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내가 폭포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어요. 쉬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거미줄이 나타나 다리를 엮었어요. 사내는 얼른 거미줄을 풀어 근처에 있던 나무 그루터기에 묶었어요. 아이고, 거미줄은 순식간에 나무뿌리까지 뽑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어요. 이 얘기가 폭포 아래 살던 마을 사람들한테 쫙 퍼졌어요. 사람들은 폭포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어요. 나무꾼이나 벌목꾼, 심마니들도 발길을 끊었어요. 인적이 끊기자 폭포 근처 숲은 점점 우거지고 나무는 점점 굵어졌어요.

(첫번째 이야기)

“여기 나무 많네! 죄다 굵직굵직하구먼!” 어느날, 외지에서 온 한 벌목꾼이 폭포 근처 숲에서 나무를 잘라내기 시작했어요. 신나게 도끼질을 하던 벌목꾼은 아차하는 순간 도끼를 물에 빠뜨렸어요. “환장하겄네....” 벌목꾼은 난감해 했어요. “이 도끼가 당신 도끼여?” 어떤 예쁜 여자가 물에서 나타나더니 도끼를 내주는 거에요. 벌목꾼이 “신신령 흉내 내시네? 하여튼 고맙다!”고 공치사를 하자 여자는 “고마우면 나 보았다는 얘기를 아무한테도 하지 마쇼”라고 말했어요. 벌목꾼은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어요.

산밑으로 돌아온 벌목꾼은 자꾸만 그 여자가 생각났어요. 안정이 안되고 뭔가 초조해지는 이상스런 감정상태에 빠져들었어요. 비밀도 누설하고 싶었어요. 정확치는 않지만 그 여자한테 뭔가 엮였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벌목꾼은 불안감을 떨쳐보려 술을 왕창 마셨어요. 술에 만취한 그는 고래고래 ‘소낙비’를 부르며 비밀을 누설했어요.

“무엇을 보았니 내 아들아, 무엇을 보았니 내 딸들아.... 나는 파란 폭포에서 나오는 한 여자를 만났오, 끄윽....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끄윽.” 노래를 부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어요. 그는 ‘소낙비’를 흥얼거리다가 비몽사몽 됐어요. “음냐, 소나기가 표준어인디.... "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거미줄이 그의 몸을 또다시 엮기 시작했어요. "근디 이게 또 뭐라냐....” 엮인 그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어요.

(두번째, 다른 이야기)

벌목꾼은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됐어요. 그는 여자를 보러 허구헌날 폭포를 찾았어요. 하지만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해보신 분 다 알지만, 짝사랑에 빠지면 외로워지는 법이에요. 외로워지면 몸도 마음도 쇠약해지는 법이에요. 상사병에 빠진 벌목꾼은 나날이 꼬챙이가 돼갔어요.

어느날 한 스님이 상사병으로 거의 죽기 직전인 꼬챙이를 보게 됐어요. “쯧쯧, 못된 계집헌티 홀렸구먼.” 스님은 혀를 차며 꼬챙이를 폭포로 데려갔어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은 목탁을 두둘기며 경을 읽었어요. 그러자 어디선가 거미줄이 나타나 꼬챙이를 엮으려 했어요. 스님은 독경을 멈추고 다시 찬불가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거미줄이 사라졌어요.

스님은 벌목꾼에게 자초지종을 말해줬어요. “알겠나? 자네가 좋아하는 여자는 사실 암거미일세. 인간이 어찌 거미를 사랑할 수 있겠나. 그만 포기허셔.” 꼬챙이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난 그 여자가 거미든 개미든 상관없어요. 스님은 나 안도와 주실거지요? 그럼 저는 산귀신 텡구한테 부탁할 거에요.” 멍청하긴, 그러다 또 엮인다.

“사랑밖엔 난 몰라....” 벌목꾼은 텡구를 찾아가 하소연했어요. 하지만 산귀신도 “암거미랑은 엮이지 말어” 하면서 되돌아섰어요. 실망한 벌목꾼은 헉헉대며 다시 폭포로 돌아갔어요. 도착하자마자 또 거미줄이 나타났어요. 거미줄은 벌목꾼의 몸을 꽁꽁 엮었어요. 벌목꾼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안나왔어요. 거미여인한테 더럽게 엮인 거에요.

(세번째, 박근혜 이야기)

박근혜는 한동안 검찰수사, 특검수사, 헌재출석 등을 거부하면서 “엮였다”고 자신에 대한 혐의를 몽땅 부인했어요. 어떤 측면으로는, 엮인 건 박근혜가 아니라 주변인물들이에요. 박근혜한테 엮여 패가망신한 사람, 직장 잃은 사람 등등 얼마나 많아요. 사실은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이런 인간들 빼고 전국민이 박근혜한테 엮인 거에요. 엮여도 더럽게 엮였지. 진실은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 밝혀진다구? 어이구, 이 거미만도 못한 인간아.

조로구모
이야기 속의 거미요괴는 조로구모. 사람 엮는데 탁월한 기술을 가진 암거미. 400세가 되면 변신술 등 마법의 힘을 얻음. 에도시대의 괴담집 『태평백물어(太平百物語)』 등의 문헌에 등장. 『태평백물어』에 ‘조로구모가 처마 끝에 집을 짓다 그 집 남자한테 반해 여자로 변신하여 유혹한다’는 이야기 나옴. 토리야마 세키엔의 『??百鬼夜行(화도백귀야행)』에서는 실을 뿜어 새끼거미들을 조종하는 거대한 거미 여귀의 모습으로 묘사됨. 자신의 혈육마저 거미줄로 엮어버리는 악질. 가장 전형적인 이야기는 거미요괴가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신하여 사무라이에게 접근, “결혼하자”고 유혹한 뒤 파멸시킨다는 것임. 임신하고 있는 젊은 여성으로도 나타남. 뱃속 새끼들의 정체는 물론 거미알.

이름의 뜻
낙신부(絡新婦)라고도 함. 말그대로 ‘엮는 신부’, 영어표현으로도 ‘binding bride’. 낙신부의 ‘絡=이을, 얽을, 엮을 락’. 여랑지주(女?蜘蛛)라고도 하는데 ‘매춘부 거미’라는 뜻. 여랑=매춘부나 창녀, 지주=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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