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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농군’ 노무현 죽이기동아일보 대해부 5권 -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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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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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4일 자정으로 대통령 임기를 마친 노무현은 고향인 경남 김해시의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청와대 생활 5년 동안 측근이나 친인척의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무차별 공격에 시달려온 그는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평화롭게 살던 ‘농군 노무현’에게 닥친 시련

노무현의 민주화운동 동지이자 청와대 시절 마지막 비서실장인 문재인은 봉하마을에서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봉하에 자리를 잡은 대통령도 농군으로 잘 지내고 계셨다. 양산에 있으면서 가끔 들렀다. 대통령이 누군가의 예방을 받을 때 격식을 갖출 필요가 있으면 가서 배석을 하고, 무슨 공식 행사에 갈 때는 수행도 했다. (···)
  갈 때마다 좋았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 그들은 소리를 질러가며 대통령을 집밖으로 불러내 환호하고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다. 대통령은 하루에도 몇 번씩 집밖으로 불려 나갔다. 방문객들에게 인사하는 일을 고달파 했지만 그러면서도 좋아했다.
  (···) 어떤 때는 무슨 대학 강의하듯 어려운 내용을 장시간 말씀하시기도 했다.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 계셨더라면 농사지으며, 평범한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대학생들이나 대학원생들에게 좋은 특강도 하면서 소박하게 사셨을 것이다.
  친환경 농업, 숲 가꾸기, 화포천 살리기 등의 얘기를 할 때엔 얼굴에 그렇게 생기가 넘칠 수 없었다. 그분은 봉하마을 전체를 새롭게 개조하고 싶어 했다. 잘 사는 농촌, 살기 좋은 마을의 성공 모델을 만들고 싶었던 거였다 (문재인, <문재인의 운명>, 가교출판, 2011, 388~390쪽).

평범한 시민으로서 고향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밀려드는 방문객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하던 노무현의 평화로운 생활은 미처 한 해도 되기 전에 모진 시련에 부닥치게 된다. 그 실마리가 된 것은 친형인 노건평의 ‘비리’였다.

동아일보 2008년 11월 25일자 1면 머리에는 「 정화삼 씨 세종증권 인수 청탁받고 / 노건평 씨, 농협 회장에 / “말 좀 들어봐라” 전화 / 노 씨 출국 금지」라는 기사가 나왔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용석)가 농협의 옛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 인수 로비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66) 씨가 24일 세종증권 측의 인수 청탁을 정대근(64) 당시 농협중앙회장에게 전달했다고 시인했다.
  노 씨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정화삼(61·구속) 전 제피로스 골프장 대표의 동생 광용(54·구속) 씨와 세종증권의 대주주였던 세종캐피탈 홍기옥(구속·59) 대표가 찾아와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
  검찰은 정 씨 형제가 세종캐피탈 측에 “인수가 잘 되도록 건평 씨에게 얘기해 주겠다”고 했으며, 농협에 세종증권 매각이 이뤄지자 성공보수금 명목으로 세종캐피탈 홍 대표에게서 차명계좌에 입금된 30억 원을 받았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최근 노 씨를 출국 금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노 씨가 수사 대상이며, 아직 혐의가 구체화된 단계는 아니라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그로부터 이틀 뒤인 11월 27일자 1면 머리에 「정화삼 씨, 로비자금 30억 일부로 김해 상가 차명 매입 / 검 “노건평 씨 몫” 진술 확보」라는 기사를 올렸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용석)는 농협의 옛 세종증권 인수 로비 사건에서 세종증권의 대주주였던 세종캐피탈 측의 로비 자금 30억 원 중 일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 몫의 부동산을 사는 데 쓰였다는 사건 관련자의 진술을 확보해 수사 중인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세종캐피탈 홍기옥(구속) 대표에게서 로비 성공 사례금 명목으로 3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정화삼 씨는 2006년 5월 사위 이 모(33) 씨 명의로 경남 김해시 내동 C빌딩 상가 1층을 9억2000만 원에 샀다. 지상 10층, 지하 2층인 이 건물 1층은 총면적 380평방미터로 현재 시세가 10억~13억 원이다.
  정 씨의 동생 정광용(구속) 씨는 여기에서 모친 명의로 유사 성인오락실 ‘리치게임랜드’를 운영했으며, 이 오락실은 2006년 8월 검찰의 사행성 게임기 ‘바다이야기’ 수사 당시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오락실의 수익이나 음식점 등의 임대료 수입 중 일부가 노 씨에게 흘러들어갔는지를 조사 중이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 4면 머리에는 「번지는 친노게이트 / 박연차 씨 ‘세종’ 차명거래로만 84억 차익」이라는 기사가 올랐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관련된 각종 의혹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 회장 수사를 전담하고 있는 중수2과는 26일 그동안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수사해 온 농협 자회사였던 휴켐스 헐값 매각 의혹 사건을 넘겨받아 함께 수사할 계획이다.
  검찰이 수사 중이거나 수사 검토 중인 박 회장 관련 의혹은 ‘백화점’ 수준이다.
  국세청이 고발한 탈세 혐의 외에도 회사 운영과 관련한 비자금 조성 의혹,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세종증권 주식 차명거래로 거액의 차익을 얻었다는 의혹, 휴켐스 헐값 인수 의혹까지 박 회장 관련 수사 대상이 4, 5 가지에 이른다.

이튿날부터 동아일보 주요 지면은 노무현의 형 노건평과 측근으로 알려진 박연차 등에 관한 기사들로 채워졌다.

* 11월 28일자
· 1면:「노건평「정화삼 씨 형제, 김해 오락실 동업」
· 3면: 「‘세종’서 받은 30억으로 개장···결국 건펑 씨 몫이었나」「‘김해 상가’ 몰수될 듯···검, 제3자 매각 막기 위해 보전 절차」「집 나간 건평 씨, 노 측근들과 수시 통화」
· 「노 정권 핵심 후원자의 ‘비자금 뭉칫돈’ 어디로 흘러갔나」「친노 일부 인사, 미공개 정보 이용 세종증권 주식 거래 연루설」「박연차, 노 전 대통령 20년 뒷바라지···‘숨은 실세’ 꼬리표」

* 11월 29일자
· 1면:「“김해 오락실 지분으로 억대 이득”」
· 3면: 박연차 씨, 휴켐스 인수 직전 주식 대량 매입···이후 주가 3배로」「궁지 몰린 박 회장···지인과 술자리서 격한 분노 표출」「박 회장, 노 정권 대북 특수 덕 보려 했나」
· 5면: 「노무현 전 대통령 “사람들 큰 사고 내 ···수사 결과 지켜보자”」「“전직 대통령 형을 부르는데 뚜렷한 혐의도 없이 하겠나”」

* 12월 1일자
· 1면: 「“노건평 씨, 오락실 지분으로 3억~4억 이득”」
· 3면: 「검, “건평 씨 동업 오락실 하루 순수익 2000만 원”」「건평 씨 “파장 일으켜 죄송···오늘 서울 갈 것”」「박연차·정대근 씨 미묘한 20억 거래」

* 12월 2일자
· 1면: 「“노건평 씨 가족 계좌로 오락실 수익 받아”」
· 2면: “나로 인해 자꾸 말썽···동생에게 미안하다”」「‘노’심초사 허사로 만든 ‘봉하대군’」
· 3면: 「어떻게 받았나···검 ‘오락실→가족 계좌’ 돈 흐름 파악」「거물들 거쳐 간 VIP룸서 조사 받아」「박연차··노건평 씨 매머드급 변호인단」

세칭 ‘박연차 게이트’가 갈수록 확대되자 동아일보는 12월 2일자 31면에 「대통령 퇴임 9개월 만의 ‘형님’ 검찰 출두」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9개월 만에 친형 건평 씨가 어제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비공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정권 말기 또는 정권이 바뀐 뒤 통과의례처럼 돼버린 전현직 대통령 아들이나 형제 또는 친인척의 검찰 소환을 다시 접하며 언제까지 이런 후진국형 비리가 반복돼야 하는지 답답한 생각이 든다.
  노 씨는 2005년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때 노 전 대통령의 친구 정화삼 씨의 부탁으로 정대근 당시 농협중앙회장이 세종캐피탈 대표를 만나도록 주선했다. 노 씨도 만남을 주선한 사실은 시인하면서 “꿈에도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대가성 금품 수수 혐의를 부인한다. 검찰이 전직 대통령의 친형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 것은 관련자 진술과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 씨가 혐의를 씻고 봉하마을로 편안히 내려갈 수 있을지 일단 수사를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노 씨는 2003년 9월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에게서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돼 2004년 6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및 추징금 6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때 저지른 잘못을 교훈으로 삼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수모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3월 생중계 기자회견에서 형을 ‘아무것도 모르고 힘없는 시골 노인’이라고 비호하며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젠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 사장은 대통령 발언에 충격을 받고 한강에서 투신자살했다. 권력자의 아들과 형제 주변에는 이권을 탐내는 자들이 꼬이게 마련이다. 노 전 대통령이 그때부터라도 형을 철저히 관리했어야 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씨 형제는 불법 로비 대가로 받은 돈 30억 원 가운데 8억여 원으로 김해 상가에 사행성 오락실을 개장했고, 노 씨는 청탁의 대가로 이 오락실 지분을 받아 3억∼4억 원의 이득을 얻은 혐의다. ‘대통령 형님’이 사행성 오락실 지분을 받아 서민의 주머니를 턴 돈을 챙긴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도덕성 문제라면 늘 큰소리치던 노 전 대통령도 얼굴을 들기 어렵게 됐다.

검찰은 12월 4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노건평을 구속했다. 세종증권을 농협에 매각하는 로비를 도운 뒤 노무현의 고교 동창 정화삼과 함께 ‘성공 사례금’ 29억6300만 원이 입금된 차명 예금통장을 받아 그 가운데 4억 원을 챙겼다는 것이다.

  그동안 금품 수수 사실을 부인하던 노 씨는 4일 구속 수감되기 직전에 기자들에게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며 혐의를 처음으로 일부 시인했다.
  검찰은 이날 노 씨가 2004년 3월 자신의 소유인 정원토건의 자금 수억 원을 빼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당시 대주주였던 리얼아이디테크놀러지의 주식 100만여 주를 차명으로 매입한 과정의 불법 행위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동아일보 12월 5일자 1면).

동아일보는 12월 5일자 31면에 「대통령 친인척 권력형 비리는 언제 사라지나」라는 사설을 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 씨가 농협중앙회에 대한 세종증권 매각 로비와 관련해 어제 구속 수감됐다. 김용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유난히 도덕성을 앞세우던 노 전 대통령도 전두환 전 대통령 이래 대통령의 친인척이 권력형 비리로 구속되는 전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노 씨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비리 의혹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이자 노 씨와 가까운 박 회장은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세종증권 주식을 매입해 178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박 회장은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도 헐값에 매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노 씨가 실제 소유주인 정원토건은 박 회장 회사가 발주한 정산컨트리클럽의 30억 원대 진입로 공사를 수주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노 씨의 임야를 4억5000만 원에 사준 적도 있다. 노 씨와 박 회장 그리고 정 전 회장 3인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대통령 형님’의 위세를 업은 권력형 비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노 씨는 동생이 대통령이 된 직후에 국세청장 인사에 개입하는 듯한 발언을 했는가 하면, 2004년 6월에는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에게서 연임 부탁과 함께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 전 대통령이 그때부터라도 형을 다잡았더라면 이렇게 부끄러운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금부터 가족과 친인척 주변을 단단히 단속해야 한다. 나무가 조용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그냥 내버려 두지 않듯 대통령의 친인척 주변에는 이권을 탐내는 자들이 꼬이게 마련이다.

박연차 구속 이후 노무현의 ‘사면초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12월 12일 뇌물 공여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 포탈 혐의로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를 구속했다.

  박 회장 구속으로 이른바 ‘친노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구속 수감된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 등 모두 5명으로 늘어났다. (·····)
  박 회장은 2006년 2월 중순경 정대근(복역 중) 당시 농협중앙회 회장에게 “휴켐스 지분을 유리한 지분으로 매수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20억 원(100만 원짜리 수표 2000장)을 건네고, 홍콩법인 위장 거래에 따른 종합소득세 243억 원과 세종증권 및 휴켐스 차명 주식 거래 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 47억 원 등 290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다(동아일보 12월 13일자 1면). 

해가 바뀌어 2009년 2월이 되었다. 노건평의 ‘수뢰 사건’에 대해 보수언론이 무차별 공격을 멈추지 않자 노무현은 2월 13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누리집 <사람 사는 세상>에 「해명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려 “모든 것이 저희 부족함에서 비롯된 일이라 생각하여 근신하고 있을 뿐 누구를 원망하고 억지를 부려 책임을 감출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이점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나를 도왔던 많은 사람들이 좀 가혹하다 싶을 만큼 수사를 받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밖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현할 형편은 아니다. 형님을 ‘순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해서 누구의 공감을 얻을 형편이 아닌 줄도 잘 알고 있다.”(한국현대사산책-2000년대편 5권>, 251쪽).

2009년 3월 26일 검찰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서 노무현 정권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바 있는 민주당 의원 이광재를 구속했다. “2004~2008년 박 연차 회장으로부터 4차례에 걸쳐 12만 달러와 2000만원을 수수하고, 정대근 전 농협회장(구속)에게서 2004~2006년 3차례에 걸쳐 3만 달러를 받은 혐의”라는 것이었다.

  (···) ‘박연차 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현직 국회의원이 구속된 것은 이 의원이 처음이다. (·····)
  이 의원은 이날 오후 11시 반 서울 영등포구치소로 이송되면서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제 긴 터널로 들어간다. 재판 과정에서 모든 게 밝혀질 것”이라며 “이제 정치인 생활을 마감할 때이며 10월 재·보궐 선거가 가능하도록 늦지 않게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동아일보 3월 27일자 1면).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31면에 「박연차류 기업인 지금은 없나」라는 사설을 올렸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1990년 연예인과의 ‘히로뽕 성매매’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중소기업인이다. 그는 다시 재기해 불같이 기업을 일으켰다. 대통령수석비서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검찰간부 등에게 돈을 주고 이권을 따내거나 방패막이로 삼는 전형적인 정경 유착이 그 뒤에 도사리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박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 도움을 받아 농협 자회사 휴켐스를 인수한 데 따른 이득만도 320억 원에 이른다. 그는 이렇게 번 돈을 듬뿍듬뿍 뿌렸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박 회장이 웬만한 직위의 상대에게 돈을 줬다 하면 억대였다.
  그의 돈을 받은 정관계 인사들의 이름이 자고 나면 새로 드러난다.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제기했고, 공성진 최고위원은 특검(특별검사제) 도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노 전 대통령의 직접 연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형님’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한 것은 틀림없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 것만으로도 노 전 대통령의 책임은 무겁다. 역대 정권의 정경 유착을 끊겠다고 큰소리친 정권이 이런 부패의 늪에 빠진 것은 건전한 비판을 묵살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에서 형과 측근의 작은 비리를 들추어내도 억울한 희생양인 양 이들을 감싸기에 바빴다. 그때라도 노 전 대통령이 ‘형님’과 측근을 감시하고 챙겼더라면 이 지경으로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권 내내 도덕성을 코에 걸었던 자칭 진보정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타락했는지 국민은 속은 심정이다. 언제까지 정권 핵심부가 기업 돈을 받아먹는 후진국형 부패에 빠져있어야 하는가. (·····)
  박연차가 대통령수석비서관을 비롯해 국회의원 검찰 등 권력기관을 뇌물로 주무를 수 있었던 것은 진실이든 허위든 대통령의 권력을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연차류를 막기 위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세상이 다 아는 ‘경남대통령 형님’의 위세와 측근들의 비리를 혼자만 몰랐다. 이 대통령은 박연차류 기업인이 발 붙이지 못하도록 초장부터 부패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썩은 진보에서도 악취가 진동하지만 ‘부도덕한 보수’는 정권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다.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던 대검 중앙수사부는 3월 30일 노무현의 조카사위인 연철호를 도마 위에 올렸다. 노무현이 퇴임하기 직전인 2008년 2월 박연차가 그에게 5백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 자금이 노무현과 관련이 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무현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한층 더 높인 것이었다.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박 회장은 당시 검찰이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의혹을 신문하기도 전에 연 씨에게 거액을 건넸다고 먼저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연 씨는 노건평 씨 큰딸의 남편으로 투자컨설팅 자문회사인 엘리쉬인베스트먼트를 운영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돈을 전달했다고 먼저 밝힌 것은 검찰에 부담을 주면서 일종의 ‘거래’를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 연 씨에게 거액을 건넨 사실을 노 전 대통령이 언제 알았는지, 그 돈이 사용된 곳이 어딘지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만약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전에 돈 전달 사실을 알았다면 노 전 대통령을 포괄적 뇌물수수죄로 처벌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측은 “최근에야 박 회장이 연 씨에게 돈을 보낸 사실을 알았다”고 밝히고 있다(동아일보 3월 31일자 1면).

동아일보는 4월 1일자 39면에 노무현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사설(「노 수사 불가피하고, 현 권력 주변도 미봉 안 된다」)을 실었다.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본격 수사가 시작된 지 2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구속되거나 소환조사를 받은 정관계 인사가 10명에 가깝다. (···) 이제 노 전 대통령 측이 박연차 씨의 돈 5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50억 원)를 받은 혐의까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나왔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노 전 대통령 측은 박 씨의 500만 달러가 현 노건평 씨의 사위인 연철호 씨의 해외 계좌에 입금된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면서 사업관계가 있는 연 씨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보낸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입금 시기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인 작년 2월이고, 그동안의 후원 관계로 볼 때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자금 명목일 가능성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계좌 입금을 퇴임 전에 알았는지, 돈의 성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의혹을 깨끗이 풀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권력’만이 문제인가. 검찰 수사가 여야나 전현(前現) 정권에 관계없이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박 씨의 국세청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는 실종 상태다. 현 정권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변호사, 대통령과 절친한 기업인 등이 무마 로비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찌감치 제기됐으나 수사 진전 소식이 없다. 박 씨를 비호했다는 의심을 받는 현직 검찰 간부들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살아 있는 권력’ 주변부터 단호하게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사법처리 대상과 수위를 정치적으로 조절한다면 분명히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것이다.

동아일보를 포함한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진보’라고 불리는 신문들조차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는 검찰이 흘린 정보를 마구잡이로 보도했다. 4월 2일자 동아일보 1면에 실린 기사가 그런 보기이다. 

  「 박연차가 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에 건넨 500만 달러 / 검 “노 자기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증거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구속기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 씨에게 송금한 500만 달러에 관해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몫으로 건네진 돈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를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1일 알려졌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이인규)는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 등을 상대로 500만 달러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증거와 진술 등을 확보하고 구체적인 송금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
  검찰은 박 회장이 지난해 8월 서울 S호텔에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을 만나 500만 달러를 보내는 이유와 전달 방법 등을 논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박 회장이 정 전 비서관에게 청와대 근무 당시 알려진 1억 원보다 많은 2억여 원의 금품을 건넨 혐의를 잡고 대가성이 있는지를 수사 중이다.

이 기사의 제목에는 “박연차가 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에 건넨 500만 달러”에 대해 “노무현이 자기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고 검찰이 밝힌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기사의 본문에는 그렇게 “볼 수 있는 증거를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되어 있다. 그 증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동아일보 논설실장 황호택은 4월 7일자 30면 칼럼(「‘500만 달러 주인’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전직 대통령 9명 중 2명이 뇌물죄로 교도소를 다녀왔는데 또 1명이 교도소에 가게 되면 대한민국의 국제적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고 씀으로써 노무현이 전두환·노태우 같은 ‘파렴치범’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 봉하마을에 내려간 초기에 노 전 대통령은 관광객들 앞에서 하루 두세 차례 연설을 했다. 그러던 노 전 대통령이 요즘 입을 닫았다. 인터넷에도 글을 올리지 않는다. 박 회장이 해외 계좌를 통해 조카사위에게 보낸 5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하려던 돈이라는 보도가 나오는데도 ‘노무언(盧無言)’이 됐다. “박 회장이 홍콩 법인 계좌에서 500만 달러를 노 전 대통령 측에 보냈다”는 기사는 동아일보의 특종(3월 19, 20일)이다.
  입만 열면 주류 신문을 공격하던 노 전 대통령이 요즘 형제에 대해 좋지 않은 보도가 넘쳐나는데도 침묵하는 것은 이레적인 일이다. “MB 정권의 주구인 검찰과 ‘서울에 빌딩을 가진 신문사’들이 합작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라고 일갈하면 한 가닥 미련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소 위안이 될 것이다.
  그런데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친사위를 놔두고 조카사위에게 배달을 맡긴 이유는 무엇일까. 뇌물 주는 데 이골 난 사람이 조카사위를 통해 거금을 보낼 때는 최종 수령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통보했을 것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형사소송법상 500만 달러의 최종 수령인을 입증할 책임은 검찰에 있다. 법률전문가인 노 전 대통령과 검찰의 대결은 양쪽에 모두 힘든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500만 달러의 송금을 안 시기가 언제냐가 문제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500만 달러 송금’을 알고 있었다면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하고, 우리 국민도 쓰디쓴 배신감을 맛봐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에야 송금 사실을 알고서 침묵했다면 법적 처벌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집권 명분으로 과시하던 도덕적 기반은 송두리째 붕괴할 것이다. 무능한 좌파가 깨끗하지도 못했단 말인가. (···)
  전직 대통령 9명 중에서 2명이 뇌물죄로 교도소에 다녀왔는데 또 1명이 교도소에 가게 되면 대한민국의 국제적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라 체면이 다소 구겨지더라도 후대의 집권세력이 경계를 삼을 수 있도록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하고 ‘죽은 권력’에 강해 ‘하이에나’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이에나는 4년 뒤에 다시 MB 정권의 죽은 고기를 먹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노무현, 아내의 ‘비리’를 시인하다

4월 7일 노무현은 아내 권양숙이 박연차로부터 10억 원을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2005~2006년 부인 권양숙 여사가 정상문 당시 대통령총무비서관을 통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 3억 원을 받았다고 7일 밝힘에 따라 검찰이 노 전 대통령 부부를 곧 조사하기로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는 저희들의 것”이라며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했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이 글에서 돈을 받은 당사자로 언급한 ‘저의 집’에 대해 “경상도에서 ‘저의 집’은 아내를 뜻한다. 권양숙 여사가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의 돈을 빌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상세한 이야기는 검찰의 조사에 응해 진술할 것이다. 그리고 응분의 법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이인규)는 조만간 노 전 대통령 부부를 상대로 박 회장에게서 3억 원을 받게 된 경위와 돈의 사용처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동아일보는 4월 8일자 31면에 「‘노무현 사과문’ 뒤의 진실 다 밝혀야」라는 사설을 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박연차 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검찰 조사에 응할 뜻을 밝혔다. 조카사위 계좌로 들어간 박 씨의 돈 500만 달러(작년 2월 당시 환율로 50억 원)와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에 대한 수사가 자신에게로 바짝 조여 오자 사과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 전 비서관이 박 씨로부터 받은 돈은 부인 권양숙 씨가 빚을 갚기 위해 부탁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로써 전임 대통령 부부가 함께 검찰에 소환되는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
  노 전 대통령은 조카사위가 받은 500만 달러는 퇴임 후에 알았고, 자신과 무관한 투자였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는 호의적인 동기가 개입한 것으로 보였으며 성격상 투자이고, 저의 직무가 끝난 후의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00만 달러 문제는 실제 주인이 누구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거액을 박 씨가 노 전 대통령과 상관없이 조카사위에게 ‘호의적으로’ 보냈다고 선뜻 믿기는 어렵다. 대통령 재임 중이었다면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특히 박 씨는 노 전 대통령 퇴임 전인 2007년 8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정상문 비서관과 만났을 때 ‘노 대통령에게 주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박 씨는 당시 어떤 형식으로든 그 뜻을 노 전 대통령에게 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인 작년 3월 차용증을 써주고 박 씨에게서 15억 원을 빌렸다는데 이 또한 진짜 차용인지 따져봐야 한다. 강금원 회장은 봉하마을 개발 명목으로 2007년 9월 50억 원, 작년 12월에 20억 원 등 70억 원을 내놓았다. 노 정권의 도덕성은 허구였음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인 1989년 5공 청문회 때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진 ‘청문회 스타’로, 도덕성을 내세워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다.


‘연속 기획’ 사설로 노무현을 폭격

노무현이 ‘저의 집’에서 박연차의 돈을 받았다고 실토한 뒤 동아일보는 마치 ‘연속 기획’을 내보내듯이 노무현과 그의 정권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노무현이 4월 3일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기 전에 나온 사설들 가운데는 명백히 드러난 증거보다는 검찰이 비공식으로 흘린 ‘정보’에 주로 기대어 그에게 비난을 퍼부은 것들이 허다했다.

「‘노무현 식 돈 거래’ 법망 피하려는 냄새 짙다」(4월 10일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요청에 따라 전달했다는 ‘10억 원’은 원화가 아닌 미화 100만 달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씨는 2006년 이 돈을 가방에 넣어 직접 청와대로 갖고 들어가 정상문 당시 대통령총무비서관에게 집무실에서 전달했다. (···) 검찰은 이 돈이 부인 권양숙 씨가 아니라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청와대 경내에서 거액의 외화가 건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검찰은 100만 달러 외에 조카사위 계좌로 들어간 500만 달러도 노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보고 포괄적 뇌물수수죄로 처벌하기로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사과문에서 “저의 집(부인 권 씨)에서 부탁해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고, 마치 빌린 돈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
  퇴임 직후인 작년 3월 봉하마을 저택 건축 비용으로 빌렸다는 15억 원도 합법을 가장한 돈거래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차용증을 썼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갚을 의사가 있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차용증을 이용한 뇌물 수수는 과거에도 비리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쓰던 수법이다.

「민정·사정을 무력화시킨 정권의 말로」(4월 14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인, 아들, 형, 조카, 측근들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로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청와대 민정·사정 조직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계 13위의 경제력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뤘다는 나라에서 전직 대통령과 가족의 부패 스캔들이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민정·사정 라인은 대체 뭘 했단 말인가.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은 국민 여론 및 민심 동향 파악, 공직·사회기강 관련 업무와 법률문제 보좌, 민원 업무를 처리하는 조직이다.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들의 부패·비리 소지를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야말로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민정수석비서관실의 핵심 기능이며 존재 이유다.
  하지만 노 정부 청와대의 민정 라인은 대통령 가족과 정상문 총무비서관이 청와대 문턱을 넘나들며 수십억 원에 이르는 박 회장의 검은 돈을 받는 동안 아무런 경보를 발하지 못했다. 박정규 전 민정수석비서관은 재직 중이던 2004년 12월 박 회장으로부터 1억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지킨 격이다. 어느 정권보다 도덕성을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의 민정·사정 조직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노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 민정·사정 기능을 ‘핫바지’로 만들고서는 어떤 권력자도 퇴임 후 안전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을 노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도덕성 파탄 선언’ 국민 심정 참담하다」(4월 24일자)

  검찰 소환을 앞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제 인터넷 홈페이지에 스스로 ‘도덕적 파탄’을 선언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이 나버렸다”면서 “저는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고 토로했다. (·····)
  노 전 대통령의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기숙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재산이 없고 청렴했으면 참모(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가 이런 일을 했을까”라며 노 전 대통령의 비리를 ‘생계형 범죄’라고 비호했다. ‘600만 달러’가 생계형 범죄라면 조 교수의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그는 검찰 수사를 ‘정치 능멸’이라고 주장했다. 부패가 정치의 본질이라도 된다는 소리인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최근 검찰 수사를 “전임 대통령 모욕 주기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한때 ‘노무현 심기(心氣) 관리자’라는 말까지 듣던 사람다운 사실 왜곡이다. (···)
  노 전 대통령 부부가 박 회장에게서 1억 원이나 하는 시계를 회갑 선물로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검찰이 사건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로 망신 주겠다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1억 짜리 시계가 ‘사건의 본질’(뇌물)과 무관하다는 인식이 과연 정상인가.
  노 전 대통령은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죄를 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반면교사 역할이라도 해야 한다.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진보를 표방하는 신문들까지 합세한 ‘노무현 죽이기’에 대해서는 아래 글에 나오는 사실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 검찰과 언론은 짜 맞춘 듯이 손발이 척척 들어맞았다. 노무현에 대한 공격은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전개됐다.
  첫째, 검찰이 ‘의혹’을 흘리면 수구언론이 이를 주워 담아 ‘사실’로 둔갑시켜 검찰의 조속한 사법처리를 촉구함으로써 전형적인 마녀사냥 몰이의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 검찰이 한마디 툭 던지면 일부 언론은 알아서 검찰이 노리는 의도대로 해석하고 부풀리고 조작했다. 이렇게 한 언론이 부풀려 보도하면 다른 언론은 거기에 한 번 더 부풀리기를 해서 띄우는 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희희낙락했다. 특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잇따라 박연차 회장 진술을 ‘단독보도’하면서 노무현 죽이기 보도의 흐름을 주도했다. (·····)
  둘째, 이 과정에서 피의사실이 생중계되다시피 했고 노무현에게 온갖 모멸감을 안겨주는 보도가 잇따랐다. 해외 순방 기간에 아들에게 불법자금을 전달했다거나 생일 선물로 받은 고가의 시계를 논두렁에 내버렸다는 식의 근거 없는 보도가 지면을 가득 채웠다. 이처럼 수구세력과 그 앞잡이들은 사법적 진실을 가리기도 전에 노무현을 파렴치범으로 내몰아 도덕적으로 매장시킴으로써 인격적 살인을 저질렀다.
  셋째, 결국 언론은 사실관계의 확인보다 박연차 회장 발언만을 앞세운 검찰 주장과 ‘결국 이번에는 걸렸다’ 식의 단정을 앞세웠다. 소환도 하기 전에 ‘검찰의 사법처리 방침’을 보도할 정도였다. 특히 사설·칼럼과 같은 오피니언 지면을 통해 ‘범법사실’을 미리 전제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가 하면 하루속히 처벌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 돈의 수수 또는 수수의 인지 여부, 돈의 성격 등을 따지고 수사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파렴치범’이 되어버렸다. 수사 대상이 되는지 가려야 할 때 이미 구속·불구속 여부를 따졌다. 그들은 최소한의 상식과 법정신마저 뭉개버린 비열하고 잔인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마녀 사냥하듯 노무현을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 묶어버렸다(<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 30~31쪽).

실제로 노무현은 형인 노건평의 뇌물 수수와 아내 권양숙이 박연차한테서 받은 ‘10억 원’에 대해서만은 국민을 향해 사과했다. 그리고 참여정부 시기의 측근들이 관련된 비리에 대해서도 구태여 변호하려 들지 않았다.


검찰의 노무현 부부 소환과 동아일보의 ‘인격 살인’

동아일보는 4월 27일자 1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구속기소)으로부터 600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30일 오후 1시 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이인규)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헌정 사상 세 번째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구속된 이후 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동아일보 4월 28일자 31면에는 「노 전 대통령, 진실 앞에 겸허해야」라는 사설이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이 서면으로 질의한 혐의 사실에 대해 거의 부인하거나 답변 자체를 거부하는 식의 답변서를 검찰에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피의자의 방어권’에 주력하는 진술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환조사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검찰의 서면질의서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셈이다.
  검찰이 1차로 서면질의서를 보낸 것은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차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성실하고 진실하게 답변했더라면 검찰의 수사에 도움을 주고, 이른 시간 안에 조사를 끝내 피의자로서의 불편과 심적 고통을 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피의자의 법적 권리를 내세워 검찰의 선의를 옳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헌법 및 형사소송법상 모든 피의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진술거부권이 있다. 범죄 혐의가 무거운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이 권리를 박탈당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의 염치없는 ‘장외 변론’을 지켜본 국민은 알맹이 없는 서면 답변서에 허탈감이 크다.
  노 전 대통령의 답변 태도는 그가 유난히 도덕성과 청렴성을 내세웠던 사람이어서 더욱 실망스럽다. 그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보낸 100만 달러를 청와대 구내에서 전달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 돈의 성격에 대해 “집(부인 권양숙 씨)에서 빌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서면조사에서 용처를 밝히길 거부했다. 그는 과테말라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미국에 유학 중인 아들에게 이 돈을 주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용처를 밝힐 경우 “나는 몰랐다”는 주장이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인가.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 명예 실추에 그치지 않고 국민에게 엄청난 배신감과 수치심, 자괴감을 안겨줬다. 피의자의 권리를 빌려 형사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태도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떳떳하지 못하다.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비뚤어진 법의식으로 끊임없이 법질서를 교란하더니 이제는 법률 지식을 이용해 궁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솔직하게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이 사설은 노무현이 ‘피의자의 방어권’에 주력하는 서면답변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이 “검찰의 선의를 옳게 받아들이지 않”은 일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변호사 자격을 가진 노무현이 피의자로서 형법에 규정된 권리를 행사한 것은 ‘악의’이고 “수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검찰의 서면질의서”는 ‘선의’라는 주장이 어떻게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노무현이 스스로 인정한 사실은 아내 권양숙이 박연차로부터 10억 원을 받았다는 것뿐인데도 동아일보는 ‘국민’의 이름을 빌려 그의 서면답변을 ‘염치없는 장외 변론’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 명예 실추에 그치지 않고 국민에게 엄청난 수치심과 자괴감을 안겨줬다”고 단정한다. 이런 주장은 노무현이 기소되어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는 할 수 없는 인격 모독임이 분명하다.

5월 1일자 동아일보 1면 머리에는 노무현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조사를 받은 내용이 상세히 보도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30일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120호 특별조사실에서 10시간 가량 조사를 받으면서 600만 달러의 뇌물수수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게 600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구속기소)과의 대질조사를 시도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거부로 무산됐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아니며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대질조사를 거부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날 오후 11시경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을 대면하도록 했으며, 두 사람은 1분가량 대화를 나누고 악수를 했다. (···)
  대질조사가 무산됨에 따라 검찰은 오후 11시 20분경 조사를 끝냈으며, 노 전 대통령은 진술조서를 검토하고 서명날인을 한 뒤 1일 오전 2시 10분 대검 청사를 떠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로 돌아갔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받은 소회가 어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조사를) 받았다”고 짧게 답하고 봉하마을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이날 조사에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재임 중 박 회장이 추진한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사업 등에 도움을 준 대가로 600만 달러를 받은 게 아니냐고 물었으나,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한국 기업의 해외 사업에 도움을 준 게 문제가 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검찰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2007년 6월 말 100만 달러, 2008년 2월 말 500만 달러를 보냈다”고 진술한 내용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으나, 노 전 대통령은 “사실이 아니다” 또는 “나중에 알았다”고 진술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27면에 「부끄러운 대통령사(史) 언제까지 반복할 건가」라는 사설을 실었다.

  대한민국 헌정사 60여 년 동안 대통령 9명을 배출했지만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직전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부끄럽게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천문학적인 부정축재를 저질러 교도소에 갔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식과 숱한 측근들을 감옥에 보내야 했다. 
  우리는 정치 파벌을 이룬 적이 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과 다를 줄 알았다. “청탁하면 패가망신시키겠다”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던 그마저 어제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직접 정치자금을 챙기던 독재 시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화 이후까지도 왜 우리는 부끄러운 대통령사를 반복해서 써야 하는가.
  일각에서는 제도의 문제를 거론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듯이 권력이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는 청와대 주변에 비리가 깃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장치들을 더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이 여전히 비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제도와 절차만 갖추었지 기본이념을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패는 권력의 사유(私有)의식에서 비롯되는 권력 남용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은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 대통령사가 오욕의 역사로 점철돼온 것은 역대 대통령들이 대통령직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 못하고, 정(情)과 연(緣)에 얽혀 있는 사람들은 성공한 최고지도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부끄럽지 않고, 역사와 국민 앞에서 당당한 전직 대통령을 가질 수 있을까.

동아일보는 5월 11일자 35면에 노무현에 대해 극단적 인신공격을 가하는 사설(「전직 대통령 부부의 ‘잡범’ 같은 말 바꾸기」)을 내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2007년 6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받은 100만 달러의 용처에 대해 그동안 “개인 빚을 갚는 데 썼다”고 주장하다가 말을 바꿨다. 노 측은 최근 “60만 달러는 미국에 있던 아들과 딸에게 송금했거나 국내에서 줬으며 나머지는 빚 갚는 데 썼다”고 검찰에 밝혔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 부부가 거짓말을 했다가 검찰이 용처와 관련한 증거를 제시하자 말 바꾸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진술인들 믿을 수 있겠나 싶어진다. 노 전 대통령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내세우며 불리한 진술은 거부할 수 있다고 했는데, 거짓말도 방어권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국정 최고책임자로 대한민국을 이끈 인물이 거짓말을 늘어놓고 말을 바꾸는 것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잡범’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며 치욕을 당하는 것은 전직 대통령의 명예가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노 측은 당초 “100만 달러는 권양숙 여사가 박 전 회장에게 부탁해서 받았으며 개인 빚을 갚는 데 썼다”고 주장했다. 권 여사는 지난달 11일 검찰 조사 때 누구에게 무슨 빚을 갚았는지에 대해 진술을 거부하며 검찰이 밝혀보라는 배짱까지 부렸다. 노 전 대통령은 5년 동안 매년 약 2억 원의 연봉을 받아 퇴임 때 재산이 5억 원이나 늘었고 퇴임 후에도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뒤를 봐준 기업인의 돈을 끌어다 쓰는 몰염치한 짓을 저질러놓고 전혀 반성하는 빛을 보이지 않는다. (·····)
  노무현 식 ‘도덕성 장사’는 이미 파산했다. 법망을 벗어나기 위해 군색하고 역겨운 짓을 더 늘어놓지 말고, 이제라도 진실을 털어놓고 국민에게 사죄할 일이다. 그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덜 입히는 길이다.

이 사설은 검찰이 노무현을 수사한 뒤 언론에 비공식으로 ‘흘려보낸 정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검찰이 형법 제126조에 명시된  ‘피의사실공표죄’를 저지른 것은 비판하지 않은 채 노무현이 조사를 받으면서 ‘피의자의 방어권’을 주장한 사실을 두고 “거짓말도 방어권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하고 있다. 노무현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법정에서 재판부가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언론이 ‘추론’의 형식을 빌려 미리 ‘유죄 판결’을 내릴 사안은 아니다.

이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노무현에 대해 ‘도덕적 파산자’라는 선고를 내림으로써 ‘인격 살인’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동아일보는 5월 15일자 사설(「‘구속 사유’ 스스로 보태는 노무현 일가」)에서도 노무현 부부를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받은 금품과 관련 증거들을 폐기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수뢰 혐의에 관한 해명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어떻게든 처벌을 모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노 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씨가 박연차 씨에게서 받은 한 개 1억 원짜리 스위스제 피아제 보석시계 두 개를 수사가 본격화한 작년 말에 버렸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 시계가 없어졌다고 해서 수사를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수뢰 혐의의 중요한 증거물임에는 틀림없다. 딸 노정연 씨 부부는 미국 뉴저지에서 160만 달러짜리 주택을 사기 위해 선 계약금 5만 달러를 지불하고 작성한 계약서를 올해 초 찢어버렸다고 한다. 모두 불리한 증거를 없앴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
  노 전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미루며 자신은 몰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인과 아들딸이 모두 거액의 금품을 받았고, 대통령총무비서관이 심부름을 했는데도 대통령만 까맣게 몰랐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범죄 혐의가 있는 피고인이 주거 부정, 증거 인멸 우려, 도주 우려가 있으면 구속할 수 있다. 법원은 구속 사유를 심사할 때 ‘범죄의 중대성’도 고려한다.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수뢰액은 밝혀진 것만도 70억~80억에 이른다. 대법원 양형기준위원회에 따르면 9~12년 징역형에 해당한다. 노 전 대통령 일가의 행태를 보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이미 현실화 했다고 봐야 한다. 스스로 ‘구속 사류’를 보태고 있는 양상이다.

이 사설 역시 검찰이 속칭 ‘빨대’를 통해 흘린 ‘정보’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노무현이 검찰에서 아내 권양숙이 박연차에게서 받은 1억 원짜리 시계 두 개를 어딘가에 버렸다고 말했다는 것을 동아일보는 누구를 통해 확인했을까? 검찰 조서를 직접 보고 그렇게 썼더라도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하고 검사한테 들은 말을 지면에 옮겼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설은 검찰 수사에서 증거로 뒷받침된 바가 있는지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근거로 노무현 일가의 수뢰액이 70억~80억 원에 이른다고 전제하고 “9~12년 징역형에 해당한다”는 ‘구형’을 하고 있다.


노무현의 죽음과 동아일보의 표변

동아일보는 일요일에 휴간하는 관행을 깨뜨리고 2009년 5월 24일자로 ‘특집호’를 펴냈다. 지면 거의 대부분이 ‘노무현 자살’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1면 머리기사 제목은 특대호 글자로 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9시 30분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6시 40분경 퇴임 이후 생활해 오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사저 인근의 봉화산 부엉이바위 절벽에서 30미터 아래로 투신해 경남 양산부산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오전 9시 반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이날 오후 6시 30분경 봉하마을로 옮겨졌으며 빈소는 마을회관에 마련됐다. (···)
  노 전 대통령은 이날 봉화산 등산에 나서기 전 자신의 컴퓨터에 짤막한 유서를 남겼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고 밝혔다. (·····)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 24일 퇴임한 뒤 고향인 봉하마을 사저에서 생활해 왔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30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으며 검찰은 이달 말경 노 전 대통령의 신병 처리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검찰은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종결하기로 했다.

1면에 실린 노무현의 사진(옆 얼굴과 어깨, 등)은 가로가 30cm, 세로가 40cm나 되는 초대형으로 지면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1979년 1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살해당했던 때 동아일보는 이런 초대형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

동아일보 5월 24일자는 모두 15개 면인데 그 가운데 10개 면이 ‘노무현 서거 ’관련 기사와 논설로 가득 차 있다. 제목들은 다음과 같다.

· 1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노 전 대통령 유서 전문」
· 2면: 「충격의 봉하마을, 운구차 들어오자 눈물바다」「시신 확인한 권 여사 한동안 실신」「높이 30m 70도 경사···주민들 ‘자살바위’로 불러」「“노 전 대통령, 모든 게 자기 탓이라고 하더라”」「“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
· 3면: 「오전 6시 40분 “사람들 지나가네” 경호관 시선 돌린 후 투신」「투신 하루 전 비서관 등 일찍 퇴근시켜 주변 정리한 듯」「경찰 “사고 경위 철저 조사” 대규모 수사본부」「양산부산대병원 “직접 사인은 머리 부분 치명적 외상」
· 4면: 이 대통령 일정 취소···유가족에 애도 뜻 전해」「한나라 “너무 당혹”···근조 현수막 내걸어」「국민장 치를지 가족장 치를지 유족과 논의해 결정」「종교·문화계 “한국 현대사의 불행”」「 DJ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린 심정”」
· 5면: 「박연차 리스트·천신일 수사도 당분간 올 스톱」「일부선 검찰 책임론 거론」「‘서거’ 돌발변수···6월 국회 태풍 예고」「인터넷에 유서 조작설···사실무근 밝혀져」「박연차 “어떻게 이런 일이···죽고 싶다”」
· 6면: 빈농의 아들···인권변호사···스타 정치인···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 말말말」「노 전 대통령, 비유·단문·직설적 화법으로 화제」
· 7면:「“탈권위주의 실천·인권 존중 노력 평가”」
· 8면: 「“후진적 정치문화 개선 계기···반면교사 삼아야”」「K리그 경기장 조기 게양···방송 3사 오늘 오락물 취소」「‘노사모’ ‘사람 사는 세상’ 홈피 한때 마비」
· 9면: 「“한국 대통령 역사상 가장 불행하고 비극적인 사건”」「오바마 “한미관계 증진에 기여한 지도자” 애도 표명」「교민들 “마음 착잡···일손 안 잡혀”」「망명, 중도하차, 피살, 구속 그리고 자살」
· 15면: 사설 「영욕 너머로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특별기고 / 송우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빛과 그림자」

‘고인 노무현’에 대한 애도와 추모가 주류를 이룬 기사들과는 대조적으로 15면에 실린 사설은 “‘정치인 노무현’의 공과에 대한 궁극적 평가는 역사에 맡겨놓을 수밖에 없다”라고 결론을 지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가 국민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두 달 전 검찰 수사를 받기 시작해 어제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 근처의 절벽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유난히 도덕성을 내세웠던 전직 대통령으로서 심적 고통이 컸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
  대한민국 역사에서 노 전 대통령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간 인물도 드물다. 빈농(貧農)의 가정 출신에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인권변호사와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영욕이 교차하는 굴곡진 한평생을 살고 갔다. 그는 2002년 국민경선 드라마와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 젊은 세대의 인터넷 파워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다. 집권 초기에는 권위주의 청산, 부패와 특권의 타파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임기 초 불법 대선자금과 대북송금, 정보기관의 휴대전화 도청 수사를 통해 투명한 정치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파병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한 것도 평가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의 권위와 품위에 걸맞지 않은 언행으로 빈번히 비난을 자초했고 선거 개입 발언으로 2004년에는 탄핵 위기까지 가는 오점을 남겼다. 지나치게 좌로 기운 경제·사회·교육 정책은 다수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6·25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3위의 경제 강국으로 일어선 대한민국의 역사를 ‘오욕의 역사’로 규정해 분열과 갈등을 키웠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
  최고 권력자의 불행한 종말은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전국 방방곡곡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정치와 무관하게 국민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모든 이의 간절한 소망이다. 재임 때보다 퇴임 후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 대통령을 배출하자면 우리 모두 힘을 보태야 한다. 이번 비극을 끝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거보를 내디딜 때다. (·····)
  어떤 경우에도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을 국민 분열의 재료로 이용하려는 책동은 경계할 일이다. 일부 세력은 마치 그의 죽음에 이명박 정부와 검찰이 책임이 있는 양 선동하고 나섰다. 우리 국민은 그런 억지에 결코 흔들리지 않을 만큼 성숙하다고 믿는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애석한 일이긴 하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적인 원인은 어디까지나 권력 비리였다. 그리고 유서에 쓴 것처럼 ‘삶과 죽음을 자연의 한 조각’으로 파악한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우리의 관심은 최고 권력자의 도덕성에 대한 성찰과 함께 다시는 이런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
  노 전 대통령은 ‘깨끗한 정치’와 도덕성을 내세워 당선됐지만 퇴임 후 본인은 물론 가족과 형의 비리 혐의가 불거지면서 도덕의 깃발은 무참히 찢겨졌다. 결국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전직 대통령이 됐다. 그의 삶과 죽음은 한계에 도전하다 끝내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한 인간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노 전 대통령은 열정과 이상은 뜨거웠지만 현실 정치를 통해 승화시키지 못하고 자신이 높이 내건 도덕성과 개혁의 칼날에 스스로 베이고 말았다. ‘정치인 노무현’의 공과에 대한 궁극적 평가는 역사에 맡겨놓을 수밖에 없다.

전국언론노조는 5월 24일 성명을 통해 “검찰과 조·중·동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도덕적 흠집 내기에 혈안이 되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 조·중·동이 만들어낸 정치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이명박 정권, 검찰뿐 아니라 조·중·동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있다”며 “자신들이 그토록 공격했던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순간까지 악의적 왜곡과 모욕 주기를 중단하지 않은 행태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경향신문 5월 27일자).

노무현의 충격적인 죽음은 전국에 애도와 추모의 거대한 물결을 일으켰다. 정부가 만든 분향소 81곳, 사찰과 사회단체들이 설치한 분향소가 200여 곳이나 되었다. 이틀 동안 무려 15만여 명의 조문객이 봉하마을의 빈소를 찾았고, 서거 닷새째인 27일까지 전국 각지에서 문상을 한 사람은 300만 명이 넘었다. 대통령과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은 20%대로 폭락했다.

노무현에 대한 추모 열기는 이명박과 보수언론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을 것이다. 1919년 고종의 인산(因山)을 계기로 일어난 3·1 독립투쟁의 열기 비슷한 강력한 에너지가 전국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에 공포를 느꼈는지 동아일보는 노무현 국민장 전날인 5월 28자 27면에 「 국민장을 국가 혼란의 장으로 만들려는 세력 누군가」라는 사설을 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9일 마지막 상경 길에 올라 경복궁에서 국민과 영결한 뒤 고향 봉하마을에 돌아가 잠든다. 정부는 각계 인사 1383명으로 대규모 장의위원회를 구성해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을 봉송한다. 국민장 기간 봉하마을과 서울 역사박물관 분향소에는 고인에게 애도의 예를 표하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우리는 저 세상에서라도 고인이 편히 쉬도록 국민장을 화합과 통합의 장(場)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는 고인의 영결식을 이용해 한바탕 광풍을 몰고 오려는 세력이 있다. 덕수궁 앞 분향소 등에는 “경찰병력을 무력화하고 서울 시내 전역을 촛불로 뒤덮어버리자” “제2의 촛불로 학살정권 끝장내자” 같은 포스터들이 어지럽게 나붙어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5월 29일 500만, 1000만이 모여서 아주 끝장을 냅시다”라고 격렬하게 선동하는 글도 떠 있다. 촛불 시위 같은 무법천지가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부는 고인을 예우하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는 뜻에서 노 전 대통령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경복궁을 영결식장으로 잡았다. 일부 세력은 이 기회를 틈타 영결식과 운구행렬, 서울시청 앞 노제를 이용해 한바탕 사회 혼란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대내외 악재가 겹쳐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있고, 북한의 핵실험으로 안보마저 비상상황을 맞았다. 이처럼 위중한 시기에 전직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여 사회 혼란과 국민 분열의 불쏘시개로 삼으려는 세력은 순수한 추모 군중과 거리가 멀다. 일부 미디어도 고인을 추모하는 내용을 넘어 선동의 기미마저 보인다. 책임 있는 언론의 모습이 아니다.
  고인이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다 충격적인 방법으로 목숨을 끊은 일은 안타깝지만 일부 세력이 ‘검찰과 정권 그리고 일부 언론의 합작 살인’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한 망발이다. 노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고 있을 동안에는 불똥이 튈까봐 먼 산만 쳐다보던 사람들이 지금은 도리어 설치고 다닌다. 매사가 과유불급(過猶不及·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음)이다.
  정부는 내일의 영결식이 차분하고 질서 있게 치러질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살인정권’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낙인에 주눅이 들어 일부 과격세력에 휘둘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큰일이다. 국민장을 국가 혼란의 장으로 끌고 가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노무현 국민장 기간에 전국의 분향소에서 조문을 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엄숙하고 평화적이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극소수 분향소에 나붙은 ‘격문’과 몇몇 인터넷매체에 오른 과격한 내용의 글들을 빌미로 마치 영결식 날에 폭동이라도 일어날 듯이 과장을 하고 있다. 경복궁 광장에서 영결식을 치른 군중이 서울시청 앞에서 노제를 올리려고 동아일보사가 자리 잡은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가는 광경을 상상하고 공포를 느꼈던 것인가?

5월 29일 오전 11시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열렸다. 동아일보는 30일자 1면 머리에 「“다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경복궁~시청앞 대로에 가득 찬 조문객 사진을 실었다.

  (···) 서울광장에서 거행된 노제와 서울역까지 이어진 거리 운구행사에는 경찰 추산 최대 18만 명(시민단체는 50만 명 추산)의 시민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노 전 대통령의 상징색인 노란색 모자를 쓰거나 노란 풍선을 든 시민이 많아 이 일대는 온통 노란색으로 뒤덮였다.
  노제가 끝난 뒤 수많은 추모객으로 인해 운구차량 이동이 지연되면서 노 전 대통령 시신은 당초 예정보다 약 3시간 늦은 오후 6시경 경기 수원시 연화장에 도착해 화장됐다. 고인의 유해는 30일 새벽 고향인 봉하마을로 돌아온 뒤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안치됐다. (···)
  한편 노제가 끝난 뒤에도 시민 7000여 명은 서울광장과 인근 도로에서 밤늦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부 시민은 촛불을 들고 새벽까지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27면에 노무현 국민장과 관련된 사설을 두 편이나 내보냈다. 일부 시민의 ‘반정부 시위 선동’과 진보적 단체들의 대규모 집회 계획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7일 간의 국민장은 끝났다」

  (···) 고인은 퇴임 뒤 가족과 측근의 수뢰 혐의가 드러나면서 고뇌하다가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엄밀하게 말하면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현 정권과 검찰, 일부 언론이 그를 죽였다”는 근거 없는 선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결식에서도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많은 국내외 인사들이 보는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사죄하라”고 외치는 소란을 벌였다. 그는 제지를 당한 뒤에도 “정치 보복으로 살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인이 봉하마을로 향한 뒤 일부 시위대는 서울시청 주변에 계속 남아 ‘제2의 촛불 시위’로 이어가려는 행태를 보였다. 주동자들은 “이제 다시 국민이 나설 차례다” “더는 죽을 수 없다”며 반정부 시위를 선동했다. 이번 국민장에는 나라 전체가 추모의 마음을 통해 국민적 화합을 도모하는 뜻이 담겨 있다. 국민장을 이용해 사회 혼란을 조성하고 편을 나누어 공격하는 것은 국가와 민생을 해치는 길이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 민생과 안보를 다지자」

  민주노총은 오늘 서울광장에서 ‘노동탄압분쇄·민중생존권·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공동행동’ 발족식을 갖고 범국민대회를 열 계획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으로 미뤄졌던 대회를 갖는 것이라지만 추모 분위기를 이용해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민주당은 오늘 긴급 지도부 회의를 갖는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부 책임론 공세를 강화할 모양이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야비하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죽였단 말인가.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자는 것인가. 야권 일각에서 ‘고문치사니, ‘정권에 의한 살인’이니 하며 국민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구태 중의 구태다. 민주당 사람들은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인격 모독적 발언 때문에 자살했을 때도 ‘정권에 의한 살인’이라고 규정했던가.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확실히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면서 “거기에는 도덕적 책임도 있고 법적 책임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느낀 치욕과 좌절감, 슬픔을 생각하면 나라도 그런 결단을 했을 것 같다”고 했다.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부추기고 있다.

노무현의 충격적 죽음에 대해 대대적으로 ‘추모 특집’까지 펴냈던 동아일보가 영결식이 끝나자마자 종전의 논조로 재빨리 돌아갔음을 이 두 편의 사설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 6월 1일자 사설(「추모 곁불 쬐는 민주당, 바짝 엎드린 정부 여당」)은 민주당이 노무현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다고 비난하면서 그것을 ‘방관’하며 눈치만 살피는 정부와 여당까지 꾸짖고 있다.

  2003년 11월 1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창당대회에선 “특정 정당이 한쪽 지역을 독식하는 정치 구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창당 축하 메시지가 낭독됐다. 열린우리당은 2002년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후보로 선출해 당선시킨 민주당을 ‘낡은 지역주의 정치세력’이라고 몰아붙인 친노세력이 주도해 만들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탄핵 역풍’을 타고 과반의석을 이룬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5월 29일 저녁 청와대 만찬장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노 대통령과 감격을 나누었다.
  하지만 참여정부 중반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열린우리당은 ‘노무현과 거리두기’ ‘노무현 때리기’로 돌아섰다. 열린우리당은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 연전연패의 책임자로 노 대통령을 지목해 탈당을 압박했다. 결국 2007년 2월 노 대통령은 스스로 당적을 정리했다. 그해 대선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호적’을 바꾸었고 정동영·손학규 씨 등 경선후보들은 반노(反盧) 또는 비노(非盧)를 표방했다. (·····)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의 후신인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정신을 이어가는 계승 작업과 추모사업 방침을 밝혔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는 정치보복이 부른 억울한 죽음”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대검 중앙수사부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추모 분위기를 타고 ‘노무현 곁불 쬐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정권 책임론’이 나오자 바짝 엎드려 여론의 눈치만 살핀다. 경제 위기 속에서 실직과 생활고로 내몰리는 서민과 약자를 끌어안을 비전과 쇄신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장 북한의 전방위 도발 위협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미디어 관계법 등 산적한 현안을 다룰 6월 국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될지 의문이다. 청와대도 시국에 대한 고뇌 어린 성찰과 실천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난국을 헤쳐 나갈 책임을 망각하고 정략과 보신주의, 기회주의로 세월을 보내다가는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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