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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구제금융 사태조선일보 대해부 4권 - 5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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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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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들어 한국 경제가 이상 기류를 보이기 시작했다. 1월 한보 사태가 터져 금융기관에 6조 원의 부실채권을 안겼다. 특정 기업이 망하고 흥하는 것이야 다반사이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신용 경색 현상이 나타나면서 다른 재벌들까지 위험한 상황이라는 위기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3월 8일 IMF 총재 캉드쉬와 인터뷰를 하고 기사에 「“한국 경제 위기 아니다”」라는 큰 제목을 붙여 10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캉드쉬는 조선일보 특파원과 단독 인터뷰에서 한보 사태 등과 관련해 대두되고 있는 한국의 외환위기설에 대해 “전혀 위험스런 상황이 아니며, 한국 경제는 올해 견실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것”이라면서 “한국 관련 여러 지표를 종합 분석해볼 때 한국 경제는 2년 전 파산 위기에 직면한 멕시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균형과 안정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캉드쉬가 그해 연말에는 ‘저승사자’로 한국에 오게 된다.

조선일보가 전한 캉드쉬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3월에 삼미, 4월에 진로, 5월에 대농과 한신이 잇달아라 무너졌다. 7월에는 기아도 쓰러졌다. 6월 말 하루 동안에만 3천9백억원 어치 어음이 만기를 맞아 대부분은 기일을 연장했는데, 제일은행이 긴급히 구제금융 3백70억 원을 일으켜 간신히 부도를 모면하게 했다. 7월 초부터 그룹 전체로 매일 1천5백억∼2천억원 어치씩 어음이 만기도래하고 있던 기아그룹은 스스로 사태를 수습할 능력을 잃었다.

은행권에서는 오너가 없는 국민기업 성격의 기아그룹을 살려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찬성을 하면서도 자칫 한보철강처럼 막판에 계속 어음이 물려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결국 기아도 7월 15일 무너졌다. 기아그룹이 금융권에 진 빚은 총 9조4천억 원이 넘었다. 한보가 부도 직전 지고 있던 총 부채 규모는 6조7천억 원 정도였다. 기아그룹 계열사 종업원 수는 5만6천6백91명이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7월 17일자 사설에서 기아가 무너진 것은 과잉 투자, 과당 경쟁의 탓이 크지만 “그룹 내 노동조합의 노·노 갈등으로 공장 생산성이 기대한 만큼 향상되지 못했는데도 노임 수준이 올라갔고 과잉 인력이 정리되지 못한 데도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노조를 탓했다.

조선일보는 9월 11일자에 주한 외국 금융기관장 30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제목은 「“한국 외환위기 아니다” / 경제, 단기 불안… 중장기 전망은 밝아」였다. 3면 머리기사는 「대졸 취업난 최악 / 졸업예정자 절반 이상 ‘무직’ / 대학마다 비상… 동문·자치단체도 나서 / 취업희망 32만 명 일자리는 8만개」였다.

조선일보는 9월 18일자 1면 머리에 워싱턴 특파원이 캉드쉬와 현지 인터뷰한 기사를 「“한국경제 위기 아니다”」라는 큰 제목으로 대문짝만하게 실으면서 엉뚱하게도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국제사회가 적극 도울 것”이라는 그의 발언 내용도 소개했다. 제 발에 당장 급한 불이 떨어졌는데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IMF는 한국의 1997∼1998년 성장률을 6%로 예상하고 있다는 기사도 덧붙였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11월 해태와 뉴코아가 또 무너졌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11월 3일에도 전 국무총리 남덕우의 「경제, 비관할 것 없다」라는 시론을 실었다. 환율 상승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고 증시 불안은 일시적이니 일관된 정책만 펴면 비관할 것 없다는 얘기였다.

김영삼 정부는 11월 14일 극비리에 ‘IMF행’을 결정했다. 16일 캉드쉬 일행이 비밀리에 입국해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한국의 외환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한국은행 총재 이경식은 3백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캉드쉬는 대통령 후보들의 동의서를 요구했다.

그제서야 조선일보는 정확한 것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낌새를 눈치 챈 듯이 11월 16일자 사설(「신용 위기 극복하려면」)에서 비로소 “우리나라는 신용 위기에 몰려있는 것 같다”고 실토했다.

신용은 개인이나 국가에서나 모두 중요하다. 개인이 신용을 잃으면 사회 생활에서 낙오하기 십상인 것처럼 국가도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잃으면 위기를 겪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신용 위기에 몰려있는 것 같다.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의 장기적 지불 능력을 의심한 탓인지 좀처럼 돈을 꾸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 정부당국은 우리의 금융 개방 폭이 멕시코 등 다른 나라보다 그다지 크지 않고 경제 체질도 상대적으로 허약하지 않은 편이어서 금융, 외환 위기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역설해왔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은 금융 위기의 가능성이 적은 나라라고 지적해 우리 정부당국을 고무시켰다. 그런데 최근 며칠째 한국의 금융, 외환 위기 가능성에 대한 외국의 우려 표명이 잦아져 우리 재계나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 미국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과 (…) 미국연방준비이사회(FRB)의 그린스펀 의장도 동남아 국가 등의 외환 위기가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협조를 요구하면 우리를 도와주는 국제금융기관도 있을 법하다. (…) IMF라는 국제기구 자체가 국제적 금융 위기의 소방수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IMF의 지원은 검토할 만하다고 본다.

드디어 11월 19일자 조선일보의 ‘남 탓’ 타령이 등장했다. 사설(「이제 책임질 때」)을 통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자본시장의 현장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숨 막히는 자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때 아닌 금융 개혁 입법 소동으로 연일 사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이러고도 나라가 온전하다면 그것은 오로지 기적일 뿐이다”라고 질타한 것이다.

신임 부총리 임창열은 21일 밤 긴급회견을 갖고 IMF에 긴급 구제금융 지원을 공식 요청하기로 한 사실을 발표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IMF 총재 캉드쉬에게 전화를 걸어 자금 지원을 공식 요청했으며, 그로부터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임창열은 “구제금융 규모는 2백억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11월 22일자에 「IMF 돈」, 25일자에 「위기를 기회로 삼는 지혜」, 26일자에 「고통 없이 회생 없다」, 28일자에 「어려움 나누는 ‘합의’」「‘먹자판’도 그만하자」, 29일자에 「감원하기 전에」「대기업들의 외화 수입」, 12월 2일자에 「IMF 한파」「공무원들 왜 이러나」, 3일자에 「쓰다고 다 좋은 약 아니다」 등 구제금융 사태 관련 사설들을 쏟아냈다.

사설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체념’ ‘한탄’ ‘(고통)감수· 감내’ ‘긴축’ ‘내핍’ ‘절약’ ‘각오’ ‘극복’ ‘협조’ ‘단결’ 등이었다. ‘책임 추궁’도 빠질 리 없었다. 정치지도자, 은행, 공무원, 소비자, 노동자, 심지어는 국민들까지 “너무 먹는다”고 비난하면서도 조선일보의 사설들에서 언론에 대한 책임 추궁은 거론되지 않았다.

12월 24일자 사설(「허세, 거품 이제 그만」)의 논조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 우리나라가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서둘러 가입하고는 마치 선진국이 된 것처럼 샴페인을 터뜨리다가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전락한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게 보인다. 어찌 보면 국제사회에서 실속도 없이 우쭐대다가 창피를 당한 꼴이다. 물론 캐나다 등 선진국들도 일시적인 외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적은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우리 경제의 실상을 너무 과대평가하여 김영삼 정부의 과시욕에 놀아난 셈이어서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국제수지에 펑크가 나고 성장률이 둔화되며 실업이 증가하는 경제체제의 허약성을 외면한 채 OECD에 가입할 만큼 우리는 너무 허세를 부려온 것이 아닌가 모두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각 경제 주체들은 거품경제 시대의 사고방식에 젖어 안일하고 방만한 행동패턴을 보여옴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경제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가계의 적자가 늘어나는 추세인데도 불구하고 일부 국민들은 해외 여행과 수입사치품을 선호해 왔으며 대기업들도 덩달아 수출보다는 외제품 수입에 열을 올려왔다. 정부는 정부대로 예산 낭비와 선심행정을 일삼아 오면서 경제의 경쟁력 추락 조짐을 진솔하게 국민들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정치권도 정치싸움에 휩쓸려 국가 이익이고 경제고 뭐고 돌볼 겨를이 없었다.
꼭 해야 할 개혁조치를 놓고는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려 개혁 논리는 사회 논리, 정치 논리에 짓밟혀왔다. 노동법 파동이 그랬고 금융개혁법 파동도 그런 경우이다. 금융개혁법에 문제가 있다면 정치권과 국회의원들이 협의해서 보완입법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금융개혁법의 통과를 무산시키는 ‘정치적 배짱’이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법이다.

12월 25일자 사설(「위기를 기회로 삼는 지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제도적 현대화와 질적 성숙은 외면한 채 외형과 모양새 위주의 발전에만 계속 탐닉해 온 결과가 하루아침에 들통난 셈이다. 그것의 인과관계를 냉정하게 따지지 않고 당면한 고비만 요행히 넘긴다 해도 그것은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
한 사회의 잠재력이나 총체적 문제 해결 능력은 결국 지배적 그룹의 수준 이상 뛰어넘을 수 없으며 불행하게도 지금의 위기는 현 지배그룹의 관리능력 부재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정치적 리더십과 테크노크라트, 그리고 기업인들이 있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와서 정부는 기업에, 기업은 정부에 위기의 책임을 서로 전가하는 작태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정부가 엉뚱하게 가계와 소비자에 책임을 떠넘겨서도 안 되지만 스스로 과소비와 투기에 열중하면서도 항상 정부만 탓하는 무책임하고 분별없는 민간부문에도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
결국 지금의 우리 정부와 사회는 지난 30여년의 압축적 개발경제의 성장 유산을 제대로 관리하는 데 실패했으며, 그 가장 큰 이유는 개발시대의 가치 지향과 정책 자세로 새로운 변화와 질적 구조 전환의 시대를 관리하고 재단하려 했던 지배층의 오만과 미성숙에서 찾아야 한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때나 세계화를 주창할 때나 OECD 가입을 추진할 때나 누구보다 앞장서 풍각을 올려대던 것이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김영삼 정부의 과시욕에 놀아나서 그랬다고 변명하겠지만 정작 국민들은 조선일보의 ‘허풍 논조’에 놀아났다. ‘지배층의 오만과 미성숙’에는 조선일보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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