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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같은 것은 생각도 말라’조선일보 대해부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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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0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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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유지법의 ‘정당성’을 옹호

1934년 2월 3일자 조간 사설(「치안유지법 개정안」)

정부는 치안유지법 개정안을 작성하여 곧 제65의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의회에 제출된 정 부안이라고 다 통과되는 법은 없지만 이런 종류의 법률안은 그 성질의 중대함으로 보아 제출만 되면 곧 통과될 정세에 있다. 또 일본에 실시되는 법률 가운데도 조선에는 실시되지 않는 법령도 많지만 이 법률만은 일본에 실시되는 날이면 동시에 조선에도 실시될 운명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행법과 개정안과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데 대하여 깊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번 개정은 전문 7개조의 실체법만으로 된 현행법을 전문 5장 38조로 된 실체법 그리고 아울러 수속법의 종합법전으로 하려는 데 있다. 그리고 개정안이 현행법과 다른 점은 1)국체변혁행위(國體變革行爲)와 사유재산제도 부인행위와를 전혀 별개의 조항으로 규정하여 국체변혁행위애 대하여는 특히 엄벌주의를 취한 것 2)국체변혁행위에 관한 외곽단체 취체규정을 명문화한 것 3)국체변혁을 목적으로 한 선전행위 취체 규정을 명문화한 것 4)수사절차, 관할이전 등 본법에 관한 소송절차를 특별화한 것 5)사상범인의 교화를 목적으로 한 보호관 찰제와 또는 6)그 재범방지를 목적으로 한 예방구금제의 신설 등등이다.
현행법에 있어서는 동일한 조문 안에 있던 것을 개정안에 있어서는 전연 별개로 규정하게 된 이유는 어디 있느냐 하면 그것은 유구한 역사에 터 잡은 일본 전 국민적 확신의 집중적 표현체제인 국체에 관한 죄와 시대를 따라 변할 수도 있는 재산제도에 관한 죄를 동일한 조문 안에 대등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관념의 혼동을 일으켜 국민도덕상으로 아주 재미가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국체의 존엄성을 더욱 밝히는 의미로 개정안에 있어서는 국체변혁범에 대하여는 현행법에 비하여 가일층 엄벌주의를 채용했다. 이것은 외곽단체, 선전, 예방구금 등처벌규정에도 나타났으니, 이 세 가지 처벌규정은 오로지 국체변혁에 관한 행위를 목적으로한 것이요, 사유재산제도 부인에 관해서는 적용치 않기로 되었다.
이른바 외곽단체는 ‘국체변혁을 목적으로 한 결사(結社)를 뒤에 서서 지지원조하기를 목적으로 한 결사인데, 이 외곽단체는 특정한 결사의 저수지임과 함께 이 결사와 대중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이것까지 취체하는 것은 그 목적이 발본색원에 있다. 또 선전은 본래 일정한 문제 또는 사상을 포착하여 대중에게 설명하며, 또는 호소하여 그 이해와 공명을 구하는 행위로서 그 위험성에 있어서 도리어 일 개인 혹은 일 결사의 직접행동보다 더 클 수가 있다. 이런 의미로 보아 국체변혁에 한해서는 선전도 이를 벌하자는 것이다.
종래의 경험으로 보아 사상범의 수사 심리에는 신속과 시간을 요한다. 피의자의 도망, 죄증인멸, 범죄계속 등의 장애는 신속이 아니면 이를 방지할 길이 없고, 또 국체적 범죄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현행 형사소송법의 구류기간 10일을 가지고는 도저히 수사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또한 이것이 비교적 전문지식을 요하기 때문에 검사면 누구나, 판사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특별한 경우에 선처하기 위하여 검속을 신속, 구류기간을 길게 사건의 경중난이(輕重難易)에 의하여 처리 가능한 다른 재판소로 이전할 수 있게 소송절차를 특별화한 것이다.
범인의 전부를 기소하며, 기소한 범인의 전부에 중형을 과하는 것만이 법의 목적이 아니다.때문에 일시의 과오로 사상범죄에 빠진 자라도 개과전향의 가망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국가는 혹은 기소유예처분을 하며, 혹은 집행유예처분을 한다. 그러나 그자가 정말로 그 후에 개과전향을 하고 있는지 않은지는 국가를 대신한 기관의 유의관찰을 기다리지 않고는 모를 것이다. 이것이 보호관찰제를 둔 이유다. 또 형의 목적은 범죄를 근절하는 데 있다. 때문에 비록 소정의 형기를 마치고 석방되는 자일지라도 석방되면서 이와 같은 죄를 재범할 우려가 농후한 경우에는 이것을 사회로부터 격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예방구금을 신설한 이유이다.

박정희의 이른바 ‘유신체제’ 시절, 정부는 많은 악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비판 없이 그대로 보도헸다. 이 사설이 바로 그런 경우를 연상시킨다. 이 치안유지법 개정안은 조선인의 독립운동을 처벌하는 데 주목적을 둔 법이다. ‘국체변혁’이란 표현은 바로 조선이 일본제국의 일부임을 부정하고 조선독립을 주장하는 행위를 말한다. 조선일보는 이미 일본제국의 조선합병을 인정한 언론이다. 그러니 이 개정안을 다룸에 있어 독립운동이란 말은 한 자도 쓰지 않은 채 자세하고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에 나서는 애국자가 법을 두려워하여 중단하거나 숨어 지내는 경우는 없었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사람에게 법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잡히면 처벌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사설에 고마움을 느꼈을 애국자는 없었을 것이다.

또 지면 혁신을 강조하는 친일지

1934년 4월 26일자 사설(「본보 혁신 1주년」)

본보가 작년 4월 26일 자로 혁신호를 낸지 1주년이 되었다. 이 동안 365일에 본사는 정 신, 물질 양 방면으로 기초가 공고하여지고 아울러 발행부수에 있어서나 성가(聲價)에 있어 서 실로 공전의 경이적 발전을 하였다. 이것은 첫째로 만천하 독자의 동정 있는 이해와 열성 있는 애호에 의한 것이어서 더욱 감사하는 뜻을 표하는 동시에 전원이 합심육력(合心戮力)할 것을 서약하지 않을 수 없다.
본보는 정의의 옹호자로 모둔 사회악과 부단히 싸우고 조선의 민중문화 건설을 촉진하고 대중을 본위로 한 산업의 발전을 조장하고 불편부당의 입장에서 보도의 천직을 수행한다는 4대 강령 밑에 조선민중 전체의 의사와 감정을 표현한다는 사명과 신념으로 일관하여 오늘에 이르렀거니와 이것은 곧 본보의 정신적 기초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적 기초가 공고하다 하더라도 경제적 기초가 없으면 마치 신체 없는 혼 과 다름없을 것이다. 이에 본사는 일시불입 50만 원의 주식회사로 경제적 기초를 확립하여 지금 건설비만 20만 원 가까운 사옥의 공사가 주야 겸행으로 진행 중에 있어서 오는 가을에는 준공을 볼 예정이니 실로 본사는 신혼(身魂)이 함께 건전하고 정신과 물질의 쌍날개 와 쌍바퀴가 아울러 완비하여 이에 태산반석 위에 주춧돌을 세웠다 할 것이다.
(…) 신문에 돈을 내는 이는 투자가 아니라 의연(義捐)을 하는 것이니 이름은 주식회사라 하더라도 사실은 재단법인의 성질을 가졌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첫째로 조선의 독자가 인구 비례로 보아 일본 내지(內地-일인들이 조선에 대하여 항용 쓰던 일본 본토라는 뜻-인 용자)의 20분의 1, 미국의 60분의 1에 불과하도록 적은 것과 둘째로는 조선의 산업이 유치하여 신문의 광고를 이용함이 적은 까닭이다.

조선일보는 창간 이래 경영주가 바뀔 때마다 독자에게 지면 혁신을 약속했다. 심지어 사채업자 임경래도 그런 약속을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지면은 친일로 흘러갔다. 당시의 표현대로 ‘내지신문’인지 합병당한 조선의 신문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만 조선에는 조선어신문이 있었고, 조선일보가 그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이런 신문에서는 독립정신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어 신문과 일본어 신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

1934년 8월 19일자 사설(「조선문화 향상에 유의하라」)

총독부 도서과에서는 현재 조선에 실시되고 있는 신문지 규칙 및 신문지법을 개정하기로 결정한 후 얼마 전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이에 대한 조사연구를 거듭하여 오던 바 이제 기초 준비가 정돈되었으므로 곧 그 초안 작성에 착수하리라 한다. 현재 조선어 신문에 적용되는 신문지법은 광무 11년 7월 법률 제1호로 공포 실시된 후 융희 2년에 와서 다소 개정을 보았을 뿐이며, 일본어[和文]신문에 적용하는 신문지 규칙은 명치 41년 4월 통령(統令 제11호로 공포 시행된 후 동 42년에 일부 개정을 보았을 뿐이다. (…)
(…) 현재 조선어 신문에 적용되는 법령은 여러 가지 점에서 무리(無理)와 불합리를 발견하 게 된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 조선에는 신문에 관한 두 가지 법률이 있다. 하나는 일본어 신문에 적용하는 신문지 규칙이요, 다른 하나는 조선어 신문에 적용하는 신문지법이 바로 이것이다. 신문 발행과 성질상 전연 동일한 형식의 사업에 있어 조선어 신문에 차별을 둔다는 것은 당국이 표방하는 차별철폐주의에 배치될 뿐 아니라 실제 감독상에도 적지 않은 불편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이유는 물론 조선어 신문에 적용하는 신문지법에는 일본어 신문에 적용하는 신문지 규칙보다 더 가혹한 명문(明文)이 있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신문지 규칙의 벌칙에 있어서는 발행인, 편집인, 인쇄인이 일정한 법적 규정에 위반할 때는 최고 1개월 이상, 6개월 이하의 ‘금고(0禁錮’) 또는 20원 이상 100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신문지 규칙 제19조, 제24조)에 반하여 신문지법에 있어서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뿐만 아니라 ‘그 범죄에 공용(供用)한 기계를 몰수’(신문지법 제25조)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모든 점으로 보아 결함투성이의 조선신문지법을 이제 와서야 개정에 착수하게 된 것은 너무나 시기가 늦은 감이 있거니와 늦은 만큼 이번 개정에 있어서는 영웅적 결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도서과의 견해에 의하면 개정안에 있어서도 의연히 허가주의를 채용하리라 한다. 그 이유는 아직도 자본이 빈약하고 기초가 튼튼치 못한 조선 내의 신문 발달을 위하여 허가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러나 그와 같은 보호는 허가주의 철칙을 세우지 않고도 무슨 형식으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의 소망을 말하면 이번 개정법에 있어서는 조선문화를 향상하려는 데 초점을 두고 신문 경영에 많은 편의를 도모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는 지방에 있어서도 조선어 신문이 생장할 만한 내적 외적 조건이 구비되어 있으므로 당국에서도 종래의 방침을 변경하는 동시에 명문 (明文)을 통하여 조선어 지방신문의 발전을 도와야 할 것이다.

당시에는 일본 국내용 ‘신문지 규칙’과 조선 안에서의 ‘신문지법(흔히 광무신문지법’이라 부름) 두 가지가 시행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신문지 규칙은 처벌조항이 좀 가볍고 신문지법은 처벌조항이 무거웠다. 그 이유는 광무신문지법은 한일병탄의 원흉인 이완용이 자신을 매국노로 규탄하는 조선 내의 언론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1907년(광무 11년) 7월 만든 법이기 때문이다. 언론사에서는 이 법을 언론 탄압 법령이라 부르는데, 이완용(李完用) 친일내각의 법률 제1호로 공포된 법이다. 1908년(융희 2년) 2월 24일 법률 제8호로 일부 개정되어 해방이 되기까지 계속 효력을 갖다가 1952년 3월 19일 제2대 국회가 폐기할 것을 가결함으로써 소멸되었다. 전문(全文) 41조로 된 이 법은 일제 36년 간 언론탄압의 구실이 되었으며 내용은 신문 발행의 허가, 신문 발행인의 자격, 신문기사 내용에 관한 것, 신문의 공정성에 대한 것을 규정한 것으로 신문 창간 시 내부대신(内部大臣)의 허가를 받아 보증금을 내고 법을 위반한 때는 허가당국에서 법에 의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위의 사설에서 신문지 규칙과 신문지법을 개정할 때는 조·일 간의 차별을 철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신문 경영에 관한 편의’를 도모하여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신문 경영의 편의란 한 마디로 말하면 돈을 벌 수 있게 해달라는 뜻이다. 또 ‘조선문화의 향상’에 유의할 것을 사족으로 달았는데 이는 일제가 들어줄 턱이 없는 기만적 주장이다. 일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조선문화 말살정책‘을 꾸준히 실시해오고 있었다. 아무튼 조선일보가 ’대일본제국‘ 체제 내에서 언론활동을 하는 이상 ‘조·일 평등’을 주장하는 것 자체는 무리가 아니었다.

사상운동 확산을 막기 위한 주민조직을 찬양

1934년 11월 7일자 2면 기사(「사상 선도의 일책(一策), 부인소방대 조직」)

방금 조선에 있어서 사상운동의 진원지라고 일컬어지는 함경도, 그 중에도 홍원(洪原)에 그 것과 한 대조가 될 ‘부인소방대’라는 것이 생겼다.
수년 전까지도 함경도 일대는 봉건사회의 구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 빈부의 차별이 심하 지 아니하고 천혜의 풍부한 해륙자원으로 자급경제에 자족하는 무풍지대여서 말하자면 현대 자본주의가 개간의 괭이질을 하기 좋은 처녀지였던 것이다. 과연 큰 이윤을 추구하는 대자본은 함경도를 목표로 파도 같이 몰려들자 거기에서는 필연적으로 급격한 계급분화가 생기고 따라서 공산주의사상도 열풍과 같이 인심을 풍미하였다. 성진과 한 가지로 홍원은 그중 특히 심각한 지대로 볼 수가 있는 곳이다. 홍원지방은 다른 지방과는 한층 더 특수한 현상이 있는데, 신여성들이 남자 못지않게 계급운동의 제일선에 나서서 맹렬한 투쟁을 감행하기 때문에 이것이 경찰당국에게는 여간 큰 두통거리가 아니었다. 당국에서는 이 세력을 꺾을 만한 장치를 고려하고 있던 중에 홍원경찰서가 산파역이 되어 만들어 낸 것이 유지부인(有志婦人)을 망라한 ‘여자소방대’이다.
이보다 앞서 총독부 당국의 방침으로 함경도에 대하여는 다른 지방보다도 ‘사상 선도’라는 기치 아래 계급운동을 거세하기 위하여 ‘청년단교풍회’ ‘농촌진흥회’ ‘소방대’ 등의 조직 알선과 확대 선전에 전력을 다하여 왔던 것이다.
금번 여자소방대의 발회식은 수일 전에 낙성된 홍원 신사(神社)의 진좌제(鎭座祭)를 기회로 거행되었는데 회원이 백여 명에 달하였고 겸하여 유니폼까지 입고 나선 그 풍경은 일종의 장관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홍원의 예를 본받아 점차 다른 지방에까지도 그러한 조직의 확대에 노력하리라 는 것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공산주의’를 공산주의라 쓰지 않고 ‘사상’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다. 특히 제목에서는 ‘사상’이라고만 썼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가끔 ‘공산주의’라고 쓰기도 했다.

당시의 언론보도들을 보면 평안도와 함경도 일대에서는 서민층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사상이 넓고 깊이 전파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총독부와 조선일보는 그 운동의 파급을 차단하려고 진력했을 것이다. 이러한 민심의 바탕이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북한사회가 공산주의를 비교적 쉽게 수용한 배경이 되었다고 본다.

일왕을 ‘대원수 폐하’로 호칭

1934년 11월 11일자 석간 1면 기사(「대원수 폐하 대본영에 나가시다[御進發]」)

천황 페하께서는 11일부터 거행할 올해 육군특별대연습을 어통괄(御統裁)하시기 위하여 10 일 동경어발(東京御發) 일로(一路) 대본영으로 어진발(御進發)하셨다.

일제강점기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왕에 대한 최고의 표현이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정치문화가 그러했으니 달리 나무랄 일은 아니다. 다만 ‘천황’이 ‘대원수 폐하’로 불리고 ‘대본영’이란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예삿일 같지 않다. 일본제국은 이때부터 무슨 큰일을 저지를 준비를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일왕이 직접 대본영 연습장을 방문한 것은 이 ‘큰일’이 먼 날의 일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언론관련법 상의 일·조 차별을 폐지하라’

1934년 12월 1일자 사설(「신문지법 및 출판법 개정문제」)

당국에서는 근간 조선에서 현재 통용되고 있는 신문지 규칙, 출판규칙 및 신문지법, 출판법의 네 가지 법령을 일괄 통합하여 시대정신에 적합하도록 이를 개정하려고 하는 중에 있다고 한다. 양자가 다 어느 것이나 구조선시대에 제정된 것을 그대로 계승하여 시대문화의 유산에 병진(倂進)하여 개혁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당연히 개정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일한 지역 내에 있어서 전자 즉 신문지 규칙 및 출판규칙은 일본 내지인에게, 신문지법 및 출판법은 조선인에게 적용하여 일정하여야 할 법령이 일정지역 내에서 획일적으로 운용되지 못하였다는 불합리에서 볼 때 이 4종의 법령을 통일하여 단일 법령화하고 특히 이에 시대정신을 가미하여 진보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기보다도 오히려 만시지감(晩時之感)이 있다 할 것이다.
종래 신문지의 취체가 조선인에 있어서는 금지를 전제로 한 허가주의였기 때문에 신문 발 행의 허가 획득이 곤란한 사실은 자연 신문지 발행권을 일종의 이권화하여 좋지 못한 결과를 일으켰던 것은 잊지 못할 일이다. 따라서 이번의 신법령에 있어서는 조선인의 신문지 발행도 당연히 인가주의를 원칙으로 하여 언론기관의 자유발달을 기도하도록 하는 것이 요망된다. 물론 당국으로서는 허가주의의 제한성은 자유경쟁을 방지하여 소수의 언론기관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할는지는 모르지만은 언론기관의 자유발달이 보장되지 못하는 한은 특히 허가된 언론기관의 존속성이 오로지 당국의 의사에 의존케 되는 경향을 갖게 되므로 신문지의 발행은 역시 인가주의에 의할 것이 요망되는 바다.
출판법의 개정이 종래에 있어서 조선인 잡지 경영자에 의하여 여러 차례 요망된 바는 원고 검열제란 것은 사실상 정기출판물의 계속을 불가능케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당국은 이 점에 관하여 과반(過般) 잠정적으로 일부 잡지의 원고 검열을 인정하였지만은 이 번 개정에 있어서는 출판물의 검열은 특종(特種)의 것에 한한 외에는 역시 일본 내지의 그것과 같이 납본을 표준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시대문화가 급속한 템포로 달음질하는 현대에 있어 이것을 문자로 반영하는 출판물이 원고 검열이라는 난관에 의하여 적체저지(積滯阻 止)된다는 것은 사회문화의 자유로운 발달을 위하여 크게 고려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 다.
물론 우리는 이번 전기 4종의 법령이 통일되어 진보된 모습으로 나타나서 ‘인(人)’과 ‘물 (物)’에 의하여 동일한 행위가 여러 가지의 적용을 달리하는 모습이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바 이어니와 요컨대 이 개정의 지도정신이 어디까지나 시대문화에 순응하고 언론출판의 자유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지배된다면 자연 그 형식도 이상적인 것이 될 수 있지만 단지 이것을 대 세에 순응하는 정도의 고식적 체면적인 것으로 한다면 이에 족히 문제로 할 것이 못된다고 할 것이다. 종래의 진부 복잡한 신문지법 및 출판물 취체법령이 단일법령으로서 새로이 제정된다는 데 있어서 당국은 한층 뜻 있는 고려가 있기를 요망하고 이에 한 마디 하는 바다.

조선일보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신문 출판 관련법이 일본과 조선에서 서로 차이가 있는 점을 지적하며 ‘내선일치’를 주장해왔다. 일본제국의 정책에 충실하게 부응하고 있지만 신문지법이 너무 엄격해서 자칫 실수하다가는 정간 또는 폐간의 위험에 처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늘 느끼며 살아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는 사설이다. 더구나 신문에 대한 허가주의는 신문사 경영진의 목줄을 죄고 있다. 한 번 찍히면 살아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가주의를 주장하는데 아마 요즘 국내법의 등록주의를 의미하는 듯하다. 등록주의란 신문발행에 필요한 자금, 시설, 인력 등을 구비하고 등록신청서를 당국에 제출하면 등록증이 나오는 제도이다. 그래서 허가제가 아닌 인가제를 강조한 모양이다. 총독부나 일본정부가 들어줄 턱이 없는 주장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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