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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사가 주장하는 ‘조선일보’- 조선일보 대해부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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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2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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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3월 5일 창간된 조선일보는 현존하는 한국 대중매체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제가 1940년 8월 10일 조선일보를 강제로 폐간한 때부터 1945년 11월 23일 복간하기까지 5년 3개월 남짓을 빼면 그 신문의 실질적 역사는 2014년 현재 ‘89년’이다.

조선일보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발행부수와 가장 큰 영향력을 ‘자랑’하는 신문이다. 무엇이 조선일보를 그런 자리에 올려놓았을까? 조선일보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밝히기 전에 조선일보사가 주장하는 ‘조선일보’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일보사의 ‘기업이념’

많은 매체를 거느리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공식 누리집 머리에는 ‘기업이념’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조선일보사의 사시(社是)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4월에 만들어졌습니다. 계초 방응모 사장의 조선일보 인수 이후 당시 사장이었던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과 방응모 선생이 주도해서 만들었습니다. 이 사시는 지난 세월 동안 조선일보의 흔들림 없는 이념과 지향점이 되었습니다.

정의옹호

정의옹호는 민족지로서 민족의 정의를 으뜸가는 가치로서 정치적 정의, 경제적 정의, 사회적 정의를 옹호하겠다는 신념의 피력이며, 아울러 이러한 정의를 존중하는 여론기구로 자임함을 천명한 것입니다.

문화건설

문화건설은 일제강점기 당시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된 조선 민중의 역사적 소임을 밝힌 것으로, 민족문화의 발굴 보존 및 문화실력의 양성으로써 민족문화의 발전을 기약하는 청사진으로 설정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사시정신은 일제강점기의 전국 향토문화대조 사업, 문자보급 계몽운동, 문화예술 행사의 빈번한 개최나 유별나게 돋보이는 국학기사의 집중연재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산업발전

산업발전은 민족이 당한 온갖 수모와 수난이 산업 부재에 있다는 당시 여론에 따라, 자생적 경제력을 키우기 위해 먼저 경제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자구적 소임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이 정신은 구체적으로 물산장려운동의 금자탑인 그때의 조선 특산품 전람회를 비롯하여 연례적으로 국내외 산업시찰단을 파견하는 행사, 해외 실업인의 초청, 그리고 국산 우수상품의 선정으로 실천되었습니다.

불편부당(不偏不黨)

불편부당은 좌우 대립이 극심하던 당시 조선일보의 중립지적 성격을 명확히 밝힌 것이었습니다. 불편은 좌파나 우파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의 가치를 지향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부당은 어떤 정치력, 지배력 또는 경제력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나갈 수 있다는 자신을 표명한 것인데, 이후 이 사시는 어떤 세력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는다는 조선일보의 뚜렷한 좌표로 발전했습니다.

조선일보사 누리집의 ‘조선일보 발자취’ 항목은 아래와 같이 시작된다.

조선일보 사람들의 과거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정신적 등불’이었던 조선일보

1910년 일제의 강제 침탈 후 우리 민족이 주체가 되어 만든 최초의 민간지가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나라 되찾기에, 광복 이후에는 나라 만들기에 전념해 왔습니다.

누리집의 ‘조선일보 발자취’는 4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단계별로 주요한 내용은 이렇다.

1단계 ‘민족의 빛 조선일보’(일제강점기, 1920~1940)

  • · 언론 암흑 10년만의 첫 민간지
  • · 경영난으로 악천고투:대정실업인친목회와 5개월 만에 결별
  • · 총독부, “조선일보는 미친 개처럼 우리를 물어뜯는 신문”
  • · 민간지 최초로 정간 조치를 당하다
  • · ‘혁신 조선일보’로 재도약
  • · 자치론 배격, 신간회 설립 주도
  • · 한국언론사상 최초로 기자 공채를 실시하다
  • · 계초 방응모, 조선일보를 인수하다
  • ·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문자보급운동 전개
  • · 언론사 최초로 전용 비행기 도입
  • · 만해 한용운, 벽초 홍명희, 계초 방응모 그리고 조선일보
  • · 중일전쟁과 강요당한 친일 지면
  • · 한용운, 조선일보 폐간 소식에 “붓이 꺾여 모든 일이 끝나다”라며 통탄

2단계 ‘민족지에서 민권지로’(1945~1964)

  • · 5년 3개월 13일 만에 복간: 이승만 “민중과 함께 나가라”, 김구 “뜻이 있는 자는 끝내 이 룬다”
  • · 정부 수립기 혼란 속 중립 유지
  • “ 두 개의 이념보다 이를 통일하지 못하는 민족 역량이 문제”
  • · 방일영,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
  • · 독재에 맞선 ‘민권지 조선일보’로 자리잡다
  • · 4·19 혁명과 조선일보
  • · 5·16 이후의 시련과 ‘조간 조선일보’의 탄생
  • · 자유언론의 깃발을 들다
  • · 언론 탄압 위한 언론윤리위법에 결연히 맞서다
  • · 방우영의 등장, 발행부수 20만 부 돌파

3단계 ‘정상(頂上)의 조선일보(1975~1992)

  • · 동양 최초의 대색쇄 윤전기 도입으로 지면의 컬러화 주도
  • · 얼어붙은 정국…다양한 기획과 읽을거리로 활로 모색
  • · 한밤에 사설 교체,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 규명 촉구’
  • · 발행부수, 선두를 탈환하다
  • · 육영수 저격 사진 대특종
  • · 3·6 사태로 내부 갈등이 심화되다
  • · 긴급조치 9호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다
  • · 발행부수 100만 부를 돌파하다
  • · 신군부의 등장과 언론통폐합 그리고 광주의 비극
  • · 독립기념관 건립을 선도하다
  • · 정동별관 시대가 열리다

4단계 ‘세계화 시대 선도’(1993~현재)

  • · 납활자와 고별하고 전 지면 CTS로 제작
  • · 한국 환경운동의 새 역사를 쓰다
  • · 방상훈 사장 취임,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 역설
  • · 초대형 기획 전시 대호황과 문화사업 번창
  • ·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
  • · ‘할 말은 하는 신문에 대한 다양한 공세’와 ‘안티 조선’의 등장
  • ·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했던 세무조사
  • · 신문 속의 신문 조선경제 탄생
  • · 뉴스를 앞쪽으로, 사설 칼럼을 뒤쪽으로 ‘지면 혁신 단행’
  • · CRM 시스템 도입

<조선일보 대해부>의 목적은 조선일보의 실체를 밝히는 데 있다. 조선일보사가 주장하는 ‘조선일보’를 상기하면서 이 총서를 읽어나가면 자칭 ‘대한민국 1등 신문’의 역사와 정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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