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천안함 사건 4주기를 맞아 북 당국이 천안함 사건에서 희생된 장병을 위해 조의 표명을 할 것을 제안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금강산 사건(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 연평도 사건, 천안함 사건에서 희생된 모든 이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조의 표명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우선 이 대표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한 시점에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발언에 이어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해 위원장까지 직접 맡고 나서며 남북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이번 독일 방문도 통일에 대한 메시지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다. 이 대표의 발언은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는 있지만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는 길목에 걸림돌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남북간 소통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 한반도 상황을 획기적으로 전진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조치는, 종전선언 의지 표명 및 이를 위한 남북정상회담 제의”라며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정상회담을 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우리가 한국전쟁과 이어진 충돌에서 쌓인 원한과 갈등을 넘어서겠다는 평화를 향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면, 북도 우리 정부가 제안한 이산가족상봉 정례화는 물론 남북정상회담에도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은 남북대결 사이 벌어진 일에 대한 남북간 소통이 우선이라는 것을 강조한 대목이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한국전쟁과 그를 전후한 남북 간 충돌에서 희생된 모든 이들을 함께 추모하고 그 가족들을 위로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남북관계 회복에 난제였던 금강산 사건, 연평도 사건, 천안함 사건에서 희생된 모든 이들에 대한 북 당국의 조의 표명을 제안 드린다”며 “우리 정부가 5.24 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 관광 및 민간차원의 남북교역과 접촉을 전면 허용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대통령이 당연직 의장을 맡고 있는 민주평통 자문회의의 북에 대한 비료 지원 사업조차 청와대의 반대로 벽에 부딪혀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이런 상태에서 ‘통일대박’을 말하면 진정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민간접촉이 열려야 온 국민이 통일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고 촉구했다.

이 대표의 발언 전문을 살펴보면 천안함 사건이 북의 소행이라는 대목이 없다.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 직후 대변인을 통해서도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는 입장에는 변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보수 인사들은 이 같은 점을 거론하며 결국 통합진보당이 천안함 사건이 북의 폭침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북의 사과가 아닌 조의를 제안한 배경또한 북이 원하고 있는 5. 24 조치 해제 등 요구 내용을 정당화시키려는 전략이 숨어있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정희 대표가 현재 통합진보당에 덧씌워진 종북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타개책의 일환으로 북의 조문을 제안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고, 정당 해산까지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보수-진보 양 진영에서 해석의 여지가 많은 북의 조문을 제안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꾀했다는 것이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하지만 이 대표의 제안을 정치적 전략이라며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천안함 사건을 풀지 않고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박근혜 정부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의 조의 표명 요구는 역으로 박근혜 정부도 천안함 사건을 풀기 위해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는 요구의 성격이 강하다.

만약 북이 이 대표의 제안을 수용해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한 조의를 표명할 경우 박근혜 정부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박근혜 정부가 자칫 조의 표명을 수용할 경우 현재까지 북의 폭침이라는 입장을 수정하는 모양새가 되고 이럴 경우 보수 지지층으로부터도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북이 조의 표명을 했는데도 수용을 하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이 대표의 발언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파장이 확산됐지만 청와대와 여권에서 거의 반응이 없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같은 ‘무대응’을 북이 조문을 표명할 경우 청와대와 정부 입장이 곤란해지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군 당국으로부터 명예훼손 고발을 당해 4년째 법정에서 천안함 사건의 진실규명 싸움을 하고 있는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북이 왜 우리가 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조문을 해야 하느냐는 반응을 내놓거나 아니면 우리가 하지 않았지만 조문을 할 수 있다는 등 반응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며 “만약 북 당국이 조의 표명 의사를 밝히고 단순 의사를 넘어 평택 2함대까지 방문한다고 했을 때는 파괴력이 엄청날 것이다. 현 정부에서는 진정성 있는 사과가 우선이라며 극구 조의를 말리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커 오히려 조의를 한다는데 말리는 웃기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은 천안함 사고 발생시 남한, 중국, 미국이 참여하는 4개국간 공동조사를 요구했고 북의 어뢰 폭침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해당 재료를 쓰지 않는다며 재료를 제출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거부했다. 북이 조문 의사를 밝히면서 동시에 천안함 사고 원인에 대해 진상조사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북이 조문을 표명하는 순간 박근혜 정부는 ‘시한폭탄’을 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단순 조의 표명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변수를 통해 정치적 파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천안함 명예훼손 사건과 관련, 인사발령으로 인해 재판부는 4번째, 검찰은 3번째 교체되면서 장기간 공판이 예상된다. 신상철 대표에 따르면 약 40여명의 증인이 남아있고 한 달에 한번 꼴로 열리는 공판 일정을 감안했을 때 결심 공판까지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상철 대표는 “결론을 빨리 내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진실에 근접한 사실들이 증언과 자료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아쉬운 부분은 언론이 다루지 않아서 정말 소중하게 알려져야 할 부분도 묻혀 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