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교학사’ 거부되자 이번엔 “국정교과서”

ㆍ당대표·원내대표, 돌아가면서 “국가 공인 역사” 거론
ㆍ역사학계 “독재정권이나 국정… 교학사 참패 졸속 대책”

새누리당에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회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역사왜곡·오류 논란이 제기된 교학사 교과서가 학교와 시민사회에서 통째로 거부되자 10년 넘게 이어져온 역사교과서 검인정 체제를 바꾸겠다고 방향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교학사 ‘참패’의 불똥을 국정화 문제로 옮기고 정부 입맛에 맞는 이념 교육을 강화하려는 보수 일각의 복심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역사학계에서는 독재국가에나 남아 있는 국정체제 전환은 세계사 흐름과 배치되며, 국가의 획일적 시각을 강요하는 시대착오적인 망상을 버리지 못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교과서는 국정, 검인정, 자유발행 등 3가지로 나뉜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가 직접 통일된 교과서를 제작해 각급 학교에 일괄 배포하는 방식이다. 검인정교과서는 민간이 개발해 국가 검정심사를 거친 도서를 학교에서 쓰는 것이며, 자유발행 교과서는 검인정 절차 없이 민간출판사가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의 국사 과목은 1974년부터 국정 체제로 운영돼 오다 2002년 현대사 부분부터 검인정 체제로 바뀌었다.

‘국정 체제’ 군불 때기는 여권 핵심부가 주도하고 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현행 제도가 오히려 국민적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고, 불필요한 논란을 확대·생산한다면 민족의 장래와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국정교과서로 다시 돌아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회의에서 “역사 교과서만큼은 이념을 떠나서 역사적 사실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학생들이 비교 판단할 수 있도록 국가 공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을 당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가 공인하는 한 가지 역사로 국민을 육성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라고 직접 불씨를 지폈다.

유기홍 의원(왼쪽에서 세번째) 등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학사 교과서 선정 철회 학교에 대한 교육부의 특별조사 결과를 반박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8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국정(교과서)이라는 방향이 그렇게 옳은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계속해서 이렇게 역사교과서를 에워싸고 특정교과서는 안된다는 식의 논쟁이 심화된다면, 적어도 국사교과서에 관한 한 국정이 어떤 면에서는 필요하지 않나 하는 발상 자체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나승일 교육부 차관은 기자간담회에서 “그런 부분(국정교과서)에 대해 (새누리당에서) 요구받은 적 없다”며 “그러나 학생 교육에 필요하다면 그런 부분을 검토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나 제안에 대해 교육부도 여러차례 들은 바 있다”고 논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과 시민사회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역사교과서 친일독재 미화왜곡 대책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국정교과서 전환 주장은 교학사 교과서가 학생과 학부모의 거부로 채택률 0%대가 되자 엉뚱하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라며 “민주국가·선진국가에서 국정교과서로 국사를 가르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정교과서를 채택하자는 목소리는 세계적 추세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독재정권이나 사회주의 정권에서 국정교과서를 운용하거나 채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을 뿐,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검인정제도나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국정교과서 체제를 채택하고 국내 반발 속에 밀어붙이고 있다. 이 국정교과서는 현대사 기술에서 푸틴의 집권을 정당화해 장기 집권용이라는 시비가 따라붙고 있다. 중국은 국정교과서 채택 시도를 포기한 상태다. 북한 역시 국정교과서를 운용하고 있다. 반면 핀란드·스웨덴·네덜란드·호주 등과 같이 유럽이나 선진국들은 대개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다. 일본은 1947년 이후 검정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세계사적 흐름을 거스르는 황당한 주장은 교학사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졸속으로 나온 대응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얼마 전까지 ‘교학사 교과서의 다양성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국정교과서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며 “정부·여당이 처음부터 교학사 교과서를 준국정교과서로 삼으려다 실패하자 태도를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정책위원장은 “국정교과서는 유신시대 운용됐다가 민주화 이후 폐기된 것”이라며 “독재정권을 미화·정당화해 젊은 세대들을 우익 이데올로기로 의식화시킴으로써 장기 집권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덧붙였다.

< 곽희양·정환보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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