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언론역사 조선동아 대해부
‘평화를 위해 경천동지의 전쟁을 일으켜라’ (1)조선일보 대해부 17장(1)
  • 관리자
  • 승인 2018.02.21 14:21
  • 댓글 0

1939년 1월 1일 조선일보 석간 1면 머리를 차지한 것은 지난해처럼 ‘천황 폐하’의 신년 동정(動靜)이었다. 중일전쟁(일본 쪽의 용어로는 지나사변)이 일본군의 일방적 우세로 마무리되고 있었기 때문인지 1면에 실린 ‘천황 히로히토’의 사진은 군복 차림이었다. 그는 군모를 쓰고 왼손으로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천황 폐하의 어성덕 / 어홍업(御鴻業) 완성에 숙야(夙夜) 어정려(御精勵)」라는 제목의 기사는 ‘살아 있는 신’에게 바치는 최상의 헌사(獻詞)이다.

어능위(御稜威)의 광휘(光輝), 전정(戰征)의 영광이 찬연히 빛나는 소화 제 14년의 아침 황공하시옵게도 신엄(神嚴)이 극(極)하시와 금리(禁裡)에 대본영을 두시옵신 후 제2회의 가춘(佳春)을 마지하옵신 대원수 폐하께서는 성수(聖壽) 어(御)39를 산(算)하옵신다. 황후 폐하께옵서는 어년(御年) 어37세의 춘(春)을 마지하옵시고 어경사는 양춘 2월경으로 어건강하옵시며 또 대궁어소에 계옵시는 황태후 폐하께서는 어년 어56세의 신춘을 마지하옵시었다. 황공하옵시게도 황군을 통수하옵시는 대원수 폐하께서는 흥아(興亞)의 어성업(御聖業)에 신성공명한 대방침을 세우옵시고 유사 이래의 어위업 완성에 숙야어정려 끝없는 어인덕(御仁德)을 사계(四界)에 미치옵신다.

그 어떤 사이비종교 신자들도 이렇게 극진한 찬사를 그들의 ‘신’에게 바치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1면에는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의 「귀중한 선혈(鮮血)로써/ 역사를 창조!」, 정무총감 오노(大野綠一郎)의 「만난(萬難)을 배제하고/ 대사명에 매진!」, 육군대장 가와시마(川島義之)의 「국민정신 총동원으로/ 불이(不離) 일체 기구화」라는 ‘연두사’가 실려 있다. 그리고 「약진 본보의 신년 3대 계획」이라는 조선일보사의 「사고」가 눈길을 끈다. ‘초고속 윤전기 한 대를 증설하고’ ‘통신망 확충’을 위해 ‘내외지 특파원 진용을 정비 강화하고’ ‘만지판(滿支版)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2면에 실린 사설(「신년을 영[迎]하면서」)은 ‘천황 폐하’의 만수무강과 황실의 안태(安泰)를 기원한다.

다사다난하던 소화 13년도 어제로 끝을 막고 광명과 희망으로 충만한 소화 14년의 신춘을 오늘로 맞이하였다. 이때 이날에 있어서 우리는 1억 민서(民庶)와 더불어 먼저 성수(聖壽)의 무강(無疆)하심을 봉견(奉見)하오며 황실의 어안태하심을 봉축한다. 특히 이 신년은 지나사변이 발발된 이래 둘째 번의 신년이다. 황군 장사(將士)가 성충성용(誠忠誠勇)하여 전필승(戰必勝)공필취(攻必取)로 북경과 남경은 물론이고 서주 광동을 함락하고 적의 근거지인 무한삼진을 공략하여 무위(武威)는 중외에 떨치고 국광(國光)은 세계에 빛나게 하였다. 이것이 어능위의 소사(所賜)임은 물론이거니와 황군의 충용과 희생과 고초의 결과임을 상도(想到)하면 실로 감격과 감개가 유연(油然)히 솟아남을 금할 수가 없다.


‘동아 영원의 평화를 위해 황군의 위력을 발휘’

1939년 3월 10일 조선일보는 「육군기념일에 제(際)하여」라는 사설을 조간 1면 머리에 올렸다.

3월 10일! 금일은 육군기념일이다. 이 날은 명치 27, 8년 일로 전역(戰役) 당시의 육군 전승(戰勝)의 위적(偉績)을 영구히 기념하기 위하여 봉천 대회전 중 봉천성을 점령한 3월 10일을 육군기념일로 정하고 매년 육군에서는 물론 민간 제 단체에서도 기념행사를 하여오는 의미 깊은 날이다. 재작년 동아 영원의 평화 확립을 목표로 정전(征戰)을 개시한 이래 철두철미 황군의 위력을 발휘하여 도처에서 적군을 여지없이 무찌르고 상해, 북경, 남경, 한구, 광동 등 지나 중원의 대부분을 석권한 후 동아 신질서 건설의 국시(國是)를 확립하고 그 제일보를 내딛은 흥아(興亞)의 봄에 이 육군기념일을 맞이하게 됨에 국민 일반은 이 기념일을 금번 사변과 관련시켜 국가를 위하여 희생된 황군 영령에게 감사의 뜻을 삼가 표하는 동시에 현재 전선에서 용맹분투하는 황군 장병의 가족을 위문하고 또 현지에 위문품 위문장을 발송하며 전상(戰傷) 혹은 병으로 신음하는 백의(白衣)용사를 위문하고 군부에서는 군부대로 시가전 연습과 군사강연 등을 행함으로써 국방사상을 고취하여 군민 일치의 정신을 완전히 발휘하고 있음은 국가를 위하여 동경(同慶)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
(…) 기념일의 의의는 과거를 추억하고 이를 자긍(自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실을 상고(詳考)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에 대비하려는 데 더 중대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재작년 7월 사변이 발발한 이래 총후국민은 일치하여 정부의 지시에 복종하고 또 자진 협력하여 전선 장병을 위로 격려하여 총후에 대한 후환이 없이 오로지 혁혁한 전과를 거두기에 전력(專力)케 하여 왔다. 그러나 아직도 장 정권은 비록 서남의 일우(一隅)에서이지만 영미불소 등 외국의 원조를 받아 용공항일정책을 고집하고 있고 점령지역 내에도 유격대, 토(土匪) 등 잔적이 횡행하여 그 완전 소탕까지는 상당한 병력과 시일을 요할 형편일 뿐더러 소련은 공공연히 장 정권을 원조하여 항일장기전을 계속케 하는 동시에 북양 어로권 탈환을 기도하고 있으며 영미불 제국(諸國)도 제국(帝國)의 동아 신질서 건설 국시(國是)에 반대하여 사변 목적을 달성하기까지에는 아직도 허다한 파란곡절이 많을 것이고 보매 국민일반은 거국일치만이 승리를 좌우한다는 생생한 교훈을 주는 이런 기념일을 계기로 더욱 혼연일치가 되어 사변 목적 달성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사설은 1937년 7월 7일 일본군이 노구교사건을 일으켜 중국 침략을 시작한 것을 ‘동아 영원의 평화 확립을 목표로 한 정복전쟁’이라고 미화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이 ‘동아 신질서 건설’을 국시로 삼고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 ‘흥아(아시아를 흥하게 함)’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거국일치’가 승리를 부르는 여의봉이라고 계속 외치고 있다. 조선인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총후에서 ‘성전’을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하라’

조선일보 1939년 4월 17일 석간 1면에는 「전쟁과 평화」라는 사설이 실렸는데 부제목은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하라」이다. 이 말이 심오한 ‘평화론’인지 궤변인지는 그 내용을 곰곰이 살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는 평화와 전쟁을 반복하는 기록이다. 원래 역사는 ‘도로메기’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과거의 수천 년을 회고할 때에 이 말이 어느 정도까지 진(眞)인 것을 인식할 수 있다. 다만 인문이 진보되고 인지(人智)가 발달됨을 따라서 역사가 도로 먹는다는 것보다는 나선상(螺線狀)의 전개를 시현(示現)하였다고 하는 것이 더욱 진에 가까울까 한다. 좌우간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평화의 회전이라고 하면 큰 착오가 없을 것이다. (…)
(…) 전쟁은 아프고 쓰라리다. 참화가 상반(相伴)되지 않은 전쟁이 없다. 생존을 위하여서든지 신앙을 위하여서든지 지배를 위하여서든지 소유를 위하여서든지 다 한결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이것을 피하기 위하여 예수는 애(愛)를 말하였고 석가는 자비를 말하였고 공자는 인(仁)을 말하여서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없이는 평화가 없는 것이 진리다. 지나사변도 동아에서의 영원한 평화를 확립시키기 위한 전쟁이다. 전쟁을 싫어하고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구차하게 평화를 가졌다고 하여도 그것은 굴욕이요 패망이다. 그러므로 전쟁으로써만 오직 진정한 평화가 올 수가 있고 평화를 향락할 수가 있다. 발칸 문제로 인하여 분화(噴火)의 일보 전에 있는 구주(歐洲)는 일종의 인류역사적 제스추어라고 볼 수가 있다. 만일 전쟁이 이와 같이 불가피하다면 한 번 경천동지의 전쟁을 일으켜라.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평화를 위한 전쟁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사설은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평화의 회전’이라고 전제한 뒤 예수, 공자, 석가가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지키자고 가르친 사실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부분에서는 전쟁이 없이는 평화가 없다고 단정한다. 이런 ‘이론’은 일제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일 뿐이다.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한 것이 과연 평화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을까? 남경을 비롯해서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 일본군에게 살육을 당한 사람들의 평화는 완전히 무시해도 좋고 학살과 만행으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루겠다는 일제의 전쟁은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 사설의 목적임이 분명하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고 난 뒤 명백히 드러났듯이 그 전쟁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일본 본토에도 평화가 아니라 불행과 참화만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20세기의 대표적 ‘용비어천가’

1939년 4월 29일은 천장절(천황의 생일)이었다. 그 날 조선일보가 조간 1면에 올린 사설(「봉축 천장절」)은 20세기판 ‘용비어천가’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꼽을 수 있다.

춘풍이 태탕(駘蕩)하고 만화(萬花)가 방창(方暢)한 이 시절에 경일회(更一回)의 천장가절을 맞이함은 억조(億兆) 신서(臣庶)가 경축에 불감(不堪)할 바이다. 성상 폐하께옵서는 육체가 유강(愈强)하옵시다고 배승(拜承)하옵는 바 실로 성황성공(誠惶誠恐) 동경동하(同慶同賀)할 바이다. 1년 1도(度) 이 반가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홍원(鴻遠)한 은(恩)과 광대한 인(仁)에 새로운 감격과 경행(慶幸)이 깊어짐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적성봉공(赤誠奉公) 충과 의를 다하여 일념보국의 확호(確乎)한 결심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마침 지나사변 제3년의 장기 파괴와 건설이 병행하는 도중이라 지존께옵서 일상을 배승하면 만기(萬機)의 정무를 총람(總攬)하옵심은 물론, 중대 군무까지도 신금(宸襟)을 뇌(惱)하옵신다는데 제1선의 혁혁한 무훈과 현양(顯揚)되는 국위도 다 이 어능위(御稜威)의 소사(所賜)인 것을 상기하면 실로 황공무지 감격 불승(不勝)할 바이다. 민서(民庶) 일반이 성의(聖意)를 봉체하여 성수무강을 봉축하는 동시 억조 일심으로 극충극성(克忠克誠) 상으로 성명(聖明)에 보답하고 하로 간난한 시국에 대처하여 신동아 건설의 성업을 수행하여야 될 것이다. 이것이 황도(皇道)일본의 위광(威光)을 한층 더 만방에 빛나게 하는 소이요 또 신서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이 날을 당하여 성수의 어무강과 황실의 어미영(御彌榮)을 봉축하면서 끝으로 우리가 경행하는 소이를 강조하여 둔다.

국내의 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인사들이나 중국 땅에서 일본군에 쫓기며 목숨을 걸고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싸우던 동포들이 이 사설을 읽었다면 혈관이 터질 듯한 분노를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같은 날짜 매일신보의 사설 「봉축 천장절」을 보면 조선일보 사설과 비슷한 ‘용비어천가’이기는 하나 과장이 덜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금일은 금상(今上) 천황 폐하께옵서 제38회의 어탄신을 맞이하옵시는 천장의 가절이니 1억의 적자(赤子)들은 삼가 성수 만세를 봉창하여 보산(寶傘)의 무궁하옵시기를 봉축하는 바이다. 황송하옵게도 성상 폐하께옵서는 지나사변 이래 여러 가지 군무를 친재(親裁)하옵시고 작년의 사변 1주년에 내리옵신 성칙(聖勅)에는 “적년(積年)의 화(禍)를 단(斷)치 아니하면 동아의 안정을 영구히 얻기를 바랄 수 없고 일지(日支)의 제휴를 견(堅)히 하여 공영의 실을 거(擧)함은 시(是), 참으로 세계 평화의 확립에 기여하는 소이라” 하옵시었고 군인에게는 따로 이 성칙을 사(賜)하옵사 “여등(汝等)의 사(死)하고 혹은 폐고(廢痼)됨을 도(悼)한다” 하옵셨으니 전선의 장병이 우악(優渥)하옵신 칙어에 감읍할 것은 물론 총후의 적자들은 한결같이 이 성의를 받들어 동아 영원의 화근을 제(除)하고 일지 공영의 실을 거하기에 지성을 다하여 온 바이다. 성상 폐하께옵서는 낭(囊)에 금은의 어용기(御容器)를 하사하옵시었고 또 내탕금(內帑金)을 하사하옵사 군인 원호를 훈(訓)하옵셨으니 이것은 모두 “의(義)는 군신이나 정(情)은 부자와 같은” 성은의 내리옵심이며 금년의 천장절에도 궁중의 어하연(御賀宴)을 중지하옵시기로 어치정(御治定) 하옵셨다 하니 이것은 모두 1억의 적자에게 성려를 수(垂)하옵시어 그 행할 바를 훈하옵신 줄로 삼가 배찰(拜察)된다.


대본영의 전과 보도-‘적군 유기시체만 93만여’

조선일보 1939년 5월 30일자 조간 1면 머리에는 「지나사변 종합 전과(戰果)」라는 기사가 실렸다. ‘사변 발발 이래 4월 말일까지’ 집계라는 것이었다.

점거지역의 총면적 / 아(我) 전토의 약 2배반 / 적군 유기시체만 93만여

(동경 전화 동맹) 대본영 육군부에서는 소화 12년 7월 일지사변 발생 이래 금년 4월 말까지의 종합전과에 관하여 29일 오후 아래와 같이 발표하였는데 이에 의하면 점령지역 총면적은 156만2938 평방킬로미터로 아 전토의 약 2배반이나 되고 적의 손해는 유기시체만도 93만6345이므로 실제 손해는 적어도 2배반인 230만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하여 아방은 사변 당초 이래 합계 5만9998명의 존귀한 희생자를 내었다.

이 기사는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22개월 동안 중국 군인이나 민간인을 230만 명이나 살해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아방(우리 편)’은 6만에 가까운 ‘존귀한 희생자’를 냈다고 썼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영을 위해 불가피하게 전쟁을 일으켰다는 일제가 적군의 목숨은 ‘버려진 시체의 수’로 헤아리고 아군의 죽음은 ‘희생’으로 보는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기사이다.


‘영국 타도’에 앞장선 언론

1939년 6월 15일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신보 등 6개 신문사 주최로 서울에서 ‘배영(排英)국민대회’가 열렸다. 당시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유럽의 인접국들을 위협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려고 하는 위태로운 국면이었다. 중국에서 침략전쟁에 몰두하고 있던 일본은 전체주의와 제국주의라는 면에서 동질성을 띠고 있던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정권에 동조하면서 중국을 지지하거나 원조하는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을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네 나라 가운데 최대의 ‘잠재적 적국’은 영국이었다.
일본군은 6월 14일, ‘항일테러범’을 인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천진의 영국과 프랑스 조계를 봉쇄했다. 배영국민대회는 일본은 물론이고 조선에서도 “영국을 응징하자”는 외침이 요란하게 들리던 분위기에서 열렸다.
매일신보 6월 16일자는 그 대회에 관해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14일 오후 3시 반부터 조선호텔에 모인 조선춘추회의 결의로 경성에 있는 여섯 신문사(동아일보, 조선일보, 경성일보, 조선신문, 조선일일신문, 본사)에서는 15일 오후 5시에 조선신궁 앞 넓은 마당에서 ‘배영국민대회’를 다음과 같은 순서에 의하여 개최하기로 하고 15일 오전 11시에는 본사의 호외를 비롯하여 각사에서 뿌리는 “모이라! 국민대회로!”의 호외가 시내에 일제히 뿌려지자 전 시민의 신경은 흥분되어 장개석 정권의 등 뒤에 숨어 앉아서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는 교활한 영국을 철저히 응징하자는 소리가 모든 사람의 입에서 부르짖게 되었다. 길거리를 뛰어가는 신문배달의 호외 방울소리를 따라서 두어 시간 안에 경성 전시(全市)는 배영국민대회의 살기등등한 공기로 가득차버렸다. 오후 2시 반에는 조선항공사업사의 신 사장이 조종하는 비행기가 경성의 상공에 떠서 대회 개최의 각 신문 호외를 또다시 전시가에 뿌렸다.
대회 순서: 국가합창, 궁성요배, 개회사(매일신보 사장 최린 씨), 좌장(座長) 등단(다구치[田口] 경성일보 사장), 각사 대표와 유지의 연설, 선언(좌장낭독), 결의(노자키[野崎] 조선신문사 부사장), 각 관계 방면에 타전, 천황폐하 만세 봉창(동아일보 사장 백관수 씨), 황군 만세(조선일보 사장 방응모씨 선창), 폐회.

‘배영국민대회’에서 조선춘추회가 발표한 「공동성명」은 언론계가 앞장서서 영국을 응징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밝혔다. 조선일보 6월 15일자 호외는 「오라! 배영국민대회」라는 격문(檄文)과 함께 그 성명 전문을 보도했다.

성전 만 2년의 날을 멀지 않아 맞게 되는 금일 황군의 위무(威武)는 정(正)히 대륙을 위압하고 있다. 총후국민 또한 성전 완수를 기하고 일치단결하여 철통과 같은 포진(布陣)은 더욱 더 견고하고 동양 도의의 현현(顯現)인 신질서 건설이 성취되는 날도 멀지 않다. 이때를 당하여 동아를 식민지화하려고 기도하는 영국은 장개석의 망거(妄擧)를 원조하여 동아 신질서 건설을 저해하는 데 주야로 광분하고 있다. 고랑여 사건, 윤창방직 사건의 폭상(暴狀)도 용납하지 못하겠거늘 이제 또다시 천진 조계에서 그 오만과 불손은 실로 천인(天人) 공히 용허하기 난(難)한 바 있음을 통감치 않을 수 없다.
금일 즉시 이를 삼제(芟除)하여 새 명랑동양의 암(癌)을 척결치 않으면 화해(禍害)는 백년에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교전권을 즉시 발동하여 단호 불퇴전의 결의를 명백히 함으로써 원장첩공(援蔣諜共)의 거점인 조계의 철저적 숙청을 단행할 것이다. 이에 조선춘추회는 전국에 격(檄)하여 반영(反英) 궐기를 고(告)하여 동아의 교란자 영국에 일대 통봉(痛棒)을 가하기로 기함.

조선일보는 그 대회가 열리는 날인 15일자 조간 1면에 영국을 격렬히 비난하는 무기명 기사를 실었다.

「동아 신질서 건설의 암 / 영(英)세력을 타도하라 / 은인(隱忍)에는 한도가 있다」

동아 신질서 건설의 숭고한 사명 하에 아국이 국운을 도(賭)하여 싸우고 있는 금번 지나사변에 제(際)하여 일찍 맹방이었던 영국은 그 국민성의 본능인 이기주의를 기휘(忌諱) 없이 발휘하여 지나에 동정하여 음으로 양으로 유형무형의 원조를 하여 아(我) 작전행동에 부당한 방해를 가하고 있을 뿐더러 외교상에 있어서도 그 득의(得意)의 권모술수를 농(弄)하여 혹은 국제연맹을 움직여 아(我)에 침략국의 오명을 입혀 명예를 훼손하고 혹은 대지(對支) 원조 결의를 하여 지나의 항일행동을 선동하는 등등의 비위를 감행하고 경(更)히 또 연맹에 사주하여 9개국 회의 소집을 촉(促)하여 열국(列國)과 공동하여 아 대지군사행동에 간섭을 시(試)하려 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 와서는 원장(援蔣-장개석 원조) 차관을 공여하여 사변의 해결을 천연(遷延)케 하고 혹은 조계(租界)를 이용하여 항일분자 집단에 편케 하는 등 신인(神人)이 모두 불허할 그 비우의적, 불신불손한 행동은 오인(吾人)의 심간(心肝)에 철(徹)하여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바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