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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과 ‘6·15 선언’(2)조선일보 대해부 5권 - 5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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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2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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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선언」에 대한 조선일보의 평가

조선일보는 6월 16일자 2면에 6·15 남북공동선언에 관해 두 편의 사설을 내보냈다.

첫 번째 사설(「총체적 평가 / 6·15 남북공동선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북관계에서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남북 당국자간 대화이며 다른 하나는 북한 지도층의 대남 인식 내지 정책의 변화다. 우리는 주권국가로서의 남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을 일관되게 배격해왔다. 북한당국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으로 남북 최고지도자의 회담을 수용했으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인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남북정상의 만남 자체가 의미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총체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 끝내 회담을 이끌어 낸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와 노력도 높이 평가한다.
  북한지도층의 대남 인식이나 상황 대처가 과연 변화하고 있느냐에 대해 우리는 일단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시간의 단독회담, 남쪽대표단에 대한 북측의 환대, 그리고 남북한 현안에 대한 솔직한 의견 교환 등은 남북관계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며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작으로 삼기에 족하다.
  우리는 이런 긍정적 평가와 아울러 이러한 관계가 공동선언 5개항의 이행 과정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남북은 과거 당국자회담에서 이번 공동선언에 못지않은 내용들을 합의해 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휴지화되곤 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진정 변화하고 있느냐는 것을 확인하려면 앞으로 5개항의 이행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만일 북한이 형식 면에서 또는 전술적으로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내용 면에서 또는 본질적으로는 대남 인식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남북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안전은 요원하다는 우려를 갖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사설의 제목은 「‘5개항’ 이후 / 6·15 남북공동선언」이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5개항의 기본 뼈대는 남북한 주장의 ‘주고 받는’ 절충 내지 병행에 있는 것 같다. 남북통일의 자주적 해결을 천명한 항목과 상호 호혜정신에 따라 남쪽의 ‘국가연합’과 북쪽의 ‘연방제’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아내자는 합의문에 그러한 정신이 드러나 있다. 특히 ‘자주’의 문제는 7·4 공동선언 이후 남북기본합의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천명된 ‘당위’나 다름없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당연한 이 명제가 현실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 또는 같은 용어에 대한 남북의 개념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앞으로의 문제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한 것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는 자주적 해결”이라고 했던 7·4 공동선언보다는 한결 세련된 면을 보였지만 여전히 주변국, 특히 4강과의 관계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킬 소지는 있다. (···)
  (···) 이산가족 문제는 ‘1회성 이벤트’보다는 생사 확인, 서신 왕래, 면회소 설치, 고향 방문 등의 순서로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산가족 교환 방문과 비전향 장기수를 맞바꾸기로 한 점에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당연히 북한에 억류된 납북어부나 국군포로 등과 연계시켜 논의해야 하는데 합의서 어디에도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
  이런 의문들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의를 통해 당국 간 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은 아주 다행한 일이다. 아쉬운 것은 이번 선언에 한반도 평화와 안전에 관한 항목이 없다는 점이다. (···) 이번 공동선언에는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들어 있던 상호불가침 또는 무력 포기에 대한 언급이 없다. 뒤늦게 우리 대표단은 「해설자료」라는 것을 통해 “침략도 위협도 않기로 했다”고 일방적으로 설명했으나 이 문제는 당연히 공동선언에 포함되었어야 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조선일보의 사설 두 편은 남북정상회담 자체와 ‘5개항 합의’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남과 북의 정부가 「6·15 선언」을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에 들어가자 조선일보의 태도는 표변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기자 ‘입북 거부’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지 12일 뒤인 2000년 6월 27일 북한 당국과 조선일보가 정면으로 충돌하게 만드는 사건이 터졌다. 조선일보 6월 28일자 1면에 보도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북, 본사 기자 입북 거부 / “우리 자극하는 기사 많이 써” / 장전항 정박 금강호서 못 내려

  북한 측은 27일 남북적십자 회담 취재를 위해 방북한 우리 측 신문공동취재기자 2명 가운데 조선일보 김인구 기자의 입경(入境)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김 기자는 장전항에 정박 중인 현대의 관광선 금강호에서 내리지 못했다.
  북한 측은 이날 오전 장전항에 도착한 우리 측 대표단 16명 중 김 기자만 제외하고 15명을 입경시켰다. 북한 측은 김 기자 입경 문제에 대해 “추후 입장을 전달하겠다”고만 밝혔다. 이에 앞서 북한 측은 우리 측 대표단이 동해항을 향해 서울을 출발하기 직전인 26일 오전 9시쯤 적십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돌연 “우리(북한)를 자극하는 기사를 많이 쓰는 조선일보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통일부 당국자는 전했다. (·····)
  김 기자는 지난 23일, 통일부가 북한 측과의 합의로 각기 취재기자를 6명으로 제한하고 그 중 신문공동취재기자(통칭 ‘풀[pool]기자’)는 1명으로 정한 뒤, 통일부 출입기자단의 추첨을 통해 공동취재기자로 선정됐다. (···)
  우리 측은 24일 신문 공동취재 기자 2명을 포함한 대표단 16명의 인적사항을 북측에 통보했고, 북한 측은 별 문제 제기 없이 16명에 대한 신변안전 보장각서를 우리 측에 전달했었다.
  (···) 북한 측이 회담 장소가 북측 지역인 점을 이용하여 돌연 공동취재단에 속한 기자의 입경을 거부한 것은, 애당초 회담 장소를 판문점으로 제의했던 우리 측이 회담 장소를 바꾸는 데 동의하지 않았더라면 발생할 수 없는 일로 지적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26일 이후 여러 차례 북측에 대해 공동취재단의 일원인 조선일보 기자의 입북 허용을 요구했으나 확답이 없었다”고 밝혔다.
  북한 측은 남북정상회담 때도 조선일보와 KBS가 과거 그들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두 언론사 기자의 방북을 거절했으나, 양측의 막후 조정 결과 13일 우리 측 대표단이 서울을 출발하기 직전에 이들의 방북을 허용했었다 .

조선일보는 6월 28일자 2면에 올린 「조선일보 기자 입북 거부」라는 사설을 통해 북한 당국을 비판했다.

  금강산 적십자회담의 우리 쪽 ‘공동취재단’에 포함된 조선일보 기자가 북한 당국의 입북 거부로 장전항에서 하선(下船)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번 평양 정상회담 때도 북한 당국은 조선일보 기자의 입북을 거절했다가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일관된 원칙 고수로 마지막 판에 평양에 갈 수 있었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그간의 조선일보의 보도와 논조가 북한 당국자들이 보기에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남북 간의 ‘6·15 선언’은 서로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대전제 하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남쪽의 자유민주사회는 의견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거기엔 북한 측과는 전혀 상반된 가치관을 가진 언론도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북한 측이 진실로 ‘6·15 정신’에 투철할진대는 남쪽사회의 이런 본질적인 특성을 인정하고, 그 ‘다른 가치관’이 향유하고자 하는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점차 익숙해지는 것이 남북 간의 성공적인 공존 실험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 남쪽의 특정한 견해와 언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것도 아닌, 남북문제를 다루는 취재 현장에 접근조차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서로 다름’ 속에서 공존·상생하자는 ‘6·15 정신’의 근본 취지를 탈색시키는 것밖엔 안 된다. 우리의 가치관으로서는 북쪽의 보도매체들이 그동안 남쪽에 대해 심히 적대적인 논조를 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남한 취재를 사절하거나 반대하는 일 만큼은 없었다고 믿는다.
  이러한 유감 표명과 함께 우리는 우리 정부도 본(本)과 말(末)을 투철하게 변별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북한 당국은 지금 남한 언론 길들이기와 특정 견해 소외시키기를 치밀하게 진행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먹혀들거나 우리가 그것에 말려들 때 우리는 조선일보의 취재활동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의 양보할 수 없는 핵심 가치들을 ‘북한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하나하나 스스로 버리는 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6월 30일자 2면 사설(「‘북한 취재’ 원칙 세워야」)에서 그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 정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당 언론사에 책임을 떠넘기거나 북한에 사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체제의 본질적인 가치가 걸린 이 문제에 대해 확고하고도 일관된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에 따라 북한 당국과 포괄적인 절차를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 당국은 벌써부터 발뺌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김순규 문광부 차관은 국회 문광위에서 조선일보 기자에 대한 북한의 입북 거부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통일부 측은 상대방(조선일보)이 언론사란 특성 때문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당 언론사에 대표기자 교체를 제시했는데 해당 언론사에서 끝까지 고집했다는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김 차관의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이번 조선일보 기자 입북 거부 사태의 책임은 북한과 정부에는 없고, 오로지 조선일보에만 있다는 투다. 그의 말 속에는 조선일보가 시키는 대로 했으면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터인데 조선일보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 하는 곳인지 김 차관에게 묻고 싶다. 정부는 국가의 권능을 집행하는 곳이다. 국가의 권능을 제대로 집행하려면 우리 체제가 갖고 있는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평양 정상회담 때 북측이 조선일보와 KBS 기자의 취재를 거부하자 우리 사회의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인 언론자유를 침해당할 수 없다면서 일관된 원칙을 고수해 양사의 기자들도 취재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김 차관의 말은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는가. 우리는 김 대통령의 원칙이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기대하며 다시는 북한이 선별적으로 남한의 매체를 정하는 일이 없기 바란다.


북한 당국이 조선일보 기자 입북 거부에 관해 공식 견해를 전하지 않는 데다 ‘안티조선’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조선일보의 ‘반민족적 반통일적 행태’를 거세게 비판하자 조선일보는 7월 11일자 2면에 통단사설(「조선일보는 길들여지지 않는다」)을 내보냈다.

  근년에 조선일보의 대북 논조를 가지고 일부 사람들은 조선일보를 ‘반통일’ 신문이라고 매도해 왔다. 그런데 지난 8일에는 평양방송도 조선일보를 ‘통일에로의 민족의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는 ‘반민족적 반통일적’ 신문이라며 “조국 통일의 길 위에 가로놓인 걸림돌은 들어내야 하고 암초는 폭파하여 없애버리는 것이 순리”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정녕 통일에 반대하는가? 결코 아니다. 다만 저들이 말하는 통일과 조선일보가 말하는 통일이 다를 뿐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로 볼 때 통일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남쪽의 체제와 이념에 따른 통일이 있고 북쪽의 이념과 주의에 따른 통일이 있을 수 있다. 두 체제가 절충되어 중간에서 만나는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일 저들이 말하는 통일이 북의 체제와 이념이 주도하는 통일이라면 우리는 목숨을 걸고 그런 통일에는 반대한다. 만일 저들이 말하는 통일이 남쪽에 의한 통일이라면 그것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바라는 통일은 분명 평화와 공존,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단계를 거쳐 남북 합의로 이루어가는 통일이다. 따라서 누구든 통일이나 반통일을 말할 때는 우선 그 ‘통일’이 어떤 통일인지 엄밀히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 그런 개념 규정은 두루뭉수리로 덮어두고 반민족 반통일 반역죄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 약점을 인정하는 것밖엔 안 된다.
  우리는 조선일보를 ‘반통일’로 매도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통일이 북에 의한 통일이라면 당신들은 대한민국을 들어먹자는 것밖에 되지 않으며, 평화공존이라면 조선일보는 반통일이기는커녕 통일 지향 신문이 된다. 그리고 “지금은 통일을 말할 단계가 아니라 평화공존 화해협력을 추구할 때”라고 말한 김대중 대통령은 어디에 서는 것일까.
  평양방송은 ‘걸림돌의 폭파’를 위협했다. 우선 자신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것이면 ‘폭파’하겠다는 망상을 버리지 못하는 북한당국은 자신들을 계속 세계적인 테러리스트국가 리스트에 묶어버리는 우(愚)를 범하는 것뿐임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태도가 변화했기를 진정 기대해 왔다. 그러나 계속되는 테러 위협은 북한이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음 을 입증할 뿐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평양방송뿐 아니라 남쪽에서도 조선일보가 남북문제에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는 허황된 목소리가 있다. 물론 조선일보가 입을 다물어주면 편한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도 입 다물고 눈 감으면 평양도 가고 금강산도 가고 백두산도 갈 수 있고 또 남쪽 일부 서클에서 ‘왕따’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신문의 생명인 비판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남쪽의 권력에든, 북쪽의 권력에든 분명히 할 말은 하고 살아갈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문제인 이상 우리는 ‘걸림돌’이 무서워 입을 다물 수는 없다.
  북한 당국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조선일보는 언론의 자유와 북한 당국의 환심 중 어느 것을 택하라고 한다면 단연코 언론의 자유를 택할 것임을 분명히 천명한다. 우리가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평양방송의 언급처럼 오직 ‘조선일보만이 구태의연하며’, ‘조선일보만이 6·25 남침을 모략한다’면 하나쯤 비판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인가. 남쪽에서 조선일보만 문제라면 그것으로 부족해 굳이 100% 전부를 얻겠다는 발상 자체를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조선일보가 그처럼 두려운 존재란 말인가. (·····)
  조선일보는 지금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북한의 비난과 위협이라면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라 무대응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남쪽 일각에서는 ‘남북 큰 걸음’에 저해되는 언론이라며 조선일보와 기자들을 매도하거나 저주하는 주문(呪文)들이 연일 횡행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무슨 싸움인가. 이 판이 무슨 판인가. 이것이 과연 누구 편들기인가. 독자들은 남북회담 후 시국의 흐름과 변화를 예의 주시해 줄 것을 부탁드리며 조선일보는 어떤 협박에도 결코 길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거듭 밝힌다.

이 사설은 “조선일보가 바라는 통일은 분명 평화와 공존,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단계를 거쳐 남북 합의로 이루어가는 통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쏟아낸 사설들과 칼럼들, 그리고 자매지인 월간조선에 나온 글들을 보면 그 신문이 남북의 “평화와 공존,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단계를 거쳐 남북 합의로 이루어가는 통일”을 실현하는 것과는 정반대 길을 걷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가 4월 10일, 남북정상회담을 6월에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는 5월호에 나온 「편집장의 편지-김대중 대통령, 김정일을 내려다 보십시오 ! 그 자는 이단이요 반동입니다」에 이렇게 썼다. “평양까지 찾아가서 이런 인물을 만나기로 한 데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만 제발 그를 만날 때 웃지 마십시오. 7천만 전체 민족에 대한 가해자인 이 자에게 분노를 드러낼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이 자를 속으로 경멸하십시오.”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은 4월 22일자 칼럼에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 화해의 길을 연 대통령, 평양을 방문한 최초의 남쪽 대통령, 그리고 그것으로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는 대통령, 그것은 한국의 정치 지도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업적이다. 그러기에 그는 이번 회담에 모든 것을 걸 것이다”라고 썼다. 그 칼럼은 이렇게 이어진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가 무리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우리는 큰 불행을 맞을 수 있다. (···) 김 대통령은 한국의 미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국을 그의 장중에 있는 ‘소유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5월 31일자 조선일보 2면에 실린 사설(「태극기 내리면 나라도 내리는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열흘 남짓 앞둔 때에 북한 당국을 극도로 자극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30일자 본보 사회면(31면)에 게재된 한 장의 사진은 우리를 한없이 참담하게 만든다.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방문을 앞두고 선화예술중·고에서 한 남자가 교탁에 올라가 무용연습장 벽에 걸어놓은 태극기를 황급히 내리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북한 예술단의 인솔자는 물론 어린 예술단원까지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니는데 무용실에 걸려 있는 태극기를 그대로 두면 무슨 큰일이라도 난단 말인가. 우리가 북한에 무엇을 잘못했길래 나라의 표상인 태극기까지 떼어내야 하는가.
  학교 측이 오래 전부터 이곳에 태극기를 걸어놓은 것은 나라의 ‘근본’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태극기를 통해 나라사랑을 배우고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다짐하도록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무슨 행사 때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교육받아온 이 학교 학생들이 어느 날 북한 어린이들이 온다고 해서 허겁지겁 태극기를 내리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행사 주최 측은 작년 리틀엔젤스 합창단의 평양공연 때 ‘양국 국기’를 걸지 않기로 합의한 연장선상에서 이번에도 그렇게 하기로 했기 때문에 국기를 내리게 됐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공식행사 때나 공연장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지, 단순히 시찰이나 방문의 경우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니란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실제 북한예술단이 무용실에 들르기 전 이 학교가 주최한 간단한 환영회장엔 태극기가 걸려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무용실 태극기를 급히 내린 것은 아마도 북한 측의 ‘항의’가 있었던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주체성이 없어도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없을 수 있단 말인가.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이 사설이 나오자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서울초청공연실행위원회’는 5월 31일 「남북 화해 재 뿌리는 조선일보 저의는 무엇인가」라는 성명서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앞에 놓고 온 국민이 남북 화해에 마음을 쏟고 있는 마당에 난데없이 악의적인 보도로 찬물을 끼얹고 재를 뿌리는 조선일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 측의 리틀엔젤스예술단 어린이들이 지난 1998년 5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어린이들의 공연이 정치나 이념에 훼손될 것을 우려, 상대방 방문 시 양측이 서로 국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바 있다”는 것이었다(세계일보 6월 1일자 1면).

‘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을 지향한다는 조선일보는 그 ‘태극기 내리기’의 배경도 정확히 모르는 채 그 일을 ‘주체성이 없는 것’이라고 매도했다.


‘6·15 선언’ 실천에 재 뿌리기

  국민의 정부와 북한 당국이 「6·15 선언」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조선일보는 며칠이 멀다 하고 그 움직임에 재를 뿌리는 사설들을 내보냈다. 그 일련의 사설 요지를 간략히 살펴보겠다.

  · 「청와대의 양비론」(7월 14일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 대한 북한의 욕설 비방을 다루는 집권 측의 자세가 심히 해괴하기 짝이 없다. “이회창 총재도 남북 문제를 사려 깊게 생각해야 한다” “이 총재도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이 진척될 수 있도록 후원하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서도 좋은 일…” “냉전적 사고가 더 이상 자리 잡지 못할 것…” “이 총재는 이미 차기 대통령이 다 됐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국민 생각은 크게 바뀔 수 있다…” 등이 그것이다.
  문제의 평양방송에 대한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이 발언은 집권 측이 지금 대북 문제에서 도대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묻게 만들기에 족하다. 우선 지금의 시점에서 집권 측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북한의 말도 안 되는 야당 총재 매도 하나만을 다루는 것이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양비론을 말할 때가 아니다. 야당 총재에게 “지금은 미묘한 시기이니 가급적 북한을 자극하지는 말아달라”는 부탁을 할 필요가 있으면 그것은 다른 기회에 얼마든지 넌지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 하필이면 북한이 방약무인하고도 무례하게 남한의 야당 총재를 마구잡이로 때려잡듯이 욕설을 해댄 바로 그 시점에서 “이 총재, 당신도 사려깊게 처신해야…”라고 나무란다는 것은 도무지 집권 측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과 분별력을 갖췄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
  적어도 이 발언으로 미루어 보면 집권 측은 “북한한테 매도당하는 사람은 그에게도 ‘냉전적’ ‘사려 깊지 못함’이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오직 현 정부의 대북 자세에 군소리 없이, 토 달지 않고 전폭 만세만 불러주어야 ‘냉전적’이 아닌 사람이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나라는 전체주의·획일주의 국가가 아니다.

  · 「청와대 ‘말’ 아껴야」(7월 18일자)

  남북문제와 관련해 청와대나 정부 당국자들은 말을 아꼈으면 한다.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한 달여 동안 고위 당국자들의 ‘입’으로 인해 빚어진 갖가지 크고 작은 평지풍파와 그에 따른 사회적 혼선은 애초부터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권력 측이 조금만 더 신중하고 사려 깊게 대처해왔다면 “북한이 남한 차기정권의 대북정책 일관성을 걱정한다더라”는 대통령의 엊그제 발언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 같은 것도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이 발언은 청와대 관계자의 주장처럼 “대통령은 차기정권을 누가 맡을지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우려하고 있는 반응을 순수하게 전한 것일 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더라도 현직 대통령이 차기 정권이나 대선과 관련해 정치권에 민감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그것도 굳이 다른 나라 외무장관에게 말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를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북풍’이니 ‘총풍’이니 하며 북한카드를 국내정치에 교묘히 활용해 왔던 것이 우리의 지난날의 정치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논란들에 대해선 거의 자동적으로 예각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되어 있는 것이다.
  (···) 북측이 남쪽의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 총재를 ‘놈’으로 욕하며 ‘반통일, 반민족 역적’으로 매도해 야단이 났고,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수석이 양비론적 논평을 하면서 문제가 더 악화된 직후에 다시 대통령의 유사한 발언이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청와대 수석의 당초 발언도 알고 보니 그렇게 된 것이군… 하는 항간의 심증과 유추가 자연히 뒤따르게 마련인 것이다. ‘북한의 힘을 빌려 차기 정권도 민주당이 차지하겠다는 장기집권 음모’라는 한나라당 주장은 그런 상황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 「인공기, 그리고 ‘돌아가 달라’」(7월 22일자)

  “인공기 게양 사법처리 방침이 국내 TV에 보도되자 이를 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돌아가달라고 했다”는 황원탁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의 발언(황 수석은 나중에 ‘돌아가달라’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수정했다)은 몇 가지 점에서 분명한 정리가 필요하다. (·····)
  많은 한국 사람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김 대통령에게 ‘귀환해달라’고 했다는 발언에서 어떤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청와대 공보수석은 그 대목은 인공기게양 사건과 관련이 없고 공동선언 작성과정에서 마찰이 있어 그 때 나온 말이라고 해명했다. 어떤 문제로 그런 말을 했느냐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떤 불만과 이견이 있더라도 자신의 초청으로 방문한 남한의 대통령에게 “그만하고 내일 돌아가달라”고 했다는 것은 예의의 문제이다. 그것은 국제관계에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남쪽 국민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언사이다.

· 「‘당국자 회담’의 어긋나는 첫 단추」(7월 29일자)

  북한의 불성실한 태도와 우리 정부의 무원칙한 처신이 정상회담 이후 모처럼 조성되고 있는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당국자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는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우선 회담 대표들의 격이 맞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지난 24일 북에 장관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 명단을 통보했으면 북한은 회담의 정신을 살려 이에 상응한 대표단을 선정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통보한 명단에는 차관급인 전금진이 수석대표였으며, 대표단 속에는 우리와 달리 경제, 군사 책임자가 한 사람도 없다. 이번 당국자회담에서 우리가 ‘경제협력과 긴장완화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화, 교육, 조평통, 내각사무국 관계자들로 대표단을 구성했다.
  북한 당국은 회담 일자도 자기 멋대로 바꾸자고 했다. 우리 정부가 제의한 회담 일자에 대해 7월 29일로 수정제의한 쪽은 북한이며, 그랬으면 당연히 그 날짜를 지키는 것이 마땅한데도 아무런 설명 없이 하루가 늦어질지 모른다고 알려왔다. 결국 회담은 예정대로 열기로 했지만 회담 날짜를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국제관례에도 맞지 않는다. 지난 정상회담 때에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회담 일자를 하루 늦춘 것을 보면 그것이 북한의 습관인지 전략인지 알 수 없다.
  명단을 통보했다가 북으로부터 뜻밖의 명단이 통보돼 오자 당황해하는 당국자들의 모습은 보기에도 딱하다.

· 「김정일 발언, 파격과 혼란 사이」(8월 15일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한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에서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이산가족 문제, 관광 교류, 직항로 개설, 그의 서울 답방 등 남북관계는 물론 미사일, 미·북, 일·북 수교 등 외교 부문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걸쳐 그의 견해를 때로는 모호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우선 이산가족 문제의 경우, 그의 언급은 상당히 전향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관광 교류와 직항로가 남북 간에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심지어 북한 노동당 규약과 보안법 개정은 연계된 것이 아니며, 범민련이나 한총련이 남한 내에서 ‘투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동안 미국이 계속 경계해왔던 미사일 수출 문제에 대해서도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놨으며 미·북과 일·북 간의 수교에 대한 북한의 생각을 밝혔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번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약간의 혼란을 느끼며 따라서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전략적이고 계산된 이미지 개선의 일환인가에 대한 결론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그가 말하는 것이 남북관계 개선에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지엽적이고 모양새만 갖추는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산가족 문제의 경우 대단히 발전적이지만 우리가 그동안 주장해왔던 생사 확인, 서신 왕래, 고향 방문 등의 제도화와는 거리가 멀다. 김 위원장이 말하는 방식으로는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적일 뿐더러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소규모 관광단 교류도 남북관계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화려한 수사로 남북관계 개선에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긴장 완화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 자신 권력의 힘이 ‘군력(軍力)’에서 나온다고 함으로써 군의 위상을 계속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었다. 물론 신문사 사장단과의 오찬자리가 ‘공식적인 성격’이 약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발언 하나하나는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이번 오찬에서 그가 확실히 확인시켜 준 것은 북한이 철저히 그의 ‘1인 체제’ 하에 있으며 군주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것은 그의 ‘말’뿐이다. 그의 말은 노동당 규약처럼 달라진 것도 있고 교류에 관한 것처럼 진전된 것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말에 따른 행동이며 실질적인 인식의 전환이다.

조선일보의 「6·15 선언」헐뜯기는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한으로 돌아가기로 된 2000년 9월 2일 아침 조선일보에 나온 사설(「당신이 납치한 사람도 보내라」)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63명에 달하는 비전향 장기수들이 오늘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간다. 우리 정부가 ‘인도주의’라는 명분으로 북송을 결정한 후 여러 단체로부터 ‘애국적 인’ 환송을 받은 이들이 분단선을 넘으며 과연 남녘 땅에 눈길이나 한 번 줄 것인가. 북의 ‘체제 승리’를 만끽하며 ‘공화국 영웅’ 대접을 받을 기대에 만 부풀어 있을 것인가. 그들은 남쪽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그렇게 황망히 가겠지만, 그들에게 가려 피눈물을 뿌릴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절대로 지나칠 수 없다.
  “사람 납치했던 당신은 북으로 가는데 납치당한 사람은 왜 안돌려 보내?” 반인륜사범인 장기수 신광수를 향한 동거녀 박춘선 씨의 이 절규가 ‘화해’ 와 ‘상호 신뢰’로 포장된 북송의 실체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상호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북도 인도주의 정신으로 돌아가 납북가족의 이산의 아픔을 풀어 달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북송이 “남북의 적대적 구도를 완화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남한의 시민사회가 비전향 장기수들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고 민주주의의 유연성을 보여준 것이라는 진단도 들린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이같이 겉만 번지르르한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고 여기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비전향 장기수 63명은 빨치산으로 활동했거나 남파된 간첩들이다. 그 중에는 신광수 같은 납치범도 있고, 경찰 수십명을 학살한 살인범도 끼어 있다. 정부가 이런 범죄자들의 ‘자유의지’까지 존중해 북송을 결정했다면 지난 반세기 동안의 우리의 투쟁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허망함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의사에 반해 억류되고 있는 사람만은 되돌려 달라는 요구는 정말 최소한의 것이다.
  북한이 비전향 장기수 송환 문제를 끈질기게 요구해 온 것은 그것으로 북한 주민들을 사상적으로 결속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93년 북송된 이인모를 ‘신념과 의지의 화신’ ‘통일영웅’으로 추앙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튼다는 명분으로 그들을 ‘금의환향’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기(國基)를 뒤흔들고 반인륜 범죄를 저질러도 신념과 의지만 굽히지 않으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백보를 양보해 남은 인생이 가련해 비전향 장기수를 보낸다 치더라도 정부는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인권’도 인도주의 차원에서 마땅히 주장하고 관철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을 보여야 했다. “당신들이 납치한 사람들도 돌려보내”라는 피맺힌 절규를 북송자들의 등에 던지는 납북자 가족들의 통한을 우리 모두가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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