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원순 ‘제압’ 문건과 종북프레임

이광철 변호사(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최종수정 2013-05-18 12:25:36

작년 12월 11일 서울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부터 촉발된 국정원 사태. 문재인을 겨냥한 어제의 사태가 오늘은 박원순으로 이어진다. 내일은 안희정, 송영길을 ‘제압’하는 문건이 나타날까? 모레는, 글피는 또 무엇이 나올까? 과연 국정원 사태의 끝은 어디일까? 두 가지 점에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우선은 법률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한 형사처벌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

형사처벌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국정원의 ‘박원순 제압 공작’이 정치개입을 금지시키고 국정원의 직권남용을 특별히 금지토록 한 국가정보원법을 위배했다는데 구구한 이견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국가정보원법에 정치개입금지조항과 위반 시 형사처벌 규정이 신설된 것은 중정-안기부–국정원으로 이어지는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이 갖는 극심한 폐단에 대한 반성적 고려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검찰이 국정원이 부인하면 수사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직무유기나 다를 바 없다. 엄정하게 수사하여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나아가 합당한 형사책임을 법원에 구하는 것이 검찰이 소임임을 지적해둔다.

강경한 반북 아니면 모두 종북?

지난 9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 세종홀에서 열린 '2013 이웃종교화합주간 개막식'행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 세종홀에서 열린 '2013 이웃종교화합주간 개막식'행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뉴시스

다음으로 법률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갖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본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 한국 사회는 어떤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 국정원 사태는 그 갈림길의 지점과 그 앞에 놓은 양 갈래의 길을 보여주는 어떤 상징 같다. 국정원은 문재인과 박원순을 사살하려는 총에 ‘종북’이라는 탄약을 장착했다. 여기서 ‘종북’이라는 그 악마적 프레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에게 ‘종북’은 반북이 아닌 모든 것이다. 이렇게 반북이 아닌 모든 것을 ‘종북’으로 보게 되면 세상에 종북의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북한을 미워하는 사람, 그것도 보통 미워해서는 안 되고 지독하게 미워하는 사람들뿐이다. 그런데 북한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미워해도 조금만(!) 미워하는 가령, 진중권 같은 사람들은 대개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이거나 최소한 개혁적인 노선을 견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국정원의 종북프레임은 ‘북한을 추종’한다는 사전적 의미의 종북이 아닌, 바로 북한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미워해도 조금만(!) 미워하는 사람들을 겨누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이들이 지향하는 진보적이고 상식적인 가치를 사살하려고 겨누고 있다. 문재인과 박원순은 바로 국정원이 겨냥하고 있는 ‘종북’의 상징적인 사람이자 진보적인 가치이자 지향인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이러한 ‘종북프레임’에 입각한 국정원 사태가 한국 사회의 한 갈림길을 표상하는 상징으로 보는 이유는 이러한 종북프레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심상치 않은 기류 때문이다. 종래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은 그 실상이 폭로되면 국민들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하였었다. 정부 여당도 대놓고 옹호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국정원 사태를 보면, 종래의 양상과는 다르다. 새누리당은 ‘침묵모드’고, 국정원을 견제, 감시해야 할 국회 정보위원장인 서상기 같은 사람은 이번 사태는 깃털에 불과하다면서 대놓고 그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이른바 보수를 표방하는 언론의 행태 또한 다르지 않다. 조선일보 기자 김창균은 지난 4월 24일자 자사 지면에 “大選여론 조작 목적이면 330위 사이트 골랐겠나”라는 제목으로 국정원의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나섰다.

국정원 문제에서 범위를 넓혀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 노골적이다. 윤창중의 쓰레기 같은 구구설설조차 그 배후에 종북세력이 있다면서 윤창중 후원 국민소송인단을 만들자는 일각의 목소리는, 5.18 광주항쟁 당시의 희생자 시신을 ‘홍어’에 비유하는 ‘일베충’들의 충격적 사태에 이르면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이승만, 박정희 동영상에 대한 이른바 보수세력의 대대적인 공세는 ‘종북 척결’의 이름으로 어버이연합과 일베충들에 의하여 확대 재생산된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대형교회 등의 공세도 결국은 종북을 연결고리로 하였다. 종북 척결이라면 그 내용과 취지에 상관없이 여론의 상층부에서부터 밑바닥 여론에 이르기까지 비정상적이고 삐뚤어진 인식들이 공공연히 피력된다.

뉴스타파 김기훈 기자 '국정원 트위터 계정 의혹'

윤창중 성추행 옹호도, 차별금지법 반대도 ‘종북 척결’

이렇게 ‘종북’은 그 말 자체로 마녀사냥적 징표를 내포고 있다. ‘한국 사회가 어디로 나가야 하고, 현안 문제를 어떻게 풀 건가’의 문제에 대한 모든 일체의 이성적 사유와 합리적 토론을 배제한다. 진보적인 가치가 담긴 의제는 모두 ‘종북’으로 치부된다. 모두 척결의 대상일 뿐이다. 이 정도면 가히 도깨비 방망이다. 가뜩이나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한국 사회의 이념지형에서 종북프레임은 아예 진보적 가치 추구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 보수, 양심적 보수마저 설 자리를 잃게 하여 자칫 한국사회를 전체주의로 몰고 갈 강력한 뇌관이 될 수 있다. 일베충들이 보기에 문재인을 지지한 윤여준, 김지선을 지지한 표창원도 ‘종북’이다. 요컨대 지금 한국 사회는 전체주의로 가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종북프레임에 입각한 국정원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이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개혁진보세력에게 깊은 고뇌와 특단의 돌파구 마련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 솔직히 필자도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최근 법원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심재환 변호사를 종북으로 매도한 변 모라는 작자를 포함한 일군의 무리에게 손해배상이라는 철퇴를 가하였다. 종북이라는 프레임이 우리 헌법적 가치와 원칙에 어긋나는 것임을 확인한 고마운 판결이다. ‘종북 프레임’에 관하여 법률가로서 필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 판결은 새삼 지침을 주고 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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