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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총선- 판문점에서 불어닥친 ‘북풍’동아일보 대해부 4권 - 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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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2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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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이 나빠지거나 선거가 코앞에 닥쳐오면 이름부터 바꿔놓고 보는 것이 집권 보수여당의 한결같은 수법이다. 1995년 12월 6일 민자당은 당무회의를 열어, ‘세계화 완성하겠다며 당 이름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기로 의결했다. 뱀이 허물을 벗듯 잇단 실정과 대형 사고 등으로 이미지가 나빠진 뱀이 또 허물을 벗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고는 외부 ’거물들‘을 대거 영입하기 시작했다.

김영삼은 12월 15일 직선 총장 임기를 채 1년도 채우지 않은 서울대 총장 이수성을 총리로 임명했다. 신한국당은 1996년 1월 16일 박찬종을, 1월 22일 전 총리 이회창을, 2월 13일에는 역시 전 총리 이홍구를 영입했다. 4·11 총선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런데도 사정은 김영삼 정권에 그다지 좋지 않았다. 3월 21일 20년 가까이 상도동과 청와대에서 김영삼 집안의 대소사를 챙겨 온 청와대 제1부속실장 장학로 비리 사건이 터졌다. 김영삼은 29일 “부정부패 척결에 모범을 보여야 할 청와대 비서관이 파렴치한 비리를 저지른 것은 국민들에게 송구스런 일”이라며 사과의 뜻을 표시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선거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키는 대형 사건이 선거 직전인 4월 4일 판문점에서 터졌다. 북한이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을 통해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담화를 발표해 “조선 인민군은 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유지 및 관리와 관련한 임무를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비무장지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북한군은 4월 5일 대전차화기와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병력 1백10명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측지역에 기습적으로 투입한 뒤 진지 구축 훈련을 벌였다. 이어 6일과 7일에도 무반동총과 기관총·박격포 등으로 중무장한 병력 2백~3백여 명을 판문점 북측지역과 서쪽지역에 보내 교통호를 파는 등 임시진지 구축 작업을 벌였다. 대통령 김영삼은 6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북한이 노골적 도발 위협을 하고 있는 만큼 더욱 철통같은 대북 경계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동아일보는 4월 5일자 1면 머리에 「북 “비무장지대 불인정” / 정전협정 따른 모든 임무 포기/  출입자·차량 식별표식 않겠다 /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담화」제목의 기사를 올리는 한편「도발 대비 군 태세 강화 / 정부 심야 통일안보대책회의」라는 6단 기사,「“위험한 조치” 유엔군 사령부」「러 “한반도 상황 악화 우려”」등의 기사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2면에는「‘평화협정’ 노린 강수 / 북‘ 비무장지대 불인정’ 발표 의미」라는 해설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하루 휴간일을 보낸 뒤 4월 5일자 1면 머리에「북 무장군 판문점 두 차례 투입 / 5일 이어 어제도… 3시간 20분 뒤 철수 / 2백60명 포진지 구축 훈련 / 박격포·대전차무기 등 중화기 휴대」라는 기사를 올리고,「한미 “북 도발 공동 응징” / 16일 정상회담서 선언 ‘DMZ 불인정’ 안보리 회부 추진」이라는 주요 기사를 내보냈다. 

같은 날짜 사설(「북한의 전쟁 협박」)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북한이 전쟁 위협을 일삼는 가장 큰 이유는 남북한 간의 긴장 분위기를 조성, 체제 내부의 동요를 막아 보겠다는 탄압정책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 또 한국을 배제시키면서 그들이 지난 91년부터 추진해 온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한 압력수단으로서의 성격도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오는 11일의 제15대 총선을 앞두고 긴장감을 조성, 남한 내부를 교란해 보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정부는 북한의 전쟁 위협에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 비무장지대 안에서의 무력 시위나 후방 침투, 서해5도 공격 가능성 등 앞으로 예견되는 북한의 그 어떤 무력 도발도 원천적으로 봉쇄키 위해 물샐틈없이 완벽한 경계 태세를 갖추기 바란다. 국민들도 경각심을 갖고 북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 국론이 분열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그러나 이 사설에는 북한이 제15대 총선을 앞두고 긴장감을 조성해 남한 내부를 교란해 보겠다는 의도로 읽을 수도 있다는 전제도, 냉철하게 대응하자는 주장도 없었다. 오히려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앞장섰고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다. 7일자만 해도 1면과 2면에 이어 3면을「대규모 병력 2차 투입 ‘초긴장’ / 한국군 장성급 비상 호출 긴급 대응」「서해 5도 유사시 북의 첫 공격 목표 가능성」등 전쟁 직전의 분위기를 풍기는 해설기사로 시커멓게 먹칠을 했다. 이어 4면 전부를 「‘만일의 사태’ 가정 대책 검토; 청와대」,「‘평화협정’ 겨냥 계산된 행동; 미국 측 시각」 「세계 언론 반응」’ 등의 기사로 도배질했다.

동아일보의 ‘긴박감 조성’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회면 머리에  서해안 백령도와 동해안 최북단 명파리를 현지 취재한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제목도「“헤어진 북 가족 만날 날 더 멀어지는 건 아닌지… / 자포자기 식 도발 걱정 잠 설쳐; 백령도 / 정부가 좀 더 북한 설득했으면; 명파리」로 달았다.

북한의 느닷없는 도발이 눈앞에 닥친 총선에서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지는 동아일보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7일자 4면에 실린「신한국·자민련 ‘호재’ / 국민회의·민주 ‘악재’ / “보수중산층 끌어안기 도움” 신한국당· 자민련 / “안보 선거 이용하면 안 된다” 국민회의·민주당」라는 상자기사에 그런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동아일보의 과도한 긴박감 조성은 8일에도 계속 이어져 39면(사회면)에「‘한국의 이스라엘’ 백령도 24시」라는 르포기사가 나왔다. 1면 머리는「북 무장군 3일째 투입 / 판문점 공동구역 / 어제 저녁 230여명 / 2시간 35분 심야 진지훈련 / 타 전선 확대·장기화 가능성 / 한미 AWACS 배치 협의」「대북 외교 압박 추진 / 유엔사, 안보리에 보고서 내기로」라는 기사가 차지했다.

같은 날짜 2면은 ‘가치 혼란’의 극치였다. 뉴욕특파원이 보낸 뉴욕타임스 기사를「북한 개전 땐 파멸 / 한반도 전쟁 재발 가능성 낮아」라는 제목으로 4단으로 보도한 바로 밑에는「한·미 ‘대북 첨단감시’ 가동 / 첩보위성 정찰기 통신감청 / 일 배치 조기경보기 출동 계획 / 전면 남침 징후 4~5일 전 포착」이라는 제목의 전쟁 발발을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상자기사로 실렸기 때문이다. 

견디다 못한 평민당 총재 김대중은 여야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등 ‘북풍’ 차단을 위해 안간힘을 써 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 동아일보는 그가 제안한 영수회담이 ‘북한 변수’ 돌파 의도에서 나왔으나 정부·여당은 “만나도 얻을 것 없다”며 일축했고, 민주당과 자민련은 양비론을 펴며 회담을 총선 후로 미뤘다는 기사를 4월 8일자 6면에 내보냈다.

7일을 끝으로 북한군은 더 이상 특이한 동태를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아일보는 ‘북한의 위협’을 밀고 나갔다. 북한 측 동향을 쓸 게 없으니 ‘‘우리 측 태세’와 기획기사를 주로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9일자 1면 머리기사(「한·미 내일 긴급회의 / 공동 대응-안보리 상정 논의 / 도발 유형별 대책 숙의」) 밑에는「북, 사린가스 원료 일서 밀수입」「우발 사태 우려; 하시모토」등  1~ 2단 기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2면에는 느닷없이「인민군 104만명 “세계 5위” / 육해공 부대 60% 이상 휴전선 전진 배치」라는 기획기사와「북 도발 수위 높일 땐 관계 개선 일정 재검토」「미 ‘대북 인도적 지원’ 규제 해제 / 21일부터 구호식량·현금 등 제공 자유화」라는 전혀 시의에 맞지 않는 워싱턴 발 기사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다.

동아일보의 ‘북한 소동’ 부풀리기는 선거 바로 전날인 4월 10일자에도 집요하게 전개됐다. 1면 머리기사는「혼전지역 총력 지원 / 4당 막판 ‘표 굳히기’ / “한 표라도 더…” 지지 호소」인데도 거기 물려 있는 사진은 군인들이 백령도에서 대북 경계를 하고 있는 ‘연출된 장면’사진이었다. 그리고「한미 정상 ‘DMZ 긴장’ 집중 논의 / 16일 제주회담서 공동 대처 방안 마련 예상」「중 “정전협정 유지돼야” / 외교부 대변인 최근 한반도 사태 주시」라는 기사들이 머리기사를 에워싸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3면에 한미정상회담에서 안보 공조를 확인할 것이라는 기사, 북한이 “남쪽서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39면(사회면)에는 “정부는 최근 북한의 잇단 무력 시위로 판문점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내국인의 판문점 관광을 10일부터 당분간 중지하기로 했다. 통일원은 9일 북한이 저지를지도 모를 돌발 사태로부터 관광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는 기사를 내보기도 했다.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태는 5일부터 7일 사이에 벌어졌는데 뒤늦게 북을 쳐도 너무 늦게 친 셈이다.

같은 날짜 1면에는 대우 북경지사장이 경협을 논의하러차 4박5일 체류 일정으로 9일 평양에 도착했다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올라 있었다. 선거 당일인  11일자 사회면에는 8월 10일 일본 니가타항을 출발해 원산·금강산·평양·개성·판문점 등을 8박9일 일정으로 둘러보는 북한 유람상품 ‘평양 크루즈’가 등장했다는 기사, 경제면에는 “북한의 판문점 무력 시위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차원의 남북 기업 간 경제협력 사업은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추진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총선 후 남북한 경협이 빠른 속도로 진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 기사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이다.

4월 10일에는 국방장관이 이양호가 전방초소를 순시했고 국무총리 이수성이 백령도를 찾아 대북 경계태세를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 동아일보가선거 당일자에 그 사실을 보도했음은 물론이다.

4·11 총선 결과는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가 참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국당은 139석, 국민회의는 79석, 자민련은 50석, 민주당은 15석, 무소속은 16석이었다. 무엇보다 전통적으로 야세가 강했던 서울에서 47석 중 27석을, 경기도에서 38석 중 18석을 획득한 신한국당의 승리라 할 만 했다. 국민회의가 기대한 득표에 훨씬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전국구로 나선 총재 김대중 도 낙선했다. 총선을 앞두고 북한이 왜 느닷없이 판문점을 오락가락하고  언론이 왜 ‘북풍’을 키우는 데 여념이 없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지만 그 사건이 총선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동아일보는 재빨리 총선결과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13일자 1면에 실었다. 

그 조사에서 응답자의 28.3%가 북한의 판문점 사태로 여당을 찍었다고 답한 반면  63.8%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다른 질문에서 응답자의 52.0%가 서울의 총선 이변을 낳은 원인으로 국민들의 안정 기대(39.3%)와 북한의 판문점 사태(12.7%)를 꼽았다. 특히 국민들의 안정 기대는 2, 30대(36.6∼37.9%)보다 5, 60대(42.8∼49.4%)에, 야당의 분열은 5, 60대(13.1∼17.0%) 보다 2, 30대(21.4∼23.1%)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정 희구 심리가 판문점 사태에 의해 더욱 강화됐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면 판문점에서 분 ‘북풍’이 총선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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