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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래 최대 금융사기 사건조선일보 대해부 4권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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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2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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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전두환은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이 1982년 4월 8일 신부 최기식 신부 등의 구속으로 매듭지어지자 10일 ‘의식개혁운동’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섰다. ‘나를 포함한 모든 공직자와 지도층’을 대상으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각오하는 솔선을’ 다짐하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이었다.

조선일보는 4월 11일 1면 머리기사에 “전두환 대통령이 10일 제1차 사정협의회 전체회의에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부정의식의 잔재를 과감히 추방하고 정직·질서·창조의 새로운 가치관을 국민의식 속에 뿌리 내리게 하는 의식개혁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이를 민족적·국민화합 차원에서 기필코 달성해야 할 역사적 대과업으로 승화 발전시켜 나가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전두환이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뼈를 깎는 고통을 각오, 용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의식개혁에 솔선하여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청와대가 “정직, 질서, 창조, 책임, 본분, 분수, 주인의식, 국민화합, 가정교육 등 ‘9대 실천요강’을 결의했다”면서 2면 사설을 통해 그것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개혁에는 항상 새로운 의식이 전제되어 있었다. 막스 베버는 이 양자 간의 관계를 ‘선택적 상호 견인’이란 말로 설명했는데, 일정한 관념과 특정한 사회집단이 서로 상대방을 끌어당겨, 함께 새로운 시대적 과업을 수행한다는 이야기다. 근세 초두의 산업사회의 발상 과정에서 이 예를 찾아본다면, 청교도와 그들의 근검절제의 정신을 들 수 있다.
(…) 이 점에서 시대적인 개혁과 전환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새로운 윤리규범의 체질화가 무엇보다도 시급하겠고, 금년도 제1차 사정협의회의 의미 또한 그런 요청에서 규정되어야 할 것이라 믿어진다. 이 회의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치사와 ‘의식개혁 9대 실천요강’이 가장 크게 역설하고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누적된 부정적 의식의 추방’이라 할 수 있겠다.
(…) 우리에게는 아직도 사회를 이성과 법리에 기초한 명예로운 시민들의 계약적 연대관계로서 파악하는 안목이 부족하고, 그 대신 전 시대의 주먹구구와 권위주의, 권력지향, 불로소득에의 유혹, 법외의 무리한 방법에의 호소, 막후거래, 적당주의, 사인(私人)의식과 붕당의식, 그리고 공공규범에 대한 경시가 뿌리 깊게 잔존해 있다고 개탄되곤 한다.

전두환 정권의 의식개혁운동은 곧 드러날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 사건’이자 대표적 권력형 금융비리인 장영자·이철희 사건을 예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이전부터 그런 조짐이 드러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친인척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장영자의 형부 이규광은 전두환의 아내 이순자의 삼촌이다. 전두환의 장인이자 이순자의 아버지 이규동(대한노인회 회장)이 이규광의 형이라는 얘기다. 장영자의 남편 이철희는 육사 2기로 유정회 의원과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1982년 5월 5일 장영자와 이철희 부부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5월 8일자 11면 머리에 그 기사를 올리고 두 사람의 경력과 행적, 그리고 그들의 주요사업인 사채업 등을 자세히 소개했으나 장영자의 고위층 인척관계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2면의 사설도 장영자의 고위층 인척관계는 밝히지 않은 채 이철희의 부정에 초점을 맞추는가 하면 엉뚱하게 전두환 정권의 ‘사회정화’와 ‘의식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대화산업 이 모 회장 부처의 외환관리법 위반 피의사실에 대한 대검의 조치는, 부정부패 척결에 예외를 두지 않기로 한 이 시대의 결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또한 사회정화와 의식개혁이 그렇게 중시되는 이 마당에도, 사회 일각에는 시민이 상도하지 못하는 매우 특수한 대형 부정행위들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음을 은연중 감지하게 했다.
(…) 유정회의원을 지낸 전직 고관이란 명사가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것은 우선 그 신분 자체로써 국민의 지탄을 받기에 충분한 파렴치 행위였다. 이 모 씨 정도의 신분이라면 법률적으로 도덕적으로 무엇이 그르고 무엇이 합당치 않은가 하는 것쯤은 상식적으로 몰랐을 리가 없다.
(…) 피의사실의 양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범상한 시민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사항들이 여러 군데서 엿보인다. 액수가 40만 달러니, 한화로 쳐서 3억2천만 원이니 하는 이야기는 우선 그 엄청난 액수 자체로써 시민의 의기를 소침시킨다(5월 8일자 사설).

이 사건의 전말은 장영자의 어음사기 행각으로 드러났다. 장영자는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을 찾아다니면서 남편 이철희의 경력은 물론 형부인 광업진흥공사 사장 이규광의 이름을 팔아 현금을 빌려주는 대신 2~10 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냈다. 부부는 이렇게 해서 받아낸 어음을 할인해 또 다른 회사에 빌려주었다. 받은 어음 총액이 7천1백11억 원, 이 가운데 할인해 사용한 어음사기 액수는 6천4백4억 원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천문학적 숫자다. 대검 중수부는 5월 11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중수부의 발표와 관련기사들을 5월 12일자 1, 2, 3, 11면 등에 실었다.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이규광 씨 비호 위장행세」이다. 검찰은 “이들 부부가 장 여인의 형부인 이규광(광업진흥공사 사장) 씨의 비호를 받고 있는 듯이 위장, 행세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중수부장 이종남은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통해 고위층의 관련설과 정치자금 유입설을 부인했다. 검찰이 고위층을 보호하고 나선 셈이었다. 조선일보는 5월 13일자 사설에서 검찰의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검찰이 엊그제 심야에 발표한 세칭 이·장 부부 사건의 ‘중간수사결과’는 이름 그대로 앞으로의 본격적 수사를 위한 예비적 의미의 중간수사의 결과일 것으로 우리는 받아들이고 싶다. 이 사건의 규모와 범위를 파헤치고 세부에 걸쳐 의혹의 소재를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중간발표의 의미는 마땅히 높게 평가될만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 장기화하고 있는 불황의 와중에서 경제와 기업의 체질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다. 바로 그것을 기화로 물에 빠진 놈 지푸라기라도 거머잡는 막판의 심리에 편승하여 빌려준 돈의 2배 내지 10배의 어음을 강요하여 돌려 먹었다. (…)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격분을 금치 못하는 것이며, 사건의 전말이 추호의 의혹을 남김이 없이 파헤쳐져야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다행히 검찰의 중간수사결과로는 이 사건이 정치 또는 정치자금과는 전연 무관한 것을 알아냈다고 하고, 장 여인이 은근히 앞세우고 다녔다는 고위층 인척관계의 관련설도 전연 거짓이었다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물론 우리도 그러기를 바라고 또 그런 관련설이 전연 낭설이었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장영자·이철희 사건은 건국 이래 최대 금융사기 사건답게 그 영향도 엄청나게 컸다. 정치·경제계에 미친 충격은 이루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사건으로 법정에 선 사람만 31명에 이르렀다. 그들 중에는 은행장만 두 사람을 포함해서 기업간부, 전직 기관원, 그리고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 있었다. 대한노인회 회장이던 대통령의 장인 이규동도 동생의 ‘물의’를 사과하고 물러났다. 굴지의 제강, 건설 회사였던 일신제강과 공영토건은 부도가 났다.

청와대와 권력구조에도 변화가 일었다. 대통령의 친인척에 대한 조치를 주장했던 인물들이 물러나거나 권력에서 밀려났다. 민정당 사무총장 권정달과 안기부장이 사표를 썼다. 수사 과정에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옷을 벗는가 하면 청와대 정무수석 허화평과 사정수석 허삼수도 전두환 부부의 미움을 사 권력에서 멀어졌다. 장영자·이철희 부부는 각각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10년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경제정책에도 충격파를 미쳤다. 그 결과가 6·28 금리 인하와 7·3 금융실명제 실시 발표였다. 6·28 조치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4%포인트 내리고, 법인세를 20%로 낮춘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기업들이 놀랄만한 파격적인 혜택이었지만 그것은 장영자·이철희 사건의 영향이기도 했다. 정부는 7월 3일 1년 뒤에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1983년 7월 1일부터 모든 금융거래에서 실명거래제를 전면 실시하고, 금융자산의 소득도 종합과세하기로 했다. 조선일보는 7월 4일자에서 금융실명제로 ‘얼굴 없는 큰손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고, 사설을 통해 그 조치를 지지한다면서도  부작용을 강조하고 나섰다.

모든 금융거래에서 무기명, 가명예금을 배제한다는 정부의 ‘사채 양성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은 충격적인 6·28 경기대책에 이어진 또 하나의 충격적 조치라고 할 만하다.
(…) 우리는 원칙적으로 이 조치를 의당한 것으로 보고 그 효과적인 추진에 기대를 걸어보고자 한다. 본란이 되풀이 강조해 나온 바 제도적인 무기명·가명 예금 등을 바탕으로 한 은폐된 금융권이 자금 순환을 차단하고 있는 한 정책의 효율은 반감될 밖에 없다. (…) 그것은 여러 말 할 것 없이 여태까지의 경험이 웅변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 단지 문제는 이 조치가 초래할 엄청난 충격과 부작용을 어떻게 합리적이며 합목적적으로 수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정부당국은 그럴 수 있다는 자신이 서 있기에 이 조치를 단행한 것일 것이다. (…) 무기명 및 가명의 예금과 주식 등의 규모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누구도 꼬집어 댈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 모두가 실명화를 꾀하거나 달리 은신처를 찾아 농간을 부리는 경우에 야기될 착란작용은 결코 얕잡아 볼 것이 못되는 것이다(7월 4일자 2면 사설).

조선일보의 부작용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여당인 민정당 등 정치권을 포함하여 청와대 내에서도 반대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금융실명제를 반대한 까닭은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데 있었다. 특히 민정당이 극력 반대하며 들고 일어선 이유가 그랬다. 실명제를 실시하면 곧 정권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민정당의 입장이었고, 이 논리는 청와대에도 먹혀 들어갔다.

금융실명제를 내놓았던 정부로서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이후 당·정 간의 수개월에 걸친 줄다리기는 ‘금융실명제 유보’로 가닥을 잡았다. 10월 29일 청와대와 민정당 간의 당정협의회에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장영자·이철희 사건으로 촉발된 전두환 정권의 ‘정의구현사회’을 위한 조치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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