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비리 배경에는 한국전력기술(이하 한전기술)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출신, 그리고 특정 학맥을 중심으로 한 ‘원전 마피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6월 6일, MBC <뉴스데스크> ‘독점이 만든 원전 마피아…그들만의 리그’ 리포트 중)

원전 부품 시험기관의 시험성적서 조작 등 각종 비리로 원전 가동이 대거 중단되면서 전력수급 차질을 빚자 방송·언론에서도 연일 원전 관련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출신이 민·관·학을 장악해 일체의 다른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하는 카르텔을 일컫는 ‘원전 마피아’라는 단어를 등장시키며 원전비리를 가능케 한 구조와 그로 인한 전력난 등의 피해를 조명하는 보도를 연일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2년 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당시에도 “한국 원전은 안전하다”는 얘기만 반복했던 방송·언론의 모습과 비교하면 그나마 원전, 즉 핵 발전에 당연히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핵 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의 한계를 직시하려는 태도는 아니다.

▲ 6월 4일 KBS <뉴스9> ⓒKBS

KBS <뉴스9>는 원전비리 발생 이후 2주 동안 무려 27개의 관련 리포트를 배치하며 원전비리를 가능케 한 구조의 문제 등을 지적했다. (5월 30일 ‘원전부품 검증, 유착 구조에 무방비’, 6월 5일 ‘한수원 퇴직자 10명 3명 협력업체 재취업’, 6월 7일 ‘비리사슬 끊기, 실천이 과제’, 6월 10일 ‘성적서 위조 관행…불량 열교환기 납품 확인’ 등)

MBC <뉴스데스크>와 SBS <8뉴스>도 같은 기간 동안 각각 18개와 21개의 관련 리포트를 배치했다. 특히 <뉴스데스크>는 지난 6일 19번째로 배치한 집중취재 리포트에서 “한수원과 한전기술이 원전 산업을 독점하고 있는데, 한수원의 고위급 퇴직자 81인 중 65인이 각 분야 협력업체에 재취업했다”, “폐쇄적인 원전산업 구조 속에서 ‘원전 마피아’로 불리는 그들만의 리그가 생겨났고, 원자력 발전의 전 과정을 서울대 원자력공학과로 대표되는 특정 학맥이 장악하고 있어 견제와 감시가 어렵다” 등 ‘핵 카르텔’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짚었다.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들은 원전비리 자체, 그리고 정부의 원전비리 재발방지 의지(6월 7일 KBS <뉴스9> ‘정부, 원전비리와의 전쟁…부품 성적서 전수 조사’) 등과 관련한 리포트와 함께, 원전비리에 따른 원전가동 중단으로 인한 전력난 문제에 집중했다. ‘전력 아슬아슬…낮 시간 지하철 운행도 줄인다’(6월 10일 SBS <8뉴스>), ‘다시 전력경보 준비 단계…비상발전기 가동, 원전은?’(6월 7일 MBC <뉴스데스크>), ‘전력수급 연일 위기…1도 상승에 100만kW 더 필요’(6월 4일, KBS <뉴스9>) 등의 리포트가 거의 매일 이어졌다.

▲ 5월 28일 SBS <8뉴스> ⓒSBS

원전비리가 드러난 첫 날(5월 28일)에도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는 ‘먹통 원전 10기…다음 달부터 전력난 고비’(KBS <뉴스9>), ‘불량부품 원전 2기 가동중단…전력대란 우려’·‘여름 전력 수급 초비상…정부 긴급대책 발표예정’(MBC <뉴스데스크>), ‘전력 200만kW 부족…올여름 블랙아웃 닥치나’(SBS <8뉴스>) 등 전력난에만 관심을 쏟았다.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진 부품(제어케이블)은 원전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계통에 신호를 보내는 설비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핵연료 냉각과 방사성물질 차단에 문제가 생긴다. 원전사고 발생 시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일 수밖에 없는 데도, 지상파 3사의 보도는 원전안전에 대한 문제는 쏙 뺀 채 ‘전력난’만을 걱정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5월 29일 발표한 모니터 보고서에서 “지상파 3사가 ‘전력난’을 앞세움으로써, 원전관리 부실과 원전확대 정책을 밀어붙인 데 대한 책임을 교묘히 피해가려는 정부의 술수에 힘을 실어준 셈”이라고 지적한 이유다.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 재검토 보도 전무= 원전비리를 안전의 문제로 연결시키지 않는 언론 현실에서 ‘탈(脫)원전’에 대한 의제가 던져질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지난 5월 28일 이후 현재(6월 10일)까지 지상파 방송 3사 메인뉴스에서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의 문제를 짚는 리포트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때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당시 지상파 방송의 메인뉴스들은 “규모 6.5의 지진이 원전 바로 아래쪽 지반에서 일어나거나 건물 중량의 0.2배에 달하는 힘이 수평으로 가해져도 견딜 수 있게 내진 설계가 돼 있다”(2011년 3월 12일 MBC <뉴스데스크>)고 강조했다. 또 한국형 원전의 안전을 강조하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발언(2011년 3월 14일 MBC <뉴스데스크> ‘이대통령, 한국형 원전 안전 최고’, 2011년 3월 17일 KBS <뉴스9> ‘MB, 국내원전은 높은 안전기준으로 설계’)을 전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방송·언론의 이 같은 보도를 두고 언론계 일부에선 “언론도 ‘핵마피아’의 밥상에 숟갈을 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는데, 실제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지난해 12월 12일 공개한 한수원의 광고비 및 방송 제작지원비는 2009년 58억 5900만원, 2010년 38억 100만원, 2011년 57억 1000만원, 2012년 60억 2000만원에 달했다.

▲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최근 불거진 '원전 비리'에 대한 국정 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노컷뉴스

하 위원장은 “전력 수요에 따라 가동을 멈췄다 재개할 수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시적인 전력 피크에 대비하기 위해 원전과 같은 기저부하를 늘리자고 하는데, 그보단 전기수요 증가 억제와 가스복합·열병합 발전 등의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전 문제가 아무래도 전문가 영역이다 보니 언론도 정부 보도자료에 의존하거나, 이번과 같은 비리가 드러날 경우 사건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언론은 원전과 관련한 사실을 충실히 제시해 근본의 에너지 정책을 고민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