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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대선- IMF 폭풍에 휩쓸려 간 ‘북풍’(2)조선일보 대해부 4권 - 55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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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0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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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론-이석현 명함 파동

조선일보 8월 22일자 사회면(31면)에는 「“오익제 씨 월북 한 달 전 김 총재실 20차례 통화” 안기부 밝혀」라는 기사가 나왔다. 조선일보와 안기부의 입체 작전이라 할만했다. 오익제 월북 사건이 정가를 뒤흔드는 와중에 느닷없이 ‘이석현 명함 사건’이 터졌다. 8월 21일자 조선일보 사회면 한 귀퉁이에는 4단으로 “국민회의 이석현(안양 동안을) 의원이 최근 미국 방문 중 국호를 ‘남조선’이라고 병기한 명함을 사용, 파문이 일고 있다. (…) 신한국당 구범회 부대변인은 이와 관련, 김대중 총재의 핵심 측근인 이 의원이 외국 방문 중 남조선이라고 국호를 표기한 명함을 돌린 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이런 망발에 대해 즉각 해명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촉구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석현은 이에 대해 “국제화 시대라 외국에 나갈 때 쓰기 위해 7개 국어를 넣은 국제명함을 만든 것으로, 중국에선 우리나라를 ‘남조선’이라 부르기 때문에 ‘한국’ 뒤에 괄호를 치고 남조선이라고 적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그 명함을 LA에서 쓸 때는 ‘남조선’이란 부분 밑에 선을 그었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선일보는 8월 22일자 사설(「남조선 국회의원?」)을 통해 그 해프닝을 또 하나의 색깔론으로 부풀렸다.

(…) 국회의원쯤 되는 사람이 우리 국호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비록 괄호 안이라고 하더라도 ‘남조선’이란 명칭을 구태여 사용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 이 씨가 만일 대한민국 국회의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국민의 선량임을 자긍하는 정신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남한’이나 ‘남조선’으로 잘못 부르는 것을 당당히 고쳐준다는 의미에서도 국호를 제대로 기록한 똑바른 명함을 외국에서일수록 당당하게 사용했어야 옳다. 그런 명분이 분명한데도 그는 ‘남조선 국회의원’이란 명함을 내놓음으로써 결과적·객관적으로 대한민국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대한민국 국민을 모욕한 셈이 되었으며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의 긍지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도대체 국호를 어찌 편의적으로 바꿔서 부를 수 있으며 그것도 왜 굳이 ‘남조선’이라는 것인지, 국회는 마땅히 이런 무자격 의원의 제명도 불사하는 단호한 징계를 내려야 할 것이다.

결국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공세에 견디다 못한 국민회의가 이석현의 출당을 결정하려 하자 29일 그는 “본의 아닌 실수로 당에 누를 끼쳤다”고 눈물을 흘리며 자진 탈당을 발표했다. 30일자 조선일보 1면 ‘팔면봉’의 논평은 “‘남조선’ 명함 파문 이석현 의원, 탈당하며 눈물. 잘린 도마뱀 꼬리의 통증?”이었다.


안기부장 권영해 ‘북풍’ 총지휘

정권이 바뀐 후, 대선 당시 안기부장 권영해가 2차장 산하 부서들을 동원해 오익제 편지 사건과 이석현 의원 명함 사건 이외에도, 판문점에서 북한군에게 총을 쏴 달라고 요청 했던 이른바 ‘총풍 유도’라는 제3의 북풍조작 사건까지 주도했던 것으로 드러나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청와대는 3월 6일 안기부가 대선 당시 북풍 공작을 다각적으로 진행시켰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고 안기부 관계자도 전 부장 권영해가 고위간부들과 수 차례 북풍 대책회의를 가진 사실을 인정했다. 또 그 과정에서 국민회의 의원 천용택이 권영해를 만나 북풍 공작 중단을 위한 ‘담판’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익제 편지와 함께 북한에서 보낸 괴편지 시리즈의 또 다른 핵심인 북한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 김병식의 편지를 안기부가 직접 북측으로부터 건네받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사건은 대선 직전인 1997년 12월 13일 전 의원 임춘원과 재미교포 김영훈(목사) 등이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병식의 편지를 공개하면서 비롯됐다. 내용은 김대중이 1971년 일본 도쿄에서 김병식으로부터 민주화투쟁 자금 명목으로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흑금성’으로 불리는 안기부 핵심 공작원이 12월 7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보위부 관계자로부터 그 편지를 건네받고 다음날인 8일 서울로 돌아 와 9일 당시  안기부장 권영해와 이병기에게 보고했다. 결국 임 춘원 등의 기자회견에 앞서 안기부가 먼저 편지를 입수한 점에 비춰볼 때 안기부가 그들을 배후에서 조종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한편 수사가 진행되면서 안기부 1차장 박일용을 비롯한 6인회의가 ‘북풍 조작 의혹 사건 을 핵심적으로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6인회의 멤버는 박일용과 1특보 이청신, 3특보 남영신, 101실장(기획판단실) 임광수, 102실장(대공정보실) 임경묵, 103실장(대공수사실) 고성진이었다. 안기부가 작성한 오익제 편지 사건 관련 기본 대응계획에 따르면 안기부는 그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별도의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태스크포스 팀장은 임광수다. 그는 팀을 총괄지휘하면서 홍보대책, 수사방향, 보고서 작성 등 종합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안기부 대전지부장으로 근무하다 대선 직전 국내 정치 분야 책임자로 임명되어 1차장 박일용의 지휘를 받았다. 박일용은 당사 대통령 김영삼 경남고 후배로 1992년 대선 당시 지역감정을 부추긴 초원복국집 사건에 연루되었던 인물이다.

이석현 명함 사건 역시 안기부의 공작임이 밝혀졌다. 서울지검은 5월 22일 ‘소위 북풍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오익제 편지 공작 말고도 지난해 8월 국민회의 이석현 의원의 이른바 ‘남조선 명함’ 파문도 권영해의 지시로 이루어진 북풍 공작의 하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시사저널〉1998년 6월 4일자는 ‘북풍 특집’에서 이석현이 안기부·구 여권·조선일보의 커넥션에 주목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한 심포지움 석상에서 “조선일보가 명함 파문 자체가 안기부 북풍 공작의 하나였다는 것을 몰랐을 수 있다. 그러나 평소 안기부 공작 정보에 정통한 이 신문의 정보력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이 안기부와 신한국당의 합작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색깔공세를 부추긴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이 같이 추론하는 근거는 이 신문이 평소에 견지해 온 ‘국가안보 상업주의’ 성향과 이 신문이 곧잘 인용해 온 ‘안기부 제공 정보’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북풍 공작의 핵심인 권영해는 자해 소동까지 벌이면서 자신에 대한 사법처리에 저항했으나 안기부법 및 선거법위반죄 등으로 1심에서 5년형을, 항소심에서도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정치자금 문제

1997년 10월 8일자 조선일보는 신한국당 사무총장 강삼재가 전날 기자회견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가·차명 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해, 처조카인 이형택(동화은행 영업1본부장) 씨를 통해 입금액 기준으로 총 6백70억 원의 비자금을 관리, 보유해 왔다”고 폭로한 내용을 1면 머리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김 총재는 또 92년 대선 이후 쓰고 남은 비자금 중 62억4천만 원을 비자금 관리인 이 씨의 주도로 재벌과 사채업자를 통해 실명 전환하고,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20억 원 외에 적어도 6억3천만 원을 추가로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며 “강 총장은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해서 김 총재의 대통령후보직 사퇴와 함께 검찰의 즉각적인 김 총재 비자금 출처 수사 착수 및 사법처리 등을 촉구했다.

조선일보는 2, 3, 4, 5면에서 강삼재의 폭로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10월 9일자 사설(「‘DJ 비자금’ 거증을」)은 “김 총재는 그동안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 원을 받은 일 이외에는 비자금 관리는 물론 정치자금 운용에 있어 아무런 허물이 없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기 때문에 우리의 궁금증은 더욱 크다. 일단 여당 사무총장의 입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제기됐고 그 액수도 엄청난 만큼 문제를 정치 성명전으로 끌고 갈 것이 아니라 검찰 수사에 맡기는 등 실체적 진실 규명으로 가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비자금 내역을 강삼재가 어떻게 입수했는지 등 다른 의문은 ‘부차적인 문제’일 따름이며 우선 1차적 거증 책임을 강삼재가 발언의 구체적 증거를 대야 한다고 요구했. 그 사설은 “국민회의도 덮어놓고 ‘아니다’라고만 할 게 아니라 결백하다면 그 근거를 대야 할 것이다”라는 단서를 덧붙였다.

신한국당 대변인 이사철은 10월 9일 김대중이 노태우로부터 받은 20억 원 말고는 다른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 데 대해, 그것을 반박하는 금융자료와 불법 실명 전환 내역을 공개하며 검찰 수사를 거듭 촉구했다. 신한국당은  10월 16일 김대중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총장 김태정은 21일 “과거의 정치자금에 대해 정치권 대부분이 자유스러울 수 없다고 판단되는 때에 이 사건을 수사할 경우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극심한 국론 분열, 경제 회생의 어려움과 국가 전체의 대혼란이 분명하다고 보인다”며 “수사 기술상으로도 대선 전에 수사를 완결하기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10월 22일자 사설(「놀라운 검찰의 선택」)을 통해 “하나는 검찰이 정말 이렇게 달라졌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검찰이 이처럼 기회주의적인가 하는 상반된 관점”에서 ‘놀랐다’고 했다. 사설은 검찰이 항상 정치권력의 향배에 민감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회창 총재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비자금 수사라는 사안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을 벗어난 것이 아니었는데도 과연 검찰이 수사 유보를 당당히 회견의 형식으로 공표할 수 있었을까?”라고 물었다.

(…)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지 수사를 유보하는 등의 자의적 판단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고발됐으면 수사하는 것이 검찰의 의무이다. 또 검찰이 수사 유보의 이유로 제시한 형평성·공정성의 문제는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은 고발된 대로, 인지된 대로 증거에 따라 수사하면 됐지 세상만사 모든 사안을 경중에 따라 형평에 맞게 수사해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록 고발이 됐어도 검찰은 시간을 끌어가며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수사 과정을 조절해가리라고 보았고 또 사안의 민감성과 중대성으로 볼 때 그것이 사리에 맞는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김 총장은 작전하듯이 전격적으로 수사 유보를 공표해버렸다. 이것은 과거의 검찰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 세상에서 그가 대통령과 상의 없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김 총장이 임명권자인 김 대통령과 선두주자인 김대중 총재 그리고 이 총재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했는지, 세상은 그런 관점에서 검찰의 이번 거동을 보고 있다.

이 사설을 통해 국민들은 신한국당 후보 이회창이 비세에 몰려 있으며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김대중 정치자금 수사’라는 한 방을 노렸으나 그것마저 실패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검찰 발표 직후 이회창은 김영삼의 탈당을 요구했으며 비주류가 후보 사퇴 서명운동을 하겠다고 천명하는 등 신한국당은 걷잡을 수 없는 분열 상태로 빠져 들어갔다.

이회창이 김영삼과 결별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조선일보는 「이회창의 자기 ‘목소리’」라는 사설을 통해 “이 총재가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 이 총재가 가까스로 동원한 ‘김대중 비자금’ 사건은 여권 내의 정치적 역작용으로 불발에 그치는가 했다. 이 총재는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구시대 부패정치구조의 청산’을 대명제로 내걸고 김영삼 대통령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 총재는 그럼으로써 ‘김 대통령도 그런 정치구조의 한 부분’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 총재 측은 그동안 김 대통령이 말로는 이 총재 지지를 공언하면서 실제로는 그의 민주계 수하들을 통해 이인제 씨 측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김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는 김 대통령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대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총재의 반 3김 정치 도전은 이 총재 입장에서 본다면 정치적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바깥에서 보기에도 이 같은 ‘홀로 서기’ 이외에는 다른 위기 탈출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이 총재가 발표한 문안을 들여다보면 이 총재 측은 민주계가 크게 반발하겠지만 그들은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어차피 자신의 ‘적’이기는 마찬가지란 생각을 굳힌 것 같다.
김 대통령 측은 “탈당 안 하겠다”고 하는 모양인데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른스럽지 못하다. (…) 따지고 보면 신한국당의 뿌리는 민주계가 아니었다. (…) 민주계는 이 총재를 끌어내리든지 당을 떠나 새 당을 만들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데 쓰면 뱉고 달면 삼키면서 정권을 놓지 않으려는 정파적 이기주의에는 붕당이라는 이름도 아깝다. (···)
이 총재는 당이 뽑은 후보이며 이제 교체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올 단계는 이미 지났다. 그리고 이 세계 어디에도 자기 당 후보의 지지율이 낮다고 교체하는 정당은 없다. 당원이고 간부 되는 사람들은 부족한 것을 메워가면서 지지율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도이지 깎아 내리며 뒤통수나 치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 어쨌든 이 총재가 전선을 분명히 한 이상, 그가 내건 정치적 투쟁의 명제가 선명한 이상, 그리고 그것에 동의하는 이상 신한국당원들은 여러 작은 이견과 불만을 접어두고 이제 본격적인 여야 대결의 장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 정당다운 태도다. 이 총재도 떠날 사람은 떠나보내고 얻을 사람은 감싸 안으면서 야당과 본격적인 한판 승부를 가르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사설의 마지막 대목에서는 조선일보의 절박함을 여실히 를 느낄 수 있다.
깊어지는 신한국당의 내분 사태에 관해 10월 25일자 ‘류근일 칼럼’(「유권자가 심판해야」)은 “신한국당 주류와 비주류는 경선 결과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한가, ‘DJ 대통령’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한가,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씨 편드는 사람들의 하는 말 밑바탕에는 YS가 통치한 ‘지난 5년’에 대한 지긋지긋함과 그의 이중 플레이식 ‘이회창 죽이기’에 대한 강한 혐오감이 배어 있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선은 DJ 집권부터 막고 봐야 한다고 믿는 이회창 씨 반대론자들의 논리에는 ‘이회창·이인제·조순’이 중요한 게 아니라 ‘DJ 대통령 막기’가 몇 배나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 자, 사정이 이렇게 됐다면 결판은 유권자들이 내려줄 수밖에 없게  됐다. 자기들끼리 싸워봤자 만날 그 소리가 그 소리이고, 어느 쪽이 옳았는 지는 유권자들이 판정해 주는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이러다가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세상에 북한을 앞에 둔 사람들이 안에서 이렇게 척을 지고 싸워도 괜찮은 것인가. 미국이 북한에 들어가고 중국이 북한과의 ‘혈맹’을 끊지 않겠다고 하는 가운데 미국·중국 정상들은 지금 동북아시아 지형을 어떻게 다시 짤 것인가를 의논하리라는 소식이다.
우리 경제는 이제 정말로 결딴이 나고 있는 것 같고, 일반 공무원과 경찰 검찰은 정치권 눈치 보느라 꼬리를 잔뜩 움츠리고 있다. 국민은 국민대로 제각기 제몫 챙기는 일 이외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냉소적이고, 지도층은 ‘세계 속의 큰 판, 큰 싸움’보다 ‘찻잔 속의 작은 판, 작은 싸움’에만 혈안이 돼 있다. “내가 대통령 안 돼도 좋으니 제발 대한민국은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후보는 정말 없을까? 그런 후보만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큰 그릇이고 대통령감인데…. 그런데 이런 가장 확실한 대통령 되는 비결을 왜 그렇게 모른다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할 따름이다.

말이 되는 소리인지 아닌지는 차후 문제이고 우선 이 글의 맥락을 보면 김대중은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사람”이자 지도층도 아닌 사람이 돼 버렸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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