁과 불법해직이 자행되고 그에 대한 법적 원상회복 조치 등이 외면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언론인 불법 해직과 방치를 통해 전체 언론인들을 겁박해 정치권력의 나팔수로 만들려는 노림수의 결과다. 언론투쟁은 결국 개인적 불행으로 귀결된다는 추악한 공작 정치적 발상에 다릉 아니다. 언론인 불법해직과 이의 미해결은 정치권력이 언론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인 해직을 악용하면서 자행된 범죄행위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홈페이지 좌측 상단에는 7월 15일 현재 2,474일째부터 1,000일째까지 복직되지 못한 해직언론인들의 명단이 아래와 같이 나와 있다.

■ YTN지부 · 노종면,조승호, 현덕수(권석재, 우장균, 정유신)

■ MBC본부 · 이용마 전 MBC본부 홍보국장· 정영하 전 MBC본부장· 강지웅 전 MBC본부 사무처장 · 박성호 전 MBC 기자협회장· 최승호 MBC PD· 박성제 MBC 기자· 이상호 MBC 기자

■ 국민일보지부· 조상운 국민일보 전 지부장· 황일송 국민일보 기자

■ 부산일보지부·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

이명박 정권에서 희생된 이들 해직기자들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원상회복 등을 약속했지만 복지, 전시작전통제권 등의 공약과 함께 이행치 않고 있다. 독재자 아버지가 저지른 동아투위와 조선투위, 80년 언론투쟁과 불법해직 사태 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의 해직기자 문제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언론 통제를 위한 전가의 보도가 바로 불법 해직이라는 것을 깨달은 탓인지 모른다.

전대미문의 1980년 언론인 대량 강제해직 사태는 당시 전두환의 정권탈취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을 잠재우려는 데 그 첫째 목적이 있었다. 권력 장악과 정권 유지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된 이러한 공작은 우선 언론계 안의 저항세력부터 색출·제거하는 작업으로 나타났다. 체제구축에 따른 저항세력 제거의 첫 과녁으로 언론계가 지목된 것은 일견 너무도 당연한 처사이거니와, 또 그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10·26 이후 한국의 언론은 새로운 각성으로 내연하고 있었다, 특히 1980년 3월 31일 새로 출범한 한국기자협회(회장 김태홍)와 1980년 ‘5·18 광주항쟁’은 내연하는 기자들에게 결정적인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당시 언론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젊고 패기에 찬 기자들의 연대 움직임은 각사 언론 경영진들과 군부세력에게 가장 도전적인 모습으로 비쳤을 터였다. 이로부터 얼마 후 단행된 대량 해직자의 명단이 자유언론 운동에 앞장선 인물들과 대부분 일치하고 있음은 바로 이러한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5월 전국적으로 불타오른 제작거부 운동

“해직자 명단이 전적으로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 경영진의 입김도 적잖이 작용했다”는 해직기자들의 증언은 자유언론 운동을 당시 경영진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예증이 될 것이다. 따라서 1980년 여름의 ‘언론인 대량학살극’은 10·26 이후 5·17을 거치면서 ‘광주보도를 둘러싸고 젊은 언론인들이 겪은 고난의 참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중에서도 중앙일보와 경향신문, 합동통신, 한국일보 등이 보여준 언론자유 운동은 주목할 만했다.

이들 4개사는 5·17 이후의 ‘광주항쟁’ 보도와 관련된 검열거부와 제작거부 운동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0·26 이후 새로운 각성으로 언론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들이 각 사별로 서서히 무르익어 가던 중, 1980년 5월 6일 ‘사북사태’ 취재중에 있은 중앙일보의 탁경명 기자에 대한 계엄사 합수부 수사요원들의 집단 폭행 사건은 이즈음의 자유언론운동에 실천적 계기로 작용한다.

기자협회는 다음날(7일) 즉각 이희성 계엄사령관 앞으로 항의문을 발송하는 하는가 하면, 진상조사를 위해 박종만 권익옹호위원장(동아투위 소속)과 최병진 권익옹호위원(조선특위)을 현지에 급파하는 기민성을 보인다. 이어서 5월 10일에 열린 ‘기자협회 각 사별 분회대항 친선축구대회’ 역시 당시의 언론운동을 급전시키는 데 커다란 계기를 안겨 줬다. 이날 기자협회 소속 언론인들은 단순한 친선체육대회에 머물지 않고 ‘자유언론, 검열철폐’를 서로 다짐, 자유언론 실천 투쟁의지를 드높였던 것이다.

특히 이 대회에는 동아, 조선투위가 6년만에 참가, 언론인들의 단합에 큰 몫을 해냈다.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는 기협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이와 함께 한국기자협회는 5월 16일 오후 2시 신문회관 회의실에서 회장단 운영위원, 각사 분회장 보도자유분과위원회 연석회의를 갖고 자유언론 실천 대책을 협의한 끝에 성명서를 발표, 5월 20일(화요일) 0시를 기해 검열을 거부하고 당국이 강압적으로 나올 경우 제작거부에 돌입하기로 결의함으로써 군부세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제작거부 운동은 기자협회가 공교롭게도 5·17 확대계엄이 발표되기 하루 전인 5월 16일의 확대간부회의에서 5월 20일을 기해 검열거부 관철을 위해 진력하다 여의치 않으면 제작거부로 나아가기로 결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5월 18일부터 시작된 광주항쟁의 비극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나 편집국 기자들에게는 속속 속보가 전달됨으로써 편집국 전체가 비분강개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다수의 기자들이 제작을 거부했음에도 일부 간부진과 극소수의 기자들의 손으로 신문·방송이 제작, 보도됨으로써 전국적으로 번진 제작거부 운동을 통해 명실상부하게 신문발행이 중단되거나 방송보도가 방해를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로써 1980년 언론계의 제작거부 운동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규모로 거의 모든 언론사들에서 절대다수의 기자들이 참여했으나 언론자유를 탄압하는 세력에게 결정타를 가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녔다. 전국 일선기자들의 자유언론 실천운동이 ‘계엄검열철폐’로 집약됨과 아울러 5ㆍ17비상조치로 정국은 냉각상태에 빠지고 다수의 언론인들이 연행당하게 된다. 이와 함께 ‘광주’ 보도와 관련 제작거부 움직임이 번져 가자, 이에 대한 응징 성격으로 언론인 구속사건이 다시 벌어졌다.

6월 9일 계엄당국은 “악성 유언비어를 유포시켜 국론 통일과 국민적 단합을 저해하고 있는 협의가 농후하여 부득이 8명의 현직언론인을 연행, 구속”했다. 이보다 앞서 5월 22일 서울지역 주요 언론사(신문·방송·통신)의 사장들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서리 앞으로 직접 불려가 호통을 당하고 있었다. 전두환 사령관은 특유의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 “그동안 언론과 대학의 내막은 물론, 누가 선동하고 있는지도 샅샅이 알고 있다. 경영권자가 권한행사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들을 선동한 사람들을 파악해서 체포할 것이다. 그러한 사태가 없도록 사장들이 수습하고 책임을 지길 바란다.”

중앙사, 지방사 가릴 것 없던 ‘언론인 대학살’

전두환의 경고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6월 9일 이들이 구속됐는데 이러한 경고와 언론인 구속사건은 ‘대량학살’에 앞선 예고편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 여름의 ‘대량학살’은 7월 중순부터 8월 초에 걸쳐 행해졌다. 해직자 명단은 7월 10일에서 중순 무렵에 확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최종 명단확정은 이상재씨의 주재로 안기부, 보안사, 치안본부 등 관계자와 각 부처 대변인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결정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각 부처 대변인이 ‘관계대책회의’와 같은 이 모임에 이례적으로 참석한 것은 이들이 대부분 언론인 출신으로서 출입기자들의 성향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해직 절차는 국보위로부터 각 언론사에 지시된 ‘사직서 제출’에 의거했다. 언론인 모두에게 ‘의원사직서’를 내게 해 이를 근거로 선별 수리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대해 일부 기자 등은 사표제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1980년 여름의 ‘언론인 대학살’은 중앙사와 지방사를 가릴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됐다. 200여명을 지방사 기자가 차지하고 있는 데서도 이러한 사실은 잘 드러난다. 1980년 3월 말 한국기자협회가 새로운 면모로 출범한 뒤 대부분 기협 분회원이었던 지방언론사 기자들은 중앙사 기자들과 함께 자유언론 운동에 합류했다. 그간 위축돼 온 언론의 참모습을 되찾으려는 기자들의 몸부림은 지방에서도 검열철폐 요구와 제작거부 운동으로 집약됐다.

5월 2일 부산진 경찰서 출입기자들의 자유언론 확보선언에 이어서, 5월 13일에는 전남매일신문이, 5월 15일에는 대구문화방송과 매일신문 그리고 전남일보가 잇따라 검열거부를 천명함으로써 젊은 기자들이 벌이는 자구적인 몸부림은 하루가 다르게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이러한 자유언론 운동에 앞장섰거나 동조한 기자들은 지방언론사에서도 예외없이 해직 대상이 됐다. 정권탈취 음모 차원에서 ‘저항체질’이 몸에 밴 언론을 ‘순응체질’로 바꾸겠다던 군부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무차별 대량학살’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지방언론의 해직자 명단은 대체적으로 그 지역 보안대와 관계기관에서 선별·작성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평소 바른말과 글을 써 온 ‘눈에 가시 같은’ 기자들을 주목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정리된 각 신문사별 해직경위 설명에 포함되지 않은 경기신문(18명), 충청일보(8명), 대구매일(6명), 경남일보(8명) 등에서도 다른 지방신문과 똑같은 탄압과 강제해직을 당했음을 밝혀 둔다.

80년 언론인 투쟁 기록은 2014년 5월 5.18기념재단에 의해 ‘5.18민주화운동과 언론투쟁’이라는 제목으로 증언록 형식으로 출판되었고 이번 연재는 그 출판 내용의 일부다. 연재 내용은 그 해 5월 광주항쟁 기간중 각 언론사별 투쟁기록. 그리고 광주항쟁 기간을 전후해 광주 현지 잠입 취재 등과 같은 개인 기록으로 구성됐다. 증언록 집필이 불가능한 일부 언론사의 경우 한국기자협회와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가 1997년 펴낸 (‘80년 5월의 민주언론’)에 수록된 자료를 옮겼다.

언론사별 5월 투쟁 기록과 광주관련 개인 경험기록의 순서는 5.18기념재단이 펴낸 ‘5.18민주화운동과 언론투쟁’ 증언록 편집 순서에 따르며 그것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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