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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시청률 올린 이산가족 찾기조선일보 대해부 4권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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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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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 최대의 관심을 모은 사건 중 하나는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었다.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KBS 1TV를 통해 특별 생방송된 이산가족 찾기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는 새벽 1시까지 예정됐던 방송시간을 3시까지 연장했다. 시민들의 반응이 폭발하자 KBS는 모든 정규방송을 취소한 채 5일 동안 ‘이산가족 찾기’라는 단일 주제로 릴레이 생방송을 진행했고 그 기간에 78%라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산가족 찾기 방송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그해 11월 14일까지 총 4백53시간 45분 동안 방영되는 기록을 남겼다. 모두 10만9백52건의 신청이 접수돼 1만1백80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한국방송공사 사옥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가족을 찾는 벽보가 수없이 나붙었다. 그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고 국제적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조선일보는 시민 반응이 뜨거웠는데도 당초 그 소식을 7월 1일자와 2일자 사회면의 가십란에 1단으로 간단히 처리했다. 그러나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 대한 폭발적 호응이 나타나자 7월 3일자부터는 「누가 천륜을 막을까」라는 사설, 그리고 칼럼이나 주요 기사로 뒤늦게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30일 밤 10시 15분에 시작된 KBS TV의 특별기획 ‘이산가족 찾기’의 가족 찾아주기 생방송은 8백여 명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소개, 여러 가족을 상봉시키면서 1일 새벽까지 생방송을 1시간여 더 연장해야 했다.
(… )가족찾기 신청자들은 접수번호 순으로 제가끔 찾는 가족, 헤어진 때, 장소, 찾는 사람의 특징 등을 적은 푯말을 가슴에 걸고 소개되었는데, 방송이 진행되면서 공개홀에 마련된 10대의 전화가 계속 울리고 지방 방송망으로 가족이 연결되는 등 감동적인 상봉 장면이 계속되었다.
(…) 가장 먼저 소원을 이룬 신영숙(40) 씨는 1·4 후퇴 때 부산서 헤어진 4촌 남매 8명을 찾고자 했는데, 이 중 부산에 있는 1명을 제외하고 서울에 거주하는 7명이 방송을 시청한 즉시 서로 연락, 자녀 등 모두 15명이 떼지어 공개홀에 나타나 신 씨와 얼싸안고 눈물 속에 기쁨을 나누었다.
이날 가족 찾기를 신청한 사람들의 70%는 1·4 후퇴와 6·25 당시 헤어진 가족들. 이중엔 어렸을 때 헤어져 서로 마주보면서도 가족이란 확신을 갖지 못하고 몸의 상처 특징, 옛 추억 등을 더듬어 말을 맞춰보고서야 가족임을 아는 경우가 많았다(7월 1일자 사회면 <색연필>난).

그것은 통곡이었다. 기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 만개의 바늘과 칼끝이 가슴을 갈기갈기 저미는 아픔이었다. 누가 이들을 그토록 통한에 몸부림치게 만들었는가. KBS가 방영한 이산가족들의 해후 장면을 보고 산천도 울었고 초목도 흐느꼈다. 얄타협정이 이것을 봐야 하고 38선이 봐야 하고, 스탈린, 김일성, 세계의 냉전체제가 이것을 봐야 한다.

(…) 이 부둥켜안으려는 이산가족들에게 만약 정치가 무어냐고,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고 하자. 이 오열하는 이산가족들에게 어느 북한의 공산당원이 다가가 혹시 ‘미군이 철수하고 남한에 인민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는 남북 간의 이산가족 찾기를 재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가정하자.
그럴 경우 그 혈육을 찾는 순진무구한 ‘인민’들이 그 말을 듣고 과연 뭐라고 울부짖었으리라고 북한 공산집단은 생각하는가. 그러자고 대답했을 것인가, 손톱으로 흙을 파헤치며 원기(怨氣)에 몸을 떨었겠는가. 생각이 있으면 말을 해봐야 한다. 양심이 남았으면 외면을 말아야 한다. 폐일언하고 어제 그제 이틀 밤과 낮의 서울에서의 해후 장면은 전 한반도에서, 남북을 가로질러 즉각 확대돼야 한다.
(…) 공산당이란 이러한 갈망을 한낱 ‘감상적’이라고 비웃는 ‘주의자’들임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래도 이산가족들의 함성은 서울을 감동시키고 세계에 충격을 던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북한의 폐쇄장벽에 인간·인도 천심의 우레 소리를 때리고야 말 것이다(7월 3일자 2면 사설).

KBS의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보듯 이를 통해 ‘북한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조선일보의 가장 특징적인 경향 중의 하나이다. 전두환 정권이 정권 안보를 위해 즐겨 이용하는 상투적 용어인 ‘북괴 위협’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전두환 정권과 조선일보는 이후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줄기차게 대북공세를 폈다. 조선일보는 특히 기사 제목 등 편집기술을 통해 그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김일성은 막은 귀를 열라」 「북괴가 가로막은 1천만의 재회」 「외무부 이산가족 재회 대책 국제기구 통해 북괴에 압력」 등의 기사 제목이 바로 그 보기들이다. 이러한 흐름은 이산가족 찾기 일주일 만에 대한적십자사의 남북적십자 회담 재개 요구로 나타났다. 대한적십자사 총재 유창순이 7월 6일 ‘1천만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십자 회담을 재개하자’는 담화를 발표했고 조선일보는 7월 7일 그것을 1면 주요 기사로 다루고 2면에서 사설로 지지했다. 「오고 가자」라는 사설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6월 30일부터 계속된 KBS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은 전국을 눈물과 쓰라림의 시·공간대로 묶어버렸다. (…) 이산의 비극은 분단으로 비롯됐고 6·25로 심화됐다. 지금 북녘 하늘 아래에는 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도 모른 채 이산의 아픔을 가슴 속으로 씹고 있는 동포가 얼마나 될 것인가. 또 그만큼의 동포가 남에서는 풀지 못할 한을 간직한 채 이곳에도 있다.
(…) KBS가 자아낸 민족비극의 현장 증명에, 유창순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다시 한 번 북을 향해 민족의 한을 풀도록 하자고 적십자회담 재개를 촉구했다. 북의 특수층은 그들 나름의 필요성에서 우리의 방송을 시청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한 그들에게 감회가 어떤가고 민족의 이름과 함께 인간으로서 묻고 싶다.
11년 전 적십자회담이 열렸을 때를 누가 잊겠는가. 거기서 해결하자고 합의했던 의제를 누가 망각하겠는가. 먼저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들의 주소와 생사를 서로 알려주자고 했다. 그러고 나서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방문·상봉을 실현하고, 서신 거래를 자유롭게 하도록 하고, 끝으로 각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재결합을 실현시켜주자고 했다.
그러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우리의 법률을 고치고 사회 환경을 바꿔야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북적은 엉뚱한 고집부터 내놓았다. 그 고집을 내내 우기다가 회담마저 깨버렸다 .(…) 분단 38년이다. 이제 잠깐이면 반세기를 헤아린다. 언제까지 그런 냉혈로 있을 것인가. 국제여론이 두려워서도 결코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7월 7일자 2면 사설).

북한은 그 제의를 즉각 거부했다. 광주 항쟁이 북한의 지원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한 전두환 정권 하에서 북한이 그런 제의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 제의를 일종의 평화공세로 평가절하한 것이다. 그러자 외무부는 7일 남북한의 이산가족 재회를 위해 유엔사무총장에게 협조공한을 발송하는 한편 민간기구를 통해 청원서를 제출하기로 하는 등 남북 이산가족 찾기 운동 추진을 위한 방안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7월 8일자 1면에 그 사실을 주요 기사로 보도하고 2면 사설에서는 “남북 간의 소모적인 외교전을 그만두자”고 주장했다. 이산가족 찾기가 남북 간에 파인 골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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