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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갇힌 두 전직 대통령동아일보 대해부 4권 -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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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1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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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9일, ‘12·12 사태’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은 1979년 12월 12일에 발생한 그 사태는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한 당시 ‘신군부’ 세력의 계획된 군사반란이었다는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그러나 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할 경우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하고 국가 안정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피고소·고발인 38명 중 적극 가담자로 분류된 전두환과 노태우 등 34명을 기소유예 처리했다. 동아일보는 10월 30일자 1면에「“‘12·12’는 군사반란” 검찰 발표 / 전·노 씨 등 34명 기소유예 / 대통령 재가 안 받고 군 장악 / 정호용 씨 등 4명 ‘공소권 없음’ 결정」이라는 기사를 싣고, 2·3·4·5·6·25·27면에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그 결정에 대해 전두환·노태우 측은 “사실적 측면에서나 법률적 측면에서나 부당성이 명백해 승복할 수 없다”고 했고, 전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등 고소인 21명은 항고하기로 결정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사설(「12·12 단죄의 의미」)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음모가 아무리 정교해도 진실은 언젠가 진실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을 이 판단으로 확인한 것은 통쾌한 일”이라고 환영하면서도 “문제는 검찰이 이들 ‘반란군’들에 대해 실정법을 적용, 재판에 회부하는 것을 피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 ‘성공한 쿠데타’를 법적으로 단죄할 때 감당해야 할 사회적·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진실은 규명하되 처벌은 역사에 맡긴다는 식의 고뇌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반란죄는 인정하면서 이를 기소유예에 처한 것은 기소편의주의의 남용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소지가 크다. 더구나 ‘군사 반란’은 인정하면서 ‘쿠데타’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12·12의 연장으로서의 5·17 계엄 확대와 5·18 광주 항쟁의 성격에 대한 검찰의 앞으로의 판단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
  검찰이 피고소인들에게 적용한 죄목은 반란수괴, 불법 진퇴, 지휘관 계엄 지역수소 이탈, 상관 살해, 상관 살해 미수, 초병 살해, 반란 부화뇌동 등 듣기조차 민망할 만큼 후안무치하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반란군’들은 이 죄목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만으로도 치욕적인 단죄를 받았다. (…) 12·12 같은 엄청난 사태는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자 불행이다. 우리는 이번 검찰의 판단에서 앞으로는 그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국민적 결의를 다져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반성할 줄 모르는 신군부 세력의 반란에 대한 오늘의 가장 아픈 국민적 단죄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아일보는 여전히 법률적·형사적·실질적 단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같은 날짜 27면 머리기사(「“‘정치검찰’ 판단에 실망” ‘12·12’ 발표 시민 반응 / “반란죄 규정 왜 처벌 않나”」)에서 “검찰의 최종 수사 발표를 지켜본 대부분의 시민들은 12·12 사태에 대해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검찰의 기소편의주의를 남용한 처사로 검찰의 직무유기…”라고 보도한 것과도 배치된다. 전노협 등 재야단체들은 물론 대한변협 같은 제도권 단체들도 12·12 군사반란 주범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촉구했고 민주당도 강경 대응을 선언했다.


‘12·12’와 ‘5·18’에 잇단 ‘공소권 없음’

1995년 7월 18일, 1년 2개월여 동안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은 “피의자들이 정권 창출 과정에서 취한 5·18 진압 등 일련의 조치나 행위는 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전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 등 피고소‧ 피고발인 58명 전원에 대해 ‘공소권 없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정보부장 서리 겸직과 비상계엄 확대, 정치인 체포‧연금, 광주 시위 무력 진압, 국보위 설치, 최규하 대통령 하야 등은 새 정권 창출을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며 “이들 정치적 행위는 통치행위로서 내란죄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가 전한 여론은 심히 격앙된 것이었다. 7월 19일자 31면 기사 제목은「“국민감정 모르는 처사” / ‘5·18 불기소’ 각계 반응 / “공소권 포기는 직무유기” / “학살이 정치적 행위인가” / 검찰 반개혁 태도에 분노」였다. 광주·전남의 재야단체, 시민·학생들과 공무원 등도 강한 분노를 표시하면서 ‘5·18 학살자처벌 범시민규탄대회’를 열기로 했다(30면). 그러나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면서 홀가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6면)

같은 날짜 동아일보 사설(「‘공소권 없음’이라니」)은 “이번 검찰의 결정은 5·18 군사쿠데타의 책임자들에게 사실상의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다만 검찰이 이번 5·18 고소·고발 사건 수사를 통해 국회 광주청문회에서도 밝혀지지 않았던 공수부대의 양민 학살 사실을 확인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격앙된 여론에 호응해 “당장 범죄자들을 기소하라”는 요구는 없었다. 그 사설은 “5·18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깊은 상처로 남게 됐다.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검찰의 정치적 면죄는 우리 역사에도 짙은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라는 무미건조한 결론을 내렸다. 
동아아일보는 그 정도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다음날인 20일자 사설(「광주의 진실은 어디로」)에서는 좀 더 강한 목소리를 냈다.

  (…) 검찰이 5·18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이라는 이유로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것은 검찰 스스로 이 땅에 정의와 법치를 실현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광주의 진실이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숱한 의문 그대로 남게 됐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광주가 여전히 피해 당사자가 승복하지 않는 미해결의 장으로 남게 됐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검찰 수사에서 일부 확인된 당시 계엄군의 ‘무차별 양민 학살’은 그동안 광주시민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거론조차 않으려던 비극을 다시 떠올려 광주의 통한이 얼마나 치유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 진압군들은 훈장까지 받았지만 발포명령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수사 결과를 광주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해 놓고 그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을 학살한 죄는 묻지 않는다면 이것은 무슨 논법인가.
  5·18 관련단체들은 광주의 10가지 의문을 제기해 놓고 있다. 그들의 주장이 다 옳은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최소한의 진상과 국회 위증 부분만 보더라도 피고소·고발인들의 법적 처리 여지는 남아 있다고 본다. 역사의 법정으로 가기 전에 현실의 법정이 더 엄격하다는 최소한의 노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노태우 비자금

1995년 8월 1일 김영삼 정부의 핵심 실제 중 한 사람인 총무처장관 서석재가 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이 4천억 원의 가‧차명계좌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10월 19일에는 민주당 의원 박계동이 국회 본회의에서 비자금의 관리자, 예치 내용, 차명계좌를 위해 빌린 이름, 계좌번호까지 폭로하고 나섰다.

10월 20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93년 1월 비자금 4천억 시은 40개 계좌 분산 예치” / 이원조 씨 지시 백억씩 쪼개 / 노 전 대통령 4천억 중 일부 / “통장 역추적하면 확인 가능” 박계동 의원 주장 / 상은 효자동 지점서 신한은 등으로 옮겨」라는 기사가 나왔다.

  지난 93년 1월 말까지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 예치돼 있던 비자금 4천억 원을 이원조 전 민자당 의원이 신한은행·동화은행 등에 40개 계좌로 쪼개 1백억원씩 분산 예치토록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민주당의 박계동 의원은 19일 국회 본회의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우일양행 명의로 1백28억2천7백여만원이 예치된 계좌의 예금조회표를 공개하면서 “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인 93년 1월 말까지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 예치됐던 4천억원의 비자금을 이원조 씨가 시중은행 영업담당 상무들을 시켜 1백억원씩 40개 계좌로 나누어 분산 예치시킨 것 중 일부”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당시 4천억원은 93년 2월 1일 1백억원짜리 수표 40장으로 인출돼 당일 즉시 동화은행·신한은행 등 각 시중은행에 일제히 분산 예치됐다”면서 “신한은행의 경우 총 6백억원이 배당됐고 서소문지점은 이중 3백억원을 할당받아 우일양행과 당시 서소문지점장의 동서, 지점 차장의 처남 등 3명 명의로 1백억원씩 예치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같은 사실은 이미 청와대의 홍인길 총무수석, 한이헌 경제수석 등도 파악하고 있으며 지난 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 때도 당시 함승희 검사가 계좌의 일부를 확인했으나 청와대의 김영수 민정수석의 압력을 받아 수사를 중단했었다”’고 말하고 “이러한 사실은 지금 당장이라도 통장을 역추적하면 확인할 수 있으니 즉각 수사에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 2, 3, 4면에는「“신한은서 ‘검은 돈’이라며 부탁” / 명의 빌려준 하종욱 씨 문답」「비자금 폭로 / 여­“황당무계” 야­“국조권 발동”」「검찰 “아직 수사계획 없다”」「“사실부 확인 검토” 이 총리」,「‘300억 돈 주인’ 누구일까 / ‘비자금’ 파문 의문점과 전망 / ‘4천억 중 일부’ 밝힐 증거는 아직 없어 / 실명 전환 않고 놔둔 이유도 석연찮아 / 일부 ‘물증’ 제시­야 규명 공세로 파장 부를 듯」등 관련 기사들이 실렸다.
동아일보는 10월 22일자 「실명제와 검은 돈」이라는 사설을 내보낸 뒤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잇단 사설로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더 이상 거짓말은 안된다」「정신 못 차렸던 재벌(25일자)
· 「정치타결론 경솔하다」(26일자)
· 「모든 것을 법대로」「6공 청와대의 돈 세탁」(27일자)
· 「사과와 법처리는 별개다」「노 씨가 준 대선 자금은?」(28일자)
· 「도덕적 불감증」(29일자)
· 「대선 대 받은 돈 공개를」(30일자)

10월 27일 노태우는 “통치자금으로 5천억원을 조성했다. 남은 돈은 1천7백억원이며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결국 그는 11월 1일 검찰에 소환돼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고 11월 15일 재소환돼 수사를 받다가 이튿날 구속되었다.

11월 16일자 동아 1면 머리에는「노 전 대통령 오늘 구속 / 어제 재소환 철야 조사 / 수뢰·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라는 통단기사가 올랐다. 그 이전에도 동아일보는 잇단 사설로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수사와 정치권의 정당한 대응을 촉구했다.

노태우가 구속된 다음날인 11월 17일자 사설(「노 전대통령의 구속」)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한 이래 처음 있는 일  대 불상사다. 노 씨의 구속으로 노 씨 개인의 도덕성과 명예만이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망신이자 한 공동체의 위신 그 자체의 추락을 의미한다.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국민들로서는 노 씨에 대한 증오 못지않게 통탄을 금할 수 없다. 검찰이 밝힌 노 씨의 범죄 사실은 파렴치 그대로다. 그러고도 끝없는 거짓말로 국민들을 우롱했으니 용서받기 어렵다. 그런 범죄자를 직접 뽑아 그 막중한 자리에 앉혔다는 사실이 국민들은 부끄럽다. 준엄한 법의 심판과 가차없는 단죄가 있어야 마땅하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우선 군부 출신 역대 대통령들의 도덕성 마비가 큰 원인이다.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시킨 12·12와 5·18 유혈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노 씨 개인의 끝없는 탐욕이다. 노 씨는 사과성명 때 ‘통치자금’ 운운했으나 결국은 정치자금을 빙자한 개인 축재임이 밝혀졌다. 집권 5년 동안 권력남용·정경유착이 아무리 심했기로 노 씨와 그의 가족 축재가 이토록 천문학적일 줄은 미처 몰랐다.
  최근에 와서야 야당 의원의 폭로와 검찰 수사로 노 씨 부정이 드러나기는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원리인 권력 분립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어떻게 이런 엄청난 부정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민주주의의 기본은 법치주의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함을 확인시키기 위해서도, 암울했던 80년대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도 노 씨의 구속은 당연하고도 불가피하다.

이 사설은 “민주주의의 원리인 권력 분립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어떻게 이런 엄청난 부정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개탄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어떻게 이런 엄청난 부정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라는 자성이 선행되었어야 옳지 않았을까?.

동아일보는 노태우가 구속된 이후에도 「노 씨 핵심 측근의 범죄」(19일자, 「민자당 밝힐 것 밝혀라」(21일자), 「‘6공 파일’도 밝힐 때」(22일자), 「이원조 씨 철저한 수사를」(24일자), 「비자금 철저한 수사를」(29일자)등 사설을 통해 비자금 수사의 범위를 넓히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동아가일보가 그렇게 다그친 낸 이유는 11월 17일자 사설(「친인척도 철저히 수사하라」)에서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5공 비리에 대해 단호한 심판이 없었던 것도 6공 비리를 부르는 하나의 요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은 지난 88년 연말 5공 비리 특별수사부까지 설치, 한 달 반 동안 수사 끝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과 전 고위공직자 등 모두 47명을 무더기 구속했었다. 적지 않은 구속숫자였지만 수사 내용은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 변죽 울리기에 그쳤다. 법원도 피고인 대부분을 1심에서 집행유예·구속집행정지·보석 등으로 석방, 5공 비리에 대한 심판은 결국 어물쩍 끝나버렸다.
이번에도 검찰이 노 씨 주변 인물에 대해 미봉 수사로 그친다면 권력형 비리가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되기는 어렵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마지막이 돼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


김대중의 ‘20억+α’

1995년 10월 27일 노태우가 비자금 관련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기 직전에 중국을 방문 중이던 김대중은 “지난 92년 대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을 받은 바 있다”고 실토했다. 동아일보는 28일자 1면 머리에 노태우의 사과성명 발표를 올리고, 김대중의 ‘자백’은 주요 기사로 다루었다. 그리고 3면에 실은「김대중 씨 20억 고백 정국 뇌관 / 노 씨 비자금 파문­대선유입 공방 / 민자­“김 총재 선수가 악재될 것” 일단 공세 / 국민회의­당혹감 속 “김 대통령도 밝혀라” 역공 / 민주 “김 총재 은퇴”… 자민련선 여야 모두 해명 요구」라는 기사를 통해 사태의 배경과 전망을 살폈다.

  청와대 쪽은 (…) “김 총재가 그동안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해온 점을 고려하면 이를 믿을 국민이 별로 없을 것”이라면서 “노 전 대통령이 대선 지원 자금을 공개할 것이 두려워 나온 악수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민자당 쪽의 분위기는 좀 복잡하다. (…) 노 전 대통령의 대선 지원금을 공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 더구나 국민회의 김 총재가 선수를 치고 나선 마당이라 입장이 매우 군색해졌다는 인식도 당내에 적지 않게 깔려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대선 지원금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선 아직 소문만 무성한 정도다. (…)
  야 3당은 각기의 노선과 처지에 따라 공격 대상을 달리하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국민회의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박지원 대변인)던 공식 논평이 뒤집어진 데 따른 당혹감 속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선거자금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김 총재를 집중 공격, 대국민 사과와 정계 은퇴까지 요구했다. 자민련은 김 총재의 추가 해명과 김 대통령의 선거자금 공개를 요구했다. (…)
  민주당은 이날 이규택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김대중 총재가 광주 학살의 원흉인 노 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만으로도 그의 대권 4수는 사실상 물건너갔다”며 김 총재의 대국민 사과와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 (…) 이철 원내총무도 “5·18 학살로 권력을 찬탈한 쿠데타세력의 검은 돈을 받은 김 총재가 어떻게 떳떳하게 국민의 신뢰를 바랄 수 있겠느냐”고 비난했다. 제정구 의원도 “검은 돈 20억원을 받았으면 정치지도자답게 당연히 정계를 은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다른 당은 물론 여러 신문들에서도 김대중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지만 동아일보는 좀처럼 공격에 나서지 않았다.  김대중 비자금보다 노태우 비자금이 더 본질적이라고 본 듯했다. 그래서인지 노태우 비자금 수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11월 15일자 사설(「빗나가는 정치 싸움」)은 김대중 비자금이 정치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 사건은 급기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간의 사생결단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양 진영의 치고받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 누가 죽는지 어디 한 번 해보자는 오기의 맞대결 같다. 이러다간 노 씨 사건 자체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나라가 거덜나지 않을까 국민들은 그저 불안할 따름이다. 이번 노 씨 사건의 처리 방향은 본란이 지적했듯이 첫째 노 씨의 개인 비리, 둘째 검은 돈의 정치권 유입, 그런 다음 대선자금 문제를 규명하고 넘어가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검찰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마당에 나가도 너무 나가고 있다. 한 마디로 사태의 본질과 초점을 흐리는 빗나간 정치싸움이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상대 당 지도자 죽이기에만 혈안이니 큰 정당들이 과연 이래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집권당의 자신에 대한 퇴진 요구가 갈수록 거세지자 김 총재는 현 정권과 의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 현직 대통령을 겨냥해서 막가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 민자당 강삼재 사무총장의 ‘DJ 공격’은 누가 봐도 지나치다. 정치를 적과 동지 관계로 양단 짓는 이분법적 접근도 문제지만 자기 당의 도덕성은 묻어둔 채 상대당만 파렴치로 몰아붙이는 것은 정치도의적으로도 상식을 벗어난다.
  구시대적 관행 속을 살아오면서 허물없는 정치인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국민이 보기에 덜 받고 더 받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누구도 홀로 깨끗한 척 큰소리 치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자괴 자숙 자제하면서 일단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도리다. 반성부터 앞세워 다시는 노 씨 사건 같은 부끄러운 작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전두환 구속

동아일보는 노태우 구속에 한참 앞서 그의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던 11월 14일자에「헌법재판소에 바란다 / 5·18은 현행 법질서 통해 청산해야」라는 사설을 내보낸 바 있다. 그 사설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권력형 부정축재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오욕에 얼룩진 한 시대의 과거 청산이 시급함을 거듭 절감한다. 검은 돈에 얽힌 전직 대통령의 비리는 본란이 이미 지적했듯 법대로 척결함이 마땅하지만 12·12와 5·18로 상징되는 80년대의 암울했던 과거도 차제에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설은 “본란은 그동안 12·12도 5·18도 검찰이 모두 불기소처 분한 것은 잘못된 것임을 누누이 지적한 바 있다”고 했지만, 한참 전 서울지검이 ‘기소유예’(12·12)나 ‘공소권 없음’(5·18)을 결정하던 당시 동아일보는 겨우 유감을 표시했을 뿐이다.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갈 것 같았던 12·12와 5·18을 “노태우 전 대통령의 권력형 부정축재 사건을 지켜보면서 한 시대의 과거 청산이 시급함을 거듭 절감한다”며 다시 거론한 것이 다소 멋쩍어 보이기는 하지만, 뒤늦게라도 역사를 바로 잡자고 나선 것은 옳은 일이었다. 그 사설은 이렇게 주장했다. “검찰의 잘못된 결정을 법률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곳은 이제 헌재뿐이다. 물론 야권의 주장처럼 특별법을 만들어 심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5·18은 가능한 한 현행 법질서를 통해 청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려면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을 심리중인 헌재의 전향적인 판단이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헌정의 틀과 국민의 기본권 및 정의를 수호하는 최고 헌법기관인 헌재가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배척하고 재수사를 통해 청산토록 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매듭은 풀릴 수 있다.”

과거 군사독재의 청산은 특별법이나 헌재의 결정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의 결심만으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11월 24일 김영삼은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12월 10일)에 5·18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민자당에 지시했다. 동아일보는 25일자 1면 머리에「‘5·18 특별법’ 만든다 / 전·노 씨 등 ‘쿠데타 당사자’ 의법 처리」라는 기사를 통단으로 실었다. 3면에서는「비자금 정국 추월 ‘충격 카드’ / 5·17 ‘쿠데타’ 규정…‘소급법 불가’서 선회 / 총선 등 겨냥한 정국 주도 기선 잡기 포석이라는 김영삼의 충격적인 특별법 제정 지시를 해설했다. 또「“앉아서 당할 수 있나”; 전 씨 측 / “엎친 데 덮친 격” 한숨; 노 씨 측」이라는 별도 기사로 이번 조치의 최대 목표인 전두환과 노태우 측 반응을 전했다.

해설기사에서 동아일보는 이 조치가 “단순히 비자금 정국 수습용이 아니라 부도덕한 군사정권에 대한 응징을 통해 국가 기강과 도덕성을 확립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같은 날짜 사설(「5·18 특별볍 제정 결단」)은 “김영삼 대통령이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 5·18 특별법을 제정토록 하라고 민자당에 지시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며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목에 가로 놓인 79년의 12·12 군사반란과 그 연장선상에 있는 80년의 5·18의 멍에를 단숨에 끊을 수 있는 김 대통령의 획기적인 결단이다”라고 찬양했다.

  (…) 여권은 그동안 5·18 특별법 제정 문제는 일단 헌재 결정을 지켜 본 다음에 생각할 사안이라고 말해왔다. 그러한 입장이 급선회한 데는 최근 ‘노태우 비자금’ 사건의 충격과 그로 인한 상황 변경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노 씨가 파렴치범으로 일단 구속된 마당에 5·6공을 더 이상 두둔할 이유도 명분도 부담도 없어졌다. 5·18과 관련하여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더라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판단이 섰을 수도 있다. 결국 노 씨 사건을 계기로 과거를 철저하게 청산하고 넘어가기 위해서도 차제에 국민에게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안겨 준 쿠데타 당사자들을 처리하는 정도를 택한 것 같다.

동아일보는 11월 26일자  사설(「5·18 시효 살아 있다」「섣부른 5·18 사면론」)과 28일일자 사설(「때 이른 처벌 대상론」)을 통해 통해 12·12와 5·18 청산을 강력히 요구하다가 30일자 사설(「특별법으로 5·18 청산을」)에서 “내란 혐의는 이미 지난 8월 시효가 끝나 어느 누구도 처벌이 불가능하며 다만 반란죄의 경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만 시효가 남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보도다. 이 같은 해석은 본란이 이미 지적한 대로 상식에 맞지 않지 않으며…”라고 다시 한 번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한편 1995년 7월 “검찰의 5·18 사태에 대한 ‘공소권 없음’ 결정이 피해자들의 이익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던 청구인들은 11월 29일 일제히 헌법소원 취하서를 제출함으로써 혹시 있을지도 모를 헌재의 ‘시효 만료’ 결정 가능성을 봉쇄해 버렸다. 특별법 제정을 위한 조치였다. 김영삼은 특별법의 위헌 시비를 해소하기 위해 부칙에 ‘시효 적용 배제’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개헌까지 추진하겠다고 시사했다(동아일보 11월 30일자 1면「‘헌정 파괴 단죄’ 개헌 추진 / 김 대통령 “특별법 위헌 시비 해소” / 부칙에 ‘시효 적용 배제’ 신설 / 구체적 사건 명시는 안 할 듯」).

하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동아일보는 11월 30일자 31면(사회면)에「‘5·18’ 특별법 제정 후 재수사 / ‘12·12’도 재조사 가능성 / 검찰 빠르면 내달 중순 착수 / 최규하 불응 땐 강제구인 검토」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29일 5·18 헌법소원 취하로 헌재의 결정 선고가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5·18 특별법 제정을 지켜본 뒤 그에 따라 5·18 사건 재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헌재가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으면 지난 7월의 공소권 없음 결정은 여전히 유효하며 따라서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재수사에 나서기 어렵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힘은 그런 법적 논란의 여지를 뛰어 넘을 만큼 충분히 셌다. 동아일보 보도가 나온 바로 그날(11월 30일) 검찰은 서울지검에 검사 15명으로 구성된 ‘12·12 및 5·1 8사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지난해 서울지검이 내린 12·12 사건에 대한 기소유예 결정을 스스로 취소하고 전면 재수사에 착수하면서 12·12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5·18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동아일보 12월 1일자 1면 머리에는「‘12·12’ 전면 재수사 착수 / 전·노 씨 월내 사법 처리 / 검찰 최규하 씨 내주 조사 / 특별수사본부 설치」라는 기사가 올랐다. 바로 전 날짜 사회면 머리톱기사가 오보임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옆에는「개헌 추진 유보」라는 5단 기사,「“개헌 반대” 김대중 총재」라는 2단 기사가 나와 있었다.

특별법 제정을 기다리고 말 것도 없이 우선 수사부터 시작한다는,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의 ‘깜짝쇼’ 식 국정운영 스타일이 이번에도 작동된 것이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2면 기사(「특별검사제 막으려 “수사 선수”」)에서 검찰이 느닷없이 12·12 재수사에 나선 배경을 분석했으며, 4면에는 서울지검장 최환과의 일문일답(「“‘12·12’ 국민 의구심 많아 재수사」)을 통해 검찰의 난처한 입장을 전했다. 33면 기사(「12·12 재수사… 1년 만에 입장 정반대로 바꿔」)는 왜 검찰이 난처하게 됐는지를 설명했다. 

그때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12월 2일자 동아일보 1면 머리에는「전두환 씨 오늘 소환 / 불응 땐 강제구인 검토 / 검찰 허삼수 씨 등 10명 내주 조사」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옆의 주요 기사 제목은「“‘12·12’ ‘5·17’ 등 공소시효 93년 2월 24일까지 정지” / 민자 특별법안 확정; 사건 관련 전원 사법처리 가능」이었다. 3면에는 「전 씨 소환 재수사 배경」이라는 제목 아래「여 핵심부 ‘의중’ 반영 전격 소환 / “너무 빠르다” 검찰 내부서도 놀라움 / 특검제 사전 차단-조기 마무리 수순 / 반란죄 적용… 특별법 제정 후 내란죄 추가할 듯」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전 씨 소환 정치적 의미’를 해설하는「‘야 정치공세’ 잠재울 선수 / 5공 세력 저항 조기 차단 의미도」라는 기사도 실렸다.

특별법 제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검찰의 소환조사를 거부한 채 고향 합천으로 내려 간 전두환은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의 혐의를 받고 12월 3일 체포 압송되어 전격 구속 수감됐다. 두 전직 대통령이 같이 구속 수감되는 ‘건국 이래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 날짜 동아일보에 1면에 전단으로「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 반란 수괴 등 혐의 사전영장/  수사관 합천 보내 안양교도소 수감 예정」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전 씨 소환 거부… 정면 도전 / “재수사는 정치보복” 김 대통령 비난 / 현 정권과 내란세력 야합한 셈 / 과거사 부정-역사관 밝히길」이라는 기사로 전두환이 검찰 소환을 거부하고 체포 구속될 때까지 보인 격한 반응을 상세히 전했다. 이밖에도 같은 날짜 동아일보는 2, 3, 4, 5, 6, 7, 30, 31면을 온통 전두환 구속에 관련된 기사들로 도배했다. 

· 2면:「성명 검토 후 ‘구속’ 급선회 / 전 씨 구속­검찰 스케치/ 오후 6시 10분 청구… 5시간 만에 처리」
· 3면:「통치이념 도전에 ‘초고속 처리’ / “시간 끌 필요 없다” 여권 핵심부와 교감 / 특별법 제정 이전 피고소인 전원 소환」「전 씨 위법 사항 모두 조사/ 노 씨 ‘12‧12’ 부분 추가 기소 방침」
· 4면:「정치권 사정 등 강수 예고 / 전 씨 구속­정국 파장 / 야권에도 영향… 정당세력 재편 가능성」
·5면:「‘전 씨 정면 도전’ 반응 / 청와대­ “신경 안 쓴다” 겉으론 태연 / “마지막 저항 예상… 대가 치를 것” 강경 / “전 씨 측 정치인 비리 혐의 처벌 가능성”」
· 6면:「충격… 동요… “예측 불가 정국” / 전 씨 구속­정당 표정」「‘전두환 씨 담화문’ 요지」「5공 인사들 “전 씨 할 말 했다” “우리 입장 대변” “속 시원하다” 환영 / ‘좌파’ 발언 빼면 수긍할 부분 많다」
· 7면:「‘특별법’ 야 반대해도 회기 내 통과 / 강삼재 민자 총장 일문일답」「“재조사해도 새 답변 없을 것” / ‘전 씨 변호사’ 이양우 씨 일문일답 / 가능한 법적 수단 최대 동원」
· 30면: 「“앞으로 고향 자주 못 찾아뵐지도…” / 연희동∼합천 ‘전 씨의 하루’… 선영 도착하자 마을잔치 일제히 환호 / 시위대·주민들 간 몸싸움도」
· 31면: ‘번개수사’에 놀라움 / ‘전 씨 구속’ 시민 반응… 정면 도전에는 “어이없다” / 자고 나면 ‘쇼크’… 어지럽다/ 불안 덜게 ‘과거 청산’ 일관성 유지를」「12·12 사건 ‘내란방조’ 군법 유죄 판결 정승화씨 재심 적극 검토」

동아일보의 같은 날짜 사설(「전 씨 단호히 처리하라」)은 다음과 같다.

  12·12 군사반란과 관련하여 검찰의 소환을 받은 전두환 씨는 2일 검찰에 출두하는 대신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해괴한 성명을 내고 서울을 떠났다. 전 씨는 성명을 통해 암울했던 80년대의 군사독재체제를 옹호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고 숱한 국민의 목숨을 빼앗은 유혈의 참극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 자신에 대한 검찰 소환을 마치 정치보복인양 인상지우고 거부함으로써 다시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하였다. 그가 한 말은 무엇이었는가.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를 지닌 국군의 일부를 사조직을 동원하여 군사반란에 몰아넣고 민주헌정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탱크로 막아 국헌을 유린한 행위를 변명했다. 군사독재를 반대하는 광주시민들의 5·18 항쟁을 무참히 탄압하고도 대통령을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합리화하려는 그의 낯 두꺼운 성명은 5·18 쿠데타를 미화하는 것일 뿐, 참회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80년 초 그가 주도했던 쿠데타와 5·18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을 마치 좌익세력의 음모인양 매도했다. 그가 군사정권 시절에 탄압의 논리로 동원했던 좌익음모설의 화살을 이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국민들에게 겨냥한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을 모욕하고 역사 바로잡기를 거역한 몰염치한 언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그의 말을 혹시라도 동정하는 정서가 있다면 그것은 5공의 암울하고 처절했던 군사독재에 눈감는 것이며 굴절된 역사의 청산을 열망하는 민족의 정기를 흐리게 하는 것이다.
  이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12·12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 5·18 학살 주범의 처벌을 바라는 많은 국민과 정치권의 염원은 전 씨 및 5공 쿠데타 세력의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권력형 부정축재로 비굴해진 노태우 전 대통령과 수치를 모르는 전 씨의 낯 두꺼움을 감상적으로 비교할 때가 아니다. 정치권도 5·18을 단죄해야 한다는 큰 원칙에 동의한 이상 자질구레한 이해득실에 얽매일 때가 아니다.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전 씨를 구속한 것은 당연하다. 법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전두환의 ‘좌익세력’ 운운이 워낙 터무니없는 소리이기는 했지만 사실 독재정권의 ‘빨갱이 놀음’ ‘좌파몰이’에 앞장서 날뛴 것은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이었다. 구구절절 옳은 사설이면서도 약간 남우세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유다. 같은 날짜 23면 ‘세상 읽기’ 칼럼에 실린 김한길의 글(「반성할 줄은 모르고」)에는 풍자와 야유가 넘친다.

  연희동 골목길에 서서 전두환 씨가 아주 심각한 표정을 하고 이야기하는 걸 보고 나니까, 품위가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이런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소방관들과 깡패들이 어느 날 패싸움을 벌였다. 어느 쪽이 이겼을까. 소방관들이 이겼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웠으니까. 장님들과 깡패들 사이에 싸움이 붙었는데 어느 쪽이 이겼을까. 장님들이 이겼다.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까. 야유회를 나온 노인들과 깡패들 사이에 싸움이 났는데 어떻게 됐을까. 물론 노인들이 이겼다. 막가는 인생이니까(시각장애인과 어른들께 대한 무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하기야 막가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존재인가.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분들이 온통 막가는 심정인 것 같아서 걱정이다. (…) 우선 전 씨는 어제 아침 용감한 골목대장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 보였다. 자기 패거리의 운명을 책임진 마피아 보스 같은 모습으로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발표했다. 전 씨가 엄숙한 얼굴로 ‘웃기는 말들’을 토해놓는 동안 등 뒤에 선 부하들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이날 전 씨의 ‘말씀’ 중에서 가장 엉뚱했던 건 ‘과거 정권들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건 좌파 운동권의 일관된 주장’ 운운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불행한 우리 현대사의 잘못 끼운 첫 단추로 말해지는 ‘반민특위의 좌절’에서부터가 그랬거니와 ‘과거 정통성 없는 정권들의 일관된 주장’이야말로 ‘사회 안정을 위한 좌파 척결’을 명분으로 국민들의 역사 청산과 민주화 열망을 억눌러온 것이 아니었던가.
  쿠데타를 위해서 전방의 병력을 빼내오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고생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국민을 쏘라고 시킨 자들이 우파이고 그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이들은 좌파라면 어느 누가 좌파이기를 망설이겠는가. (…)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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