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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최장집 죽이기’조선일보 대해부 5권 -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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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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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이 시작한 ‘최장집 사상논쟁’

1998년 10월 21일자 조선일보 4면에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최장집(고려대 교수)에 관한 두 건의 기사가 실렸다. 한국언론사에서 한 신문이 특정 공직자를 대대적으로 공격한 사건으로는 가장 논란을 일으킨 것으로 꼽힐 만한 일이었다. 편의를 위해 먼저 나온 기사와 그 뒤에 실린 기사의 순서를 바꾸어 보기로 하자.

  중공군 전쟁 개입을 변호 / 전쟁 최대 희생자는 북 민중 / 월간조선 11월호 / 최 교수 ‘6·25’ 주요 내용

  월간조선 11월호는「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 교수의 충격적 6·25 전쟁관 연구」라는 제목으로 최 교수의 6·25관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최 교수의 저서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의 한 부분인 「한국전쟁의 한 해석」에 나타난 시각을 주로 조명하고 있다. 다음은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 최 교수는 “김일성은 모든 대내외적 조건에서 압도적 우세에 있었다. 지나친 과신이 그를 전쟁을 통한 총체적 승리라는 유혹에서 헤어날 수 없게 하였고, 결국 그는 전면전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라고 6·25를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으로 표현했다.
  · 38선 이북으로 북진에 대해 “그것은 한반도 전체의 초토화를 면치 못할 가공할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중국 입장에선 중국 혁명을 수호해야 하는 존망의 문제였다”고 기술, 중공군의 개입을 변호했다.
  · 전쟁 피해와 관련, 남한에 대해선 “민중들은 참담한 피해를 입었지만”이라고 짤막하게 언급한 반면 “이 전쟁 최대 희생자는 북한 민중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기술했다.
  · 전쟁 책임에 대해선 한마디로 모든 책임을 김일성에게만 묻지 말라는 입장을 취했다.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킨 사실마저도 제3자의 입장에서 “김일성이 도발한 전쟁이라는 것이다”라고 객관적으로 표현했다.
  · “어떤 면에서 우리는 한국전쟁이 미·소 분할점령으로 왜곡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세력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하나의 폭력적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고 기술했는데, 그렇다면 김일성은 결코 전범이 아니란 얘기가 된다.
  · 결론적으로 최 교수는 6·25를 평가함에 있어서 대한민국에는 불리하게 북한에 대해선 유리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 최 교수의 해석이 타당하다면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의 6·25 부분은 다시 써야 할 것이다.

  6.25는 김일성 ‘역사적’ 결단 / 긍정 의미 아닌 오판 지적한 것 / 최장집 교수, 월간조선 보도에 반박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20일 월간조선 11월호 보도에 대해 “왜곡·음해”라며, 장문의 반박문을 냈다.
  최 위원장은 반박문에서 “월간조선은 논문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했고, 논문의 어휘, 문장을 의도적으로 문맥과 분리 인용, 필자의 사상이 문제 있는 것으로 모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제목에 대해 “논문의 ‘역사적’이라는 표현은 긍정적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필자는 바로 뒷 문장에서 그 같은 ‘역사적 결단’이 오판이라는 점을 지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이라는 논문에서 “우세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그(김일성)를 전쟁을 통한 총체적 승리라는 유혹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하였고, 결국 그는 전면전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김일성의 오판을 유도했던 요소는 국제정치적 조건…”(76쪽)이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또 “내가 ‘중공군의 개입을 변호했다’고 했는데, 나는 어디에서도 중공군의 개입을 변호한 적이 없다”면서, “중공 측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혁명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월간조선은 자신이 ‘한국전쟁의 책임을 북한의 김일성에게만 묻지 말라는 입장을 취했다’고 했으나, 나는 북한의 남침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으며, 책임을 엄중히 묻고 있다”면서 그 예로 “우리는 6월 25일 새벽 4시 반경 북한이 38도선으로부터 선제공격을 감행하면서 한국전쟁이 개시됐다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는다”(1백27쪽)는 부분을 들었다.
  그는 “개전 초반은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것은 북한 자신이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였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주했다.


  최장집의 소송과 조선일보의 반박

10월 23일 최장집은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자신의 논문 내용을 23 차례에 걸쳐 왜곡함으로써 필자의 사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으므로 5억 원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고 문제가 된 월간조선을 배포 금지하는 가처분을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10월 24일자 4면 절반 가까이를 「한국전쟁 관련 최장집 위원장 논문 발췌」로 채웠다. 그 기사의 소제목들만 보아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최 위원장의 용어 분석: ‘공산폭동→인민항쟁’, ‘남침’→‘민족해방전쟁’, ‘폭동 진압’→‘탄압·테러’

  · 최장집 위원장 반론에 대한  월간조선의 반박 요지; “ 6·25 개전 초반은 민족해방전쟁…”; 6·25전엔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였다는 논리
  · 최장집 씨 학문적 성향 왜 문제 되는가; 대통령 자문 핵심 공인… 검증 마땅
  · 최장집 위원장 반론에 대한 월간조선의 반박 요지;김일성 6·25 남침 의미 모호하게 축소; 기습 남침 분명한데 ‘자연발생’인양 묘사
  · 최장집 위원장 반론에 대한 월간조선의 반박 요지; “좌파는 혁명세력, 우파는 반혁명집단”; 좌파를 ‘혁명적 민족주의 세력’으로 미화

한겨레는 10월 23일자 4면에 ‘최장집 교수 논문 시비 파문’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최장집 냉전유령 되살리려 ‘좌파’ 몰아세워 / 월간조선 포문에 보수정당 장단 / ‘김일성의 역사적 결정’ 문구 / 한국전쟁 실체적 영향 뜻을 / 가치 판단 개입된 것으로 해석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 교수(고려대 정치학)에 대한 특정 언론사의 문제 제기를 둘러싸고 지식인 사회에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논란은 단순히 한 개인의 사상 편향 여부를 떠나 정권의 정체성 문제, 지식인의 양심 문제, 언론사의 의도된 매카시즘적 공세의 법적 정당성 문제로까지 그 파장을 넓혀가고 있다.
  이 논란은 지난 19일 발행된 월간조선 11월호가 「최장집 교수의 충격적 6·25 전쟁관」이라는 기사에서 최 교수를 ‘좌파’라고 단정한 데서 비롯됐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최 교수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의 위원장임을 문제 삼아 최 교수와 현 정권의 ‘사상’ 문제를 쟁점화하려 했으며, 공동 여당의 한 축인 자민련도 은근히 이를 거들고 있다.
  문제의 기사를 쓴 우종창 기자가 최 교수의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1997년, 나남 펴냄)과 <한국민주주의의 이론>(1993년, 한길사 펴냄)을 근거로 내린 결론은 “6·25 전쟁을 평가함에서 대한민국에는 불리하게, 북한에 대해선 유리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근거로 그는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최 교수는 좌파” “우리 사회 맥락에서 보면 빨갱이, 공산주의자”라고 말했다. (·····)
  우 기자는 “최 교수는 ‘제2의 건국’ 방향과 철학, 정책 과제 등을 마련할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의 위원장”이라며 “그에 대한 사상 검증은 언론의 당연한 의무”라고 주장했다.
  ‘검증’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우 기자의 ‘검증의 객관성’에서는 적잖은 의도성이 발견된다. 월간조선은 기사 제목으로 고른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부분이 최 교수를 좌파로 ‘판정’할 수 있는 핵심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체 맥락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최 교수는 <한국전쟁의 발발>(박명림 지음, 나남 펴냄) 2쇄 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민족에 집단적 수난을 가져오고 이후 한국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 북한체제와 김일성이 소련 및 중국의 동의 아래 역사적 결정을 내리고 이를 감행한 전쟁 그 자체였다는 사실이다.”

주간 <시사저널> 취재2부장 서명숙은 11월 5일자 칼럼 「언론의 권력화가 위험한 이유」에 아래와 같이 썼다.

  그런 주장은, 해당 언론사의 작업이 고도의 균형감각과 정치(精緻)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최소한 최 교수가 구사한 수준에 걸맞은)을 동반한 것일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문제가 된 월간조선 보도에서는 정치학계의 중견 학자를 비판하는 데 따르는 최소한의 신중함도, 학문적인 엄밀함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전제와 결론을 잘라내고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는 과감함과, 그렇듯 거두절미한 대목에 대해 논리적 비약과 이올로기적인 편향성으로 해석하는 지적 횡포만이 있었을 따름이다(<한국현대사산책-1990년대편 3권>, 201~202쪽에서 재인용).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배치’

월간조선이 시작한 ‘최장집 사상 논란’이 진보적 언론의 비판에 부닥치자 조선일보는 10월 26일자 5면에 「최장집 건국사관 규명해야」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이른바 수정주의 사관은 대한민국 건국의 민족적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분단의 책임도 미국과 남쪽 우익에만 있으며 북쪽은 민족통일 세력이고 남쪽은 반민족적 분단세력이라고 규정한다. 6·25의 원인도 북쪽의 선제기습에 있다고 보지 않고 남한 내 ‘혁명·반혁명’ 세력 충돌의 연장선상에 있다 고 보려 한다. 이러한 사관은 사실 관계를 왜곡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이미 논박의 대상이 된 바 있고, 그 시각에 있어 대한민국의 정당성(legitimacy)과 존재이유를 근원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우리가 국가적 생존권 차원에서 배척할 수밖에 없는 편견이자 고정관념인 것이다.
  대통령 정책기획위 위원장 최장집 씨가 딱히 그런 수정주의자인지의 여부를 우리가 여기서 단정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가 설령 부분적으로 그와 유사한 시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가 대학 연구자로만 남아 있는 한에는 월간조선이 그토록 정면의 논쟁을 일으키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는 다름 아닌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저서에 드러난 6·25관 등, ‘최장집적 현대사 보기’가 공적으로 논란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역시 최장집 씨의 용어 사용, 개념 규정에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는 현저히 배치되는 사례가 있음을 발견한다. 예컨대 6ㆍ25를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한 것(최장집 편 「한국전쟁 연구」에 실린 그의 글 「한국전쟁에 관한 하나의 이해」, 태암출판사 1990)부터가 그러하다. 6ㆍ25 남침이 그런 전쟁이라면 대한민국은 불가피하게 반민족적 식민지 지배집단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남한 내 지배세력과 민족운동세력 간의 대립상황이 남한 내 민족세력의 궤멸과 더불어 정부 수립 이후에는 남한 내 게릴라전의 양상으로 변하고 이것이 다음 단계에서 남북 간의 내전상태로 변해가고 있었음을 뜻한다”고 최 씨는 쓰고 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남로당 파르티잔과 정부 토벌대 간의 대립 역시 ‘지배세력과 민족운동세력 간의 대립상황’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6ㆍ25전쟁도 마찬가지라는 말밖에 안되는 것이다.
  최 씨의 용어대로 1946년의 대구 ‘10월 인민항쟁’ 이후의 남로당 주도 폭동들이 ‘군정독재와 분단정책에 항거한 것’이었다면, 그리고 이에 대해 ‘극우보수세력’이 ‘탄압’과 ‘테러’를 강화해서 ‘민중세력’이 쇠잔한 것이었다면, 그의 논리 속에서 대한민국 건국이란 대체 무엇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현 정부의 ‘제2 건국’ 자체가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학문의 자유가 있으면 언론의 자유도 똑같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비판적 언론의 자유에 바탕해서 대통령의 자문역 격인 최 위원장의 현대사 설명에 담겨있는 문제점을 우리 사회가 충분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80년대 이후 이런 시각의 현대사 설명들이 젊은 세대에 널리 퍼져 그 고정관념의 문제성이 오늘에까지 미치고 있고, 이러한 시각이 한두 사람의 학문 활동에 그치지 않고 대규모로 확산된다고 할 때는 대한민국 정당성의 뿌리와 뼈대는 존재할 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이 사설에 대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아래와 같이 반론을 폈다.

  (···) 최 교수가 학자로만 남아 있다면 그의 논문은 문제 삼을 수 없고 공인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문제 삼는 논문은 바로 최 교수가 학자로만 있을 당시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조선일보식대로라면 연구자일 당시 그가 쓴 논문을 어느 날 그가 공인이 되었다고 해서 고치기라도 해야 된다는 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최 교수는 학자로서 논문을 썼을 뿐이고 그런 그가 공직에 임명됐을 뿐이다.
  만일 조선일보가 최 교수의 사상이 문제라고 판단한다면 그를 대통령 정 책기획위원장에 임명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에 무게가 실리는 게 논리적으로는 오히려 타당하다. 그러나 월간조선 11월호에는 “북한의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했던 공산세력의 움직임을 민중항쟁으로 보는 그의 시각은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관과도 정면 배치된다”고 하여 최 교수와 김 대통령을 차별화했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공인 사상 검증의 자유는 결국 ‘진보인사 죽이기’를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되살아난 매카시즘 망령」, <98 모니터 보고서>, 99~100쪽).


  법원, 월간조선 11월호 ‘배포 금지’ 결정

조선일보 11월 12일자 1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법원, 월간조선(11월호) 배포 금지 결정 / ‘민족해방 전쟁’ ‘역사적 결단’ ‘가공할 북진’ / “거론할 때마다 최 위원장에 1천만 원 내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법정다툼에서 법원이 최 교수의 논문에 대한 후속 보도를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다.  서울지법 민사 51부(신영철 부장판사. 박성수·곽병훈 판사)는 11일 ‘월간조선 11월호 발행·판매·배포 등 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최 교수가 국가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 직책을 맡 고 있는 사람이므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있는지에 대해 과거의 논문·저서 등을 통해 검증하는 것은 언론자유에 속하는 사항”이라면서도 “앞으로 최 교수가 낸 5억 원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본안 판결이 날 때까지 최 교수가 문제 삼은 월간조선 19건의 내용 중 3건을 삭제하지 않고는 이를 발행,판매 또는 배포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특히 “앞으로 문제된 3건의 내용이 포함된 단행본이나 일간신문·주간·월간지 등 정기간행물과 보도자료 등 인쇄물을 발행, 배포하거나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 등에 게시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미 배포·판매된 11월호에 대해서는 회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조선일보가 이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경우, 위반행위 1건당 1천만원씩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
  재판부는 월간조선 기사 중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 부분과 관련, “전후 문맥을 볼 때 역사적 결단이란 표현은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훌륭한 결단’의 뜻이 아니라,‘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줄 선택’ 정도의 가치중립적 표현인데도 제목으로 부각시켜 독자들에게 최 교수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부여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6·25는 개전 초기 민족해방전쟁’ 부분과 관련,“최 교수가 사용한 민족해방전쟁이란 용어는 북한 당국자들이 생각했던 한국전쟁의 성격이라는 뜻임이 명백한데도,월간조선은 민족해방전쟁이 마치 최 교수의 생각 그 자체인 것처럼 보도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법원이 ‘월간조선 11월호 배포 금지’ 결정을 내린 데 관해 11월 13일자 사설(「언론자유의 문제」)을 통해 반론을 제기했다.

  월간조선 ‘최장집 기사’에 대한 서울지법 민사51부의 ‘가처분 결정’과 관련해 우리는 그것이 미래의 논쟁까지도 일체 금지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새삼 언론자유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장집 씨의 논거와 관계 없이도 “6·25는 민족해방전쟁이었는가?” “굳이 북한 쪽 기준에 따라 6·25를 설명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인가?” “김일성의 6·25 남침을 ‘역사적 결단’이라고 말했는데 그 경우 ‘역사적 결단’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과연 적합한가?” 하는 등등의 질문, 시비, 논란, 찬반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중요한 논쟁거리다. 그런데 그 논란에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말해도 괜찮다”는 옹호 발언은 얼마든지 허용되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비판 발언은 일체 금지된다면 그것은 형평성을 잃은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 그것도 다른 매체에서는 얼마든지 거론할 수 있어도 유독 조선일보에만은 재갈을 물린다면 그것은 더욱 공평하지 않다.  민사51부는 “남북이 분단된 (…)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 어떤 사람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김일성 주체사상 (…)을 신봉한다는 주장은 (…) 그 사람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재판부가 단 한 사람의 인격권이라도 세심하게 보호해주려 한 그 충정과 선의는 알 수 있다. 그러나 “남북 대치상황에서 당신은 왜 굳이 김일성이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는 식으로 말해야만 하는가? 당신은 왜 굳이 ‘북한 지도부가 기본적으로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이라는 식으로 설명해야만 하는가?”라고 시비하는 사람들의 언권은 그렇다면 보호될 길이 없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한쪽은 다른 한쪽 귀에 거슬리는 말을 얼마든지 해도 되고, 다른 한쪽은 당연히 반발하고 싶어도 ‘명예훼손’에 걸릴까보아 입을 다물어야 한다면 이 나라의 법은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게 아닌가 의아해진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진보’쪽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얼마든지 해도 괜찮은데, 그것에 대해 시비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한쪽의 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로서는 위헌 여부를 알아볼 생각을 갖게 된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과 논쟁을 제기하는 것은 잘 구분해서 간주해야 하는데, 이번 민사51부 결정은 그 효과에 있어 아예 논쟁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비판과 논쟁은 얼마든지 하되 상대방에 관해 단정은 하지 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최 씨와 관련해서는 ‘민족해방’ 부분과 ‘역사적 결단’ 등에 관해 앞으로 거론조차 하지 말라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사법부가 명예훼손죄에 관해 공정하고도 보편타당한 선을 그어주고 언론이 그것에 승복할 수 있는 전제 하에서, 적어도 논쟁을 일으킬 자유와 권리는 제약돼선 안 될 줄 안다. 그런 점에서는 이번 사건은 이제 ‘최장집 대 조선일보’의 차원을 넘어 언론자유 본질의 문제로 전환됐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 사설은 서울지법 민사 51부가 월간조선 11월호에 대해 배포 금지 결정을 내린 것을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6·25’에 관해 최장집처럼 ‘민족해방전쟁’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허용하고 그것을 반대하는 발언을 일체 금지하는 결정은 ‘형평을 잃은 것’으로서 “유독 조선일보에만 재갈을 물리는”는 처사라는 뜻이다.

조선일보의 이런 주장은 재판부의 가처분 결정 이유를 왜곡한 것이다. 민사51부는 “최 교수가 국가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므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있는지에 대해 과거의 논문·저서 등을 통해 검증하는 것은 언론자유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판부는 월간조선이 최장집의 글 가운데 문제 삼은 19건 가운데 3건을 삭제하지 않고는 “발행, 판매, 또는 배포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했다. 조선일보사가 발행하는 월간조선에 대해서만 언론자유를 제한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조선일보가 이 사건에 대해 진중하게 대응하려면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지켜본 뒤에 언론자유 문제를 거론했어야 마땅하다.

  (···) 조선일보는 지면을 사유화한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하루도 빠짐없이 몇 주째 이 문제를 기사화하고 있다. 특히 여론에 밀린 점을 의식해서 인지 국내외 지식인들의 글을 시론이나 해외기고라는 형식으로 싣고 있다. 이러한 외부 기고의 내용은 논지에 설득력이 떨어져 조선일보가 여론에서 밀리고 있지 않음을 나타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칼럼 대부분이 ‘민족해방전쟁’이나 ‘역사적 결단’ 같은 용어를 문제 삼는 등 조선일보의 왜곡보도를 전제로 하고 있다. (·····)
  조선일보가 자료로 삼은 <한국전쟁 연구>(1990년, 태암출판사)는 이미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다. 연구와 고민의 결과로 나온 수정본은 무시한 채 굳이 절판된 책을 문제 삼는 것은 의도적인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공인에 대한 검증은 필요하다. 그러나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기준과 내용이 제시되어야 하며 그 검증이 ‘사상검증’일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상검증을 빌미로 한 사람의 사상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왜곡에 바탕을 둔 조선일보의 사상검증은 기사로서의 가치도, 검증의 공정한 기준도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조선일보 최장집 보도 논란」, 앞의 책, 103쪽).

  ‘조선일보 90년 사사(社史) 편찬위원회’가 펴낸 <간추린 조선일보 90년사-신문 그 이상의 미디어, 조선일보>(2010, 이하 <간추린 조선일보 90년사>)는 ‘최장집 논란’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 논란에 대해 기자협회보와 미디어오늘 등이 조선일보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논조를 폈다. 여기에 한겨레신문 등 좌파 성향의 언론이 가세했다. 그러자 ‘자유지성 300인회’ 등 30여 개 보수 성향 단체들이 잇달아 최장집 위원장의 역사관을 비판하거나 공직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세대 교수 송복은 조선일보 11월 5일자 시론 「공인은 검증돼야 한다」를 통해 “공인에 대한 검증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검증을 특정 언론이 했다면 그 언론의 검증이 정확했는가 아닌가에 대한 시비는 있어도 그 검증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성토나 규탄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자유베를린대 교수 박성조는 “독일에선 (검증은) 더 가혹하다”(11월 6일자 해외 기고)고 주장했고, 한국외국어대 교수 정진석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공직자에 대한 비판을 가로 막는 것은 권력을 편드는 행위라는 또 다른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장집 논란’은 조선일보와 최 위원장 측을 각각 지지하는 각종 사회단체들의 성명전과 시위 등으로 이어지면서 진보와 보수 세력이 대결하는 1998년 말의 가장 큰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서는 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시간이 갈수록 높아졌다. 최장집 논란은 해를 넘겨 1999년 1월 양측이 타협하면서 마무리됐다. 조선일보가 최 위원장의 특별기고문 「화해와 상생의 통일시대로」를 1월 18일자 4면에 싣고, 같은 날 발행된 월간조선 2월호에 최 위원장이 1996년에 출간한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에 실린 논문을 일부 수정한 「통일의 조건과 전망·탈냉전기의 두 가지 선택」을 게재했다. 최 위원장은 조선일보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다(381~382쪽).

최장집은 1999년 4월 1일 대통령 김대중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자진 사임’이 아니라 ‘청와대의 종용’에 따른 사실상의 해임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4월 3일자 1면 머리에 「최장집 사임 파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경질을 두고 최장집 위원장이 2일 “청와대의 종용에 의한 사실상의 해임”이라며 지난해 조선일보와 벌인 이념논쟁의 결과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최 위원장은 이날 “청와대에서 사흘 전부터 사표를 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며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일보와의 이념 문제가 표출됐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한길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사표를 내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며 “어제(1일) 저녁 최 교수와 만나 대화를 나눈 뒤 사표 제출 이유를 ‘정책기획위 출범 뒤 돌출상황이 있었고, 이에 휘말리다 보니 제 기능을 못 하고 침체했으며, 청와대 주무수석도 바뀌고 했으니 학교로 돌아가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로 함께 정리했다”고 말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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