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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사건과 ‘평화의 댐’조선일보 대해부 4권 -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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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0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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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1천5백여 명이 연행된 건국대 사건

1986년 10월 28일 오후 건국대 민주광장에서는 전국 29개 대학 학생 1천 5백여 명이 모여 ‘전국 반외세·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 발족식’열었다. 학생들이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학교 주변을 포위한 1천5백여 명의 경찰이 최루탄을 난사하며 밀려들었다. 학생들은 본관 등 건물들에 피신해 농성에 들어갔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안전한 귀가를 보장하면 자진 해산하겠다”는 입장이라며 경찰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경찰은 그것을 묵살했다. 조선일보는 그 소식을 10월 29일 11면에 주요 기사로 올렸다. 10월 30일자 1면 머리에는 농성학생 전원을 연행하기로 했다는 검찰의 발표 내용을 싣고, 2면에 「자유를 위한 우리의 선언 / 절실한 생존권과 민주의 이름으로」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10, 11면에는 「건국대 사태에서 나타난 대학가 유인물 분석 / 반공 분쇄 등 북괴 주장 모두 등장」이라는 관련 기사들에서 학생들을 ‘북괴 동조세력’으로 매도했다.

작금의 학생운동 일각에 등장한 벽보며, 구호·선언문 및 행동양식에 우리는 정면으로 반박의 뜻을 표하고자 한다. 첫째, 6·25 전쟁은 ‘반미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망발을 규탄한다. 6·25는 북한 공산침략자들의 몸서리쳐지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던 민주진영의 해방투쟁이었다. 6·25를 반미 해방 투쟁으로 보는 시각은 북한의 6·25 남침을 ‘해방’으로만 간주할 때 성립하는 논법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용공주의자들이나 할 소리지, 반공주의자들이라면 이런 소리를 할 이유가 없다.
둘째,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깨부수자”고 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할 수 없다. 왜 반공을 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우리 국민의 절대다수가 노동계급의 독재를 빙자한 공산당 1당의 무자비한 억압과 탄압의 체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 셋째, 그들이 말하는 ‘미제 축출 운운’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물론 완전한 자립을 지향한다. 그러나 공산화의 위협이 상존하는 한에는 미국과의 안보 유대는 절대로 필요하다. (…) 넷째, 분단의 책임이 미국과 반공진영에만 있었다는 주장은 전적인 허구이다.
(…) 이러한 체제 부정 세력의 대두를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우선, 설득의 시대는 갔다는 사실을 비통하게 절감한다. 이제는 매사에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할 때가 됐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존립을 지탱하는  몇 개의 기본조건들-광의의 반공노선, 자본주의 경제, 자유민주주의체제 지향 등-을 지지하고 존중하면서 민주화를 추구하느냐, 아니면 일차적으로 ‘민주화’를 내세우지만, 궁극적으로는 반공의 전제 틀을 모조리 깨부수고 북  한 주도의 통일의 길을 트는 방향으로 나가느냐, 하는 양편으로 분명하게 갈라서야 한다는 것이다(10월 30일일자 사설).

(…) 28~29일 양일간 건국대 시위 때 뿌려진 유인물에 나타난 일부 학생들의 주의·주장은 북괴의 그것을 그대로 원용하거나 옮겨놓은 것이어서 사태가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입증했다.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이 일부 학생들에 의해 본래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 좌경화 용공으로 기울더니 급기야 “반공이데올로기를 까부수자”는 주장이 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한마디로 ‘김일성 만세’라는 구체적 표현만 나오지 않았을 뿐, 건국대에 뿌려진 5종의 유인물은 일부 학생들이 북괴의 동조세력으로까지 발전했다는 분석까지 가능하게 하고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갈망하는 학  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순수한 학생과 이들을 구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인물에 나타난 일부 학생들의 현대사를 보는 시각은 북괴의 시각과 그대로 일치하고 있다(10월 30일자 10면 기사).

학생들이 단수와 단전 그리고 한파를 버티며 농성을 한 지 4일째인 10월31일 오전 경찰의 대규모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그때 동원된 경찰병력은 무려 8천5백 명이었다. 학생들이 농성을 벌이던 건물들은 헬기와 고가사다리에서 쏘아대는 최루탄과 최루액, 그리고 육상의 경찰이 쏘는 최루탄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검찰과 경찰은 그 진압작전으로 1천5백25명의 학생들이 연행했고, 1천2백74명을 구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그 과정에서 학생들을 ‘친북 공산혁명분자’로 규정한 전두환 정권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평화의 댐’의 실체

경찰의 건국대 진압작전이 벌어지기 하루 전인 10월 30일 정부는 국민에게 수공(水攻)의 공포를 자아낸 ‘평화의 댐’ 사건을 발표했다. 건설부장관 이 규호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휴전선 북방 금강산 부근에 건설 중인 댐이 한강 하류지역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금강산댐 건설계획을 즉각 중지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그 배후는 북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던 안기부였다. 조선일보는 그 내용을 10월 31일자 1면 머리에 올리고, 2면에는「<가공할 금강산댐/ 이독제독의 적극적 대응책을」이라는 사설과 함께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3면에는 건설부장관의 일문일답 등을 내보냈다.

(…) 그들은 언필칭 평화적인 목적을 위한 발전소 건설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 수많은 군 병력을 이 평화목적 산업에 전용할 것이라고 선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적어도 한 물줄기를 생활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이웃, 그곳도 남 아닌 한 핏줄의 동족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일을 추진해야 납득이 갈 것이다. 그들이 만약 알려진 대로 북한강 상류의 수자원을 남으로부터 동북방향으로 역류시키게 된다면 당장 같은 수계로부터 남쪽 화천 방면으로 흘러 들어오던 연간 18억t의 공업·농업·생활용수는 고갈될 것 아닌가.
(…) 더욱 문제인 것은 그들이 남쪽에서 역류시킨 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높이 2백m의 댐을 필요로 하며 그 저수능력은 2백억t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우연 또는 인위적으로 파괴될 경우 민족의 젖줄인 한강유  역은 순식간에 가공할 수마에 뒤덮이고 말 것이다.
(…) 일은 이미 크게 벌어지고 있다. (…)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저들이 전개하는 악의 논리와 악마적 기도를 우리는 사전에 막아야 하는 것이다. 막는 데 그칠 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대응책도 아울러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적 역량의 총 결집이 절실히 필요해진다(10월 31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각계 전문가들과 건설부장관의 인터뷰를 통해 금강산댐의 ‘공포스런’ 결과를 예측하는 내용들을 쏟아냈다. 국방장관은 이기백은 “2백억t의 물이 일시에 방류된다면 등고선 50m까지 물에 잠기는 등 중부 일원이 황폐화된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공포 경쟁’에 나섰다. “2백억t의 물이 덮치면 63빌딩 절반 정도가 물에 잠긴다” “남산 기슭까지 물바다가 되며 원폭 투하 이상의 피해” “한강변 아파트는 완전히 물에 잠긴다”’는 등의 보도가 난무했다. 지역별로 금강산댐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들이 계속됐고, 서울에서도 10만이 모인 시민궐기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조선일보의 사설대로 나온 대안이 홍수 조절을 위한 ‘평화의 댐’이었다. 이번에는 각 언론사가 댐을 건설하기 위한 모금운동에 나섰다. 교도소의 재소자들까지 참가한 성금은 6개월 만에 약 7백억 원에 이르렀다. 그렇게 착공된 ‘평화의 댐’은 1988년 5월에 1단계 공사를 마쳤다. 그러나 1993년 6월 감사원의 감사 결과 ‘평화의 댐’은 조작된 정보에 따른 것임이 드러났다. 전두환 정권의 안보를 위한 범죄적 행위와 언론의 나팔수 역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였다.


세계적 오보 ‘김일성 사망’

조선일보가 1986년에 저지른 최대의 오보는 ‘김일성 사망’ 뉴스였다. 11월16일자 조선일보 1면에 나온 「김일성 사망설」이 시발점이었다. 조선일보는 휴간일(월요일)인 11월 17일자로 「김일성 총 맞아 피살」이라는 호외를 발간했다. 조선일보는 그것을 <조선일보 세계적 특종-16일자에 최초로 보도>라는 제목으로 자랑했다.

호외는 “조선일보사가 16일자에서 김일성의 피살설을 세계 최초로 특종 보도했다. 김의 피살설이 처음 들어온 것은 15일 오후 9시 30분께였다. 본사 김윤곤 특파원은 일본 정보소식통으로부터 김이 피살된 것 같다는 첩보를 입수,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여러 증상이 나타나 이를 긴급 본사에 송고, 세계적인 특종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 신문들도 17일자 조간에서 본지를 인용, 김의 피살설을 보도했다”고 전했다.

[동경=김윤곤 특파원]북한 김일성이 암살되었다는 소문이 15일 나돌아 동경 외교가를 한동안 긴장시켰다. 일본 공안관계자들은 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갖가지로 시도했으나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소문의 내용은 중공 국가주석 이선념이 지난달 초 평양을 방문하기 전에 북한군 일부에서 김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암살 기도 가담자들은 중공으로 도주했으며 북한이 중공 측에 대해 이들을 돌려줄 것을 요구해오던 중 이 사건에 가담했던 나머지 일파들이 결국 김을 암살했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11월 16일자 1면).

북괴 김일성이 총 맞아 피살됐거나 심각한 사고가 발생, 그의 사망이 확실시된다. 휴전선 이북의 선전마을에는 16일 오후부터 반기(半旗)가 게양되었으며 휴전선의 북괴군 관측소 2개소에선 이날 “김일성이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했고 4개소에선 “김정일을 수령으로 모시자”는 대남방송을 했다.
또한 북괴를 방문 예정이던 몽고 등의 국가원수 일정이 취소되었으며, 통상 김일성 이름으로 외국에 보내던 메시지가 중앙위원회 이름으로 바뀌었다. 판문점에도 반기가 게양되었으며, 전방의 북괴군 영내에도 반기가 게양돼 있다(11월 17일자 호외).

조선일보는 11월 18일자에 1면 머리기사(「‘김일성 피격 사망-북괴 권력투쟁 진행 중>)로 김일성 사망을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그 날짜 조선일보는 12개 면 중 2개면에 「김일성 피살설」이라는 통단사설 등을 싣고 7개면에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그야말로 ‘소설’에나 나올 법한 온갖 김일성 관련 소식들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 이 시각 현재, 평양의 관영언론들은, 방송·신문 할 것 없이 김일성의 횡사 사건에 대해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김의 피살 사건에 대한 평양 관영언론들의 침묵은, 그것이 어김없는 진실이었다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통제의 속성에 묶여 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 김일성 피살설 이후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까지,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김 부자의 세습체제에 반기를 든 군부의 거사가 확실하다면, 이미 김정일까지도 제거됐거나 감금 상태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 그런가 하면 북괴군의 확성기 방송들의 다소 상이한 내용으로 미루어, 군의 일치 결속된 김일성 살해 거사는 아닐 수도 있어, 김의 살해를 계기로 북괴군 내부에 김정일 옹호파와 그 반대파로, 분열 현상이 심각히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등의 추측은, 김의 살해 주동 역할을 군에 국한해서 보는 관점에서의 추리이다.
(…) 어쨌든 김일성 사망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우리의 입장에서는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의 안온한 처지만이 될 수 없다. 김일성 개인의 독창이건, 소위 전 인민적 궐기에서건, 원자폭탄 못지않은 타격을 남쪽에 가할 수 있는 이른바 ‘수공(水功) 전략’의 흉계까지 꾸며내는 북쪽 유물론자들의 철학이 변하기를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11월 18일자 사설).

그러나 그 ‘세계적 특종’은 첫 보도 후 불과 48시간 만에 ‘세계적 오보’로 판면되고 말았다. 원래 일본 공안조사청이 11월 15일 김일성 암살 첩보를 입수했고, 11월 16일자 조선일보가 제1보를 낸 다음 17일 국내 언론들이 그 사건을 뒤따라 보도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11월 18일 오전 10시 김일성이 몽고 공산당 서기장 영접을 위해 평양공항에 나타남으로써 그 ‘특종’은 오보로 드러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선일보의 태도였다. 조선일보사는 오보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그 책임을 북한에 떠넘겼다. “수령의 죽음까지 고의로 유포했다” 것이 조선일보의 주장이었다. 조선일보는 11월 18일자에 「김일성 피격 사망」을 보도한지 하루 만인 11월 19일자에 「김일성은 살아 있었다」는 기사를 내면서도 2면 사설(「북괴군 방송극 진의?」)에서는 ‘북한의 변괴’를 여전히 확신하는 등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 김일성 피살설이 처음 나돌기 시작한 것은 동경에서였다. 그러나 김의 피살 가능성을 보다 유력하게 뒷받침해준 것은, 휴전선 북방의 북괴군 확성기 방송에 의해서였다. 그 내용은 어제 본란이 인용한대로 “북괴는 16일 전방지역에서 대남확성기 방송을 통하여 김일성이가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방송을 실시했다”는 짤막한 것이었다.
(…) 일부에서는 이른바 ‘심리전’용 방송일 것이라는 해석을 시도하고도 있지만, 이와 같은 ‘심리전’이 우리 측에 주는 실질적 또는 전술적 효과가 무엇일 것이냐를 교량해볼 때, 이러한 해석의 입론 근거는 설득력이 박약한 것이 된다. 더구나 ‘살아 있는 신’인 ‘위대한 수령님’의 사망을 허구로 꾸며서까지, 심리전에 활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도시 나올 수 없는 북한사회이고 체제임을, 우리는 남북대화의 평양 왕래 체험을 통해 무엇보다도 지겹게 또 명백하게 알고 있는 터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결국 나올 수 있는 해답은, 분명히 북의 사회에 그 어떠한 변괴가 일어났음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그것이 군 일부의 반란일 것일 수도 있고, 당료와 군 일부의 결탁에 의한 모반일 가능성도 있으며, 그 진상을 적확히 알아내어야 하는 것이 이제부터의 우리의 최대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다(11월 19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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