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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과 ‘6·15 선언’(1)조선일보 대해부 5권 - 5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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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1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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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진취적인 통일정책을 제시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국민의 정부가 표방한 ‘햇볕정책’은 북한을 상대로 다양한 협력과 지원을 함으로써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햇볕정책’은 서양의 이솝 우화에서 따온 말로, 북한에 계속 따가운 햇볕을 쏘이면 외투를 벗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대북포용정책’ 또는 ‘포용정책’이라고도 불린 ‘햇볕정책’의 공식 명칭은 ‘대북화해협력정책’이었다.

김대중은 일찍이 1970년 1월 야당인 신민당 대통령후보 자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나의 통일정책은 전쟁 지양(止揚)에서 적극적 평화 지향으로 가자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었다. 그 이후 그는 “남북의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이라는 3대 원칙을 바탕으로 공화국연합제로 가는 국가연합제를 시작으로 연방제 단계를 거쳐 통일로 가는 ‘3원칙 3단계 통일방식’을 정립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서해교전’ 빌미로 삼은 조선일보의 ‘햇볕정책’ 공격

전임 대통령 김영삼이 대북정책을 스무 번도 넘게 고치면서 갈팡질팡한 것과 달리 김대중은 임기 5년 내내 햇볕정책을 고수했다. 보수언론 가운데 조선일보는 햇볕정책을 가장 심하게 비판하면서 흠집을 내려고 기도했다.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1년 4개월이 채 못 되는 1999년 6월 8일 오후 북한 경비정 6척이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서쪽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들어오자 남북한 서로 무력시위를 벌이며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북한 경비정들은 7일 오전 꽃게잡이 어선 15척과 함께 북방한계선 부근에 나타났다가 남한 영해를 ‘침범’했다고 국방부가 발표했다.

  북한 경비정의 영해 침범 9일째인 15일 연평도 인근 서해상에서 남·북한 해군 함정 간 함포사격을 동원한 교전을 벌여 6척의 북한 함정들이 침몰하거나 큰 타격을 입고 북방한계선 북쪽으로 퇴각했다. (·····)
  합동참모본부는 NLL을 넘어 영해를 침범하는 북한 경비정과 어뢰정 등 10척의 함정을 우리 고속정들이 저지하는 과정에서 북한 경비정의 기관포 공격을 받고 즉각 응사, 북한 ‘신흥급(40t)’ 어뢰정 1척이 침몰하고 ‘상해급(150t)’ 경비정 1척이 반쯤 침몰돼 예인됐으며, 나머지 ‘대청급(420t)’ 등 경비정 4척도 크게 손상을 입고 퇴각했다고 발표했다. (·····)
  북측의 인명 피해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경비정과 어뢰정에 15~80명의 승조원이 탑승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우리 해군 측은 장병 7명이 부상했으며, 초계함 1척과 고속정 4척이 포탄에 맞거나 충돌 과정에서 손상을 입었으나 기동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참은 밝혔다(조선일보 6월 16일자 1면).

조선일보는 ‘서해교전’이 일어난 이튿날인 6월 16일자 2면에 두 건의 사설을 내보냈다. 첫 번째 사설은 「북한의 착각」이다.

북한 정권은 정말 구제불능인가. 지금 세계는 탈냉전과 더불어 국경 없는 경제전쟁에 몰입해 있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투쟁은 모든 다른 가치를 우선하고 있다. 그런 세계적 추세를 외면한 채 보잘 것 없는 낡은 어뢰정으로 세계를 향해 공포를 쏘아대는 북한의 정신 상태는 과연 어떤 것인가. 시대착오적인가 아니면 한편의 코미디인가.
  한국은 분명 북한에 대해 평화공존의 길을 제안했다. 우리는 북한도 경제와 생산성에 눈을 돌려 북쪽 주민을 기아로부터 구하는 자각과 각성으로 돌아설 것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국제적 미숙아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북한 당국은 그 총 몇 발에 한국이 공포에 떨고 우리의 안정이 흔들릴 것으로 생각했는가? 저들은 그렇게 하면 세계가 북한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한국에 대한 투자를 재고할 것으로 기대했는가? 저들은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면 그들을 무마하기 위한 대가가 지불될 것으로 믿고 있는가? 천만의 얘기다. 북한이 그럴수록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북한 자체일 뿐이다.
  한국 국민은 이제 북한의 불장난에 놀라지 않는다. 북한 당국이 아무리 무력시위를 해도 한국의 경제는 위축되지 않는다. 증권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재기 따위의 공포 분위기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저들은 혹시 한반도 냉전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북한 내부를 팽팽한 긴장 속에서 탄압의 방식으로 끌고 가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기에 북한 내부의 참상은 이제 그런 낡은 수단으로 독재하고 통제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총질로 얻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한국에 배신감을 심어줄 뿐이고, 미국에 실망을 가져다 줄 뿐이며,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 당혹감을 안겨줄 뿐이고, 세계로부터 트러블 메이커의 낙인이 찍힐 뿐이다. 우리는 북한이 이성을 찾기 바란다. 북한이 가야 할 길은 고립이 아니라 개방이며, 이념적 도그마가 아니라 화해와 협력이며, 무력이 아니라 공존이다. 총 몇 방으로 세계가 놀라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북한이 우리의 충고를 외면하고 수십년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면 한국민의 포용정신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사설 「정부는 똑바로 알아야」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북한의 연속적인 해상침범과 선제 무력 사용은 최근의 우리의 대북 인식과 대북정책을 보다 냉엄한 시각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우리 대북정책의 기조는 일종의 ‘이상주의적’ 가설에 기초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반도 불행의 근원은 냉전구조에 있고, 그 냉전구조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북한의 잘못뿐만 아니라 우리의 그간의 대북정책 탓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일방적인 ‘햇볕’을 꾸준히 펴나가기만 하면 북한도 결국은 개혁 개방 쪽으로 나와줄 것이라는 기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현 정부의 그런 가설이 대단히 취약한 희망사항임을 일단 드러냈다. 이번 북한의 소행은 한마디로 김정일 정권이 남쪽 현 정부의 ‘햇볕’ 구도 안으로 절대로 들어와주지 않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천명해보인 것이다. 김정일로서는 현 정부의 햇볕논리에 순순히 호응했다가는 50년 지탱해온 폐쇄적 독재체제의 이완을 자초하게 된다. 그러니 그런 위험천만한 ‘햇볕’에 그가 왜, 무슨 이유로 호응해주겠는가?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로서는 ‘햇볕’이 가진 또 다른 측면- 즉 “상호주의도 따지지 않겠다, 식량도 주겠다, 관광객들의 현금 달러도 주겠다, 비료도 주겠다…” 하는 남쪽의 일방적 시혜만은 그것대로 따먹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쪽의 정부는 혁명적 원칙상 계속 타도 대상으로 치겠지만, 남쪽 기업들의 돈과 남쪽 안의 대북 친화론만은 다다익선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런 식으로 임하는 이유는 꼭 한가지다. ‘햇볕’이 기대하는 긴장완화와 평화적 공존, 교류, 그리고 체제 개방과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은 북한식 ‘혁명독재’와 북한식 ‘폐쇄체제’라는 ‘독’에 대해 ‘해독제’ 구실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에 필요한 것은 그 존립을 위해서도 남쪽과의 투철한 ‘혁명적·이념적 적대관계’이지 그 수정이나 이완이 아니다. 북한 권력자들은 이미 변하고 싶어도 변하기 어려운 정도에 이르렀다고 할 수도 있겠고, 북한으로서는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믿을 것은 군대밖에 없고, 그런 죽기 살기 태세에 바탕해서 “우리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위협으로 오히려 클린턴과 남쪽을 향해 “너희들이 변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대북 인식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야 하겠다. 냉전구조 지속의 근본적 원인은 북한의 그런 본질적 속성에 있는 것이지, 우리가 그동안 현 정부식의 ‘햇볕’을 쓰지 않았던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서해교전이 남북한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라 안팎에서 나왔지만 6월 17일 남쪽 군 고위 관계자는 “군은 서해교전 이후 서해안 상황과 북한군의 동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작전부대 지휘관 회의를 일주일 연기해 24일로 예정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와 같이 개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한겨레 6월 18일자 1면).

김대중은 6월 17일 대전에서 지역 인사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단순히 화해와 협력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안보를 확고하게 하는 것임이 이번 일을 통해 입증됐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도발에는 단호한 자세를 취하되, 화해와 협력으로 나오면 우리 또한 화해의 길로 가겠다. 나는 7천만 전체 민족, 특히 4천5백만 남한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하겠다.”(한겨레 6월 18일자 1면).

서해교전이 일어나자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연합정부의 동반자인 자민련조차 햇볕정책을 비판한 데 대해 김대중은 그렇게 소신을 밝힌 것이었다. 그는 “햇볕정책이 안보를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으나 이번에 말끔히 씻어졌다”면서 “햇볕은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화해와 협력을 통해 남북이 공존하자는 것이므로 양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김대중은 “이번 사태를 볼 때 과거와 달리 사재기도 없었고 주식은 오히려 올랐다”며 “국민의 높은 성숙도도 있지만 국군에 대한 신뢰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과거 대북정책은 한미 간 이견도 마찰도 있었지만 국민의 정부는 그게 없다. 안보를 바탕으로 화해와 협력을 하자는 햇볕정책은 미국과 일본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해교전에 대한 김대중의 이런 설명과 햇볕정책의 당위성에 대한 주장은 조선일보가 6월 16일자에 내보낸 두 건의 사설에 대한 반론으로서 충분한 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햇볕정책은 노(老) 정치인의 고집’

조선일보 6월 19일자 7면 <김대중 칼럼>에는 「‘햇볕’과 ‘햇볕만’의 차이」라는 글이 실렸다.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이 대통령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나라의 분위기가 왜 이 모양으로 돌아가나.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또 다른 도발을 해올 것이 뻔한 긴장된 상황에서 우리 지도층은 “햇볕을 더 쪼여야 한다” “중단해야 한다”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고 여·야는 서해안 사태가 ‘신북풍’의 소산이다, 아니다로 서로 삿대질이나 하고 있다.
  지금의 햇볕논쟁은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당위성에서 한발도 물러날 기색이 없다. 그는 오히려 거의 매일이다시피 햇볕론을 역설하고 다닌다. 보기에 따라서는 정책 자체의 유효성보다는 자신의 일관성과 정당화에 더 집착하는 것 같은 인상마저 주고 있다. 노 정치인의 고집 같은 것이다. 이에 맞서 야당은 햇볕정책 재고를 정치적 쟁점으로 들고 나와 정부를 맹공하고 있다. 여기에도 역시 햇볕정책 자체의 무효용성보다는 DJ 정부의 기를 꺾겠다는 정치성의 요소가 엿보인다.
  서해의 남북교전 사태는 DJ의 햇볕정책에 큰 상처를 입혔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비료 주고 식량 주고 돈 준 대가가 그래 총탄이냐는 물음을 던지며 분개하고 있다. 그래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용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남북한의 평화공존과 화해 협력을 마다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보수층들도 햇볕정책의 필요성을 전면 부인하지 않는다. 북한의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단 하나의 대답’은 어렵고, 대안이란 것도 마땅치 않다. 다만 보수세력이 반대하는 것은 ‘햇볕만의 정책’이다. 몇 여론조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듯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햇볕과 바람의 병행이며 채찍과 당근의 공존이다. (·····)
  ‘햇볕’을 놓고 대통령과 야당이 매일 장군 멍군 식으로 치고받는 장면은 정말 유쾌하지도 않고 어른스럽지도 못하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대통령이 굳이 그 말을 안 해도 괜찮은 상황에서 모든 것을 매번 ‘햇볕’으로 연결시키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들과 만난 뒤 기자회견을 가질 때마다 첫 마디가 ‘햇볕 지지’로 시작되는 것은 민망스럽다. 햇볕론의 논점들은 이제 드러날 대로 다 드러났다. 햇볕론자도 그 반대론자도 알 것은 다 알고 할 말은 다했다. 이제는 이런 바탕 위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종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 큰 몫은 대통령의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김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유연성 있게 잘 추진해 나가리라고 믿는다. 다만 그것에 유달리 집착하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만은 피해주기 바란다. 햇볕논쟁이 지도층의 자존심 싸움 같은 것으로 변질돼서야 되겠는가.

주필 김대중은 이 칼럼에서 대통령 김대중이 “햇볕정책의 당위성에서 한발도 물러날 기색이 없다. 그는 오히려 거의 매일이다시피 햇볕론을 역설하고 다닌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대통령 김대중은 6월 17일 대전에서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단순히 화해와 협력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안보를 확고하게 하는 것임이 이번 일(서해교전)을 통해 입증됐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도발에는 단호한 자세를 취하되, 화해와 협력으로 나오면 우리 또한 화해의 길로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는 1999년 8월호 「편집장의 편지」에서 김대중을 극렬하게 비난했다.

  ‘세계의 인권지도자’라는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하여 한 번도 구체적인 언급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프리카도 아니고 남태평양도 아니고  바로 지척의 거리에서 살고 있는 동포 300만을 굶겨 죽인 김정일에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무슨 논리로 설명이 가능할까요. ‘인권을 좋아하는’ 선진국 지도자들은 그런 김 대통령을 속으로 어떻게 생각할까요.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대북 약속(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있다)과 요사이 거론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개정을 통한 ‘북한정권=반국가단체’ 공식의 폐기 움직임은 소위 햇볕정책이 지향하는 종착역에 대해 의구심마저 갖게 합니다. (···)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지 않겠다는 태도는 북한을 사실상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것으로서 우리 민족의 자랑인 ‘1민족 1국가’의 전통을 스스로 폐기하는 반민족적·반역사적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인민을 먹여 살리는 국가로서의 의무를 포기한 집단에게 ‘국가’란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은 반민주적·반도덕적 행위이기도 할 것입니다.

조갑제는 이 글에서 ‘북한정권은 반국가단체’라는 공식을 폐기하려고 김대중 정권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지 않겠다는 것은 북한을 사실상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조갑제가 명확히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 1991년 9월 18일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이 별개의 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하던 때 남측 수석대표인 외무부장관 이상옥과 북측 수석대표인 외교부 부부장 강석주는 ‘가입 수락 연설’을 하고 나서 유엔본부 광장 앞에서 함께 태극기와 인공기 게양식을 가졌다. 그리고 대통령 노태우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군사적 신뢰 구축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 군축, 사람과 물자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라는 ‘3 원칙’을 밝혔다. 그런 일련의 움직임은 남한이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국제적 선언이었던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남북은 냉엄한 비즈니스다’

서해교전이 일어난 지 꼭 한 해 만인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1948년 남에 대한정부, 북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남과 북의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라서 나라 안팎에서 평양으로 눈길이 쏠리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정상회담을 닷새 앞둔 6월 8일자 2면에 「‘남북’은 냉엄한 비즈니스다」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게끔 온 국민이 최대한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문제는 정부와 국민이 이 역사적인 사태를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 하는 기본적인 물음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남과 북을 대뜸 한 데 섞자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신뢰 위에서 공존·교류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각자의 정체성, 차별성, 고유성, 제 정신만은 확고히 견지하면서 상대방과는 평화롭게 잘 지내자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것은 대단히 우수하고도 정교한 두뇌력을 필요로 한다. 상대방을 적대시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너무 빠져버리지도 않는 적절한 자세. 우리에게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남북 정상회담이 앞으로 길이 성공적인 열매를 맺기 위해서도 이러한 자질과 능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북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벤트도 아니고, 연극 한마당도 아니고, 잔치나 놀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치밀한 전략적 사고와 행위만이 풀어낼 수 있는 고차 방정식이요 비즈니스다. 그러므로 감성 과잉이나 정서 과잉은 금물이다. 그것을 마치 록 페스티벌쯤으로 대하거나 ‘한바탕의 축제’ 쯤으로 여기는 것도 일을 그르치는 요인이다.
  이런 요청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이미 정상회담을 자칫 정서 과잉의 자세에서 바라보고 접근하는 듯한 징후를 드러내고 있어 걱정이다. 예컨대 7일치 조선일보 기사를 보자. 「북한이 뜨고 있다」라는 제목 아래 기사는 이렇게 나와 있다. “(…) 백화점들은 경쟁적으로 북한상품전을 열고 있다. (…)  어떤 회사는 김정일 닮은 사람을 모집하고 (…) 판매원에게는 북한 한복을 입히고 (…) 김정일 모습을 캐릭터화한 머그잔….”
  우리 한국인들은 남에 비해 흥분하고 들뜨는 습성이 좀 심하다. ‘남북’은 이제 겨우 걸음마는커녕 길듯 말 듯한 단계다. 그런데 벌써부터 시집장가나 가는 듯한 분위기와 상징 조작이 정상회담을 비즈니스 아닌 ‘축제’로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정말 아무도 못 말리는 사람들인가? 나사가 풀리듯, 최면에 걸리듯, 당장 천지개벽이라도 있을 듯이 제 정신을 잃다가는 모처럼 의 좋은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이 사설은 남북 문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 곧 ‘비즈니스’처럼 ‘치밀한 전략적 사고와 행위’로 풀어야 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 역대 정권이 ‘비즈니스’처럼 남북 문제를 다루었다면 통일의 길로 성큼 다가설 수 있었으리는 뜻인가?

6월 14일 오후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백화원 영빈관에서 단독 2차 회담을 갖고 5개항의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동선언은 또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이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남북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이날 오후 3시부터 한 차례 휴식을 취해가며 오후 6시 50분까지 마라톤 회담을 한 끝에 이같이 합의했으며, 김 대통령 주최의 만찬을 끝내고 밤 11시 20분에 역사적인 공동선언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날 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남과 북은 7·4 공동성명과 남북 기본합의서 등 이미 많은 합의를 이뤘으나 이제는 이를 실천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양측 간에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 화해·협력을 위한 모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특히 “북측도 통일을 위한 화해와 협력에 적극 나서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일본과 관계 개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 등 협력을 강조했다(조선일보 6월 16일자 1면).

「남북공동선언」에 담긴 ‘5개 합의사항’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하였다.
  3)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4)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5)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 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6·15 공동선언」은 남쪽의 입장에서는 햇볕정책의 결실이고, 북쪽이 보기에는 대결과 갈등의 시대에서 평화 공존의 시대로 가자는 약속이었을 것이다.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에서, 그 선언은 평화통일을 위해 단계적으로 나가는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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