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외주제작·프리랜서 PD들을 만나 “독립PD들의 창작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치다. 생계와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방송법과 근로기준법 개정을 서둘러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 이재학 PD가 숨진 지 10개월 만에 근로감독이 추진된 데에도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18일 서울 중앙보훈회관에서 열린 한국독립PD협회와의 현장간담회에서 현장 외주제작·프리랜서 PD들,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와 만나 발언을 들은 뒤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독립PD들은 생명을 걸고 영혼을 갈아넣으며 작업하시지 않나”라며 “그런데 그분들 노동의 결과가 정의롭지 못하게 착취되거나, 아까 이대로 선생 말씀에 따르면 진실마저 왜곡되는 처지에 놓여있다. 참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리자나 경영자, 또는 공유재산을 허가받아 쓰는 사람들이 착취의 주체가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정하지가 않다”며 “이대로 방치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방송사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 어려움을 이런 식으로 전가해서야 되겠나”라고 되물었다.

이날 독립PD들과 이씨는 방송사의 갑을관계를 이용한 외주제작 단가 후려치기와 저작권 독점, 이재학 PD 부당해고와 사망사건을 비롯한 위장 프리랜서 PD 고용 관행 등 현장 실태를 증언했다.

이 대표는 “노동자성이란 것이, ‘누구에게 전속돼야만 노동자’라는 것은 (독립PD들을) 영원히 을로 만들고 시대를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낡은 틀을 가지고 어떻게 콘텐츠 진흥을 기약하느냐”며 “글쎄, 창작환경 이야기하는 자체가 사치다. 생계와 최소한의 인권 보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한국독립PD협회와 간담회에서 외주제작·프리랜서 PD들을 만나 방송법과 근로기준법 등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 대표는 그러면서 “오늘 근로기준법, 방송법, 노동법(에서) 한 마디로 공정거래가 되도록 불공정행위에 대한 처벌이 되고, 그에 앞서 공정제작비와 공급기준이 최소한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독립PD협회는 방송계 위장 프리랜서 관행을 방지하기 위해 ‘프리랜서’ 용어 정의를 추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불공정거래 금지행위에 ‘제작사’를 추가하고 프로그램 공급기준을 마련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이들 가운데 발의된 법안이 있는지 물은 뒤 “해당 상임위를 통해 발의된 것이 있다면 그걸 토대로 추가 발의해서 병합심리를 하든 해보겠다. 서둘러보겠다.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대표는 구두계약으로 14년 일하다 해고를 당한 뒤 노동자성을 다투다 숨진 이재학 청주방송 PD 사건에 대해서도 “사측의 횡포가 지나치다”며 “묵인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날 이대로씨는 청주방송이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 끝에 지난 7월 이 PD 근로자성과 부당해고 인정, 사망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에 합의한 뒤 이를 이행하지 않다 조사 결과를 부인하고 나선 상황을 증언했다. 이씨는 청주방송이 관련 증거를 은폐하거나 동료 증언 철회를 사주한 사실과 이두영 두진건설 회장(청주방송 이사회 의장)의 친인척 입사, 두진건설 홍보성 보도 등 대주주 전횡 정황도 언급하며 “지자체와 도지사까지도 이 회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라고 했다.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가 18일 한국독립PD협회 현장간담회에서 이 PD의 부당해고와 사망, 진상규명 끝 합의와 이후 사측의 파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노웅래, 전혜숙 의원은 18일 한국독립PD협회와 현장간담회를 가졌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 대표는 이에 “이재학 PD는 14년 근무했는데 임금이 160만원이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이대로님 말씀을 들어보면 사측의 횡포가 지나친 것 같은데 그걸 묵인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이 오는 21일 이 PD가 숨진 지 10개월 만에 근로감독에 착수하는 데에도 “고용노동지청은 (청주방송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들춰내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참석한 노웅래 민주당 의원(환경노동위원회)도 “확실하게 제대로 시시비비를 가려 노동자에게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창작 노동자 저작권이 보장되도록 문화체육관광부, 방송사들 입장을 고려해 챙기겠다. 저작권법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다”며 “독립PD들도 전국민 고용보험,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전혜숙 의원은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을지로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전 의원은 “외주제작사가 잘 만들어서 가져왔더니 (방송사는) 편성해줄테니 저작권을 달란 얘기를 하고 있다”며 “생각보다 심각하다. 영국에서 왜 BBC의 방송사-외주제작사 공급기준을 세세히 마련했는지 절감한다”고 했다. 이어 “방통위 관계자들을 불러 이 부분을 논의해 입법할 수 있으면 하고, 을지로위원회에 사안을 올려 심각한 갑을관계 상황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 방송통신위원회는 KBS 등 21개 지상파방송사업자 162개 방송국의 재허가를 의결하며 모든 지상파에 재허가 공통조건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올해 청주방송 故이재학PD 사태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방송사별 비정규직(계약직, 파견직, 프리랜서 등) 인력 현황 및 근로실태 파악을 위한 자료를 매년 4월 말까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할 것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안을 마련하여 재허가 이후 6개월 이내에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하고 그 이행실적을 매년 4월 말까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할 것을 공통 재허가 조건으로 부여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던 방송사 비정규직 규모와 임금체계, 불합리한 노동조건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 이글은 2020년 12월 19일(토)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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