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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올림픽과 전두환의 방일조선일보 대해부 4권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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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0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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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가장 흥분한 LA올림픽

조선일보는 다방면에서 전두환 정권의 주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5공 정권의 특징으로 지목된 3S(스포츠, 섹스, 스크린) 정책에 대한 지원도 그 중 하나다. 1984년 7월 29일 개막된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에 대한 조선일보의 대대적 보도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7월 29일자 1면 머리에 「LA올림픽 오늘 개막」이라는 기사를 크게 올리고 거의 모든 면에서 올림픽 기사를 다루었다. 미국의 신문들보다 더욱 법석을 떠는 모양새였다. 더구나 조선일보는 신문이 나오지 않는 7월 30일자에는 올림픽 호외를 발간하는가 하면 이후 8월 13일 폐막 때까지 10차례에 걸쳐 호외를 더 내는 ‘기염’을 토했다.

조선일보가 얼마나 법석을 떨었는지는 취재기자의 <기자수첩>이 그 일면을 보여준다. 그 기사 내용은 미국 신문들이 자기 나라의 올림픽 개막소식조차 1면 머리기사로 올리지 않은 데 대한 실망스러움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LA올림픽 보도」라는 제목의 기자칼럼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23회 하계올림픽이 화려한 개막식과 함께 시작됐다. LA 현지시각으로 28일 오후 4시 30분, 우리 시각으로 따져 29일 오전 8시 30분에 시작된 개막식은 과연 지상 최대의 쇼라는 찬사를 들을 만큼 화려하고 장엄한 것이었다.
(…) 예상했던 대로 개막식이 끝난 뒤인 29일 오후에 UPI통신이 타전한 세계의 표정은 LA올림픽 개막기사 일색이었다. (…) 그러나 어느 나라보다 크게 LA올림픽을 취급할 것으로 기대했던 주최국 미국 주요 신문들의 머리 기사는 의외로 LA올림픽이 아니었다. 뉴욕타임스는 레바논 사태에 대한 보도가 1면 머리기사였으며 워싱턴포스트는 미·소 우주무기회담이었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 역시 올림픽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의 더 타임즈는 영·중공 간 홍콩문제 협상이었고 북경의 주요 뉴스는 미·소 무기회담 관련 기사였다. 미국의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에 대한 보복으로 동구 공산권 국가들과 함께 LA올림픽에 불참한 소련의 주요 뉴스가 LA올림픽이 아닌 것은 오히려 당연한 듯도 보였다. 다음 번 올림픽 주최국으로서 대규모 취재단을 파견하고 호외를 발행하기 위해 외 신텔렉스를 지켜보던 기자는 맥이 빠지는 듯한 느낌을 숨길 수 없었다(7월31일자 3면).

조선일보를 포함한 한국의 언론사들이 LA올림픽에 대한 과잉보도를 어떻게 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KBS와 MBC 등 방송사들의 열띤 올림픽 보도 경쟁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두 방송은 여의도 광장에서 ‘LA올림픽 개선 국민축제’라는 초호화판 대형 쇼를 공동으로 벌였다. 2천명의 대형합창단과 조용필 등 인기 연예인이 총출동한 놀자판은 그야말로 5공의 정치문화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LA올림픽 개막식 날부터 88올림픽을 상기시켰다. 7월 29일자부터 「88개최국으로서 할 일이 많다」등의 사설을 잇달아 실었다. 1984년 LA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걱정하고 올림픽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논조였다.

84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개막을 즈음해 우리는 국제적 국내적 두 갈래의 관심에서 소망을 피력하고자 한다. 국제적 관심은 바로 88서울올림픽을 앞둔 우리로서 소련을 포함한 일부 공산권 불참의 파행올림픽이 이번만으로써 종식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련 불참의 이유로서 모스크바올림픽에 미국이 불참한 데 대한 보복과 집권한 지 일천한 체르넨코가 레이건 정권에 대한 강경정책으로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다지려는 저의를 들고 있는데, 그 같은 정치적 감정적 처사로 숭고한 올림픽정신이 오염돼서는 안 되고, 또 세상의 양식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 국내적으로는 이번 올림픽에 사상 가장 많은 선수와 임원단을 파견한데 대한 유형무형의 대가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외채가 많은 나라로서 그토록 많은 선수를 파견한 데 대한 논란이 없지 않았다. (…) 선수들은 나라를 대표하질 않고 자기 개인을 대표해야 한다는 올림픽 내셔널리즘을 부정하는 이상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하나, 아직은 나라를 대표해서 나라의 명예와 자랑과 긍지를 과시하는 자세로 임하여 야 할 것이다(7월 29일자 2면 사설).

29일 세계 25억 인구가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시엄을 주목했다. 통신기술의 발달과 TV 보급의 공헌 때문이지만, 이처럼 장장 3시간 반 동안에 펼쳐진 지상 최대의 쇼를 최다 관객이 동시에 구경한 전례는 없을 것이다.
(…) 올림픽 개회식이 회를 거듭할수록 규모 면이나 창의적인 연출 면에서 나 화려하고 장엄한 축제로 승화되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메달이 걸린 운동경기 못지않게 주최국은 심혈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도, 4년 후의 주최국인 우리로선 남다른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다.
(…) 불과 4년 뒤에는 서울에서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다. 우리는 세계를 하나로 묶으면서 한국의 인상을 돋보일 어떤 기획과 연출을 해야 할 것인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경기에서의 금메달 따기보다도 더 귀중하고 어려운 일이 훌륭하고 멋진 개막과 폐막식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범벅이 된 가운데 우선 보름 후의 폐막식도 주의 깊게 보아두고 싶다(7월 31일자 2면 사설).


전두환이 방일에서 노린 것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었던 전두환의 일본 방문은 그 개인과 정권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홍보 기회였다. 전두환은 9월 6일 2박3일 예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일왕 히로히토 등과 회담했다.

조선일보는 9월 6일자 1면 머리에 전두환의 일본 방문을 예정기사로 내보냈다. 그리고 그가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뒤까지 4일 동안  홍보성 기사를 쏟아냈다. 전두환을 빛내기 위한 의도성 과장 보도는 물론이고 일본왕의 과거사에 대한 ‘유감’ 표시를 ‘사과’ 발언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전두환이 도쿄로 출발하기도 전인 9월 6일자신문에서 전두환의 일본 방문 전날 도쿄의 표정을 ‘전례 없는 일’로 전하는가 하면 사설에서는 ‘한·일 신시대’로 그 의미를 한껏 부풀리고 있다.

전두환 대통령을 맞이할 일본의 수도 동경에는 전례 없는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경비가 삼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황(日皇)과의 만찬을 비롯한 공식 모임에서도 한국 대통령을 맞이하는 일본 측의 대응은 전례 없는 것들뿐이다.

기자의 눈에는 한·일관계가 가장 좋았던 17~18세기 사이의 조선통신사 이래 처음 보는 환대가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려 하고 있는 것 같다. 전 대통령의 방일 전 날 동경의 표정을 살펴본다.<동경=이도형 특파원)(9월 6일일자 5면 머리기사).

전두환 대통령은 6일, 2박3일 간의 역사적인 일본방문 길에 등정한다. 전 대통령의 이번 방일은 현해탄의 양안에서 ‘한-일 신시대’란 말로 표현되고 있다. 신시대란 낡은 것을 청산한다는 뜻도 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도 된다. 따라서 전 대통령의 방일은, 청산과 창조의 두 역사적 과제를 동시에 집약하는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청산되어야 할 낡은 것이란, 한말에서 70년대까지의 약 1세기 간의 양국관계를 전부 포함할 수도 있다. 개인에 따라서는 이 시한이 더 커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산술적인 의미의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동안 있었던 불행했던 양국관계의 암부(暗部)이다. 전 대통령의 방일은 바로 그 역사적인 암부를 치유케 하려는 적극적인 외교노력으로서 이해된다(9월 6일자 2면 사설).

9월 6일부터 8일까지 전두환이 일본을 방문하는 동안 조선일보는 엄청난 양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9월 9일자부터는 「역사의 아픔을 넘어서…」라는 시리즈를 1면에서 시작하고, 전두환의 방일을 결산하는 사설과 함께 기자방담 등을 보도했다. 그 내용들은 여전히 전두환 중심의 보도와 그 성과의 홍보에 집중돼 있다.

조선일보는 기자방담 제목을 「어떤 외국 원수도 못 겪은 동경 열기」, 스케치기사 제목은 「경호경비 레이건 방문 때의 2배」라고 뽑았다. 그러나 그렇게 요란한 보도에도 불구하고 한일 공동성명에서 드러난 내용은 ‘상호 노력한다’는 외교적 수사가 주를 이루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 성과가 8일 발표된 ‘한·일 정상 공동성명’으로 집약되었다. 전체적으로 성명은 양국관계의 전망에 관해 우호적이고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정치·안보적인 기본인식에 있어 성명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긴요하다”고 재확인했다. (…) 이를 위해 성명은 “금후에도 상호 노력한다”고 말했는데, 일본이 과연 무슨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관심사항일 것이다.
(…) 지금까지 일본 측은 자국 경제의 민간주도적 구조를 상기시키면서, 무역 역조의 시정이나 기술 이전 문제가 비정부적 사항인 것으로 설명하곤 했다. (…) 일본이란 나라가 민간 기업들이 주도하는 경제구조를 취하고 있음은 우리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한반도의 번영을 위해 금후에도 상호 노력한다”고 언명한 것이 진실인 한에는, ‘무역’과 ‘기술’ 문제를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밀어놓을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 성명엔 끝으로 교포문제에 관해 “금후에도 노력을 계속할 것”을 일본 측이 언약하고 있다. 우리의 재일동포가 일본사회의 불평등한 소수민족으로 계속 남아 있느냐, 지위가 향상되느냐 하는 것은, 일본에 대한 한국 국민의 심정적 자세 여하를 가름할 것이다(9월 9일자 2면 사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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