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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채 주필 시기’의 조선일보 (1)조선일보 대해부 3권 -10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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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3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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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의 친일성을 경계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에 친일언론의 역할을 유감없이 다했지만 해방 이후 한 번도 반성이나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 주필 최석채가 그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겠지만 그도 방 씨 언론사의 피고용자인 이상 사주의 승낙 없이 그런 글을 쓸 용기는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박 정권의 친일 성향을 경계하는 입장을 취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1966년 2월 13일자 사설(「방황하는 대일 주체성」)

거친 홍역을 치렀던 한일 간의 새 국교가 개시된 지도 벌써 두 달이 가까워 오고 있다. 이 기정사실 위에서 최근 전개되고 있고, 또한 전개되려 하고 있는 양국 간의 교류는 혹은 경제적 측면에서, 혹은 문화·체육 등 측면에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한 친선교류에서 일찍이 볼 수 없으리만큼 활발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국교가 개시된 이상 지난날의 대립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선린우호의 터전을 마련하자는 것은 당연한 귀추요, 여기에 조금도 우리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한일문제가 거국적 논쟁의 초점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대부분 지도층은 한결같이 ‘민족주체성’을 운위했던 것이며, 한일수교를 적극 추진한 정부·여당이나, 그것을 반대한 야당이나 그리고 찬반을 초월해서 지식인 학생 경제인 할 것 없이 이 점만은 거의 동일한 논거에서 대일경계의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민족주체성이 확립된 자신이 있으니 한일국교가 우리에게 이롭다는 견해와 한일 간에 교섭되고 있었던 그러한 ‘굴욕적’인 조건과 자세로써는 민족주체성의 확립은 기약할 수 없다는 견해가 맞서 이것이 그토록 격심했던 이른바 한일협정 파동까지 일으키게 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지적해서 잘못은 아닌 줄 안다. 문제는 지난 일이 아니라 이제부터의 일인데, 이미 한일국교가 재개된 지금 그렇게 요란스럽게 거국적으로 떠들던 ‘민족주체성’-다시 말해서 대일 주체성은 과연 어떻게 구체화하고 있으며, 대일교류의 국가적 태세나 각계의 현실적인 자세에 있어서어떤 원칙과 목표가 뚜렷이 서 있는가, 없는가를 우리는 다시 한 번 요로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며, 국민들의 자각을 호소하고자 한다.
그것은 최근의 몇 가지 한일 간 교류에 관해서 우리의 ‘민족주체성’으로써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오는 18일부터 동경에서 열린다는 제2차 한일경제간담회에 참가한다는 명목으로 40명의 대규모 사절단이 파견된다는 소식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우선 한일 간의 경제협력은 청구권조의 무상 3억불, 정부베이스 2억불, 민간베이스 차관 3억불 이상의 것으로 되어 있고 이밖에 외자도입법에 의한 일본 자본의 한국 진출이 있을 것이라손 치더라도 이 모든 경제협력관계의 전범이 될 청구권자금 운용에 관한 법률조차 아직 공포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그 법에 의하여 이제부터 구성될 관리위원회의 참여 아래 정부의 확고한 정책에 의한 원칙과 기준이 확립되어야만 경제협력의 태세가 비로소 갖추어지는 것이다. 벌써부터 민간기업자 가운데서 시끄럽게 논의되고 있듯이 ‘기술교류’니 ‘사양산업 이전’이니 ‘무역증진’이니 ‘인력수출’이니 하여도 국가로서의 아무런 원칙과 태세가 서 있지 않은 이 마당에는 한일경제간담회에서 중구난방으로 지껄여본들 무슨 큰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것도 경제의 사전 태세를 간담(墾談)하기 위해서 몇몇 대표가 참가한다면 모르되, 제전 기분(祭典 氣分)으로 일본행 승합차에 뒤지지 않으려는 듯이 국내의 유수한 실업가를 총망라하는 것처럼 도일하는 풍경은 우리로서 진기한 느낌을 가질 뿐이다. 둘째 한국정부 각부장관의 ‘비서관’들의 초청이라 하여 일본의 정객, 대신(大臣)들의 ‘비서관’들 일행이 친선차 방문하였다. 비서관들이라고 하여 한일교류에 무연(無緣)일 수는 없겠지만 세상에 희한한 ‘대표단’도 다 보았다는 느낌이다. 원래 비서란 위에 모시는 책임자의 신변에서 그 뜻을 받드는 보조자인 까닭에 중책이라면 용혹무괴(容惑無怪)라 할지언정 어떤 ‘민족주체성’ 위에서 출발한 양국 친선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서들의 ‘대표단’까지 왕래하게 되었으니 하여튼 놀라운 교류이다. 끝으로 한국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정체를 분간 못할 두 가지 성명을 가지고 행세하는 유명무명의 인사들이 왔다 갔다 하며, 심지어 시민회관의 간판에 대문짝만한 일본이름의 광고까지 나붙는 요즘이다. 민족의 ‘대일주체성’이 건전한가, 어떤가 모두 반성해주기 바란다.

이 사설은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되살아난 친일파들의 행태를 비판한 글이다. 주필 최석채의 눈에는 박 정권의 친일 경향이 너무나 빨리 나타난 데다 지나친 것이 잘 보였을 것이다. 더구나 과거의 과오를 그냥 덮고 넘어가야 할 처지인 조선일보로서는 박정희의 친일을 공격하는 것이 바로 자신들의 친일을 호도할 수 있는 최적의 무기라고 믿었을 법하다.


적극적인 월남 파병 반대 논조

월남전과 박정희는 숙명적인 관계가 있다 할 것이다. 그가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미국은 월남전을 확대하기에 이른다. 미국 정부는 학생과 지식인 등의 강력한 반전운동에 직면하게 된다.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하여 미국은 박정희에게 월남 파병을 요구한다. 박정희가 미국 의도를 간파하고 미리 파병을 준비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는 미국의 지지도 받고 외화도 벌어야 하는 처지에서 파병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또한 야당과 학생 등의 반대에 봉착한다.

그때 월남 파병을 반대하는 언론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뿐이었다. 그 많은 신문사들은 1964년 언론윤리위원회 파동 이후 군사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였다.

당시 공개적인 월남 파병 반대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 정세 속에서 조선일보가 파병을 반대한 것은 상당한 용기를 낸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가 신문 한 두 군데의 반대로 파병을 중단할 겁쟁이도 아닌데다 미국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고 있던 처지라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따라서 많은 국민들은 오히려 “돈 벌러 월남 가자”가 대세였다. 미국은 당시 한국인들에게 “우리는 6·25 전쟁 때 미국 군인을 남한에 보내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고마움을 모른다”고 은근히 겁박하기도 했다. 미국은 지금도 대한관계가 불편하면 이 말을 꺼낸다. 다수의 한국인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쉽게 수긍한다.

1966년 2월 18일자 사설(「월남 증파를 반대한다」)

국군의 월남 증파문제는 드디어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문제로 부각되었다. 비둘기부대, 청룡부대, 맹호부대 등 이미 2만여 병력을 월남에 파송한 우리나라는 155마일 휴전선 상의 군사 정세로 보나, 미약한 국력으로 보나, 또는 국제도의에 비춰 보나, 그 의무를 최대한으로 수행하고도 남음이 있다 함은 본란이 누누이 지적해 온 바대로다. 그런데 금년 정초에 와서는 증파문제가 전 국민의 초비상적인 관심 속에 다시 대두하여 미국의 신문 등에도 파월군의 병력이 군단 규모로 될 것이라는 등 설(說)까지 보도되고 있으니, 이제 이 문제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리만큼 심각해졌다는 것을 깊은 우려에서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군단의 병력은 대략 5만으로 추산되는데, 이 거대한 병력을 월남 전쟁에서 유지하려면 3만 명을 더 파견해야 하고, 그리고도 전투에서 소모되는 인원을 계속 투입해야 하니 이것은 우리의 능력으로써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실로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다. 64년 9월 우리들이 1개 의무중대를 파견했을 때, 이것이 기정사실화하여 오늘과 같은 급박한 처지로 우리를 몰아넣으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2차로 65년 1월에 다시 공병대대가 파월되어, 파괴된 교량, 학교, 병원 기타 시설의 건설 등 평화적 임무를 수행한다고 했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기억에 틀림이 없다면, 당시 김 국방장관은 이상의 부대들은 어디까지나 비전투부대로서 그것을 파송했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월남전에 개입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국민을 안도시키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러던 우리나라가 오늘에 와서는 도리어 군단 규모의 개입을 운위하게 되었으니, 국민 일반의 회의와 불안은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전투부대의 파병문제가 지난 8월 한일협정의 파동을 일으킨 극도의 흥분 속에서 세심한 검토 없이 그대로 넘어가버린 데서 오늘의 긴급한 사태는 조성된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2대 군사국가, 즉 소련과 중공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상당한 수의 자체병력을 소유하고 있는 북괴는 군사적으로 6·25 동란에 비할 바가 아니다. 호시탐탐 남한의 빈틈만을 노리는 그러한 북괴와 주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긴장된 형편으로서는 아무리 반공의 명분에 충실하다고 해도 힘에 겨운 군사적 모험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월남 전쟁이 동남아의 안전을 결판 짓는 국제적인 과제라면, 우선 태국·대만·필리핀 등 그 주변의 국가들부터 국제적 공동부담에 열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이 나라들에 비해 우리는 모든 역경과 위험을 무릅쓰고 지금까지만 해도 몇 백배의 희생을 감수했다. 아시아 여러 나라 중에서 극동의 화약고라고 할 휴전선 일대를 코앞에다 둔 한국만이 국가의 안전을 소홀히 하고 월남전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요구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오는 22일에 예정된 험프리 미 부통령의 재 방한을 앞두고 국군 증파의 선행조건을 소위 ‘실리’적 입장에서 결말지을 모양이나, 우리의 형편으로는 긴급한 자기방어가 곧 ‘명분’이요, 동시에 ‘실리’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국제정치상 이례적인 조건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정부는 증파문제를 국회의 다수를 배경으로 단독 처리할 기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문제는 한 당파나 행정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전 국가적인 문제다. 그러므로 원내의 여야당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의 이성적인 의견을 통한 초당파적 협의에서 증파문제는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상의 근거에서 우리는 월남 증파에 대한 반대의사를 뚜렷이 하면서 위정당국의 신중한 처사를 재삼 당부하는 바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을 통해 “월남 전쟁이 동남아의 안전을 결판 짓는 국제적인 과제라면, 우선 태국·대만·필리핀 등 그 주변 국가들부터 국제적 공동부담에 열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물론 미국을 향한 항의성 발언이다. 북한과 휴전선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이 군단급 병력을 파병하는 것은 부당하고 무리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증파를 반대하는 어떠한 목소리에도 응답하지 않고 파병을 강행하고 만다. 친일에 이은 종미(從美)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1966년 2월 25일자 사설(「정부에 묻는다 /  월남 증파를 결정한 자신[自信]에 대하여」)

험프리 미 부통령의 재차 방한으로 한국 군대의 월남 증파문제는 한미 양국 정부 수뇌 사이에서 거의 합의점에 도달한 것 같다. 어차피 이번 임시국회에 동의요청안이 제출될 것이니 만큼 증파 규모나 증파에 따른 모든 조건의 합의 내용이 국민 앞에 공개될 것으로 보지만, 이 증파문제를 국운을 건 중대 사안으로 인정하고 국가안전을 위해 앞서 증파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바 있는 우리는 우선 1개 사단과 1개 연대를 증파하기로 결정한 정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근본문제를 캐묻고자 한다. 첫째 우리가 증파 반대의 가장 큰 이유로 제시한 것이 다름 아닌 우리 국토의 자주방위에 관한 염려였다. 긴 말은 되풀이하지 않겠으나 금후 월남전선이 가일층 치열해지고 전화(戰火)가 확대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가상할 때, 과연 우리 휴전선에는 어떤 영향이 미칠 것인가. 정부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또는 어떠한 상황 아래서라도 공산군의 준동을 습복(慴伏)시킬 수 있으리만큼 우리측 국방태세가 되어 있는가, 어떤가. 물론 작전계획은 국방전문가에게 맡길 수밖에 없고, 군기(軍機)는 엄비(嚴秘)를 요하는 것일 것이므로 구체적인 설명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증파문제가 표면화하면서부터 정부·여당 스스로가 ‘국군장비의 현대화’니, ‘3개 예비사단의 전투사단화’니 하여 선행조건을 당면의 급무로 제기해 왔음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더구나 그러한 조건들이 갖추어지기만 하면 월남 전선에 군단에 가까운 국군병력을 보낸 국방력의 허점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는 정도의 자신이라면 우리는 솔직히 말해서 안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군 대병력의 월남전 참여를 구실로 야기될지 모르는 새로운 극동사태에 대비하자면 현재 국방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자체 국방력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이 앞서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점 만만한 자신과 그 자신을 뒷받침할 만한 태세가 되어 있는가?
둘째로 미국 정부는 험프리 부통령의 입을 빌어 “휴전선에 대한 침략은 미국 본토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한다”고 다시 한 번 한국 국민에게 확약했고, 또 세계에 향해서 공언했다. 그와 같은 미국정부의 신념이 어떤 형태로 우리와의 공존공사를 구연화(具然化)할 것인지는 당분간 덮어두기로 하더라도 그러나 문제는 지금 미국 국내의 정치지도자 간에서 시끄럽게 논의되고 있는 월남정책에서 보듯이 도무지 일관성 있는 부동의 자세 같은 것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험프리 부통령의 자신 있는 공약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데 인색하지 않겠으나 그러면 왜 언행일치의 표징으로 한미방위조약을 보완하는 데 선뜻 응해주지 않는가. 하긴 쟁쟁한 인사들에 의한 국내의 굉굉(轟轟)한 반대론에도 불구하고 월남 지원의 손길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존슨 행정부의 동맹국에 대한 신의를 우리는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월남전과 같은 비참한 사태가 일어난 뒤이면 이미 때가 늦다. 우리는 정말 “미국군이 단 한 사람이 남아 있더라도 미국은 한국의 방위를 위해 끝까지 싸운다”는 험프리 부통령의 감명깊은 결의를 성문화함으로써 아예 공산 적(敵)으로 하여금 한국 휴전선에 대한 도전의 꿈조차 갖지 못하게 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정부의 이에 대한 견해가 어떠한가? 셋째로 우리 정부는 월남 전쟁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가. 시작이 있으면 종말이 있는 법이니, 언제 어떤 형태로든 월남 전쟁에 종지부가 찍힐 때가 있을 것만은 틀림이 없다. 우리는 군략(軍略)만을 제일의(第一義)로 월남의 처참한 늪에 말려들어가는 우직을 우리 정부가 택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고 싶다. 적어도 확고한 세계관과 그에 입각한 원대한 전망 아래 우리의 ‘제2전선’으로 간주하고 있을 것이라 믿어지는 바 미국의 월남정책에 대한 발언권을 어느 정도 보장받고 있는가. 개인의 운명은 성공을 기하기 위해 때로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단행할 수도 있지만, 국가의 경우는 그런 모험이 절대로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유감이나마 우리는 “힘 아닌 착실한 아시아정책으로서의 한국군의 월남전 참가”라는 정부의 자신 있는 경륜과 설명을 아직껏 들어보지 못했다. 증파에 따른 부수적인 조건으로 현지 사병의 처우개선, 군원이관의 중지, 경제적인 혜택…등등 여러 문제가 등장하고 있고, 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다짐을 얻었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위에서 우리가 지적하듯이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증파 여부에 있어서는 이러한 부수조건보다 좀 더 차원이 높은 원대한 국가적 경략을 정부는 국회에 대한 동의 요청에 앞서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할 성 싶은데 정부의 생각은 어떤가?

1966년 3월 22일자 사설(「증파안의 통과를 보고」)

그동안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진지한 논의를 거듭해온 국군의 월남 증파안은 20일 오전 재석 125명 중 가 95, 부 27, 기권 3으로 드디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오는 4월에 1개 연대를, 그리고 8월에는 1개 사단 병력을 각각 월남 전선에 증파하게 되었으며, 이제 주월 한국군은 총 1개 군단 규모에 접근하게 된 것이다. 증파안이 나왔을 때 본란은 1)우리나라는 소련과 중공의 양대 군사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북괴와 155마일 휴전선에서 주야로 대치하면서 초비상사태에 있다는 것. 2)우리나라의 미약한 국력으로는 이미 파월한 2만 여의 병력으로서 국제도의상 그 의무를 최대한 수행했다는 것. 3)우리나라는 월남 파병에 있어서 어떠한 집단안전체제의 뒷받침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 4)한·월 양국 간에는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아무러한 군사협정도 체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 5)국군 증파로 야기될 수 있는 휴전선의 방위태세의 약화를 메울 수 있도록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보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6)월남 주변의 동남아국가들이 거의 방관상태에 머물러 있는데, 어떻게 우리만이 그 무거운 부담을 단독으로 질 수 있는가 하는 점 등을 들어 솔직하게 증파문제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명해 왔던 것이다. 이제 증파문제의 국회통과를 계기로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상의 근본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행정부는 증파안의 국회 가결로 문제가 끝난 것으로 낙관할 것이 아니라, 일은 이제부터라는 점을 재삼 각성해야 할 것이다.
이 새로운 사태에서 무엇보다도 긴급한 것은, 파월장병에게 후고(後顧)의 염려가 없도록 정부는 그 가족의 원호대책을 합리적으로 강구하여, 장병들이 마음 놓고 그 임무를 수행토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 측이 미국 측에 요구한 바 있는 이른바 선행조건이란 것도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명확한 해결을 못 보고 있는 지금, 정부는 이 점에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간의 숙제가 되어 온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에 만전을 기하여 빈틈없는 국토방위책을 마련해야 하는 동시에, 한·월 양국 간에 당당히 국제협정을 체결하여 주월 국군의 법적 지위와 유고시의 보상을 법문화하는 대책을 시급히 확립하지 않는다면 주권국가로서의 체면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막연하게 미국 정부가 모든 일을 다 잘 보장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월남 정부의 선의에만 의지하는 나머지 어물어물 그대로 넘어간다면, 그것은 결코 현대국가로서의 자세는 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인상으로서는 정부는 대월수출을 위시한 경제문제에 지나치게 신경이 집중되어 온 것 같이 보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일이요, 대군을 파견하는 마당에서 취할 정도는 아니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증파를 계기로 제기되는 문제는 결코 군사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파월군을 선발함에 있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듯이 권력, 세도, 금력 그밖에 사회적 배경이 작용하여 가난하고 무력한 청년들만이 동원되고 유력한 가정의 자제들은 교묘하게 빠지는 일이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는 월남전에 참전하는 명분을 미리부터 잃는 일이요, 월남전은 벌써 도덕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전쟁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내의 사회정의에 위배하는 참전은 우리들에게 반공투쟁의 떳떳한 도덕적 기반을 구축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참전이 자유세계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면, 우선 우리나라부터 자유국가의 이름에 부끄러움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에 국내의 부패 시정과 자유의 창달을 위하여 이번 증파는 일대 전기가 되어야 할 것을 우리는 제언하는 바이다.

1966년 5월 27일자 사설(「국군 증파 선행조건 / 미국의 성의 있는 실천을 촉구함」)

한때 세론이 분분한 가운데 하나의 기정사실로 매듭을 지어버린 국군 월남 증파 문제에 있어서 미국 측으로부터 이른바 14개 항목에 걸친 보장조건이란 것이 지난 3월 8일 우리 정부에 제시된 바 있었다. 그런데 이 14개 보장조건은 그간 상당한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하며 약속대로 이행이 되지 않는다 하여 이 때문에 최근엔 김 외무치관 이하 각 관계부처의 간부 연석회의가 열려 이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검토를 했고, 여기서 토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 한국에 올 러스크 미 국무장관, 번디 차관보 및 버거 극동담당부차관보 등을 통해 미국 정부에 그 조속하고 성실한 이행을 촉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14개 보장조건이란 1)국군장비 현대화 2)증파에 따른 비용의 미 측 부담 3)증파에 따른 병력 보충 및 훈련장비 부담 4)북괴의 간접침략 봉쇄를 위한 공동협조 5)군원이관의 중지 및 재검토 6)한국 상품의 대미군납 7)한국의 수출 진흥을 위한 기술원조 8)AID차관의 조기사용 및 계속 제공 9)금년도 재정안정계획을 위한 신규 원자재용 차관 10)민간기술자의 월남용역 확대 등 군사적 및 경제적 분야에 걸친 광범위한 미국 정부의 선의의 코미트먼트요, 또한 우리 정부가 스스로의 힘에 겨운 현실적 제 조건을 무릅써 가면서 기꺼이 국군 증파를 단행한데 대한 그들의 국가적 우의의 표시로 볼 수 있었던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일련의 합의조건이 미국 당로자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태도에 의하여 올바르게 이행되리라고 믿어왔고 또한 그럼으로써 무리한 증파조처로 말미암아 파생될 지 모를 우리의 휴전선 방어의 약화라든가 국방력의 미흡 등을 손색없이 보강하고 아울러 우리의 경제적 후진성을 탈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터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저간의 사정을 본다면 국군 장비의 현대화문제를 비롯하여 바이아메리칸정책의 완화, AID 차관의 추가 제공, 휴전선 방위문제, 파월국군 규모의 병력 보강, 군원이관문제 등에 있어 애당초 합의한 전기(前記)한 14개 항목과 비교해 볼 때 거의 진전이 없는 답보상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상 보도를 통해서도 대월 한국 철강재 수출이 미 측의 차별대우나 이른바 BA정책의 완화는커녕 오히려 강화조처 때문에 점점 어려운 고비에 이르고 있고, 또 최근 미국에서 도입한 M-48탱크가 노후품이란 사실이 밝혀져 말썽이 되고 있다. 김 국방부장관도 이 노후 중고품탱크 문제에 대해 일단 시인하면서 “이런 것을 준다고 해서 거절도 못할 입장”이라는 매우 딱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다. 도대체 중고탱크를 가지고 국군장비를 현대화하자는 것인지 또는 구식화(舊式化)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의 지대한 관심은 비단 이 14개 조건의 철두철미한 이행에만 쏠리는 것이 아니고 한·미 간에 개재하는 일련의 현안의 조기 해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고 있는 한미행정협정은 그 정식 조인 없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늦어지고 있을 뿐더러 그중 형사재판 관할권, 민사청구권 등 주요 항목에 있어서는 느닷없이 나열되는 이른바 ‘우호적 고려’란 모호한 표현으로 그 실효성이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이 초안의 일부 보완을 요청한 바 있으나 미 측은 이를 “필요 없다”고 거절한 사실을 우리는 중시하는 바이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도울 때까지 우리를 돕고자 하는 미국의 모든 호의와 열성이 더욱 진실하게 구현되기를 바라고, 아울러 한·미 간의 우호가 가일층 돈독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미국 측의 보다 성의 있는 협조를 다시금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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