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진실 추구보다 주장이 앞서는 언론
채동욱 검찰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총장이 임기 중 사퇴를 밝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지만, 채 총장은 검찰총장 추천위원회를 거친 최초의 총장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추천위원회는 검찰 개혁 차원에서 새로 도입된 제도이고 권력의 향배에 좌우되지 않는 검찰을 만들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에, 사임이 개인의 흠결 때문인지 권력의 압력 때문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부분은 국민 각자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문제일 테니, 검찰총장의 사임 계기를 만들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조선일보의 보도가 적절했는지 살펴보자.
언론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자를 감시 비판함으로써 주권자의 이익을 지켜야 할 소중한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는 이런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었을까?
조선일보의 최초 보도가 보도할 가치가 있었는지부터 따져볼 일이다. 비록 사생활의 보호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지만, 공직자 관련이라면 그 기본권을 제한해 사생활을 보도할 수도 있다. 단, 그 사생활이 공직자의 공적 업무 수행에 영향을 주는 범위 안에서 그렇다. 채 총장이 만에 하나 혼외 자식을 두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더라도 그게 공적 업무 수행에 영향을 주었는지 여부는 보도 여부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공적 업무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검찰총장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는 정보가 있다’는 증권가 찌라시의 연예 정보 같은 보도가 있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이만의 환경부 장관 관련 보도와 비교해보자. 당시 대다수 언론의 내용은 혼외 자식임을 주장하는 딸과 이를 부정하는 장관 사이의 친자 확인 소송에 대한 보도였고, 만약 사실이라면 자신의 딸을 부정하는 사람이 공정한 공적 업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문제였다. 즉 공적 업무를 수행할 품성이 있는지의 여부였다. 그럼에도 당시 조선일보는 사생활을 문제 삼지 않아야 된다고 했다.
지금은? 공적 업무 수행과 무관한 사생활 보도라고 비판받자, 채 총장 사건이 이만의 전 장관 건과 다른 것은 임모씨와 아는 사이임을 부정한 ‘거짓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보도할 가치가 있단다. 동문서답이다. 마치 어떤 찌라시 신문이 사생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 채 총장이 거짓말을 하자 분연히 조선일보가 나선 것 같다. 도대체 애초 무슨 가치가 있어 보도했냐는 질문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진실 여부로 들어가보자. 언론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사실이 곧 진실’이라는 명제가 있지만, 현실에서 사실이 곧 진실이 아닌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조선일보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학적부에 적힌 아버지 이름이 ‘채동욱’이라는 것과 임씨가 채 총장과 아는 사이라는 ‘사실’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것이 검찰총장 채동욱과 임씨의 아들이 친자 관계라는,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진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당사자인 임씨나 채동욱 총장을 취재하지도 않았다. 언론인 스스로 제정한 편집윤리강령 6조가 규정하고 있는 반론권 보장도 없었고, 이만의 전 장관 때처럼 본인이 부정하기 어려운 정황 정보를 자세히 제시하지도 못했다. 오직 일부 ‘사실’에 기초한 추론과 진실을 밝히라는 윽박지름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추론을 부정하는 임씨의 편지가 왔다. 편지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상식적으로라면 이제 조선일보가 자신의 주장이 진실임을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조선일보는 여전히 채 총장에게 입증하라고 한다. 진실 대신 언론이 권력화됐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채 총장은 유전자 검사를 해서라도 무관함을 밝히겠다고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시점 법무부는 초유의 검찰총장 ‘감찰’ 카드를 앞세워 사퇴를 유도했다. 이제 사퇴한 채 총장이 유전자 검사를 받을 가능성은 줄고 진실은 유야무야될지 모르겠다. 사퇴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일까? 눈엣가시 검찰총장이 물러나서 수사가 무뎌지기를 기대할 국정원? 아니면 유전자 검사까지 가서 친자 관계가 아님이 밝혀졌을 때 사회로부터 폐간 압박까지 받을 수 있었던 조선일보?
<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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