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재준 비호는 대통령 탄핵감이다

민중의소리

최종수정 2014-03-27 07:32:01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으로 닉슨은 임기 중 사퇴한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그런데 닉슨의 대통령 사임 원인은 워터게이트 사건 그 자체가 아니었다. 미국 하원이 사법방해죄, 권력남용죄, 의회모욕죄로 닉슨에 대한 탄핵소추를 가결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닉슨이 자진 사임을 발표한 것이다. 의회가 닉슨을 탄핵하게 된 직접적인 사유는 CIA(중앙정보국)를 통해 FBI(연방수사국)의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관련 증거를 인멸하며 진실을 축소 은폐한 것이었다.

40년 전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똑같은 정치 스캔들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먼저, 사법방해죄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국가정보원은 무고한 생사람을 간첩으로 날조하기 위해 외국 공문서까지 위조해 국제적인 망신을 산 것은 물론 그것을 증거랍시고 사법부에 제출함으로써 급기야 ‘국가조작원’으로 조롱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원은 사법방해죄를 넘어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국기문란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수사방해와 증거인멸 역시 두말 할 것도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국정원은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별의 별짓을 다했다. 가장 낯 뜨거운 짓이 자살소동이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국정원 프락치 김모씨가 먼저 자살소동을 벌이더니 검찰이 수사로 전환해 국정원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자 이번에는 또 국정원 직원 권 모 과장이 자살을 기도했다. 국정원이 권씨를 병원에 입원시켜 격리해 놓은 상태라 검찰 수사가 난관에 봉착했다.

수사방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는, 국정원이 자살이나 자해 소동과 같은 야비한 방식으로 수사를 방해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8년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자해 소동과 2005년 안기부 특수 도청조직 ‘미림’의 팀장이었던 공운영 씨의 자해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권영해는 이른바 1997년 대선 때의 '북풍사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자해를 시도했다. 당시 권 부장은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의 당선을 지원하기 위해 직원 200명을 파견하고,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의 대남공작을 이용하는 등 '북풍공작사건'을 지휘했는데, 이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자해 소동을 벌였다. 공운영은 2005년을 뜨겁게 달궜던 ‘안기부 X파일’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다. 공 팀장은 X파일의 사회적 파장이 날로 커지자 미리 13쪽에 달하는 자술서를 언론에 공개하고 자살을 기도했다. 이번에 자살을 기도한 국정원의 권 과장도 자살 시도 12시간 전에 어떤 일간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국정원의 수사방해는 대통령의 하명에 대한 항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국정원의 적극적인 협조를 지시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검찰에 대해 "이번 사건을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또한 국정원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따라서 작금에 벌어진 국정원의 수사방해는 유일한 지휘 감독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정면으로 어긴 명백한 항명 사건이다.

사태의 결말은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대통령이 항명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남재준 국정원장을 파면시키든가, 아니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고 국정원장에게 은밀히 수사방해를 지시했든가.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남재준 원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것은 국정원장 개인에 대한 비호를 넘어서는 심각한 사태로 번질 수 있다.

대통령이 국기문란과 같은 중대한 현안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고 정보기관에게 은밀히 수사방해와 사법방해를 지시한 것이라면 사태는 자못 심각해진다. 작금의 청와대가 닉슨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재준 원장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두 눈 뜨고 똑똑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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