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3사.

2016년 7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국회의원 160명이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KBS MBC EBS 공영방송 이사를 13명으로 늘리고 여당이 7명, 야당이 6명을 추천한다고 명시했다. 사장을 임명하거나 해임할 때는 이사의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한다는 ‘특별다수제’도 포함했다. 당시 박홍근 민주당 공정언론특별위원장(현 민주당 원내대표)이 법안을 주도했다.

정권 교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박홍근 안’으로 불리던 이 법안은 정치적 후견주의를 법적 명문화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이제는 김재철 사장 같은 극단적 인사를 막아내기 위해 내놓았던 ‘수세적’ 법안에서 공영방송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공세적’ 법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2017년 8월 문 대통령도 박홍근 안을 두고 “온건한 인사가 선임되겠지만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공개 비판했다.

이후 방송통신위원회는 자문기구(방송미래발전위원회)를 통해 2018년 9월 공영방송 이사를 국회 또는 방통위가 추천하고, 정원은 13명으로 늘리되 이 중 3분의1 이상은 정파성을 최소화한 중립지대 이사로 구성하는 ‘전문가 중심’ 방안을 제안했다. 중립지대 이사는 국회가 모집한 이사 후보자들 중 ‘문제적’ 이사를 방통위가 거부한 후 최종 추천하는 방식을 구상했으나 ‘중립 이사’가 가능하냐는 물음표 속에서 잊혀졌다.

▲공영방송 현행 지배구조. ⓒ심영섭 논문 인용

그리고 2020년 11월 정필모 민주당 의원이 진일보한 개정안을 내놓았다. 방통위가 국민 100명으로 구성된 ‘이사 후보 추천 국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이 뽑은 후보 중 다득표순으로 KBS·방송문화진흥회(MBC)·EBS 이사를 13명씩 선출하고, 공영방송 사장은 국민위원회가 투표로 추천한 복수의 후보 중 이사회가 특별다수제로 뽑는 안이었다. 여러 언론 현업단체가 환영했지만 정작 당내에서 적극적 논의나 호응은 없었다.

이런 가운데 전해숙 의원은 2021년 3월 공영방송 이사를 13명으로 늘리고 여당이 4명, 야당이 3명, 방통위원 전원이 동의한 2명, 방송‧미디어 단체 2명, 사측이 1명, 교섭대표 노조가 1명을 이사로 추천하는 법안을 내놨다. 사장 선임 시엔 사장 후보 시청자평가위원회를 설치해 평가결과를 토대로 이사회가 추천하도록 했다. 그렇게 대선 전까지 민주당의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안은 크게 정필모 안과 전해숙 안으로 압축됐다.

그리고 2021년 12월6일,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위가 진행한 방송법 공청회에서 김회재 민주당 의원이 “누구를 뽑는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라면 주사위를 던져서 뽑는 게 나을 수도 있다”며 시민 참여방식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뒤 “각 분야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들어가는 식이 훨씬 낫다”며 독일 공영방송의 이사회 격인 방송평의회를 대안으로 언급했다.

그러자 정필모 민주당 의원이 “우리가 독일식 방송평의회를 도입했을 때 과연 어떤 단체가 평의회 추천의 대표성을 가질까. 정치적 논란 없이 추천 단체를 뽑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어서 국민 추천제가 나온 것”이라고 반박한 뒤 “국민참여제는 정치적 색깔을 배제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그랬던 정 의원이 독일 공영방송 ZDF 방송평의회를 모형으로 한 ‘공영방송 운영위원회’안을 내놨고, 지난 12일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했다.

▲독일 공영방송 ZDF. ⓒ정철운 기자

“독일식 방송평의회 모델의 핵심은 사후심의‧감독”

지난 14일 언론특위에서 정 의원이 설명한 내용에 따르면, 이사를 운영위원으로 바꾸고 운영위원을 25명으로 구성한다. 정무‧행정 전문가로 국회가 6명, 지방단체가 4명, 행정부가 2명을 추천한다. 연구전문가 5명을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나 단체 등이 추천하고, 현장전문가 8명을 방송미디어 관련 협회나 직능단체 등이 추천한다. 사장 선출은 5분의3 이상(15명)이 찬성하면 선출하고, 두 차례 이상 부결되면 공론조사로 선출한다.

당장 ‘25명’이 어떤 기준에서 나온 것인지부터 정무‧행정 전문, 연구 전문, 현장 전문이란 분류의 타당성 및 인원 배분의 근거에 구체적 설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사회와 운영위원회의 차이는 무엇인지, 운영위원회로 바뀔 경우 KBS‧EBS 이사회와 다른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위상은 어떻게 달라질지도 쟁점이다. 무엇보다 지금껏 등장했던 여러 지배구조개선안을 놔두고 논의가 깊지 않았던 독일식 구조를 당론으로 채택한 것에 대한 합리적이고 충분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독일 공영방송의 방송평의원. ⓒ심영섭 논문 인용

공영방송 전문가인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독일식 방송평의회 모델의 핵심은 사장을 뽑는 게 아니라 사후심의‧감독에 있다. 방송 심의도 평의회에서 한다”며 평의회 모델이 안착하려면 구체적으로 여러 분야의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평의회는 3분의2 특별 다수제를 통한 사장면직 결정을 포함해 방송사 내 징계권도 갖고 있으며, 250만 유로(약 33억원) 이상의 계약 체결에 관한 허가권도 있다.

향후 생산적 논의를 위해 독일식 방송평의회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도 있다. 우선 독일 16개 주는 방송정책에 대한 고유권한을 갖고 있으며 당연히 주마다 방송평의회 평의원 수도 다르다. SWR이 74명으로 가장 많고, ZDF는 60명이다. 원래 77명이었지만 2014년 연방헌법재판소가 ‘정치인 비중을 1/3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결정한 결과다. 방송평의회는 사회단체, 종교단체, 직능단체, 정당의 대표 등으로 구성된다. 사회 각 분야를 대표할 수 있는 영역을 약 15개 정도로 구분해, 이 영역에서 평의원을 파견할 만한 기관을 법률로 정하고 있다.

ZDF 방송평의회는 평의원 추천 기관에서 직접 선출해 16개 주 정부 총리들이 지명한다. 평의원들은 경영, 인사, 전략 수립, 프로그램 제작 및 편성, 사후심의를 담당하며 매달 직무수당과 회의비를 받는다. 평의원 구성에선 지역 다양성과 양성평등 원칙을 준용하며 정당별 평의원 수는 의회 선거의 비례득표수에 따라 배분한다. 평의원이 불성실한 활동으로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하거나 품위 손상행위를 하면 평의원을 추천한 단체는 차기 방송법 개정(5년 단위 보완)에서 추천권을 상실한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지난해 12월 토론회에서 “공영방송은 양극화된 양당체제의 대표성에 근거한 이사회로는 어렵다. 공영방송 이사 구성에서 국민 참여는 대표성이 아닌 동일성이 중요하다”면서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이 자신들과 닮은 이들을 이사로 보내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 운영위원회’안이 이 같은 ‘동일성’ 구현을 위한 시도가 될지, 아님 잊혀질 여러 법안 중 하나가 될지 주목된다.

* 참고 논문 = <독일 방송평의회 제도를 통해 본 한국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재구조화>, 심영섭, 2018

* 이글은 2022년 04월 15일(금)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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