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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1주년과 ‘옷 로비 사건’조선일보 대해부 5권 -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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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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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언론정책을 새로 결정하고 집행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한 일은 홍보처를 신설한 것이었다. 종전에는 문화부가 홍보업무를 맡으면서 음성적으로 언론을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 정부는 그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문화부의 홍보업무를 홍보처로 넘겼다. 두 번째는 방송제도 개혁이었다. 1998년 말 대통령 직속으로 방송위원회를 설치하면서 문화부가 맡고 있던 방송행정 업무를 방송위원회로 이관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1주년을 사흘 앞둔 1999년 2월 22일 참여연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등 6개 단체는 ‘김대중 정권 1년과 한국 사회의 진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는 정부의 분야별 정책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실업률이 치솟고 물가가 올랐으며 불황이 심해졌기 때문에 정부의 경제 운영은 평균 점수 이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비판과는 달리, 여당인 국민회의 정책위원회가 펴낸 <국민의 정부 1년 평가보고서>는 긍정적인 면들을 주로 강조했다.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 직후 39억4,000만 달러이던 외환보유고가 1998년 1월 25일 현재 490억 달러로 늘어나서 외환위기를 벗어났다는 것이 가장 큰 ‘업적’이라는 것이었다. 그 보고서는 규제 개혁을 획기적으로 추진하고, 대북 포용정책(‘햇볕정책’)의 지지기반을 확보했으며, 실사구시의 정상외교로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한편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 정부는 한국 사회를 전반적으로 개혁하는 작업을 과감히 추진하기에는 아주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DJP 연합의 ‘내부 협약’에 따라 국무총리와 중요한 각료 여러 자리를 보수적인 자민련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종필, 박태준, 이한동으로 이어지는 국민의 정부 총리들은 원래 한나라당 출신으로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대통령 김대중을 비롯해서 정권의 핵심을 이루는 국민회의 정치인들은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대표하는 보수언론에 맞서 싸우거나 오염된 언론 풍토를 혁신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초기부터 언론 주무부서 책임자들은 조선·중앙·동아일보사 사주나 편집국장, 방송사 보도국장은 물론이고 일선 기자들을 초청해서 술자리를 갖거나 ‘친목’를 도모하는 것을 일상적 업무로 삼다시피 했다.

나중에 드러났듯이 김대중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보수언론을 상대로 벌인 ‘유화 또는 친목 작전’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옷 로비 사건’ 터지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3개월 만인 1999년 5월 25일 보수언론의 촉수에 김대중 정권을 공격하기에 딱 좋은 소재가 걸려들었다. 김대중은 5월 24일 제2기 내각을 구성하면서 검찰총장 김태정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했는데, 바로 그 이튿날 정권을 위기에 빠뜨리게 된 ‘옷 로비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조선일보 5월 26일자 1면에 그 내용이 크게 보도되었다.

“장관 부인들이 옷 사달라 요구” /  최순영 회장 부인 주장 / 청와대 “조사 결과 사실무근”

  외화 해외도피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순영 대한생명 회장의 부인 이형자(54) 씨가 “장관 부인들이 지난해 연말 수천만 원 어치의 옷을 산 뒤 나에게 대금 결제를 요구했다”고 주장,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앞서 이형자 씨는 남편의 구속을 막기 위해 실세 장관 부인들에게 수억원대의 옷을 선물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청와대로부터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는 25일 본지 기자를 만나 “내가 남편의 구속을 막기 위해 실세 장관 부인들에게 억대의 옷을 사줬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지난해 12월 말쯤 A 전 장관 부인이 여러 차례 ‘B 장관급 부인과 함께 옷을 샀다, 옷값을 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청와대 사직동팀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내가 요구한 A 전 장관 부인과의 대질신문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직동 조사팀이 고급 여성의류 매장 ‘앙드레 김’과 ‘라스포사’를 조사했으나, 수천만 원짜리 옷을 터무니없이 깎아 계산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사정 관계자는 “장관 부인들을 대질 신문하고, 옷집을 압수수색했다”며 “최순영 씨 부인이 옷을 사주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지난 2월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수사를 종결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당시 A 전 장관 부인이 각혈을 해 이 씨와 대질신문을 하지 않았지만, 확인할 내용은 다 확인했다”며 “이 씨 주장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A 전 장관 부인은 전화통화에서 “이 씨가 그런 발언을 한 이유를 모르겠다. 이 씨와 대질신문을 시켜달라”며 “나는 절대로 옷값을 내달라는 연락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B 전 장관급 부인은 “이씨와 A 전 장관 부인, 라스포사 사장 사이에 무슨 일이 오갔는지 모르지만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짜 신문 31면에 나온 기사에 ‘옷 로비’의 내용을 밝혔다.

최순영 회장 부인·장관 부인 주장 엇갈려 / “옷값 수천만원 대납 독촉” “남편 구속되자 사실 날조”

  최순영 대한생명 회장의 부인 이형자(54) 씨는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횃불선교원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억대 옷 로비’ 의혹에 대해 “장관 부인들한테 오히려 우리가 당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동생 영기(여·할렐루야 축구단장) 씨와 함께 나와 그간의 경과를 정리한 A4 용지 4장 분량의 서류도 내놓았다. (·····)
  이 씨는 “작년 말 A 전 장관 부인이 여러 차례 ‘장관 부인들과 수천만원어치 옷을 샀다’며 돈을 내달라고 했으나 거절했다”며 “나는 선교 쪽 일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뇌물을 달라는 요구에 응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작년 12월 말쯤 A 전 장관 부인이 ‘B 장관급 부인과 함께 앙드레 김 등에서 2400만원 상당의 옷을 구입했으니 알고 있으라’고 해 돈을 갚아주려고 생각했으나, 다음날 또 수천만원을 대신 내달라고 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선교원을 찾아온 A 전 장관 부인에게 “어제 2400만원 어치를 사놓고 또 수천만원 어치를 사면 어떻게 하느냐”며 언성을 높여 항의했다고 말했다.

‘옷 로비 사건’의 발단은 2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월 12일 신동아그룹 회장 최순영이 외화 밀반출 혐의로 구속되자 그의 부인 이형자가 남편 구명(求命)을 위해 고위 공직자 부인들에게 고급 옷으로 로비를 했다는 소문이 정치권과 언론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대통령 김대중의 부인 이희호까지 ‘고위 공직자 부인들’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자 청와대 특별수사기구인 ‘사직동팀’이 내사에 들어갔던 것이다.


조선일보, ‘옷 로비’ 의혹 관련 기사 하루에 무려 11건

조선일보는 5월 27일자 2면에 「장관 부인 로비설 진상 규명」을 이라는 사설을 올렸다.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 이형자 씨가 장관 부인들에게 막대한 액수의 옷 선물을 했다는 설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지금으로서는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러나 그 풍설이 전혀 근거 없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해지고 있다. 청와대 사정당국은 “내사 결과 사실무근인 것으로 밝혀져 지난 2월 조사를 종결지었다”고 해명했다지만 ‘로비’의 흔적은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당사자인 최 회장 부인 이 씨가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고 나섬에 따라 ‘사실무근’ 운운의 청와대 해명은 오히려 의혹만을 더욱 부풀리고 있는 양상이다.
  따라서 사정당국은 정식으로 진상조사에 나서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접하며 특히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과거 정권과의 차별화를 강조해온 현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개혁의 주체라고 자임하는 장관급 공직자들의 사생활 영역이 불미스러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하 직원과 국민들에게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 살리기에 나서자는 구호와 함께 사정과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면서 자신과 부인들은 딴 세상 사람처럼 고급 의상실에 드나드는 등으로 처신했다면 이는 집권층 자체의 도덕성을 뒤흔들 일이다.
  우선 사정당국이 밝혀야 할 부분은 이형자 씨 주장의 진위 여부다. 이 씨는 자신이 장관 부인들에게 로비용으로 고가의 옷 선물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장관 부인들이 모 전 장관 부인을 통해 수천만원대의 옷값을 내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이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장관 부인들이 문제의 고급 의상실에 단골로 드나들었으며 또 옷도 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씨가 구체적인 액수까지 들먹이는 수천만원의 출처가 어디인지 사정당국은 당연히 조사했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정당국은 “이 씨가 고급 의상실에서 장관급 부인들을 상대로 로비를 펼쳤지만 부인들이 고급 옷 등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조사를 끝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해명은 그러나 로비 당사자인 이 씨의 주장과 정반대되는 것이어서 설득력이 약하다. 이러한 모든 의문점들을 내사가 아닌 공개조사 또는 수사로 명백하게 규명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 하다가는 엄청난 상황이 닥칠 것임을 집권 측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이 실린 5월 27일자 신문에 ‘옷 로비’ 의혹에 관한 기사(시론 포함)를 무려 11건이나 내보냈다. 제목들만 보아도 조선일보가 이 의혹을 얼마나 요란하게 보도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 「여야 ‘옷 뇌물’ 의혹 공방 / 청와대는 은폐 말라 / 야 “근거 없는 날조” 주장」「김태정 법무 “우리 부부 무관” / 최 회장 부인에 법적 대응 검토」(1면)
  · 「“공직자 부인 몸가짐 조심을” / 김 대통령 장차관급 임명장 줄 때 ‘옷 로비’ 언급」(2면)
  · 「최순영 회장 부인 ‘장관 부인 로비설’ 의혹 / 옷 사달라 졸랐나 사주려 했나 / 사직동팀 ‘로비’만 조사해」「라스포사 정장 투피스 80만~90만원 ‘중고가’」「“거액 대납 요구 거절했다”-최 회장 부인 이형자 씨 / “두 벌 대금 직접 지불”- 김태정 법무장관 부인 연정희 씨 / “옷값 요구한 적 없어”-강인덕 전 통일 부인 배정숙 씨」「최순영 씨 재산 도피 사건 후 ‘옷 로비설’ 나돌아 / 청와대 내사에 장관 부부싸움」(3면)
  · 「야 의원 50여 명 청와대 앞 시위 / ‘옷 뇌물’ ‘50억 선거’ 규탄」「박주선 법무비서관 해명 / “이 씨가 밍크코트 산 건 사실 / 선물 않고 계속 보관”」「양재택 공보관 해명 / “김 법무 부인에 의문의 옷 배달 내막 아는 강 전 장관 부인 조사 불응”」(4면)
  · 시론: 「장관과 사모님 / 장관 부인으로 튄 ‘최 리스트’ / 나라 흥망 뒤엔 아내 역할도」(6면)

‘옷 로비’가 의혹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시점에 조선일보가 이렇게 기사로 융단폭격을 가하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은 의혹을 진실로 믿게 될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국민들은 정신적 폐허 상태’

조선일보는 5월 28일자 2면 사설(「김태정 장관 어떻게 풀 것인가」)에서 국민의 정부가 ‘옷 로비 사건’의 진상을 호도하기에 급급하다고 호되게 비판했다.

  국민들은 지금 망연자실해 있다. 장관 부인들의 이른바 ‘고가 옷 로비설’ 의혹은 환란(換亂)의 터널을 간신히 빠져나오기까지 우리의 권력층이 뒷전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정의와 도덕과 개혁을 앞세운 ‘국민의 정부’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사태의 진상을 조속히, 그리고 완벽히 밝혀야만 한다. 사법당국이나 국민회의가 지금처럼 진상 호도에만 급급해하는 식이거나, 문제를 유언비어 수준으로 몰고 가려 해봐야 그럴수록 이 정부의 도덕성만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뿐이다. 다수 국민들을 거의 정신적 폐허 상태로 내몰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도, 정부는 “청와대 사직동팀의 조사 결과 사실무근”이라는 대통령의 한마디로만 버티고 있다. 이제는 마땅히 검찰이 나서야 하며, 그래서 민심을 납득시켜야 할 벼랑 끝 상황이다.
  문제는 검찰총장을 지휘하는 김태정 신임 법무장관의 부인이 이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딜레마에 있다. 그러나 직속 상관 부인의 입장까지 법무부 대변인이 나서서 언론에 해명하고 있는 마당에 그런 검찰의 수사가 온전히 진행되리라고 믿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웃을 일이다. 해답은 자명하다. 바로 이럴 때 쓰자고 현 정권이 야당시절 그토록 만들자고 했던 ‘특별검사 제도’가 불발돼 있는 현실인 이상, 문제는 김 장관 스스로 푸는 길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의 ‘국민의 정부’와 이 시대를 위해, 그리고 사법개혁의 과업을 다하기 위해 장관자리를 맡은 김 장관으로서, 이 정부가 출범 이래 초유의 위기로 치달리는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의 자리 하나에만 연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 장관은 그러잖아도 검찰총장 재임 시절 탄핵소추의 위기에 몰리는 등으로 야당 측 해임 공세의 표적이 되고 있는 등 대통령과 정부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부터 그가 과연 어떤 처신을 해나갈 것인가를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다. 국민회의 측도 사태 해결의 첩경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의 살을 깎는 자세로 숙고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음해 문화의 탓’이라거나, “야당 의원 부인들도 그 옷가게에 갔다더라”는 등 맞불공세에 매달린다든지, “대통령이 외유 중이니 정쟁을 하지 말자”는 등의 궁색한 모습으로 사태를 덮을 수는 없다. 지금 국민들의 심경을 헤아리지 않으면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


김대중의 안이한 대처와 조선일보의 맹공

5월 28일 법무부장관 김태정의 부인 연정희가 ‘옷 뇌물 의혹’과 관련해 최순영의 부인 이형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자 서울지검은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28일 ‘옷 뇌물 의혹’ 사건과 관련, 김태정 법무장관의 부인 연정희(51) 씨가 최순영 대한생명 회장의 부인 이형자(55)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함에 따라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날 밤 연 씨와 이 씨를 각각 소환해 조사를 벌였으며,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부인 배정숙(62) 씨, 라스포사 여사장 정리정(본명 정일순·54) 씨 부부 등에게도 출두하도록 통보했다. 배 씨는 29일 중 출두하겠다는 뜻을 통보했다. 그러나 정씨 부부는 소환에 불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 씨는 고소장에서 “앙드레 김이나 라스포사 등에서 수천만원대의 고급의류나 밍크코트 등을 구입한 사실이 없으며, 배정숙 씨를 통해 이형자 씨에게 대금을 지불하도록 요구한 적도 없는데, 이 씨가 마치 내가 옷을 산 뒤 옷값을 대신 내라고 요구한 것처럼 주장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조선일보 5월 29일자 1면).

러시아와 몽골 방문을 마치고 6월 1일 귀국한 대통령 김대중은 ‘옷 로비 의혹’에 대해 안이하게 대처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서울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에 대해서 먼저 정권 지도층의 가족 때문에 심려를 끼친 데 대해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뒤 “이 문제를 투명하게 유리 속을 들여다 보듯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다음 발언이 보수언론의 먹잇감이 되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잘못이 있다면 (김 법무장관이) 책임져야 할 것이나, 잘못이 없는데도 마녀사냥 식으로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조선일보 6월 2일자 1면).

조선일보는 6월 2일자 2면 사설(「위기 직시할 능력 있나」)을 통해 김대중과 국민의 정부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고액 옷 뇌물’ 사건은 이제 단순한 스캔들 차원을 넘었다. 김태정 법무장관의 퇴진을 놓고 머뭇거리며 체면싸움을 한다면 그것은 정권의 총체적 위기로 확산될 위험을 안고 있다. 위기의 발단은 권력층 사생활 영역의 그렇고 그런 풍속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 전개과정은 ‘민주·정의·개혁·도덕성’을 내건 현 정권도 알고 보니 과거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인식을 국민정서에 광범위하게 심어놓았다. 고관 부인들의 ‘노는 모습’이며, 그들의 치부를 ‘내사’라는 이름으로 덮는 데만 급급했던 청와대 사정 당국자의 거짓말, 실체적 진실 규명보다는 ‘우리 장관님’과 장관 사모님 보호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검찰, 그리고 무슨 잘못이 있는지 봐야겠다며 문제의 장본인을 감싸고 도는 집권 측의 태도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이 정권의 위기는 바로 현 정권이 내건 ‘구시대 권력 행태와의 차별성’ 주장이 결국 위선이었으며 표리부동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에 있다. 지난번 유종근 전북지사 집 도난 사건과 최근의 개각 스타일, 그리고 재보선 과정의 막대한 돈 냄새에서 이미 현 정권의 문제점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번 ‘옷 뇌물’ 사건과 그것을 다루는 권력 측의 자세는 그러한 도덕적인 흠을 한 편의 코미디 속에서 극대화한 셈이다. 현 정부가 만약 이 위기를 진짜 위기로서 인식하지 못하고 진상 호도와 당사자 비호로 넘기려 할 경우 그것은 엄청난 폭발력을 동반하는 자해 행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진실로 개혁적인 세력임을 자임한다면 집권 측은 어설픈 미봉책이나 오기 부리는 식의 버티기로 임할 것이 아니라 썩은 부분, 그릇된 부분을 과감히 잘라내는 자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 정권의 전철을 그렇게 잘 보아왔을 현 집권 측이 야당 때의 다짐과는 달리 또다시 우매한 권력 행태를 답습한다면 그것은 집권 측의 불행일 뿐이다.

이 사설은 종전에 쓰던 ‘옷 로비’라는 말을 아예 ‘옷 뇌물’로 바꿈으로써 ‘의혹’을 ‘진실’로 인식시키려 하고 있다. 아직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셈이다.


‘옷 로비’ 청문회와 특검

‘옷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 특수2부는 6월 2일 “이형자 씨가 ‘남편 구명’을 위해 전 통일부장관 부인 배정숙 씨에게 접근했고 배 씨는 당시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 씨를 통해 선처를 부탁하려 했으나 실제로 하지 못했으며, 이와 관련해 연 씨에게 옷을 사준 일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한겨레 6월 3일자 1면). ‘옷 로비’가 실제로는 없었다는 것이 검찰 수사 결과 발표의 요지였다.

조선일보는 검찰이 ‘옷 로비’ 의혹에 관한 수사결과를 발표한 이튿날인 6월 4일자 사설(「‘기득권세력’ 탓으로 돌리다니」)에서 검찰 수사결과에는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이 사건에 관한 김대중의 문제의식을 비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옷 로비 의혹’ 사건이 확대된 ‘사회심리학적 배경’의 하나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 정부의 개혁에 불만을 품은 기득권 세력이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김 대통령의 이 같은 문제의식이 과연 적실한가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그 일이 그처럼 확대된 것은 고관부인들의 천박한 행태 자체가 안고 있는 내재적인 폭발성과 부도덕성 때문이지 결코 다른 사람들의 탓이 아니다. 고관 부인들의 웃기는 처신들만 없었더라면 그 누구도 ‘공격’ 운운을 할 건더기가 없었을 것이며, 그런 일을 보고도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회는 죽은 사회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이번 일을 ‘공격’해댄 사람들을 한 묶음으로 “현 정부의 개혁에 불만을 품은 기득권 세력”으로 간주한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로는 ‘옷 로비 의혹’을 ‘공격’하고 나온 것은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다. 거기에는 ‘개혁’도 ‘반개혁’도 있을 수 없다. 논리적으로도, 현 정부의 잘못한 점을 ‘공격’한다고 ‘기득권 세력’이 되는 것이라면 그런 분류법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식이라면 이번 일을 ‘공격’하고 있는 50여개 시민단체들도 하루아침에 반개혁적 ‘기득권 세력’으로 낙인찍히는 셈이다.
  이른바 ‘기득권 세력’이라는 말도 쉽게 쓸 말이 아니다. 집권하면 과거의 야당도 ‘기득권 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현 정부도 집권한 이후 권력기관을 휘어잡고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모조리 겁주고 눈치 보게 만들었다면 그 이상 더 막강한 ‘기득권 세력’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거리로 내몰린 실직자들이 호피 무늬 밍크코트를 ‘걸쳐봤다’는 현 정부 고관 부인들을 과연 어떤 세력으로 치부할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난 5월 20일자 한 일간신문은 “국민회의는 정권 교체 후 292억원을 모금, 6억6000여만원인 한나라당에 비해 50여배를 거뒀다”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현 집권층도 이미 신판 ‘기득권 세력’이 된 게 아니고 무엇인가? 김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이 따라서 ‘옷 로비 의혹’ 시비를 단지 ‘기득권 세력’의 저항 정도로 낙인찍으려 할 경우 그것은 수많은 정당한 비판자들과 국민을 더욱 분개하게 만드는 결과만 자초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일보가 ‘옷 로비’ 의혹의 실상을 밝히라고 요구하기보다는 김대중 정권의 핵심부가 ‘기득권세력’이 되어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공격함으로써 김대중 자신은 물론이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정부도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옷 로비’ 의혹을 끈질기게 정치적 논란으로 몰고 가는 가운데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국회 법사위에서 그 사건에 관한 청문회가 열렸다.

사건의 당사자들로 거론된 인물들이 출석한 가운데 23일 열린 첫 번째 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의원 안상수는 “라스포사 정일순 사장이 ‘이 옷들이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느냐”고 배정숙에게 물었다. 배정숙은 “그런 적이 있다”며 “(이희호 여사가) 러시아 방문 때 입은 옷도 같은 디자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국민회의 의원 한영애는 “청와대에 선이 닿아 있다면 왜 배 씨에게 로비했겠느냐”면서 “이 여사가 남대문시장을 이용하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반박했다.

사흘 동안 열린 청문회는 결국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를 가려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조선일보는 청문회 마지막 날인 8월 25일자 2면에 실은 사설(「어느 ‘귀부인’들의 하루」)을 통해 국민의 정부 고위층 부인들의 사치스런 행태를 마음껏 조롱했다.

  98년 12월 16일. 장관급 인사 부인들 몇이 커피숍에서 만나 한담을 나누다가 청와대 옆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검찰총장 부인이 입은 수박색 옷이 화제에 올랐다. 어느 장관 부인이 “어디서 샀느냐. 얼마냐”고 물었다. 총장 부인은 앙드레 김 의상실에서 세일할 때 샀다고 했다. 점심을 마치자 이들은 그 의상실로 몰려갔다. 내친 김에 나나 부티크에도 들렀다. 거기서 총장 부인은 1000만원 짜리 니트코트를 샀다. 쇼핑을 마친 이들은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해, 누군가가 마련해온 티켓으로 나훈아 쇼를 관람했다.
  요즘 국회 ‘옷 로비 사건’ 청문회 증언에서 드러난 ‘고관 부인들의 하루’에 시민들은 분노하다 못해 고소를 감추지 못했다. 물론 장관 부인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또 이날의 부인들이라고 매일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1주일 사이에 3번이나 라스포사 등 고급의상실에 몰려가 쇼핑을 했다. 그 과정에서 누구는 2400만원 어치 옷을 사고 ‘누군가는’ 재벌 부인에게 옷값을 대납하도록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IMF 한파로 유난히 추웠던 작년 12월, 서울 강남의 번화가와 강북을 오가며 벌인 고위 공직자 부인들의 행태는 통속극을 방불케 한다. 어느 하루의 영상이지만 거기에는 우리 사회의 좋지 못한 속성들이 응축돼 있다. 수다 떨기, 떼로 몰려다니기, ‘폼’ 내기, 고급쇼핑…. 그러다가 ‘로비와 뇌물’ 의혹으로 번진 게 옷 사건의 요체다. 그 이면을 들춰보면 자선을 앞세운 울타리(모임)가 쳐 있었고, 남편 권세에 따른 보이지 않는 ‘권위·아첨’의 통속질서가 깔려있다. 이런 상류세계에 장사꾼과 스폰서가 얽히다보니 상궤를 뛰어 넘는 의혹이 생긴 것이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옷 로비’ 의혹의 진상을 밝히지 못하자 10월 19일 그 사건에 관한 특검이 구성되었다. 특별검사 최병모는 12월 20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12월 21일자 4면에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특검팀이 밝힌 새 사실 / 로비 안 먹히자 ‘김태정 씨 낙마’로 방향 전환

  “옷 로비 사건은 ‘포기한 로비’ 사건이고, 사직동팀과 검찰 등 국가기관이 개입하면서 축소·조작·거짓말 잔치로 변질됐다.”
  옷 로비 특검팀이 20일 내린 수사 결론은 지난 2월의 사직동팀 내사 결론과 6월의 검찰 수사 결과를 뒤엎은 것이다. 사직동팀은 ‘이형자 씨의 자작극’이라고 했고, 검찰은 ‘실패한 로비’라 했다. 그러나 특검팀은 ‘포기한 로비’로 규정했다. 이형자 씨가 아무런 근거 없이 자작극을 벌인 것도 아니고, 배정숙 씨의 사기극(변호사법 위반)으로 중도에 실패한 로비도 아니라는 것이다.
  특검팀은 이형자 씨가 작년 10월부터 12월 17일까지 남편인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과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 씨 등을 상대로 로비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씨는 12월 17일 연 씨가 앙드레 김에서 박시언 전 신동아그룹 부회장 부인에게 “최 전 회장이 곧 구속될 것”이라고 한 말을 전해 듣고 로비를 포기한 뒤 김 총장을 낙마시키는 방향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연 씨는 이형자 씨의 사돈인 조복희 씨와 배정숙 씨에 이어 세 번째로 수사기밀을 누설한 셈”이라고 말했다.
  특검팀은 연 씨가 12월 19일 라스포사에서 호피무늬 반코트를 ‘외상 구입’(사직동 내사)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배달된 것’(검찰 수사결과)이 아니라, “정일순 씨나 배정숙 씨 중 누군가가 대납할 것으로 생각하고, (공짜로 얻을 요량으로) 그냥 가져갔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연 씨는 이형자 씨가 최순영 회장의 선처를 바라며 대납할 것이란 사실은 몰랐다”고 밝혔다. (·····)
  특검팀은 사직동팀과 검찰이 사건에 개입하면서 축소·조작 사건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람으로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목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박 전 비서관은 이형자 씨 측이 김 전 총장 낙마를 위해 연 씨의 고급 옷 구입 사실을 퍼뜨린다는 첩보를 일찍 입수하고도 1월 15일까지 내사에 착수하지 않았고, 사직동팀 내사 과정에서도 호피무늬 반코트 보유기간을 줄이거나 연 씨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파기하는 등 사실관계를 축소·조작한 뒤 대통령에게 허위 보고했다는 의혹이 짙다”고 말했다. (····)
  한편 정 씨와 연 씨, 배 씨는 9∼3가지씩 위증을 한 혐의가 드러나 검찰에 이송됐고, 이형자 씨도 구명로비를 부인하고 사직동팀 조사 시점을 위증한 혐의로 수사 의뢰됐다.

조선일보는 12월 21일자 2면에 「특검 잘했다」라는 사설을 올렸다.

  수많은 곡절을 거쳐 어렵사리 두 특검팀이 구성됐을 때만 해도 많은 국민들은 그 성과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특정사안에 대한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특별검사를 지명한 사례가 처음인 데다 특검팀의 인원과 수사 범위가 한정돼 있었고 시한까지 못 박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관부인 옷 로비 의혹 사건과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을 담당한 두 특검팀은 혼신의 열성을 기울여 의혹 파헤치기에 나섰고, 그 결과도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최병모 특별검사가 이끄는 옷 로비 의혹 사건 특검팀은 이 사건의 성격 자체가 당초 검찰이 밝힌 ‘실패한 로비’가 아니라 ‘포기한 로비’라면서 검찰 발표 내용과는 다른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제시했다. 결국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축소 또는 왜곡했다는 항간의 의혹은 사실로 드러난 셈이며, 이로 미루어 과거 검찰이 정치성을 띤 사건이나 권력형 부조리에 대해 수사할 때마다 일반의 불신을 산 것이 그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음을 유추하게 만든다.
  특검팀이 밝혀낸 가장 큰 성과는 사건 관련자 모두가 거짓말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김태정 전 법무장관 부인 연정희 씨 등 여인 4명이 성경에 손을 얹고 국정조사에서 한 증언이 대부분 거짓이었음이 드러났고, 김 전 장관과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박 전 비서관은 김 대통령에게도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직동팀’으로 불리는 경찰청 조사과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처음부터 사건이 축소·왜곡됐고, 뒤늦게 수사에 착수한 검찰 역시 사직동팀 내사결과를 중심으로 연 씨에게 유리한 방향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의혹을 더욱 부풀린 사실도 특검팀이 밝혀낸 공로다.

조선일보는 대통령 김대중이 임명한 특검팀이 ‘옷 로비’ 의혹 수사를 잘했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사건의 시발점부터 특검 수사가 끝나기까지 정치적으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김대중 자신이었다. ‘옷 로비 사건’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그를 ‘레임덕’으로 몰고 가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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