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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대선-‘DJP 연합’과 평화적 정권 교체동아일보 대해부 4권 - 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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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2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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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은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1997년 1월 7일 연두회견에서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열겠다면서도, 어려운 경제 등 국정 과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후보를 빨리 정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후보 선정에 관해 “당 총재로서 나의 입장을 분명히 당과 국민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말해, 지지후보를 밝힐 생각임을 확실히 했다.

하지만 후보 결정의 시기를 자신이 정하고, 자기가 지지하는 인물을 신한국당 후보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김영삼 개인의 꿈에 불과했다. 1997년 봄의 한보 사태, 김현철과 측근들의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황(장엽)풍’으로 덮어보려 했으나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김영삼이 완전한 레임덕에 빠지면서 ‘9룡’이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선두주자는 신한국당 고문 이회창이었다.


이회창의 치명적 약점- 두 아들 병역 문제

이회창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하나 있었다. 두 아들의 병역문제였다. 그 문제는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부터 불거져 나왔다. 동아일보 7월 26일자 사설(「179㎝에 45㎏」)은 “이 대표의 두 아들이 어딘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면 이 대표는 선거전에서 두고두고 야당의 공격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면서 “야당 측에서는 장남의 병역 면제조치 법 적용에 명백한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고 국방장관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됐다고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병무 당국이 적극적으로 관계 자료를 밝혀 의혹을 깨끗이 풀어야 한다. 병무당국 뿐 아니라 이 대표나 이 대표의 아들들도 키와 체중간의 괴리 이유를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그 사설은 이어 “공교롭게도 아들 둘이 똑같이 체중 미달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면 의심을 살 만도 하다. 더구나 그들이 사회 지도층 자녀일 경우 의혹은 증폭된다. 이 대표는 여당 대통령후보다. 달갑잖은 의혹이 제기된 이상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옳다”고 결론을 맺었자만  분명한 정리 방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안도 하지 않았다.

8월 3일 이회창은 “이번 사안을 놓고 구구하게 변명하거나 사실 관계 해명을 하지는 않겠다. 체중 미달로 병역을 면제받은 두 아들이 부정하게 군 복무를 피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런 의혹이 빚어진 데 대해 “국민에게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4일자 사설(「이회창 씨 고개는 숙였지만」)은 “문제는 그의 유감 표시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속 시원히 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안에서조차 이런 식의 해명이라면 하지 않느니만 못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비판했다.

  (…) 이 대표 장·차남의 병역 시비 핵심은 그들의 병역 면제에 고의성이 있었느냐 여부로 모아진다. 사람들은 키에 비해 몸무게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두 아들의 신검 결과가 의도적 살 빼기로 결격 사유를 만든 것은 아닌지, 혹시 신검 과정에서 조작은 없었는지 궁금해 한다. 차남의 병적 기록에 백부모가 부모로 기재 되었다거나 가필 흔적이 있다는 점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두 아들이 모두 결격 사유로 병역의무를 면제받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군통수권을 떳떳이 행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으나 지금은 그렇게 멀리 생각할 계제도 아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 대표의 해명은 당장 국민을 납득시키고 이해를 구하는 데 미흡했다.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의혹의 불씨를 끌 수 있는 증거 제시도 없었고 해명 내용 또한 새로운 것이 없다.
  야당들이 이 대표의 해명 직후 진정한 사과로 볼 수 없다며 대통령 후보직 사퇴까지 주장할 정도로 이번 사안은 심각하다. 야당 측이 문제를 대선용 정쟁거리로만 몰고 간다는 여당 주장을 수긍 못할 바 아니나 국민이 이번 사안의 진상을 낱낱이 알고 싶어 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 대표가 정말로 떳떳하다면 진실 규명을 위한 조사를 자청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이인제 변수

이회창이 병역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수록 여당인 신한국당 내에서는 후보교체론이 힘을 얻으면서 분열이 가속화되어 갔다. 대통령 김영삼이 말한 ‘깜짝 놀랄만한 젊은 후보’가 누구냐는 논란 속에 7월 21일 경선에서 2위를 차지했던 이인제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결선 투표에서 40% 대 60%로 이회창에게 패배한 그는 ‘깨끗한 승복’을 선언했으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경선 불복’ ‘독자 출마’ 소리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8월 27일자 사설(「경선 불복」)로 그런 정황을 다루었다. 

  대통령후보 경선 이후 한 달 넘게 내홍을 거듭하는 신한국당의 모습이 딱하다. 사람을 폭넓게 끌어안지 못하는 이회창 대표의 한계가 그렇고 결과에 무조건 승복하겠다던 경선 전 약속과 달리 독자 행보를 거듭하는 경선 낙선자들의 태도도 보기에 마땅치 않다. 이인제 경기지사가 26일 당 개혁안을 들고 이 대표를 만난 것이 독자 출마를 위한 포석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이 같은 행태들이 정치 정도와 거리가 먼 것임은 분명하다. 이 지사 등의 독자 출마설이 불거진 데는 물론 이 대표의 책임이 크다. 두 아들 병역문제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고 여론조사에서 야당에 선두를 빼앗긴지 오랜데도 이를 돌파할 방책이 없고 당 내부조차 추스르지 못하니 낙마설, 후보교체설이 나올 만 했다. 때문에 경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것으로 드러난 이 지사가 강도 높은 압박전술을 펴는 것 아니겠는가.
상황이 그렇다 해도 이 지사의 독자 출마 채비를 정당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공식적·최종적인 당내 절차를 거쳐 확정된 후보가 그 뒤 마땅치 않고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어 경선 낙선자들이 대선에 뛰어든다면 당내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당정치가 발 붙일 틈이 없게 된다. 여건에 따라 게임의 약속을 뒤집는 것은 정글에서나 가능한 논리지 정치논리가 될 수 없다. (…)
  경선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깨고라도 꼭 출마하겠다면 막을 길은 없다. 다만 바로 어제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경선 불복’과 ‘독자 출마’에 반대하는 동아일보의 입장은 신한국당 당원들의 여론 흐름과도 맞는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자매지 <NEWS+>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9월 4일부터 6일까지 신한국당 전당대회에 참석했던 대의원 1만2천여명 중 6백61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10일자 2면에 보도했다. 대의원 대다수는 ‘후보 교체론’에 반대하고 있으며 대선에서 신한국당의 승산이 높다고 생각한다는것이다. 후보 교체 문제에 대해 반대 의견은 79.8%(절대 교체 불가 50.1%, 문제는 있으나 교체에는 반대 29.7%), 경우에 따라 교체 가능하다는 의견은 13.1%,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은 5.5%에 불과했다. 이인제의 거취에 대해서는 경선 결과 승복 76.3%, 이회창 후보가 낙마할 경우 대안후보 11.4%, 본인이 알아서 할 문제 8%, 독자 출마 2.8%의 분포를 보였다.

그러나 이인제는 결국 독자 출마를 결심했다. 동아일보는 9월 13일자 5면기사(「“큰길 찾겠다” 한밤 전격 결심 / 출마 급선회 이인제 캠프 / 측근 신중론에 한때 진로 고심 / “오락가락 이미지 손해” 판단 / 오늘 회견 준비 지시 뒤 잠적」「여 핵심부 제지 실패 / 맥 빠진 ‘이인제 꺾기’ / “출마 땐 정권 재창출 불가능” /위기감 속 YS도 전화 만류」)로 이인제 진영과 그를 말리는 여권 핵심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이인제는 “국민들의 열렬한 염원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동아일보는 14일자 사설(「국민 이름 팔지 말라 / 이인제 씨의 출마 선언을 보고」)을 통해 이인제의 출마를 비판했다.

  이인제 경기지사가 결국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3개월 후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금 그의 선택은 분명히 민주주의 기본규칙을 등진 행위다. 당인으로서 정당에, 정치인으로서 국민에게 한 약속을 저버렸다. 정치의 진취적 발전을 위해 출마한다는 이 씨의 변은 오히려 정치를 퇴영시키는 어두운 그림자로 작용한다. 모두가 지키고 가꿔야 할 정치적·사회적 규범과 약속은 스스로 깨면서 ‘민주주의의 발전’이나 ‘국민의 부름’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선 과정에서 결과에 무조건 승복하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했던 이 씨가 끝내 약속을 어긴 것을 그 개인이나 신한국당 내부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단계 성숙 계기를 맞았던 우리 정당정치의 시계바늘을 다시 거꾸로 돌려놓은 것이다.
  이 씨는 자신의 출마가 “국민의 부름에 따르는 것”이라며 “정치 명예혁명을 완수, 국민정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소명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스스로 국민과의 약속을 뒤엎고 정치의 규칙을 훼손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럼 없이 국민과 새 정치를 얘기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다소 높게 나오는 것을 두고 국민을 들먹였는지 모르나 원칙과 명분 없는 출마를 국민의 이름으로 호도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
  세대 교체를 통한 낡은 정치 청산 주장도 그렇다. 국민들이 갖는 세대 교체의 기대는 분명 크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원칙을 지키며 민주주의를 키워나가는 참신한 정치인을 원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낡은 정치를 타파하자면서도 자신은 구시대적 정치인조차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배신과 위약의 행태를 보임으로써 이 씨는 오히려 시급히 교체돼야 할 정치인이란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

아무튼 이인제가 대선에서 완주한 것은 김대중 당선에 또 하나의 결정적 승인으로 작용했다.


DJP 연합 성사

대선이 임박한 시기에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와 이인제의 경선 불복이 ‘김대중 대통령 탄생’의 일등공신이었지만 김대중이 김종필과 손잡은 이른바 ‘DJ P연합’ 역시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승인으로 작용했다. 정치 역정으로 보면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빙탄 관계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 대선 국면에서 손을 잡고 권력 나눠먹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 전부터 정가에 나돌았고 동아일보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명했다.

동아일보 1997년 8월 1일자 5면 기사(「‘야 단일화’ 어디까지 왔나 / 국민회의·자민련 협상 과정과 전망 / 작년 ‘목동 밀담’서 구체화… 보선 공조 / 공식 합의사항 없이 5일 2차 회의 / 내각제 개헌 싸고 양당 불신 걸림돌」)를 ‘DJP 단일화’ 구상은 역사가 아주 오래다. 1995년 9월 국민회의 창당 이후 DJ의 집권전략에 의해 태동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두 정치세력은 인천서구, 수원장안구 보궐선거 등 다섯 차례의 선거에서 ‘콘크리트 공조’를 과시해 왔고 1997년 6월 말부터는 ‘한광옥·김용환’의 핫라인이 공식 협의를 해 왔다고 한다.

동아일보는 9월 1일자 1면에 동서조사연구소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대선에서 4자 대결 구도 때 지지율은 국민회의 총재 김대중이 1위, 신한국당 대표 이회창이 2위, 민주당 총재가 조순이 3위, 자민련 총재 김종필이 4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지사 이인제가 참여하는 5자 대결 구도에서는 김대중과 이인제가 지지율 1, 2위를 다투지만 이인제가 출마하더라도 김대중으로 DJP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면 김대중이 여유 있게 지지율 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정확히 한 달 후인 10월 1일자에, 신한국당이 이회창을 새 총재로 선출한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그 조사에서도 김대중이 1위를 차지했고 이회창이 2위, 이인제가 3위, 조순이 4위로 뒤를 이었다. 특히 당선 가능성에서도 김대중은 추석 직후 여론조사 때의 44.1%보다 9.7%포인트 높은 53.8%를 얻어 반수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2위인 이회창의 14.7%보다 세 배 가까이 높은 수치였다.

동아일보는 “이번 조사에서도 성사 직전 단계에 돌입한 ‘DJP 후보 단일화 협상’의 위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대중 후보가 연합후보로 나올 경우 37.1%의 지지를 얻어 20.9%의 지지도로 2위를 차지한 이회창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이 경우에도 이인제 후보는 18.3%의 지지로 3위에 머물렀다”고 보도했다. 김대중의 지지율은 5자 대결 구도에서 30.2%였으나 ‘DJP 연합후보’로 나설 경우 6.9%포인트의 순증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5자 대결 구도에서 나타난 김종필의 2.4%보다 훨씬 높은 수치로 ‘DJP 연합의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유권자들의 절반 이상(64.4%)이 신한국당의 전당대회를 계기로 후보 이회창을 교체하지 말고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중순 들어 ‘DJP 연합’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10월 24일자 5면 기사(「대선 테이블 ‘연대의 계절’」)는 “국민회의와 자민련 간의 ‘DJP 연합’이 급류를 타자 정치권 안팎에서 이회창(신한국당), 조순(민주당), 이인제(국민신당) 후보 간 연대문제를 둘러싸고 갖가지 관측과 논란이 무성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는 3인이 각자 자신이 중심이 되는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하면서「김대중 김종필­ “극적 연출 남아” / DJP­“JP 장고 끝내려는 순간” / 폭발력 과시할 이벤트 검토」라는 꼭지에서는 “국민회의와 자민련 간의 ‘DJP 후보단 일화’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협상의 열쇠를 쥔 김종필이 23일 SBS가 주최한 TV토론에 참석해 “11월 초쯤 결말을 짓겠다”고 밝힌 것이 그 근거였다.

그러나 11월 초가 아니라 10월 26일 ‘DJP 연합’이 이루어졌다. 동아일보는 27일자 1면에「대통령 후보에 김대중, 총리 김종필 / 개헌 후 자민련서 대통령­수상 선택/ DJP 단일화 협상 매듭 / 선대위 의장엔 김종필 씨 / 99년 말까지 내각제 개헌… 각료 지분 50 대 50 / 실무안 합의… 두 총재에 보고키로」라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2면에는「정치 개혁 협상 “빠른 걸음” / 여야 내일까지 마무리 계획」「김대중 34.3% 1위 / 여론조사」, 3면에는「DJP 단일화 합의문 무얼 담았나 / “공동정권은 내각제 위한 과도정부” / DJ 집권 위해 ‘2년 대통령’ 감수 / JP 총리 권한 보장 등 안전판 확보」, 「DJ P단일화 우여곡절 2년」, 4면에는「이회창·조순 총재 오찬 회동」「“건전세력 연대 2주 내 판가름”」, 6면에는「국민회의 “여 내분 ‘강 건너 불’ 아니다”」라는 기사들을 실었다. 다음날인 28일자에도 2면에「자민련 ‘내각제헌법 개요’ 내용」, 4면에「조 총재 ‘DJP 연대’ 맹비난」「비주류 ‘세몰이’ 박차 / 탈당파·당내 투쟁파 ‘반이­반DJP’ 규합 / 개별 모임 분주 비주류 측인 민주계 중진 서석재 의원을 비롯한 탈당파들은 행동 개시…」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29일자에는 4면에「대선 D­50 / ‘반DJP’ 성사될까 / 정파 간 ‘속셈’ 제각각」「김 대통령·이 총재 화해 기류 / “DJ 좋은 일만 시킨다” 공감… 정면 대결 득 안 돼” / ‘차별화 전략 실패’ 자인 / 청와대 “반DJP 급선무” / ‘이 총재 달래기’로 선회」, 5면에는「찬 바람 씽씽 부는 신한국당 세 기류」「“국민신당 총재직 신중히 고려” / 이만섭 고문 탈당 회견」「박찬종 고문, 김윤환 고문 이례적 공박」등 ‘DJP 연합’ 관련 기사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다른 몇 신문들처럼 DJP 연합을 비판하는 사설은 싣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예고되어 온 정치판의 ‘합종연횡’을 새삼스럽게 비판한다는 것이 오히려 속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부메랑이 된 강삼재의 ‘DJ 비자금’ 폭로

비세에 몰리던 신한국당이 드디어 회심의 카드를 하나 꺼내 들었다. 다음은 10월 8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신한국 “DJ 비자금 670억 관리” / 국민회의 “사실 무근… 사법적 대응”/  대선 새 국면 ‘대형 폭로전’ / 노 씨 돈도 6억원 더 받아/ 92년 대선 후 62억 재벌 통해 불법 실명 전환; 강 총장」)의 주요 내용이다.

  강삼재 사무총장이 10월 7일 기자회견을 갖고 “김(대중) 총재가 3백65개의 가차명 도명계좌를 통해 동화은행 등에 입금액 기준으로 6백7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관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강삼재는 또 “‘20억원 외에 +α가 없다’는 김 총재의 주장과는 달리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6억3천만원을 추가로 받은 사실도 확인했다”며 “노 전 대통령은 91년 1월 14일 3억원, 91년 5월 말 3억원, 91년 9월 초순 3천만원을 각각 당시 평민당 사무총장 계좌 등에 입금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김 총재는 92년 대선 이후 쓰고 남은 비자금의 일부인 62억4천만원을 금융실명제 실시 뒤에 재벌과 사채업자 등을 통해 불법으로 실명 전환했다”며 “이 비자금 중 40억원은 노 전 대통령이 한보를 통해 불법 실명 전환한 것과 마찬가지 수법으로 대우그룹 등을 통해 실명 전환했다”고 주장했다. 강삼재 총장은 “김 총재의 비자금 관리책은 처조카인 이형택 동화은행 영업본부장”이라며 “동화은행에 김 총재의 비자금이 유입돼 있다는 첩보를 확인하던 중 시민과 금융계 인사의 제보로 김 총재의 ‘검은 돈’ 중 극히 일부분을 밝혀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 총재가 재벌에서 받은 뇌물 등 비자금의 내용도 현재 확인 중이며 앞으로 2차 3차의 추가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검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해 비자금 조성 경위와 사용처를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그 날짜 동아일보 1면에는「“이회창 씨 경선자금 수백억” / 국민회의 심야간부회의」「“비자금 관리 제의도 안 받아”/  이형택 씨 회견서 주장」「“발표 내용 검토한 뒤 수사 착수 여부 결정”; 검찰」이라는 기사가 한꺼번에 실려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흘러갈 것임을 예고했다. 3면 기사(「묻어두었던 ‘DJ파일’ 꺼낸 듯 / 폭로 준비 어떻게 했나」) 와 4면 기사(「DJ 비자금 670억설 국민회의 반응 / ‘전면전’ 선포 / ‘김 대통령 대선 자금’ 등 거론 맞불 / “‘이회창 죽이기’로 끝날 것”」)는 그 사태가 신한국당의 정략 차원에서 시작됐고 국민회의가 만만치 않은 반격을 준비 중임을 암시했다.

동아일보는 다음날인 10월 9일자 사설(「폭로전으로 치닫는 대선 정국」)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만약 폭 로내용이 사실이라면 김 총재는 법적 책임을 넘어 정치적·도덕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이 틀림없다. (…) 그러나 신한국당의 주장이 국민회의 측 대응대로 ‘흑색선전의 결정판’이라면 비난의 화살은 신한국당 쪽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 이 폭로전은 결국 정치판을 만신창이 식 진흙탕 싸움으로 밀어넣어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실망만 증폭하는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 사태가 여기에 이른 데는 이번 대선에 대한 김 대통령의 불투명한 행보에도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대통령 김영삼이 이인제의 탈당을 적극 만류하지 않았고 신한국당 총재직을 이양하면서 이회창에 대한 전폭 지원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으며, 그로 인한 위기의식 때문에 이회창 측이 더 늦기 전에 ‘김대중 대세론’을 역전시키기 위해 사생결단 식 폭로를 결행하지 않았느냐는 일각의 분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사설은 “특히 폭로 전문가처럼 비치는 강 총장은 지난해 ‘20억원+α설’ 때처럼 이번에도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법적 책임뿐 아니라 정계 퇴진까지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며 “21세기를 앞두고 정치가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폭로전으로 치닫는 작태를 보는 국민의 심경은 참담하다. 이런 식이라면 이번 대선에서도 정책 대결은 발 붙일 곳이 없다. 정치인들은 당당한 정책 대결과 페어플레이를 갈망하는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구태의연한 흑색선전과 무차별 폭로전은 우리 정치가 반드시 추방해야 할 악습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실제 국민회의에서는 폭로전에 맞서 일사분란한 대응태세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오히려 폭로한 쪽인 신한국당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동아일보 14일자 4면 기사(「“‘폭로’ 누가 하자 했나” / 꼬여가는 ‘비자금’… 신한국 내분 조짐 / “재계 반발 등 부작용만 눈덩이 차제에 정리할 건 정리하고 가자” / 강 총장 “돕진 않고…” 중진모임 비난 / 민정·민주계 ‘청와대 개입설’ 갈등」)가 신한국당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었.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면 반전을 노렸던 신한국당은 예상과는 달리 이회창 총재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재계의 반발 등 부작용만 심화되자 또다시 내분의 수렁에 빠져드는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16일자 사설(「여야의 추잡한 정쟁」)에서 그 사태를 다시 한번 양비양시론으로 비판했다.

  신한국당은 김 총재를 곧 검찰에 고발키로 한 모양이다. 국민회의 또한 신한국당 이 총재와 강삼재 사무총장을 맞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 수사 착수 여부는 검찰이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검찰의 그동안 자세나 체질로 볼 때 김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나 암시 없이는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다. 김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경제와 사회에 미칠 영향까지를 깊이 생각하며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검찰은 10월 21일 “신한국당의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 대한 비자금 의혹 고발 사건 수사를 15대 대통령선거 이후로 유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대중은 즉각 “검찰의 정치적 중립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지만 이회창 쪽은 ‘청와대 음모설’을 제기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같은 날짜 사설)「이제는 정책대결로」)은 검찰의 수사 유보 방침을 “고뇌 끝에 내린 현명한 결정”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정치권 대부분이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에서 검찰이 비자금을 수사한다는 것은 결국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검찰의 판단은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폭로’는 이회창에게 더욱 불리한 방향으로 번졌다. 검찰 수사를 이끌어 내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구태 ‘공작정치’로 도덕성에 치명상까지 입었기 때문이다. 강삼재는 10월 23일 신한국당 고위당국자 대책회의에서 “DJ 비자금 관련 자료는 7일 오전 7시 반 이(회창) 총재의 서울 구기동 자택에서 전달받았다”며 발표 당시 “건전한 시민들의 제보를 취합한 것”이라고 말한 사실을 번복했다.

동아일보는 25일자 3면 기사(「강 총장 ‘DJ 비자금 폭로 경위’ 폭로 / 이 총재 ‘공작정치’ 앞장서 “몰랐던 일” / “시민 제보 따른 것” 기존 주장 거짓말로 드러날 땐 / “겉속 다른 처신” 도덕성 흠집」)사 이회창을 비판했다. “강 총장의 말대로라면 가뜩이나 사면초가에 놓여 있는 이 총재는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된다”며 “겉으로는 목청 높여 ‘구태 청산’을 외치면서 뒤로는 구태의 전형인 ‘폭로전’을 주도했다면 그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또 자신은 사전에 몰랐던 것처럼 행동한 처신이나 ‘시민 제보’에 의한 자료라고 주장한 것 등이 거짓말이었다는 점에서도 여론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회창에 대한 동아일보의 걱정 아닌 실망은 수석 논설위원 김종심이 25일자에 쓴 칼럼(「이회창식 쿠데타)」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가 최후의 결전에 나섰다. (…) 배수의 진을 쳤다. 뒤로 물러설 여지가 없다. 겹겹으로 둘러싼 적진을 죽을 기세로 돌파하지 않고는 살아날 수 없다. 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
  싸움터에서 오가는 독전의 구호도 살벌하기 짝이 없다. 전선을 ‘김대중 죽이기’에서 ‘김영삼 죽이기’로 확대했다. 그가 마상에서 휘두르는 깃발이 ‘3김 죽이기’이고 보면 ‘김종필 죽이기’도 그의 죽이기 전선에 당연히 포함된다. 그는 이 싸움을 ‘혁명’이라고 했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전이라고 명명했다. 자신이야말로 3김 정치 부패 구조를 청산하기 위해 일어선 십자군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고독하다. ‘적군’이 연합전선을 형성하면서 포위망을 좁혀올 태세다. 성안에서 준동하던 ‘내부의 적’은 성을 버리고 떠난 ‘배신자’와 내통할 기미를 보이며 그를 말에서 끌어내려 성 밖으로 쫓아내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
  거사를 감행한 쪽은 이 총재 쪽이었다. 첫 번째 죽이기 대상은 김대중 씨였다. 그는 강삼재 씨를 시켜서 쏜 비자금 화살 한 방으로 김대중 씨의 심장을 일거에 멈추게 하려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화살은 부메랑이 돼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엉겁결에 쏜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제2의 화살이 엉뚱하게 상왕의 투구를 맞혔다. 상왕은 진노했다. 싸움판에 끼기를 꺼리던 별동대 검찰은 오히려 그의 무장 해제를 촉구했다. 그는 이것을 ‘음모’로 읽고 내친 김에 상왕 축출을 선언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대회전은 시작됐다. (…) 그는 지지율 하락을 반전시키기 위해 고심 끝에 내놓은 묘수마다 악수로 변하는 이유를 내부의 적에게 돌리고 그 배후로 지목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명분은 회심의 카드 ‘3김 청산’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대쪽’의 회복이자 오랫동안 벼르던 독립의 선언이다. (…) 결국 천하는 정권교체 세력, 3김 청산 세력, 세대교체 세력 3자 각축장으로 변할 태세다. 그렇게 정립하는 것이 무슨 연합이니 통합이니 하며 전선도 모호한 난전을 벌이는 것보다 판세 읽기가 편하다. 색깔도 분명하고 명분도 뚜렷하다. 여당이 없어지는 마당에 정권 재창출이니 후보 교체니 하며 뒷공론을 벌일 여지도 없어진다. 대통령은 공정한 심판 노릇만 하면 된다. 정계 개편을 억지로 막을 이유도 없다. 최후의 선택은 국민에게 맡기면 된다. 국민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DJ 비자금’ 폭로는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선거 당일 동아일보가 8면에 실은 「97 대선 오늘 선택의 날­ 취재기자 방담」에는 이런 대목이 들어 있다. “한나라당이 선거전 중반까지 폭로전을 자제했던 것은 ‘김대중 후보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중론입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자료 입수 과정의 불법성 논란과 ‘여당이 금융실명제를 앞장서 무력화했다’는 비난 등의 역풍에 휘말려 ‘오히려 표만 깎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요.”


오익제의 ‘괴편지’

아니나 다를까, 선거일이 임박해 오면서 안기부 발 ‘북풍’이 불었다. 월북한 천도교 전 교령 오익제가 ‘이상야릇한 내용’의 편지를 김대중에게 보냈다는 기사가 12월 6일자 언론에 터져 나온 것이다. 그 날짜 동아일보 2면에 실린「월북 오익제 씨 DJ에 편지 / 안기부 수사 착수 / 국민회의 “악의적 음모극” 주장」이라는 3단 기사는 “국가안전기획부는 5일 월북한 전 천도교 교령 오익제 씨가 지난 달 말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게 보낸 사신에 대해 법원에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수사에 나섰다” 고 전했다. 안기부는 영장청구이유서에서 “오 씨가 김 총재에게 보낸 편지가 지난달 말 서울 양천구 목동 국제우체국에 도착했으며 이 편지에는 평양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고 북한 우표가 붙어 있다”면서 “편지지 4, 5장 분량의 이 편지에는 ‘떠나 올 때 인사를 못해 죄송하다’ ‘김정일 비서의 책도 읽어 보는 것이 좋겠다’ ‘후광(김 총재의 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통일이 빨라질 것으로 본다’ 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는 것이다.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천도교 교령으로 있었던 오익제는 1994년 8월 월북한 인물이다. 당시 그가  ‘황장엽 리스트’에 올라 있어 수사 기미를 감지하고 월북했다는 루머가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8월 18일자 사설(「오익제 씨 월북 파문」)에 이렇게 쓴 바 있다. “오 씨의 월북을 놓고 정치권에서 또 색깔논쟁이 일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 제1야당의 입장이 다시 난처하게 됐다. 오 씨는 국민회의 창당발기인과 당고문 등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여당도 이번 오 씨의 월북에 대해 국민회의만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자유로운 처지는 아닐 것이다. 그는 최근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이었고 화랑무공훈장과 대통령 표창 그리고 국무총리 표창 등을 받은 기록도 갖고 있다.”

그런 오익제가 대선을  눈앞에 두고 김대중에게 ‘전혀 불필요한’ 편지를 보냈다는 것은 ‘제1야당의 입장만’ 난처하게 만드는 꼴이었다. 이회창과 이인제 등 경쟁자들은 그 호재를 TV합동토론 등에 활용했다. 안기부 대공수사실장 고성진은 6일 기자회견을 갖고 오익제의 편지 내용을 공개하는 한편 북한 당국자가 김대중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의 해명을 요구하는 7개 항목의 질문서에 조속히 답변하라고 촉구했다. 명백한 ‘북풍’ 부채질이었다. 그 회견 내용은 12월 7일자 27면(사회면)에 4단 기사로 실렸다. 8일에는 이철승이 대표의장으로 있는 자유민주민족회의라는 단체가 성명을 내고 “공안당국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의혹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 역시 동아일보 9일자 2면에「“오익제 씨 편지 사건 진상 철저히 밝혀야” 자유민주민족회의」라는 기사로 나왔다. 1면 머리기사로 팡팡 터져야 신이 나고 효과도 있을 텐데 도무지 기대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다. 동아일보 8일자 3면 기사(「대선 D­10 / 3당 ‘비방 경쟁’ 가열 / 오익제 편지·병역 등 성명전 / 유권자 반응은 냉담」)제목이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이유는 분명했다. 같은 날짜 6면「‘IMF 변수’ 판세 뒤흔든다 / 대선 D­10 관전 포인트라는 기사가 말해 주듯 국민의 관심은 온통 ‘IMF 국난’에 쏠려 있었던 것이다. ‘오익제의 편지’에 관해서는 그 흔한 사설이나 칼럼 하나 없었다.

12월 6일자 1면 머리기사는 고려증권 부도, 주요 기사는 한라그룹 법정관리 검토, 외환 위기 책임자 우선 조사 등 온통 금융위기에 관한 것이었고 사회면 머리기사는「IMF 충격에 ‘자가용 안타기’ 확산」이었다. 조선일보 아닌 동아일보에 관한 한 ‘오익제 북풍’은 회오리바람이 아니라 찻잔 속 선들바람일 뿐이었다. 


IMF 재협상론

12월 4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합의 이행 보장 요구/ 3당 후보 모두 수용」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국민회의의 김대중,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 등 주요 3당 후보들은 3일 ‘이번 대통령선거에 당선될 경우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간의 구제금융 지원 협의 결과를 차기 정부에서도 이행할 것을 보장하라’는 캉드쉬 IMF 총재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는 이날 정부가 요구한 각서 형식의 문서에 서명했고 김대중 후보는 서명을 하지 않는 대신 김영삼 대통령에게 별도의 서한을 보냈다.”

  2면의 기사(「3 후보 ‘IMF 서약’ 우여곡절 / 이회창­지방 내려가다 공항서 서명 / 김대중­내용 반발… ‘별도 문서’ 제출 / 이인제­처음엔 사과 요구하다 수용」)는 세 후보가 IMF 총재 미셸 캉드쉬의 서명 요구에 응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긴박한 뒷얘기를 상세히 전했다. 거기서도 대선을 코앞에 둔 각 당의 정치적 계산이 달랐던 것이다.

문제는 국민회의 후보 김대중 측의 입장이었다. 국민회의는 정부가 요구한 서명 대신 대통령 김영삼에게 보내는 별도의 서약서를 마련해서 3일 청와대에 보냈다. 서약서의 내용에는 “오늘의 파국을 초래한 대통령과 집권당은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께 분명한 사과를 드려야 한다”는 문구를 포함시켜 김영삼과 한나라당이 경제 파탄에 책임을 져야 할 ‘주체’임을 분명히 했다. 또 공한 내용에 ‘원칙적으로 이행한다’는 문구를 삽입해 향후 3개월마다 이뤄질 IMF 실사단과의 사후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대중은 12월 7일 열린 3당 후보 2차 TV합동토론에서도 IMF 사태에 관한 국회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자신이 집권한 후 필요하면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회창은 IMF 협약을 전적으로 부인하거나 중단하는 것은 오히려 경제를 망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대중과 이인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초정파적 거국내각 구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나 이회창은 정략적 발상에 불과하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 총재 조순은 12월 8일 부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IMF 협상의 기본골격을 바꾼다는 김대중 후보의 재협상 주장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면서“IMF 관리체제를 1년 반만에 극복하겠다는 것도 국민의 아픔에 영합하는 인기발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국민회의 정책위의장 김원길은장은 즉각 “한마디로 무식의 소치”라고 받아치면서 “경제여건이 호전되면 유리한 조건으로 얼마든지 재협상이 가능하다. 협상 이행 각서에 덜컥 서명한 한나라당은 재협상을 할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협상 공방’은 김대중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듯 했다. 12일자 동아 1면기사(「‘IMF 재협상’ 공방 확산 / 한나라당­DJ 주장에 국가 신인도 하락 /국민회의­심한 부분 추가 협상하자는 것/ 조순 총재 “캉드쉬 절대 불가 밝혀”」)는 “캉드쉬 총재는 이날 워싱턴의 IMF 본부로 전화를 걸어온 조 총재에게 ‘재협상 요구는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려 자금 지원이 안 되는 사태를 빚을 수 있다’며 ‘그 경우 외환위기는 물론 금융공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고 조 총재가 전했다”고 보도했다. 국민신당 정책위의장 한이헌도 “현 단계에서 재협상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위기 수습에 최선을 다하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분기별 협의를 통해 조정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재협상론에 원칙적인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김대중만 고립된 것이다.

다음날에는 김대중도 한 걸음 물러서는 듯이 보였다. 동아일보는 13일자 5면 기사(「3 후보 ‘IMF 협약 준수’ 다짐 /“국가신용 회복” 모처럼 한 목소리/ 이회창­당선 후 미‧일 정상과 비상회담 / 김대중­캉드쉬 총재에 지지서한 보내 / 이인제­집권 땐 단계 별로 IMF 협의」) 내용은 이렇다. “김대중 후보도 이날 조지 소로스 등 국제 금융계 인사들과의 국제화상회의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낸 공한에서 밝힌 대로 협약을 준수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 김 후보의 이 같은 행보는 IMF와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발언이 협약 파기나 근본적인 재협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데다 이것이 한나라당 측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바로 그 날짜 동아일보에는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가 「“IMF 한국 처방 너무 가혹”이라는 제목으로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요약한 내용이 실렸다. 한 마디로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에 대한 깊은 지식도 없이 엄중한 처방을 내렸다고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김대중의 ‘재협상론’에 힘을 실어줄 만한 칼럼이었다. “한나라당 조순 총재가 언급한 캉드쉬 IMF 총재의 ‘IMF 재협상 불가’ 발언은 정략적으로 뻥튀기해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조 총재 캉드쉬 발언 조작” 비난」-12월 13일자 4면). 
14일자 1면 기사(「한국 ‘IMF 약속 ’잘 이행/ “최악 금융위기 벗어날 것” / 캉드쉬 “우리도 합의 꼭 지킬 터” / 지원금 5백70억 달러로 충분 / 미 방송과 회견…“‘다음 지원국 일본’은 낭설”」)를 보면 캉드쉬는 오히려 다른 뉘앙스의 말을 하고 있었다.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12일 저녁(현지시간) 한국의 금융위기는 모든 당사자들이 약속을 지키면 최악의 상황을 맞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캉드쉬 총재는 이날 미 공영방송인 PBS TV의 앵커 짐 레러와 가진 회견에서 IMF의 대한 구제금융 계획이 발표된 후 처음으로 한국 사태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그는 “당사국인 한국과 한국의 우방국들이 IMF의 이행조건을 참고 견딘다면 최악의 상황은 비켜갈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에 대한 IMF의 구제금융 패키지 5백70억 달러는 한국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충분하며 당사국들도 IMF와 한 약속들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는 IMF와 한 약속들을 이행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IMF는 (금융지원) 약속을 지킬 것이며 우리의 친구인 한국도 역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IMF의 구제금융이 한국의 위기를 하룻밤 사이에 해결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고 “IMF의 금융지원은 시간을 두고 신뢰를 회복시켜 한국이 스스로 경제를 개선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워싱턴-이재호 특파원〉 

이 기사를 보면 캉드쉬가 ‘재협상’ 혹은 ‘추가협상’을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동아일보는 일찍이 12월 5일자 사설(「꼭 백기 투항해야 했나」)에서 “우리는 구제금융을 얻어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경제주권과 함께 정치·사회·문화·생활 주권까지 침범받게 되었다. (…) 협상 결과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금융·자본·산업·무역 등 시장을 모조리 내놓으라는 식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 경제가 과연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며 금융과 기업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IMF와의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미·일 등 경제대국의 패권주의적 횡포도 문제지만 정부의 협상 자세와 전략은 너무 한심했다. 금융 외환위기와 직접 관련이 없는 부문까지 일방적으로 양보해 국내 자본시장을 국제 핫머니의 투기장이 되게 하고 우리 기업들을 외국자본의 약탈 식 기업 사냥의 표적으로 만든 것은 잘못이다. 당당한 논리로 협상에 나서 지킬 것은 지켰어야 했다”고 개탄한 바 있다.

그럼에도 동아일보는 ‘재협상’ 논란에 불이 붙어 김대중이 궁지에 몰릴 때 중계만 했을 뿐 자신의 의견을 내보이지 않았다. 자신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일까? 오히려 선거 당일인 12월 18일자에 실린 「97 대선 오늘 선택의 날­ 취재기자 방담」’(8면)에서 ‘재협상론’을 비판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는 아무래도 IMF의 구제금융까지 받게 된 국가 부도 위기 사태가 아닌가 합니다. 한마디로 ‘IMF 선거’라고 할 정도로 선거에 미친 영향은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죠.
  - ­­그렇습니다. 선거 종반인데도 부동층이 되레 늘어나 막판까지 혼전 양상을 띠지 않았습니까. 경제 파탄에 따른 정치권의 무능과 유권자들의 불신, 무기력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죠. 각 후보 진영도 발 빠르게 선거전략을 수정하면서 기민하게 대응했습니다.
  - ­하지만 과거 여당으로서의 책임을 면키 어려운 한나라당이 경제 파탄 책임 공방으로 가장 큰 피해를 봤습니다. 후보 등록 직후 계속 상승세를 타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한 것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김대중 후보도 재협상론을 주장해 외환위기를 가중했다는 비난을 받고 지지율에서도 손해를 봤습니다.
  - ­­IMF 사태에 대처하는 후보들의 언행은 좀 더 신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인제 후보도 처음에는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가 나중에 다단계협상론으로 입장을 바꿨는데 경제계에서는 대선후보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많이 합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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