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평화상이 두 명의 언론인, 필리핀의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의 드미트리 무라토프에게 돌아갔다. 언론인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1935년 나치를 비판했던 독일 언론인 카를 폰 오사에츠키 이후 86년 만이다. 국제언론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1992년부터 올해까지 약 30년간 러시아에서는 58명, 필리핀에서는 87명의 언론인이 살해당했다.

마리아 레사는 CNN 동남아지국장을 거쳐 2012년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Rappler)’를 설립했다. 2016년 대통령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을 취재하며 마약범과 관계없는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최대 2만 명 추정)가 발생했다고 고발했다. 래플러는 두테르테 집권 이후 약 300만 명에게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페이스북 페이지 그룹을 폭로하기도 했다.

래플러는 필리핀 언론사 가운데 온라인 매체 이용률 4위로 영향력이 적지 않다. 두테르테는 래플러를 가리켜 “사살돼야 할 간첩처럼 취급해야 한다”,“가짜뉴스 매체”라고 비난했다. 래플러 기자들을 비롯해 정부비판적인 필리핀 언론인들은 소셜미디어에서 국가의적‧체제전복세력‧공산주의자 등으로 낙인찍혀 괴롭힘당하고 있다. 특히 여성 기자들의 경우 온라인에서 성적 모욕과 함께 성폭력 위협까지 받고 있다. 

마리아 레사는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언론인이 된다는 것이 요즘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 올해로 기자 생활 35년째인데 필리핀 정부가 최근 2년간 내게 10건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껏 4번의 출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지난해 7월 법원에 출석한 자리에선 “최선의 대응은 계속 보도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저널리즘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올해 국경없는기자회가 밝힌 필리핀의 언론자유지수는 138위다.

▲마리아 레사. KBS '질문하는 기자들Q'의 한 장면.

▲드미트리 무라토프. KBS '질문하는 기자들Q'의 한 장면.

러시아의 언론자유지수는 필리핀보다 낮은 150위다. 드미트리 무라토프는 1993년 ‘노바야 가제타(Новая газета, 새로운 신문이란 뜻)’ 설립에 참여한 이후 24년째 편집장을 맡고 있다.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에 남은 사실상 유일한 독립언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이 상은 목숨을 바쳐 쓰러져간 동료들,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유리 슈체코치힌, 이고르 돔니코프, 아나스타샤 바부로바, 스타스 마르켈로프, 나타샤 에스테미로바에게 주는 상이다. 나는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노바야 가제타 소속 기자 6명이 괴한의 총격을 받거나 둔기를 맞고 숨졌다. 부편집장이었던 유리 슈체코치힌은 독극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과거 자신의 저서에서 “푸틴은 러시아의 어두웠던 첩보 활동 결과물로, 출신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KGB 요원처럼 계속 행동한다”고 비판한 결과 이 세상에 없다. 푸틴이 1999년 총리가 된 이후 러시아에서 보도와 관련해 최소 34명의 언론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의 경찰의 불법행위, 선거부정, 친정부 댓글부대 등을 폭로하며 인권탄압실태를 알리고 배후에 있는 정부를 고발해왔다. 1990년대 체첸전에서의 인권유린, 2015년 야권 지도자 넴초프 암살 등을 다뤘고 지난해에는 푸틴의 측근이 운영하는 민간군사업체 용병들이 분쟁지역에서 포로를 어떻게 고문하고 죽였는지 보도했다. 이후 언론사는 화학물질 테러를 당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어떤 사회도 비리를 취재하고 시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언론인이 없다면 자유롭고 공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언론인보호위원회에 의하면 2020년 현재 전 세계에 274명의 기자가 투옥됐고, 이 중 184명이 반국가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52명은 혐의도 모른다.

▲ⓒ국경없는기자회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올해 전 세계 180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저널리즘이 일정 수준 이상 차단된 국가가 73%(132개 국가)로 나타났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전 세계 언론자유도를 측정하는 글로벌 지표는 2013년 이후 올해까지 12%나 하락했다. 해마다 권력의 언론혐오(미디어 포비아)는 증가하고 있다. 괴벨스의 대중선동이 활개치던 나치 시절 이후 86년 만의 언론인 노벨평화상 수상은 역설적으로 전 세계적인 언론의 위기,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사회도 예외일 수 없다.

* 이글은 2021년 11월 06일(토)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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