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한국기자협회 주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언론 보도가 진실이냐 아니냐 문제를 행정기구나 다른 데서 (판단)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법적 절차, 그에 준하는 준사법적인 언론중재기구를 통해서 하는 게 맞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여기(불공정 보도)에 대한 사법적 재단이 이뤄지지 않아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지, 법적 절차에 따라 철저하고 혹독하게 책임을 물어왔다면 아마 지금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2월11일 한국기자협회 주최 방송 6개사 공동 주관 ‘2022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에 대한 입장을 묻는 공통질문이 나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언론계가 반대하며 내놓은 일종의 ‘대안’인데, 윤석열 후보는 이에 대한 부정적 의사를 명확히 밝히면서 사법시스템에 의한 “철저하고 혹독한 책임”을 강조했다.

윤 후보 발언은 ‘모범답안’이 아니었다. 고의‧중과실 허위‧왜곡 보도에 대한 배액배상제를 두고 ‘언론재갈 물리기 악법’이라 반대했던 국민의힘 의원들 입장에선 “언론자율규제기구는 굉장히 바람직하다”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발언이 정답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윤 후보가 언론의 책임을 강조하고, 동시에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자율규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하겠다”라고 말하면서 윤 후보 발언은 도마에 올랐다.

다음날(12일) 기자들의 추가 질의에 윤 후보는 “우리나라에선 사법 절차를 통해 허위 보도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지는 일을 한 번도 해 온 적이 없다. 나는 그것이 우리나라 언론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더욱 강경한 발언을 내놨다. 통합형 자율규제기구에 대해서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 안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대단히 위험할 수도 있다”며 재차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자율규제에 회의적 태도였던 민주당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윤 후보는 나아가 “기사 하나가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강력한 시스템이 우리의 언론 인프라로 자리를 잡았다면 공정성이니 이런 문제는 그냥 자유롭게 풀어놔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끝까지 버티면서 진실을 왜곡하고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줬을 때는 그 언론사가 심각한 책임을 져야 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언론 관련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윤 후보는 “우리 법원이 손해배상의 범위를 워낙 작게 설정을 해 오다 보니까 더 배상하게 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이런 얘기도 나오는데 굳이 언론 소송에서만 징벌을 특별히 집어넣는 것에 대해서는 균형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1면에 썼으면 1면에 똑같은 크기로 (정정)보도해 주고 그걸 만약에 피하고 계속 끝까지 재판으로 갔을 때는 상당한 배상 책임과 여러 가지 제재가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라는 ‘방법론’만 제외하면 ‘피해구제 강화’라는 민주당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지난 11일 한국기자협회 주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후보.

하지만 지난 13일 조승래 민주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윤 후보가 허위 보도한 언론사를 파산시킬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을 주장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길에 장애가 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언론계에 대한 협박이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쓰라는 보도 가이드라인”이라면서 “공포정치를 예고한 것”, “언론탄압 망언에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이 같은 대응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해 10월6일 열린민주당이 주최한 대선후보 대담 자리에서 “(허위 보도의 경우) 다른 경우보다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게 언론의 특권에 상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징벌 배상은 다섯 배가 뭐냐, 화끈하게 좀 해버리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고 “가짜뉴스를 고의적으로 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는 체제 자체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망할 정도로 (조치를) 해버려야 한다. 그래야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권자 입장에서 윤 후보 발언과 이 후보 발언은 사법체계를 통한 피해구제 강화라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때문에 민주당의 13일 논평은 결국 ‘우리가 외칠 때는 언론 피해구제 강화이고, 국민의힘이 외칠 때는 언론탄압이자 공포정치’라는 주장으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만약 윤 후보 주장이 ‘공포정치’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정말 판단했다면, 지금까지 민주당의 입장에 대한 사과가 우선해야 한다.

민주당 입장에선 윤 후보 입장에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하는 게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예컨대 윤 후보 주장은 큰 틀에서 민주당과 유사하지만, 공약으로서는 구체성이 없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판사들이 배상액을 늘릴 수는 없다. 민주당은 피해구제 강화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라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윤 후보는 ‘기존 사법시스템이 잘 굴러가면 된다’는 말을 빌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윤 후보가 반대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대신할 피해구제 현실화 공약을 내놓으라고 따져 묻는 게 맞다.

* 이글은 2022년 02월 14일(월)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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