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이 23일까지다. 지난 2012년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 입법발의 운동을 시작 이후 8년이 흐른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내년 1월27일 시행한다.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 적용을 3년간 유예하고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아예 적용하지 않기로 했고, 책임 대상과 처벌수위를 낮춰 ‘누더기’가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두고도 노사 양측에서 비판이 나왔다. 경영계에선 법 시행이 6개월도 안 남았는데 경영책임자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준비기간이 짧다거나 경미한 질병도 중대재해로 간주한 것 등을 문제 삼았고, 노동계에선 중대재해를 막자는 법 취지와 달리 법에서 시행령에 위임하지 않은 것까지 규정하며 사각지대가 늘어난 것들을 지적했다. 규정이 모호해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건 양측이 모두 지적하는 점이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23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인1조로 근무했더라면 내 아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당시 현장이 너무 넓어 울부짖어도 안전줄 당겨줄 사람이 없었고 너무 어두워 시신을 찾지 못해 4시간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된 후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 1월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해단식에서 울먹이며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시행령에선 노동계가 꾸준히 제기했던 2인1조 작업, 과로사 예방을 위한 적정인력과 예산확보 의무를 명시하지 않았다. 시행령 4조에선 ‘재해예방’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으로 범위를 한정했을 뿐이다.

직업성 질병 범위의 경우 양쪽에서 비판이 나온다. 한국경제 23일자 “열사병도 중대재해…‘직업성 질병 범위 지나치게 넓어’”란 기사를 보면 “경미한 질병이 다수 포함돼 처벌 가능성이 커졌다”며 열사병, 급성중독 등을 거론했다. 한경은 “열사병은 건설현장 등에서 수시로 발생하고 대부분 1~2일 정도 휴식 후 회복 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급성중독은 질병 이름이 아니어서 증상과 범위가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한경 기사를 보면 경미한 질병까지 규정해 경영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한 것 같이 보이지만 규정을 구체적으로 보면 상황은 다르다. 최근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는 폭염 속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보도되고, 온열질환 환자도 전년대비 2.6배나 증가하는 등 심각성이 커져서다.

▲ 23일 한국경제 경제면 기사

더 큰 문제는 진짜 ‘중대재해’가 시행령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참여연대는 23일 법무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과로사의 주 원인인 뇌·심혈관계 질환, 직업상 암, 근골격계 질환 등이 법적용 대상에서 모두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현재순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노동안전보건실장은 23일 회견에서 “급성독성의 경우 노출정도와 작업자 생리적 특성에 대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얘기한다”며 “특히 특정 진단명, 병명을 하나만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왜 하나만 협소하게 특정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몇년전부터 사고성 재해보다 질병 사망재해가 더 많다”며 “질병성 질병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경은 위 기사에서 “직업성 질병으로 명시한 중추신경계 장해, 자율신경계 장해, 위장관계 질병 등도 증상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며 “사업주가 이들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경영계 입장을 전했다.

원청 책임자에게 확실하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것 역시 시행령의 한계다. 안전보건 점검 업무를 외부 민간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또 다른 위험의 외주화다. 점검업무를 위탁받은 업체는 을의 입장에서 제대로 점검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와 함께 중대재해 발생시 경영책임자는 민간에 점검 업무를 위탁했으니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중대재해 발생 법인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교육을 200시간 이내로 정했는데 이러한 교육에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시민들에 대한 재해를 보호하자는 취지도 있다. 그러나 ‘공중 이용시설의 범위’를 좁게 규정해 논란이다.

김혜진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는 회견에서 “법에서는 대상이 되는 공중이용시설을 규정하면서 ‘재해 발생시 생명·신체상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를 명시했는데 이는 법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며 “그러나 시행령에선 ‘공중이용시설’ 포함 대상을 6개로 줄여 사각지대를 줄이려는 조항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판교 야외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 광주 철거건물 붕괴사고 등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 23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관련 기자회견 모습. 사진=참여연대

원료·제조물의 범위도 협조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공동대표는 “법에서 위임하지 않았는데 시행령에서 일방적으로 원료제조물의 종류를 마약·농약 등으로 한정했는데 일상에서 접하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 외에도 법이 위임한 범위를 넘어 소상공인의 경우 경영책임자 일부 의무를 면제한 것도 문제 삼았다.

신고자를 확실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 공동대표는 “위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면 안 되고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시행령에 시민 권리 보장 내용을 다루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법무부에 의견서와 함께 1100여명의 시민들이 서명한 시민의견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한겨레는 23일 사설에서 “한해 8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가는 산재는 노사의 줄다리기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정부는 삶의 터전인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죽음과 대면하는 처지의 국민들을 생각하며 시행령 조항을 가다듬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김미숙 이사장도 회견에서 “방방곡곡에서 일어나는 산재 참사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으로 만든 법이니 후퇴시키는 시행령을 만들어선 안 된다”며 “제대로 법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과 지지를 호소한다”고 했다.

* 이글은 2021년 08월 23일(월)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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