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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첫 3·1 및 8·15 특집조선일보 대해부 2권-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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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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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이 신탁통치 반대와 찬성으로 들끓던 1946년 초봄, 8·15 해방 뒤 처음으로 3·1운동 기념일이 찾아왔다. 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에 창간되었으므로 1940년 8월 10일에 폐간당하기까지 3·1운동이 조선 민중의 해방과 독립을 위한 거족적 항쟁이었다는 기사나 논설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복간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3월 1일에 조선일보 경영진과 사원들의 마음이 착잡했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지면은 온통 흥분과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는 격문(檄文)과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최상의 수식어를 동원해서 평가하는 글들로 채워졌다.


‘망국 10년의 원한 만세!로 폭발’

1면 머리에는 「망국 10년의 원한 만세!로 폭발 / 상기하라 28년 전 3월 1일 오늘」이라는 컷이 ‘1920년 당시 개조(改組)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각원(閣員) 일동’의 사진과 맞물려 있었다. 이 기사의 부제는 「상극에서 화합으로 / 장하다 3천만의 이 거족적 경전(慶典)」이다.

반만년의 찬연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인 우리 3천만 겨레가 똑같이 천추의 한으로 가슴 속에 깊이 아로새기고 창천(蒼天)을 우러러 함원(含怨)의 억울함을 사해(四海)에 호소한 민족적 정의의 봉화는 강도 일본의 폭정의 철쇄(鐵鎖)를 끊어 인류 통성(通性)인 자유평등을 부르짖은 3·1운동의 선열을 사모하며 해외에서 30여 년 동안 갖은 풍상을 무릅쓰고 혈투하다가 찬 이슬로 사라진 동지 독립투사들을 추모하여 멀리 27년 전을 회상할 때 우리 겨레의 ‘얼’과 ‘넋’이 참됐고 새로웠음을 거듭 느끼게 된다.
오늘 이 성스럽고 감개무량한 역사적 경전을 거행하는 마당에 새로운 세기의 서광은 3천만 동포에게 의의 깊은 감명을 준다. 더욱이 보신각 ‘인경’ 소리조차 우리 3천만 동포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는 듯 우렁차고도 부드럽다.
이 거룩하고 역사적인 식전(式典)은 130만 시민의 환호와 감격으로 엄숙하게 진행되는 중 더욱이 해외에서 조국 광복을 위하여 반생을 희생한 김구 주석의 마이크를 통하여 나오는 말은 우리들의 폐부를 아프게 찌를 것이다. 쇳소리 같은 언성에는 감격에 넘치는 눈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과거 27년 전을 회고하는 김구 주석의 감격을 미루어 생각할 때 우리 3천만도 또한 한 마음 한 뜻으로 오직 조국을 위하는 한 마음으로 뭉쳐야 할 것이다.

2면에는 1919년 3월 1일을 상기시키면서 민족의 분열을 통탄하는 기사가 실렸다.

그날의 부르짖음은 / ‘강토’를 찾는 것뿐 / 동포야! 분열·내홍(內訌) 웬 말이냐

‘만세’ ‘만세’ ‘조선 독립 만세’ 하늘과 땅이 뒤집혀지도록 3천만이 한 마음 한 뜻로 야만적인 왜적의 총칼 앞에 목숨을 내던지고 불러 외친 저 1919년 3월 1일 그날의 우리의 주장과 부르짖음은 단군 이래 반만년 간 조상이 우리 ‘배달’족에 물려준 굳센 의지와 똑바른 얼과 피에서 스스로 우러나온 민족의 소리였었다.
그때 그날 28년 전 우리가 뭉친 전 민족의 대동단결 속에는 오로지 빼앗긴 강토를 찾고 잃어버린 역사를 찾자는 통일된 민족의 총의밖에 없었다.
추잡하고 비열한 주의주장에만 사로잡힌 나라를 좀먹는 분열도 내홍도 없었다. 국권회복 민족자결 외에는 아무런 요구도 갈등도 없었던 것이다. 도리어 생각건대 3·1운동이야말로 그 어느 한낱 영웅의 지도나 호령이나 또는 그 어느 특권계급의 권력 아래서 지휘를 받든지 하여 일어선 민중운동이 아니다. 심산유곡에서 ‘섬(覢)’을 베는 초부 목동,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지어미, 담 안에 숨겨 자라던 수줍은 시악시 그 누구를 막론하고 오로지 조국을 찾자는 약속 없는 공통된 주장 아래 엉키고 뭉치어 일어난 민족운동이였었다.

조선일보가 폐간되던 1940년 8월 이전에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이들은 이 기사를 읽을 때는 13~20세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그 무렵에 조선일보를 보았다면 ‘신국(神國) 일본의 기원 2600년 봉축’,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황통(皇統)’ 같은 표현을 자주 접했을 것이다. 그런데 해방이 되니 일본은 ‘강도’로 돌변하고 우리 민족의 조상은 ‘제1대 천황 아마데라스’가 아니라 단군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왜적의 철쇄를 끊기 위해 선열이 피로써 이룬 해방’

1946년의 8·15도 조선일보가 맞는 첫 번째 광복 기념일이었다. 그날 1면 머리에는 「3천만의 각오와 결의도 새롭게 / 8·15 승리와 해방의 첫 돌 맞이」라는 통단(通段) 컷이 올랐다. 바로 그 아래 실린 사설의 제목은 「해방 제2년 / 새 출발의 좋은 기회」이다.

금 8월 15일로써 우리는 해방 제2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승(戰勝)우방으로 보면 평화 기념이요 우리 민족으로 보면 해방 기념이다. 누가 이날을 심상히 지나칠 수 있으며 누가 이날을 기념하지 아니하리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은 그 처지가 다르고 민족과 민족은 그 경우가 같지 않은 만치 이날을 기념하는 의의도 스스로 다름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날을 어떻게 기념하여야 할까. 성대한 식전도 좋고 가두의 행진도 좋을 것이다. 음악회 경기회 등등의 행사도 으레 있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의식이나 행사만으로써 기념의 의의를 충분히 앙양하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니 무엇 때문에 기념이요 무엇을 위한 기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선양하지 않는다 하면 이 기념식은 결국 고무풍선과 같이 속이 빌 것이요 빈 사과와 같이 맛이 없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날을 기념하는가. 다시 말하면 우리는 무엇으로 인하여 해방이라는 큰 운명이 우리의 앞에 닥쳐왔는지를 검토하여 보자. (…) 반세기에 걸친 장구한 세월을 두고 왜적의 철쇄를 끊기 위하여 유명 무명의 다수한 선열이 피로써 항쟁한 결과라 할 것이니 이제 해방기념일을 당하여 그윽히 선열의 행적을 추모하며 그의 피 흘린 발자국을 우리가 다 같이 따라갈 각오를 다시금 든든히 하여서 오늘날 살아 있는 민족의 행복을 도모할 것은 물론이요 자손만대의 대계를 세워 후생에게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
(…) 해방을 완성한다 함은 즉 우리 민족을 완전히 해방하도록 노력한다 함이니, 작년 8월 15일이 일제의 독수(毒手)에서 우리 민족이 해방된 날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우리는 아직도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하기에는 현실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이날을 당하여 해방 1년을 회고하여 전 민족이 다 같이 좌나 우나 남이나 북이나 정당이나 단체나 공인이나 사인을 물론하고 엄숙한 자기비판과 자기청산을 단행하고 중외(中外) 대세를 통찰하여 민족국가 건설의 만년대계를 세워 안으로는 새 출발의 좋은 기회로 삼고 세계 각 민족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다.

이 사설은 지난 3월 1일자 지면의 흥분과 격앙에 비하면 차분하다는 인상을 준다.
조선일보 8월 15일자 1면에는 종전의 중요한 날들과 달리 이승만의 「소감」이 김구의 「발표문」보다 돋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화(和)하면 만사 성취’

50년 전에 우리 2천만이 다 각각 국가생명을 위하여 자기생명을 희생하기로 결심하였다면 우리가 다 살 수 있었을 것인데 각각 자기 하나만 살려다가 다 죽게 되었던 것이다.
1941년 이후로 미국인들이 자기 생명을 희생하여 저의 나라를 보호하고 동시에 우리를 해방시킨 고로 작년 8월 15일이 있게 된 것이니 지금 세상에는 누구나 제 생명을 버려서 제 나라와 제 동족을 살리려는 자는 다 살 수 있고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에 진취(進就)된 것도 많고 따라서 소망대로 이루지 못한 일도 많았지만 그 득실과 성패를 타점(打點)하여 보면 아직도 원만히 성공이 못된 원인은 다 남에게 있지 않고 다만 우리 한인(韓人)들이 각각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을 못하고 남들이 해주기만 바라고 있는 중에서 모든 일이 지연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8월 15일 이후로 한인들이 다 각각 자기의 생명과 사욕과 허영심과 파당성을 다 버리고 민국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서 전 민족의 대동통일을 이루어 서로 끌며 서로 밀어주어 한 궤도로 나갔다면 누가 막으며 누가 방해했을 것인가. 이것을 각오하는 우리는 오늘부터 새로 결심하고 민족 대단결만 하루 바삐 성취하면 우리 국권을 우리의 능력으로 회복할 것이다. 고서(古書)에 천시(天時)가 불여(不如) 지리(地理)요 불여 인화(人和)라 하였나니 우리만 화합하면 다 될 것이다.
8·15 기념일에
이승만

이 「소감」에는 이승만의 정치적 성향과 추상적인 ‘민족화합론’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8·15 해방이 ‘미국인들이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여’ 이룬 업적이라고 보는 것은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의 기여를 완전히 배제하는 시각이나 다름없다. ‘미국제일주의자’이승만의 면목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다음으로, 이승만 자신은 김구와 함께 우익 진영의 대표적 지도자로서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앞장서서 좌익을 극단적으로 적대시했다. 당시 조선공산당의 대중적 인기는 우익을 훨씬 능가했는데, 그들의 정치적 힘을 도외시하면서 ‘화하면 만사 성취’라고 주장하는 것은 공허한 원칙론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3단으로 실린 이승만의 「소감」 옆에 실린, 사진도 작고 제목도 2단으로 된 김구의 발표문은 훨씬 더 강경한 논조를 바탕으로 현실을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있다.

희비교차 / 연합국에 민족적 경의 / 김구 씨 ‘민족해방일에’ 발표

(···) 8월 15일! 이날은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 한국 민족에게만 영구히 기념된 감격과 흥분의 날일 뿐더러 왜적의 강도적 행위와 나치스독일의 구주(歐洲) 제패의 야욕이 멸망을 고함으로써 남을 정복하고 남에게 무리한 압박을 가하는 자의 말로를 전 세계 인류에게 명시하여준 의미 깊은 역사적 진리와 교훈의 날이다.
(···) 그러나 현하 세계 정세의 복잡다단함에 생각을 미치고 과거 1년 간 우리 민족이 걸어온 바 건국 1년의 형극의 길을 회고하여 볼 때 이날을 맞이하는 우리에게는 무의미한 감격과 흥분과 열광보다도 냉정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국제적 정세와 민주주의의 대세에 순응하여 모든 파벌적 편견, 개인적 오류를 하루바삐 청산하고 전 민족통일에 기초를 둔 자주독립의 실현을 촉성(促成)함에 민족이 한 덩어리가 되어 각자의 온갖 힘을 경주하자는 굳은 결심과 각오를 새로 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에 와서도 자주독립을 갈구하여 마지않는 민중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그들을 혼란과 환멸 속에 방황케 함을 생각할 때에는 내 자신의 지도자로서의 미력함을 심각히 느끼게 되고 이날을 맞이하는 기쁨보다 슬픔이 더욱 크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 이 의미 깊은 8월 15일을 맞이함에 있어서 우리 민족에게는 비관이나 감상이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전 민족의 각자가 조국의 자유독립을 위하여 선열의 유지를 계속함으로 분골쇄신해야 할 것을 믿고 바라며 약소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분투노력한 연합국에 대하여 전 민족적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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