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신, 원래 이렇게 홀랑 벗고 있었어요. 어유, 민망해라. 게다가 두 눈 똑바로 뜨고 뭔가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그 레이저 눈빛 참 무섭다. 레이저는 원래 박근혜, 우병우 전문인데. 특히 박근혜 레이저 눈빛. 등골 오싹했던 각료들이 적지 않았다잖아요. 오죽하면 삼성나라 임금님 이재용 마마마저 박근혜 독대 뒤에 “대통령 화났을 때 눈빛이 레이저를 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 측근들에게 토로했다잖아요.

이 여신, 테미스에요. 홀라당 벗고 다니다가 언젠가부터 옷을 입더래요. 그리스 여신이니 옛날 그리스 사람들이 입던 토가를 입었어요. 영문은 모르겠으나 이 여신이 입은 토가는 법복을 상징하게 됐어요. 오늘날 영어 표현에서도 ‘judge’s toga’는 ‘판관의 법복’을 뜻해요. 토가는 여신의 철학적 태도를 보여준다네요.

이 여신, 두 눈으로 레이저빔을 쏘아대더니 언젠가부터 눈가리개로 눈을 가려버려요. 눈 가리니 당연히 앞이 안보여요. 무지의 맹목(盲目) 상태가 되는 거에요.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 레이저는 고사하고 깜깜이가 웬일이래.

테미스는 정의 율법 질서 이치 등을 관장하는 여신이에요. 법과 정의를 제대로 수호하기 위해 눈을 가렸대요. 재판 제대로 하려고 눈가리개를 했대요. 아니, 재판 똑바로 하려면 오히려 두눈 부릅뜨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맹목의 무지로, 무지의 맹목으로 어떻게 진실을 밝혀내? 밝히려는 자가 스스로 깜깜이가 돼? 뭔 소리?

역설적이게도 눈가리개는 공평무사, 불편부당의 상징이에요. 감성이 이성을 왜곡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에요. “이쁜 여자가 마음도 곱다네” “돈 많은 놈이 정치하면 도둑질도 덜 할거야”같은 비이성적-비논리적 선입견이 생길까봐 아예 안보겠다는 거에요. ‘감각의 무지’ ‘선입견 제로’의 상태가 되자는 거에요. 외모 성별 권력 지위 빈부 등등은 보지말고 옳으냐, 그르냐는 본질적인 것만 이성의 눈으로 보자는 취지에요.

여신은 법복을 입고 눈을 가리고 나서 양손의 저울과 칼을 사용해요. 저울은 법의 공정을 나타내요. 저울이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불공정이에요. 칼은 법의 권위를 상징해요. 권위가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아무도 법을 따르지 않아요.

요즘 미국 철학자인 존 롤스(1921~2002)를 인용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는 공정을 위해 눈가리개 비슷한 ‘무지의 베일’을 쓰자고 주장해요. 외모 성별 권력 지위 빈부 등등은 보지말고 옳으냐, 그르냐는 본질적인 것만 이성의 눈으로 보자는 취지에요. 뭐, 눈가리개나 베일이나.

우병우 구속영장이 기각됐어요.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어요. “우병우 구속영장 기각은 검찰개혁의 실패다”(미디어오늘), “제식구 감싸기 비판”(YTN), “檢, 우병우 영장 재청구 검토?…면피성 쇼 그만하라!”(고발뉴스), “검찰개혁 당위성 다시 보여준 우병우 영장기각”(국민일보 사설), “有權無罪 우병우…부실수사한 검찰 개혁을”(매일경제). 헉헉, 숨차네.

대선주자 등 정치인들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어요. “檢 부실수사가 초래한 일”(문재인측), “사법정의 배신”(안철수), “검찰이 수사 잘못했을 것”(홍준표), “우병우 영장 기각, ‘검찰=우병우 라인’ 다시 한 번 확인”(심상정), “영장기각, 면죄부 의미 아냐”(유승민측), “檢개혁 필요성 절실히 느껴”(이해찬), “살아남은 유일권력 우병우, 다음은 무죄인가”(박범계). 국민과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비판은 숨이 가빠 생략.

글쎄요, 검찰은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해요. 근데 속고만 살아서 자꾸 의심이 들어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을 보았을까. 누군가의 눈치를 보았을까. 과연 눈을 가리긴 한 걸까. 가리긴 가렸는데, 눈 가리고 아웅 한 건 아닐까. 우병우인지 우방구지 깜깜이였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테미스

처음엔 “정의는 밝은 눈으로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며 레이저 눈빛 발사. 15세기 말쯤 독일에서 눈을 가리기 시작. 이후 웬만하면 눈가리고 나타나심. 제우스와 합작으로 정의의 여신 딸 디케 출산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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