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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피격과 아웅산 테러조선일보 대해부 4권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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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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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 격추된 KAL기

KBS의 이산가족 찾기는 1983년 11월 14일까지 계속될 만큼 국민적 호응을 받았고 6·25에 대한 아픈 기억을 또 다시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 이산가족 찾기가 계속되던 8월 31일 뉴욕에서 김포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007편이 소련군의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KAL기가 격추된 사실을 처음 알아낸 것은 미국 정부였다. 일본에 있던 미국 첩보기관이 무선교신 감청을 통해 밝혀낸 것이었다. 미국은 KAL 007편이 일본 북부에서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으로 들어간 뒤 사할린 부근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에 맞아 격추됐다고 발표했다. 그 여객기에는 2백40명의 승객과 29명의 승무원 등 모두 2백69명(한국인 85명, 중국인 42명, 일본인 27명, 미국인 21명 포함)이 타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그 소식을 9월 2일자 1, 2, 3, 4, 10, 11 면 등 6개면에 걸쳐 보도하고 「소련의 만행을 규탄한다」라는 사설을 실었다.

(…) 전시도 아닌데 민간여객기나 여객선에 발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천인공노할 처사이다. 아무리 칠흑 같은 밤이라 해도 현대의 과학기술과 정보기능은 군용기와 민항기를 식별하기에는 충분하다. 무장을 하지 않은 점보 민항기를 적대시 하여 공격했다면 현대과학과 인륜이 함께 통곡할 일이다. (…) 우리는 이 범죄인이 비인도적 적색 공산주의에 물든 소련인의 소행이라고 단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련다.
정상 항로를 유지했었는지, 아니면 설혹 벗어나서 영공을 침범하였다고 하더라도 경고조치도 없이 기계적인 응사를 하였다는데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버튼 하나를 잘못 누르면 핵전쟁이 일어나 인류는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KAL기의 피격·격추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세계적인 공포요 불안인 것이다. 단순한 국제법 위반의 법률적 사항으로 실속 없는 왈가왈부에 그쳐서는 아니 될 일이다(9월 2일자 2면 사설).

조선일보는 9월 2일 이후 며칠 동안 거의 모든 지면을 KAL기 피격 사건에 관한 보도에 할애했다.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는 전두환의 특별담화 발표와 유엔안보리 긴급 소집에 관한 소식들을 전했다. 전국에서 소련을 규탄하며 분노하는 각종 대회가 벌어지는가 하면 민간단체와 기업들의 소련 규탄 광고가 신문의 지면을 장식했다. 해외에서 소련을 비난하는 목소리들도 소개되었다. 조선일보는 9월 2일자부터 8일자까지 일주일 동안 매일 사설을 1~2편씩 내보내는가 하면 칼럼 등을 통해 소련과 공산주의를 비난했다. 지면은 온통 KAL기 피격과 소련에 대한 비난기사로 채워질 정도였다.

KAL기 격추 사건에 관한 소련의 정부성명이란 것이 그제께 발표되었다. 만행 후 6일 동안 딴전을 부리며 요리조리 피해오던 그들은, 들끓는 세계의 여론을 통째로 외면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 성명에서 소련은 불분명한 표현이기는 했으나 KAL기 격추 사실을 시인했다.
(…) 그들은 KAL기가 통항등을 켜지 않고 있었으며 교신신호에도 응답하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미·일의 감청장치에 의해 백일하에 밝혀진 거짓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소련기 조종사가 지상과의 교신에서 ‘운항등이 켜져 있다’ ‘섬광등이 반짝인다’고 말한 사실, KAL기와의 교신 시도 흔적이 없는 사실, 발견 직후 ‘조준·발사·파괴’를 지상 지휘소에 보고한 사실 등이 녹음테이프에 낱낱이 수록돼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련의 비열성을 드러내는 것은, KAL기가 “미국의 더러운 음모에 이용됐다”면서 미국을 비난하고 미국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점이다. 첩보위성이나 특수첩보기로 반자 높이의 모든 지상물까지 알아낼 수 있는 미국이, 미쳤다고 우방국의 민간기, 그것도 다수의 자국민을 포함한 2백69 생명을 태운 여객기를 첩보기로 사용할 것인가(9월 8일자 2면 사설).

KAL기 피격을 두고 미·소 간에 벌어진 ‘민간 첩보기’ 논쟁은 또 다른 논쟁을 불렀다. 그 사건은 이로 인해 수많은 음모론을 양산해내면서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KAL기가 피격된 몇 주 후에 뉴욕타임스는 소련이 격추 당시 KAL기가 민간항공기인지 몰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이 음모론들을 둘러싼 진상을 알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분명한 것은 소련의 KAL기 격추는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에게 큰 정치적 선물을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반소감정이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이를 통해 레이건은 대외정책에서 강경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관련 정책에 있어 의회 승인을 얻는 데 결정적 도움을 받았다. 결국 이 사건의 진상은 KAL기가 운항미숙으로 소련 영공으로 들어갔고, 소련 대공부대 사령관이 첩보비행을 하는 것으로 판단해 격추 명령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아웅산 테러와 남북관계

KAL기 피격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0월 9일 전두환을 겨냥한 폭탄테러가 버마의 수도 랭군에서 발생했다. 버마 독립전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웅산의 묘역이 테러의 목표 지점이었다. 그날 오전 10시 28분 전두환이 도착하기 직전 묘소 참배를 위해 도열해 있던 수행원들인 경제부총리서석준을 비롯해서 16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전두환은 나머지 일정을 중단하고 10일 새벽 급히 귀국했다. 결국 그 사건으로 부상자 1명이 더 사망함으로써 사망자 수는 17명으로 늘었다. 조선일보는 10월 10일자로  그 사건을 알리는 호외로 발행하고 11일부터 13일까지 거의 모든 지면을 통해 관련 소식과 사설 등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당초부터 북한의 범행 가능성을 지목했다.

무어라 말을 할 것인가. 다만 하늘을 우러러 엄청난 비극을 영탄할 따름이다. 슬프다고 말하기도 부족하고 경악이라 말하기도 미흡하다. (…) 묘소에 도열했던 가신 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위엔 자당들과 유자녀들의 오열하는 모습이 포개진다.
비극은 또한 우리 모두의 것이며 대한민국의 것이다. 국가원수를 지목한 공격이며 정부에 가해진 도전이다. 주권에 대한 침범이요, 선전포고 없는 기습이다. 한 나라 최고 통치자의 공식 외교 행렬에 이런 참변이 발생하다니, 상식과 양식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버마당국의 소홀한 경호에 항의의 뜻을 표한다. 외국의 국가원수가 방문할 행선지엔 철저한 사전 답사와 안전대책을 선행시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다. 이것이 아웅산 묘소에선 어째서 완벽하지 못했는가.
흉계의 장본인은 북괴집단이란 심증이 짙어진다. 버마 내의 내통자들이 흉계의 공범자로 가담했는지도 모른다. 국제적인 폭력집단이 흉행의 하수인으로 매수되었는지도 모른다. 진상 여하 간에, 철저한 색출과 해명의 책임을 버마당국은 지고 있다.

버마당국은 사건 발생 후 한 달 가까이 지난 11월 4일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이 북한 군부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사건으로 버마는 북한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버마 주재 북한대사관 요원들에 대해 48시간 이내에 출국하도록 명령했다. 조선일보는 11월 5일자 1면 통단기사를 통해 범인들은 북한의 특수부대원들로 1명은 사살되고, 2명이 생포됐다고 전했다. 같은 날짜 2면에는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사설이 올랐다.

북괴의 아웅산 암살폭파사건이 드디어 버마정부에 의해 공인되고, 전 세계에 공포되었다. 사건 후 실로 한 달만의 일이다. (…) 우리로서는 이미 다 판별하고 남은 만행이었지만 버마정부의 공식 발표에 접하게 되니 새삼 경악과 격분의 감을 금할 수 없다.
(…) 버마정부의 공식발표로써 랭군 참사의 테러범이 누구며, 그들이 어디서 들어왔고,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었음이 전 세계 모든 나라에 확인된 것이다. 평양의 김일성 도당은 그들의 국제적 범죄행위를 은폐해보려고 그 동안 철면피한 모략선전을 세계를 향해 시도했던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거짓말도 갈팡질팡, 어떤 때는 남한당국이 남북 간의 긴장을 격화시키기 위해 한 음모라느니 실로 후안무치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의 테러행위 동기와 함께 전두환의 버마 방문에 의구심을 보이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버마가 남북한 동시수교국이기는 했지만 북한에 편향된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당초 전두환의 서남아 및 대양주 순방에는 인도와 호주, 뉴질랜드 등 3개국만 포함되었는데 막판에 버마가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5공의 핵심부는 버마 통치체제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으며 전두환의 버마 방문은 그 나라의 실력자인 네윈의 통치체제를 현장에서 경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그것은 1988년 이후 권력구도를 염두에 둔 사전 준비의 성격이었다는 분석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레이건, 한국에서 선물 얻다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지 불과 며칠만인 11월 11일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3일 간의 예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소련의 KAL기 격추 사건과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은 레이건의 강경한 대외정책 수행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한미관계의 돈독함을 보이는 기회이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그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조선일보는 레이건 방한 소식을 11월 12일자 1면 머리에 싣고 “북괴의 어떤 군사적 도발도 미국의 직접적이고 단호한 군사적 반격에 직면할 것”이라는 미 고위관리의 말을 보도했다. 같은 날짜 2면 사설(「한미관계의 새 차원을」)은 한미 안보협력을 강조했다.

(…) 지금 미·소 간의 긴장상태는 극도로 격화되고 있으며 그 여파는 세계 도처에 미치고 있다. 그리하여 레바논, 카리브해, 호르무즈해협, 중미, 한반도 등 분쟁지역에서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감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최근 소련군에 의한 KAL기 격추 사건과 평양의 테러분자들에 의한 랭군 암살폭파 사건은 한반도의 긴장을 절정에까지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의 광적인 폭력지상주의자들이 그 어떤 착각에서 전쟁을 도발한다면 그 결과는 실로 끔찍한 것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런 때 동북아의 화약고라 할 한반도에 레이건 대통령이 찾아와 남북 간에 조성된 위급한 상황을 직접 살펴보고, 한·미 정상회담과 외상회담 등을 통해 평화를 위한 대책을 재확립한다는 것은 실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일이다. 전하는 바로는 레이건 대통령은 2박3일의 짧은 일정에서나마 전두환 대통령과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지는 한편 전방지역을 시찰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레이건 대통령이 남북 간의 긴장상황과 한반도의 중요성을 보다 생생하게 파악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레이건은 11월 13일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다. 그는 DMZ 내 미군 최전방 관측소를 돌아본 뒤 휴전선을 배경으로 주한미군부대에서 연설하는 등 마지막 방문일정을 보냈다. 조선일보는 그 소식을 1월 15일자 1면부터 대서특필했다. 특히 1면에 쌍안경을 통해 북녘을 바라보는 레이건의 사진을 크게 싣고 긴 사진설명을 곁들였다. 레이건의 DMZ 방문은 그가 노령에도 강인한 모습을 미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1984년 대통령선거에서 압승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되었다. 레이건으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한국 방문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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