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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선-‘박근혜 대통령 만들기’(2)동아일보 대해부 5권 - 21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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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0.0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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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단일화에 ‘재 뿌리기’

제18대 대선 과정에서 야권은 물론이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민주당 후보 문재인과 무소속 후보 안철수가 단일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였다. 벤처사업가로서 명성과 부를 쌓은 데다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 출신인 안철수는 정치 경력은 전혀 없었지만,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을 지지함으로써 결정적 승리의 바탕을 만들어 준 이래 그 어떤 직업정치인보다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안철수가 2012년 9월 19일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직후부터 언론과 대중은 그가 마지막까지 완주할 것인지, 아니면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해 결단을 내릴 것인지에 주목했다.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해온 재야인사들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작업에 열성적으로 나섰다. 새누리당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문재인과 안철수가 대선 투표일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임으로써 박근혜가 어부지리를 누리게 하는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동아일보는 10월 24일자부터 11월 24일자까지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에 딴죽을 걸거나 에둘러 비판하는 사설을 무려 14 편이나 내보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의 내용을 보기로 하자.

「안 후보, 박근혜 아니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나」(10월 24일자)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을 원하지 않는 정치권 안팎의 여러 세력은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에게 ‘무조건 단일화’를 요구하는 형국이다. 진보 좌파세력의 이른바 원로 인사들이 주도하는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도 야권후보 단일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4·11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통합진보당·원탁회의 3자 간의 선거 연대를 위한 정책 합의를 한 경험이 있다. 이 합의 중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친북반미적 내용도 적지 않았다.
  문 후보는 바로 그 민주당이 선출한 대선후보이지만 문제는 안 후보다. 안 후보는 정치 개시를 저울질하던 시기에 자신의 노선에 대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했다. 그러나 점차 안보도 보수라고 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변질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안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손 잡을 정치 세력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주목하고 있다. 과연 안 후보가 오로지 대선 승리를 위해 ‘원탁회의’ 세력과도 손잡고 후보 단일화에 몸을 담을 것인지 궁금하다.
  ‘원탁회의’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등 21명이 참여하고 있다. 대표 격인 백 교수는 저서 <2013년 체제 만들기>에서 한미동맹 체제를 대체하는 남북연합체제를 역설한다. 천안함 폭침 원인에 대한 인식도 중국 북한과 비슷하다. 최근 한 의식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5%가 한미동맹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안보뿐 아니라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긴요한 체제 기반이다. 오종렬 씨는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2005년 평택 미군기지 반대, 맥아더 동상 철거 시위 등을 주도한 반미운동권 인사다. 3월 13일 원탁회의 인사들과 민주·통진당 수뇌부가 야권연대 공동선언을 하는 자리엔 무단 월북해 북한 찬양 노래를 불렀던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도 참석했다.
  안 후보가 이런 ‘원탁회의’의 종북세력과도 손을 잡아 야권 단일후보가 되고 나아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안 후보는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을 막기 위해서는 종북세력이 포함된 좌파세력이 참여하는 정권이라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가. 이 점을 국민 앞에 먼저 확실하게 밝히는 것이 단일화 논의에 앞서 안 후보가 해야 할 일이다. 어떤 세력과 제휴하더라도 박근혜 후보만 꺾으면 된다는 식이라면 그가 강조해온 ‘새 정치’의 실체는 구태 정치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원탁회의 세력’은 어떤 나라 만들겠다는 것인가」(10월 26일자)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가 그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문 후보 측은 “원로들의 주문을 깊이 유념하고 정권교체와 정치혁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안 후보 측은 “우리 사회 원로들의 기대와 걱정에 대해 이해하고 깊이 새겨 듣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탁회의 원로들의 면면과 활동 전력을 살펴보면 과연 두 후보가 경청할 만한 책임감과 무게를 지녔는지 의문이다.
  원탁회의의 핵심 멤버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청화 스님,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는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곽노현 후보와 박명기 후보의 단일화를 중재했다. 단일화의 대가로 두 사람 사이에 2억 원이라는 큰돈이 오간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곽 씨는 후보자 매수죄로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고 교육감 직을 상실해 재선거를 치르게 됐다. 원탁회의 사람들 중 누구 하나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
  원탁회의는 주요 인사의 전력이 친북과 종북을 오가는 집단이다. 청화 스님은 2005년 경기 파주 보광사에 간첩과 빨치산 묘역 조성을 주도한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상임고문이다. 함세웅 신부와 김상근 목사는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남북연방제 통일을 주장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지도위원을 지냈다. 전면에 나선 이들 종교인 뒤에는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같은 골수 종북주의자도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2013년 체제’란 무엇인가. 백 교수가 남북 분단 모순과 자본주의 체제 모순의 동시 극복이라는 현학적인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북한의 연방제와 유사한 남북 연합체제다. 원탁회의는 단일화를 중재할 만큼 중립적이지도 않다. 한때 이해찬 민주당 대표, 문 후보도 원탁회의 멤버였다. 이런 원탁회의가 주선하는 단일화는 오히려 동기의 불순함 때문에 국민의 불신을 키울 수 있다.

「여론조사 단일화, 제비뽑기보다 나을 게 없다」(11월 1일자)

  문재인·안철수 간의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방식으로 10년 전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에 이뤄졌던 여론조사 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전례를 따르는 게 손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여론조사가 과연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압축하는 방식으로 타당한지 다시 한 번 따져 보지 않을 수 없다. (·····)
  야권이 후보 단일화를 하려는 목적은 정권 교체에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와의 경쟁에서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는지가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박 후보와의 경쟁에서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는지 ‘본선 경쟁력’을 묻는 여론조사로 한다면 현재 추세로는 안 후보가 문 후보보다 앞선다. 어떤 여론조사 방식을 택하느냐에 따라 2013∼2018년 5년 간 국가 운명을 책임질 18대 대통령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기껏해야 몇 천 명 샘플로 실시하는 여론조사에 대한민국의 운명까지 맡긴다는 게 선거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여론조사에서 0.1%포인트라도 앞선 사람을 승자로 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있다. 예컨대 2000명 샘플을 조사할 경우 통계학상 신뢰 수준이 95%이고 표본 오차는 대체로 ±2.5%로 나온다. 오차 범위가 ±2.5%란 것은 5% 포인트까지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뜻이다. (···) 이런 여론조사에서 0.1%포인트를 이겨도 승자라는 판단은 선거민주주의 관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여론의 오독(誤讀)이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 추세라면 문·안 두 후보의 단일화를 여론조사에 부칠 경우 오차범위 내 차이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근거로 승패를 가를 경우 제비뽑기나 다름없는 ‘민의 참칭’이 될 것이다.

「토라진 안, 달래는 문, 안 보이는 새 정치」(11월 16일자)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그제 문재인 후보와 민주통합당 측에 불만을 표시하며 단일화 협상 중단을 선언하자 야권 전체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다. 문 후보는 두 차례나 사과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테니 다시 단일화 협의를 해나가자”고 말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조국 서울대 교수 등 야권의 장외 인사들까지 안 후보 달래기에 나섰다. 안 후보는 “깊은 실망을 했다. 단일화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로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안 후보 측은 단일화 경합을 앞두고 문 후보 측이 조직력을 가동하고, 안 후보의 양보설을 언론에 퍼뜨리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안 후보는 어제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일화 협상을 중단한 이유로 “옛날 방식의 정치경쟁”을 꼽았다. 그러나 대선후보 단일화 그 자체가 옛날 방식의 정치공학적 산물이다. 민주당이 단일화에 승리하기 위해 조직을 가동하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
  안 후보를 대선 무대로 밀어올린 ‘안철수 현상’은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갈망이 표출된 것이었다. 새 정치는 지난 반세기 국민에게 실망과 혐오감을 안겨준 각종 정치적 구태들을 청산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안 후보는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신비의 안개가 걷히고 새 정치라고 인정할 만한 참신함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가 지금 매달리는 것은 1997년 김대중·김종필,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보여줬던 낡은 정치공학이다. 문 후보도 안 후보를 어떻게든 끌고 가야 승산이 있으니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토라진 안 후보나 달래는 문 후보에게 새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여론조사 단일화, 제비뽑기보다 나을 게 없다”」(11월 23일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 간의 단일화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 단일화의 재방송처럼 흘러가고 있다. 후보들이 직접 담판에 뛰어든 것이나 여론조사를 앞두고 한 차례 TV 토론을 벌인 형식도 비슷하다. 10년 전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양측이 단일화 시한으로 약속한 후보 등록일(11월 25, 26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여론조사 방식을 합의하지 못한 채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두 후보가 단일화를 두고 강조했던 ‘감동 있는’ ‘아름다운’ 등의 수사(修辭)가 공허해졌다.
  무엇보다도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는 어떤 방식을 취하든 과학적 정합성이 없다.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의 신뢰도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고, 조사에 오류가 있더라도 수정하거나 검증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여론조사기관의 한 책임자는 “여론조사로 단일화하는 것은 뺑뺑이 돌리기와 비슷하다. 통계학의 원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게임”이라고 비판했다. (·····)
  100만 명의 국민선거인단이 참여한 경선을 통해 공당의 대표 주자로 선출된 문 후보가 기껏 몇 천 명의 여론조사로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를 겨룬다는 것은 정당정치를 희화화하는 일이다. 민의를 왜곡하는 ‘단일화 쇼’를 종식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새 정치이자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안철수는 11월 23일 오후 8시 20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한다. 후보직을 내려놓겠다”며 “이제 (야권)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다”라고 밝혔다. 그는 “더 이상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서는 저를 꾸짖어 주시고 문 후보에게는 성원을 보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대통령이 돼 새로운 정치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이 국민 앞에 드린 약속(대선후보 등록 전 단일화)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또 “제가 부족한 탓에 국민 여러분의 변화의 열망을 활짝 꽃피우지 못하고 여기서 물러나지만 제게 주어진 시대와 역사의 소명을 결코 잊지 않겠다. 그것이 어떤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온몸을 던져 계속 그 길을 가겠다”라며 ‘정치인 안철수’의 길을 갈 것임을 시사했다.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안 후보를 지지하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미안하다”며 “안 후보의 진심과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염원을 정권교체를 통해 반드시 이루겠다”고 밝혔다. 진성준 대변인은 “우리 모두가 안 후보께 큰 빚을 졌다”고 논평했다. 문 후보는 금명간 안 후보와 만나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문·안 후보는 ‘후보등록일(25, 26일) 이전 단일화’를 위한 사실상의 시한인 23일 ‘단일화 특사’ 양자 회동을 통해 담판을 벌였으나 단일화 방식에 합의하지 못했다. 후보 대리인 간 ‘특사 담판’에서 문 후보 측은 ‘가상 양자대결+적합도 조사’를 거듭 제시했으나 안 후보 측은 ‘가상 양자대결+지지도 조사’로 맞섰다(동아일보 11월 24일자 1면).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27면에 「‘안철수 현상’ 감당 못한 설익은 안철수 정치의 좌초」라는 사설을 실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어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후보에서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안 후보는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 저를 꾸짖어 달라. 이제 단일후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라고 말했다. 안 후보의 전격 사퇴로 앞으로 25일 남은 18대 대통령선거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맞붙는 양자 대결로 압축됐다.
  안 후보는 사퇴 선언과 함께 “정권 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말하면 서도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루어지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문 안 후보 사이의 단일화 담판에 이어 특사 협상까지 결렬되자 안 후보가 문 후보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단일화를 포기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문 후보로의 단일화는 이뤄졌으나 ‘새 정치’를 바라는 안 후보 지지자들이 문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은 미지수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안 후보의 설익은 새 정치가 기존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한 꼴이다. (·····)
  문·안 후보는 21일 단일화 TV 토론에서 국회의원 정수 조정과 외교안보 등 여러 이슈를 놓고 확연히 다른 견해를 드러냈다. 안 후보가 서로 노선이 맞지 않는 문 후보와의 단일화에 매달리며 대선 승리에 집착한 것은 새 정치에 역행하는 일이었다. 안 후보가 정치적 구태인 대선후보 단일화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의 ‘새 정치 1막’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문·안 후보 캠프가 단일화 룰 협상에서 보여준 행태도 ‘아름다운 단일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이 살고 상대방은 죽여야 하는 정치공학만 번득였다. 정책과 비전을 놓고 겨뤄야 할 대선 과정을 온통 ‘단일화 판’으로 변질시키고 많은 국민에게 짜증과 피로감을 안겼다. 안 후보는 후보 양보설이 나올 때마다 “절대 양보는 없다”라고 거듭 말했지만 결국 ‘빈말’이 되고 말았다.

안철수가 문재인을 지지하면서 후보 사퇴를 하자 야권 후보 단일화가 정권 교체의 지름길이라고 믿던 사람들과 진보언론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동아일보의 사설과는 정반대 반응이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박근혜 구하기

대통령선거를 일주일 앞둔 12월 12일자 동아일보 5면에는 「야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서 문 비방 댓글”… 국정원 “정치활동 사실무근”」이라는 기사가 올랐다.

  민주통합당이 11일 국가정보원 직원이 수개월 간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여론 조작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정원은 부인했다.
  문 후보 측 진성준 대변인은 “국정원 직원이 정치 관련 홈페이지에 접속해 문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무차별적으로 올리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국정원 제3차장실 심리정보국 소속 김 모 28·여) 씨가 상급자 지시를 받아 서울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수개월 간 근무하면서 야권후보 비방을 일삼은 곳”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신고로 경찰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이날 오후 민주당 공명선거감시단과 함께 현장에 출동했다. 이들은 김 씨의 허락을 받고 집 안으로 들어갔으나 “국정원 직원이 아니다”라는 김 씨의 대답을 듣고 집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 관계자들은 김 씨가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지자 불법 선거운동 여부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며 집 앞에서 늦은 밤까지 대치했다.
  국정원은 보도 자료를 내고 “역삼동 오피스텔은 국정원 직원의 개인 거주지인데 명확한 증거도 없이 개인의 사적 주거 공간을 무단 진입해 정치적 댓글 활동을 운운한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12월 13일자 사설(「‘아니면 말고 식’ 흑색선전, 선관위가 대응하라」)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의혹 제기 수준의 주장이 나오면 시시비비를 가려 대선 판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대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흑색선전이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그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께서 TV토론(10일)에서 커닝을 했다는 얘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떠돌고 있다. 유포된 사진을 보면 박 후보께서 무릎 위에 ‘아이패드 윈도 백’을 올려놓은 것이 찍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거짓으로 드러났다. 팟캐스트 <나꼼수>는 박 후보가 1억5000만 원짜리 굿판을 벌였다는 한 스님의 근거 없는 주장을 사실인 양 내보냈다. 나꼼수가 인용한 스님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 선대위의 ‘SNS시민홍보단’ 소속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에는 문 후보 측이 굿판을 벌였다는 주장도 퍼지고 있다.
  민주당은 국가정보원 여직원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수개월 간 문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국정원은 “해당 직원은 특정 후보 비방 댓글을 인터넷에 남긴 적이 전혀 없다”라면서 “오히려 민주당이 미행 등 불법 사찰, 감금, 허위사실 유포로 여직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반박한다. 민주당은 주장만 할 뿐 구체적 물증을 제시하지 않아 현재로선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
  흑색선전은 수사를 통해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지더라도 선거에 끼친 악영향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2002년 대선 때 병력 비리 의혹과 함께 제기됐던 이 후보 측의 10억 원 수수설과 20만 달러 의혹,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BBK 주가 조작 의혹, 작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때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의 ‘연 회비 1억 원 피부 관리’ 의혹이 대표적인 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의혹 제기 수준의 주장이 나오면 시시비비를 가려 대선 판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민주통합당 측이 문재인 후보 비방 글을 올렸다고 지목한 국가정보원 직원 김 모(28·여)는 의혹이 제기된 지 사흘 만인 13일 자신의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를 경찰에 제출했다.

  11일 오후부터 서울 강남구 역삼동 김 씨의 오피스텔 앞을 봉쇄하고 있던 민주당 관계자들은 13일 오전 11시경 철수했다. 이어 이날 오후 국정원 요원들이 김 씨를 에워싸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 버렸다.
  (···) 문재인 후보 측 박광온 대변인은 “국정원이 진실 규명을 막기 위해 김 씨를 데려갔다”라고 비판했다.
  김 씨 변호인은 이날 오후 김 씨 명의로 민주당 관계자들을 감금과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하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도 의뢰했다. 수서경찰서 소속 경찰관 8명과 강남선거관리위원회 지도계장 등 2명은 증거품을 확보하기 위해 이날 오후 2시 13분경 김 씨의 방에 들어갔다. 경찰은 휴대전화와 이동식 저장장치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김 씨 측은 “비방 댓글을 올린 적도 없지만 컴퓨터를 확인하면 될 일이고 국정원 직원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 씨는 국정원 제3차장 소속 심리전단 직원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국정원 직원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대선과 관련해 어떤 글도 인터넷에 남긴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
  민주당이 김 씨 집 문 앞을 거의 사흘 간 가로막은 것에 대해 ‘불법 사찰’ ‘인권 유린’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집 앞을 지킨 민주당 관계자 중에는 전직 경찰 모임인 ‘경우회’ 핵심 간부인 A 씨도 포함됐다. A 씨는 경찰 재직 당시 대표적인 ‘정보통’으로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소속 친인척관리팀에서 일했다(동아일보 12월 14일자 4면).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35면에 「국정원 여직원 감금, ‘민주당 스타일’ 과시인가」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대선 막판에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선거 개입을 주장하고 나선 민주통합당의 행태는 무리수와 불법으로 얼룩져 있다. 민주당의 의혹 제기가 신뢰를 얻으려면 국정원 여직원이 언제, 어디에, 어떤 내용의 악성 댓글들을 달았는지 먼저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 민주당은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악성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했다느니,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느니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인 증거 하나 내놓지 않았다. 더구나 사사로이 여직원의 뒤를 캐고 사실상 감금하는 불법 행위를 했다.
  만약 그 여직원이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할 공직자로서 인터넷에 댓글을 달아 법률 위반 행위를 했다고 치더라도 경찰이나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해 사실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 적법한 순서다. 국정원의 개입 여부를 가리는 일도 마찬가지로 정당한 법 절차를 따랐어야 옳다.
  하지만 민주당은 수사기관도 아니면서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하려는 행태를 보였다. 국정원 여직원을 일주일 동안 미행해 감시하고, 이틀간이나 여직원을 집 안에 감금하다시피 했다. 현행범이 아닌데도 소방관을 불러 문을 따려고 시도했으며 여직원의 컴퓨터를 강제로 압수해 조사하라고 경찰을 윽박질렀다. 취재기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불법 선거운동 감시를 위한 정당한 활동”이라고 강변했다. 민주당은 수십 년 전 박정희 시대의 인권 유린은 문제 삼으면서 자신들의 인권 유린 행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듯하다.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식의 이중적 태도다.

동아일보는 대선 투표 전날인 12월 18일자 2면에 ‘국정원 댓글 사건’에 관해 박근혜가 주장한 내용을 크게 다룬 기사(「박 “민주, 경찰은 못 믿고 나꼼수 말만 믿나”」를 실었다.

  “민주통합당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인권 유린에는 말이 없습니다.”
  대선을 이틀 앞둔 17일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과 충청권 그물망 유세에 나선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는 가는 곳마다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여론 조작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의 무책임성을 지적했다. 유세장에서마다 15분가량 마이크를 잡은 그는 “2박 3일 동안 감금을 당하고 고생한 젊은 여직원만 불쌍하게 되지 않았느냐”라며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사람이 먼저라고 하더니 이게 사람이 먼저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자신들의 증거는 하나도 내놓지 못하면서 (경찰 등을) 못 믿겠다고 한다”라며 “그러면 제가 굿판을 벌였다고 허위 방송을 하고, 신천지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이런 ‘나꼼수’만 믿는다는 말이냐”라고 비판했다.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라는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를 강조하며 민주당을 ‘구태정치’로 몰아세우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민주당은 지금도 이렇게 하는데 정권을 잡으면 도대체 어떤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지 두려운 생각까지 든다”라며 “이런 구태 정치를 끝내고 단 한 명의 억울한 국민도 없는 민생정부를 만들어 달라”라고 호소했다.

동아일보는 대선 투표일인 12월 19일자 사설(「국민은 투표로 말한다」)에서 이렇게 ‘권유’했다. “나라가 흔들리면 백약이 무효다. 우리에게는 대한민국을 잘 지킬 수 있는 대통령이 절실히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과 영토 주권을 제대로 지킬 후보,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라의 곳간을 든든히 채울 후보, 호전적인 북한 김정은 집단을 잘 상대할 후보가 누군지도 꼭 따져봤으면 한다.” 누가 보아도 박근혜를 지지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제18대 대선이 끝난 지 한참 뒤인 2013년 4월 19일자 한겨레 1면 머리에는 「서울경찰청, 국정원 댓글 수사 조직적 은폐·방해했다」라는 기사가 올랐다. 부제목은 「하드디스크 분석자료 중간발표하고도 실무팀에 안 줘 / 권은희 수사과장 “위법” 격렬 항의 받고 이틀 뒤 넘겨」이다. 기사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서울지방경찰청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일선 수사팀에 핵심 수사 자료를 넘겨주지 않으려 하고, 주요 증거물을 피의자에게 돌려주려 하는 등 지속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고 당시 수사 책임자가 폭로했다. 지난해 대선을 사흘 앞둔 12월 16일 밤 갑자기 면죄부성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해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당한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 등 지휘부가 사건 수사에까지 부당하게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어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 사건 수사 책임자였던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19일 한겨레와 만나 “(지난해 12월 16일) 서울경찰청이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아예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29) 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최종 분석 자료를 우리에게 안 주려고 했다. 우리(수서경찰서 수사팀)가 ‘당신들 법 위반이다’라는 말까지 하며 격렬히 항의했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직무 수행을 거부하면 직무유기죄에 해당한다. 서울경찰청은 16일 밤 분석을 끝낸 자료를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만 이용한 뒤 이틀이 지난 18일 밤에야 수서경찰서에 건네줬다.
  또 서울경찰청은 국정원 직원 김 씨가 제출한 하드디스크 등을 김 씨에게돌려주려다가 수서경찰서 수사팀의 강한 항의를 받고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 과장은 “제출된 컴퓨터 등은 사실상 압수상태인 증거물이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상) 증거물 관리에 대한 판단은 수서경찰서가 해야 한다고 서울경찰청에 주장했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의 고발에 따라 국정원 직원 김하영에 대한 수사 책임을 맡았던 권은희가 지난 대선 막바지에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던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외압’을 받았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동아일보는 대선 개표가 끝나자 12월 20일자 39면에 「 박 당선인, 국민통합과 위기관리의 거인 되길」이라는 사설을 올렸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 탄생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 50% 이상 득표하기는 처음이다. 박 당선인에게는 축하를, 선전했지만 낙선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범보수 대 범진보 진영의 대결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세대, 지역, 이념, 빈부의 갈등이 깊어졌다. 그러나 피 말리는 승부는 끝났다. 국민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내 편, 네 편이 아니라 하나가 돼 미래를 함께 열어 가야 한다.
  박 당선인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국민을 끌어안는 것이다. 승자의 독주를 경계하고 반대세력을 껴안아야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뒤 “민생 대통령, 대통합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면서 “국민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초래된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갈망은 도도한 물결을 이뤘다. 박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에 약속했던 정치쇄신 약속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가 아니라 갈등을 해소하는 정치, 국민이 걱정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걱정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 (·····)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가 안보다. 북한은 핵 개발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도 성공했다. 박 당선인은 유엔 주도의 대북 제재 움직임 속에서 구체적인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남북 관계 경색의 주원인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다. 경색을 풀려면 북한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국제사회와의 대북 제재 강화 공조는 4강과의 발전적인 관계 설정을 위해서도 긴요하다. 남북 관계는 통일까지 바라보는 긴 안목에서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조건 없이 대화를 서두르기보다는 북한의 도발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처가 중요하다.
  통합이든 경제든 외교든 안보든 난제 대응에는 첫 단추가 중요하다. 박 당선인은 국민 통합과 위기 관리의 거인으로 우뚝 서길 바란다.

동아일보는 박근혜에게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가 아니라 갈등을 해소하는 정치, 국민이 걱정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걱정하는 정치”를 하라면서 “국민 통합과 위기 관리의 거인으로 우뚝 서길 바란다”라는 ‘거대한 희망’을 밝히고 있다. 2013년 2월 25일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근혜가 동아일보의 ‘희망’처럼 그런 길을 갔는지는 앞으로 펴낼 <동아일보 대해부 6>에서 짚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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