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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노무현에게 휘두른 ‘언어 폭력’동아일보 대해부 5권 -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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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7.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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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대통령으로서 적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고,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 때문에 국민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쿠데타 정권에 비하면 노무현 정권의 ‘문제점’은 비교도 할 수 없이 적었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쿠데타 정권 시기에 권력에 굴종하면서 그들의 부정과 비리를 모른 척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노무현 죽이기’에 혈안이 되었다.


전두환은 치켜세우고 노무현은 깎아내리고

아래에 인용하는 글은 보수언론이 전두환과 노무현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이비좌파, 사이버테러리스트, 교육쿠데타, 세금폭탄, 세금격투, 세금테러, 가렴주구, 홍위병, 언론 증오, 후안무치, 노이동풍, 자주놀음, 약탈정부, 도둑정치, 파장정권, 막 나가는 정권, 정권 해체·····. 하루가 멀다 하고 노골적인 비난과 악담, 증오와 저주를 마구 쏟아냈다. 이 같은 양상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상징적인 수치는 98%와 87%, 89%와 93%이다. 비슷한 숫자지만, 극단의 양상을 보여주는 수치다.
  98%와 87%는 각각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전체 사설 가운데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설 비중이다. 반면 89%와 93%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노무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사설 비율이다. 조선일보는 관련 사설의 거의 전부를, 동아일보는 열 중 아홉을 전두환 대통령 칭송으로 채운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열 중 아홉이 그 반대였다. 이는 KBS <미디어 포커스>가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에 의뢰해 1980년 전두환 정권 출범부터 2007년 1월 말까지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의 대통령 관련 사설 1,183건을 분석한 결과다(2007년 2월 24일 <언론이 본 대통령, 대통령이 본 언론> 편에서 방영). (·····)
  각 신문이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내릴 때 그 이유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분석한 결과도 눈길을 끈다. 조선·동아일보의 경우 이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거의 적용하지 않았던 이념 성향과 역사관을 문제 삼아 노 대통령을 비판한 사설이 각각 분석 대상의 27%와 24%에 달했다(<야만의 언론-노무현의 선택>, 139~141쪽).

지금부터 동아일보가 노무현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그에 대해 어떻게 ‘언어적 폭력’을 가했는지를 상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노 정부는 오락가락 정권’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열흘만인 2003년 3월 7일자 동아일보 5면 머리에는 「“노 정부는 오락가락 정권” / 한나라 ‘무원칙’ 맹공」이라는 기사가 올랐다.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를 정면으로 문제 삼고 나섰다. 노 대통령이 취임 후 각료 인선 및 각종 정책 시행 과정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표명해온 소신과 원칙을 계속 뒤집고 있다는 게 한나라당의 진단이다.
  6일 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자격 논란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와 나종일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의 대북 비밀 접촉,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의 의원직 겸직 상태 방치, 경찰위원회를 무시한 경찰청장 인사, 대북 비밀송금 특검제 논란 등이 구체적 사례로 거론됐다.
  김영일 사무총장은 “노 정권은 시작부터 정의의 잣대를 법과 양식이 아니라 ‘권력 입맛대로’에 두고 있는 것 같다”며 “자기들 권력에 이로우냐 해로우냐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삼고 상황에 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꺼삐딴 정권’이 되어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류에 따라 변질적으로 순응해가는 기회주의적 인간을 다룬 전광용 씨의 단편소설 「꺼삐딴 리」(1962년 작)를 빗댄 것.
  대북정책의 투명성을 강조했던 노 대통령의 공약이 채 마르기도 전에 베이징에서 대북 비밀접촉이 이뤄진 것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불만을 제기했다.

정치선진국들에서는 새로 대통령이나 내각책임제 총리가 취임한 뒤 적어도 6개월 동안은 야당이나 언론이 그 행보를 지켜보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방관할 수 없는 비상한 사태가 일어나면 그런 관례를 떨쳐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반 년 동안 그런 아량과 금도(襟度)를 보이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동아·조선·중앙일보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독재정권 시기에는 권력 아래서 침묵하거나 굴종하는 작태를 흔히 보였지만, 그들이 적대시하는 노무현에게는 시비 거리만 생기면 짐승의 주검을 보고 날쌔게 달려드는 독수리 같았다.

위의 기사는 동아일보가 한나라당의 ‘입’을 빌려 노무현 정권을 향해 ‘간접 공격’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5월 22일자 1면 머리에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위기감” / 노 대통령 “전부들 힘으로만 하려고 하니···”」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21일 한국대학생총연합(한총련)의 광주 5·18 묘지 시위 사태 등 사회 각층의 기강 문란 행위를 겨냥해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5·18기념재단 이사장인 강신석 목사 등 5·18 행사 추진위원회 간부들을 청와대에서 만나 “젊은 학생들이 실수가 있었더라도 너그럽게 생각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 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마음이)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니며, 기분이 상하고 안 하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데 자기 행동에 대해 결과로써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 어른들도 젊은 사람들이 잘못하면 나무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노 대통령은 이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반대하며 연가(年暇) 투쟁을 벌이겠다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해서도 “자기 주장을 갖고 국가 기능을 거부해버리면 국가 의사 결정 프로세스가 무슨 의미 있느냐”고 비판했다.

이 기사는 노무현이 진보적 단체들인 한총련과 전교조의 행태를 직접 비판한 내용보다는 그의 투박한 말투를 큰 제목으로 뽑고 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기사 제목만 본 사람들은 ‘취임한 지 채 석 달도 안 된 대통령이 어떻게 저리 가벼운 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아일보 논설주간 최규철은 6월 19일자 6면 칼럼(「‘신권위주의’ 등장인가」)에서 노무현을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에 비유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각 부처 개혁주체세력 구축’ 의도를 보면 이 정권이 안팎에서 받고 있는 엄청난 개혁 압력을 알 수 있다. 정치 개혁을 유난히 강조한 정권이지만 눈앞의 정치 난장판을 보면 엄두도 내지 못할 현실을 직감했을 것이다. (···) 권력 주변엔 항상 묘책을 내놓는 책사가 있다. 그런데 총리나 비서실장 등 핵심 인사들의 사후 해석이 조금씩 다른 것을 보면 권력 내부의 신중한 논의 없이 선뜻 헌책서(獻策書)부터 받아들인 것 같다.
  지금 같은 개명천지에 묘책이란 없다. 오히려 스스로를 궁지로 모는 악수가 많다. ‘개혁세력’에 대한 이런저런 추가 설명이 있지만, 비슷한 발상에서 시작한 DJ 정권의 ‘제2건국위’의 형해화된 말로를 상기해 보라. 문제는 우리만이 개혁을 해낼 수 있다는 개혁 독점욕이다. 철권을 휘둘렀던 군사정권은 애국을 독점하려 했다. 이제 애국 자리에 개혁을 대입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개혁 독점욕을 버려야 한다. (···)
  개혁세력 구축을 처음 언급하면서 대통령은 ‘나의 정치적 가치’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란 표현을 거침없이 썼다. 이어 “나에게 줄을 서라” 했으니, 한마디로 대통령 코드에 맞추라는 얘기다. 권위주의가 따로 있는 것인가. 한때 내걸었던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란 플래카드가 즉흥적 장식용이 아니었다면 그런 듣기 거북한 ‘하향식’ 표현은 삼갔어야 했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짐은 국가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 나아가 ‘불용납과 문책’을 언급한 대목에 이르면 권위주의 색채는 더욱 뚜렷해진다. 조지 오웰의 ‘1984년 빅 브러더’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겠는가. ‘나의 가치, 나의 철학’의 강조 속엔 독선이 꿈틀대기 마련이다. 더욱이 앞으로 입법이나 정책화 과정에서 검증이 필요할지도 모를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에 국가기관과 공무원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이 될 법이나 한 일인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망상이다. 그 결과는 분열일 뿐이다. (·····)
  대통령의 철학과 정치적 가치가 통치권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대의민주주의라는 원칙이 엄연히 존재하며 모든 것이 법치주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우리 헌정 질서다. 통치권도, 국가 개조도 이를 넘을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 ‘신권위주의 등장’이니 . ‘개혁독재’니 하는 말이 왜 나오지 않겠는가.

이 글은 개혁을 추진하면서 노무현이 사용한 용어들을 바탕으로 그를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와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독재자 ‘빅 브러더’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면서 결론 부분에서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대의민주주의라는 원칙이 엄연히 존재하며 모든 것이 법치주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우리 헌정 질서다”라고 주장한다. 동아일보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독재정권 시기에도 이런 글을 실은 적이 있던가? 그 시기의 지면을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비슷한 글조차 찾을 수가 없다.


‘민주주의가 울고 있다’

동아일보 2004년 8월 28일자 6면에는 논설위원 김순덕이 쓴 「민주주의가 울고 있다」라는 칼럼이 실렸다. 그는 이 글에서 노무현을 ‘선출된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참 희한하다. 지구 반대편에 참여민주주의를 유독 강조하는 나라가 또 있다니.
  15일 대통령 소환투표를 치른 베네수엘라는 대통령이 나서 참여를 역설해 온 국가다. 민주주의는 원래 1인 1표를 지닌 국민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지당한 사실에 역점을 둘 땐 대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같은 참여정부의 입장에서, 대통령직을 잃을 뻔한 위기를 이겨낸 우고 차베스를 바라보는 심정은 복잡하다. 참여만 비슷하면 차라리 좋겠다. (·····)
  개혁과 분배를 최우선으로, 국가와 시장에다 연대까지 더한 ‘제4의 길’을 내건 차베스 집권 6년, 그들은 과연 잘 살게 됐는가. (···) 자본 유출을 막겠다며 2003년 초 정부가 환율 개입을 시작하자 화폐 가치는 폭락했다. 작년엔 인플레가 30%였다. 빈곤층은 500만 명이 늘었고 지지율이 30%대까지 추락했다.
  그런데 차베스는 대통령 불신임투표에서 살아났다. 비결이 궁금하지 않은가. 유가 폭등이 일등공신이다. 국민투표 실시 결정 이후 차베스는 세계 5위 산유국의 석유 수입을 빈곤층에 ‘게릴라 복지’로 퍼부었다. 무상교육, 의료, 식료품까지 지원했다. 58%의 대통령 신임 찬성은 여기서 쏟아졌다. 그게 1인 1표의 민주주의다. 인간은 이렇게 간사하다. (·····)
  (···) 빈민의 구세주인데, 헌법과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한 대통령이되 차베스는 분명 민주선거로 선출됐고 재신임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민주주의는 뭐란 말인가.
  대통령이 무서운 건 이 때문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신념이 나라를 바꾸는 현실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보여준다. 국민이 선택했다는 이유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 이념으로, 때로는 말 실수처럼 밝혔던 일들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다. 사회 전방위에 지배세력 교체를 이룬 데 이어, 위헌 소지가 있는 법률들이 개혁입법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이젠 기억 속의 잘못까지 물을 태세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던 그가 국민을 충격과 불안에 몰아넣은 것이 성공의 잣대가 될 수 있다면 노 대통령은 충분히 성공했다.
  그러나 1인 1표의 민주주의는 권력의 획득을 정당화했을 뿐, 권력의 남용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참여세력’의 뒷심 삼아 헌법을 흔들고, 법에 의한 지배와 사유재산권, 언론자유 등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외면하는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의 수장이랄 수 없다.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의 선출된 독재자일 뿐이다. 집권세력이 한때 타는 목마름으로 불렀다는 민주주의, 그 민주주의가 지금 그들에게 유린당해 울고 있다.

  “참 희한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칼럼은 노무현을 ‘선출된 독재자’로 몰아붙이기 위해 ‘참 희한한 논리’를 동원하고 있다. 구태여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차베스까지 끌어들여 ‘1인 1표 민주주의’의 허점과 모순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한국의 현대사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경우만 살펴보면 노무현이 ‘선출된 독재자’인지 아닌지를 명백히 판단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승만은 ‘1인 1표’를 규정한 헌법에 따라 1952년부터 1960년까지 세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 등 차베스는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라는 허울을 쓴 독재정권의 ‘수장’으로서 1인 1표의 주인인 국민들 위에 군림했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라는 군사반란으로 1인 1표 민주주의로 세워진 장면 정부를 뒤엎었는가 하면, 1972년 10월에는 헌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특별담화’를 통해 ‘유신’이라는 종신집권 체제를 세웠다. 그는 1인 1표를 없앤 뒤 체육관에 ‘거수기들’을  모아놓고 치른 간접선거에서 거의 전원 찬성으로 대통령으로 뽑혔다. 전두환 역시 그 제도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위 칼럼의 필자가 노무현을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선출된 독재자’라고 규정하려면 그런 사례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어야 한다.

동아일보 2005년 11월 12일자 35면에는 「좌파적 역사 만들기에 혈세 쏟아 붓는 정권」이라는 사설이 나왔다.

  지금 지구촌에서 ‘과거사 공화국’을 찾아보라면 대한민국이 첫 손가락에 꼽힐 만하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있다. 국가정보원, 국방부, 경찰청 등 부처별 과거사 위원회도 활동 중이다. 행정자치부에는 거창 사건, 노근리 사건, 제주도 4·3 사건 등 사건별 처리 지원단이 있다. (···)
  이렇게 많은 과거사 관련 활동이 과연 나라와 국민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절실한 일인가. 노무현 정권 주도로 벌이고 있는 이런 ‘역사 다시 쓰기’ 작업도 또 하나의 과거사가 될 텐데, 참으로 정당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정치권력이 개입해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에서 규명하고 해석한 역사는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선전 이데올로기일 뿐 역사적 진실의 복권과는 거리가 멀다.
  2003년 노 대통령은 취임사와 3·1절 기념사 등에서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 “시대를 거꾸로 살아온 사람들이 득세한 역사”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시대”라고 규정했다. 이런 현대사 인식은 건국 이후 역대 정권의 공적을 부정하고 과오만 부각시켜 대한민국 현대사를 실패한 역사로 몰고 가는 좌파적 역사관을 빼닮았다.
  노 대통령이 이런 역사 인식을 천명하면서 엄호하는 과거사 규명을 객관적이라고 볼 국민이 얼마나 있겠는가. 건국세력과 우파의 잘못만을 찾아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고, 좌파 집권의 명분을 축적해 좌파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연장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 아닌가. 좌파적 역사 해석을 주도해온 학자들이 각종 과거사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노 정권의 과거사 규명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시각에서 역사를 해석해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영원히 정당화되리라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역사는 끝없는 연구에 의해 수정되고 새롭게 해석된다. (···)
  ‘진실과 화해’라는 말을 빌려 실제로는 ‘분열과 대립’을 키우는 단색의 역사 기술에 낭비되는 혈세가 너무 아깝다.

동아일보가 보기에,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과거사 규명을 통해 드러날 사실들은 분명히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왜 그런가?

무엇보다도 먼저 1920년 4월 1일 그 신문이 창간된 이래 실질적 사주 김성수가 저지른 친일행위가 낱낱이 밝혀지고, 지면을 통해 일제 침략자들에게 굴종하고 아부한 증거들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극우 보수정권 시기에 저질러진 온갖 반민주·반민족·반민중적 범죄들의 실상이 과거사 규명 위원회들의 조사로 드러나면 동아일보가 그런 범죄들에 대한 보도를 외면하거나 왜곡 또는 축소한 사실이 폭로될 것도 왜 두렵지 않겠는가?

동아일보는 오욕으로 얼룩진 과거사 진상 조사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보수세력이 언제나 그랬듯이, ‘좌경’이라는 색깔론으로 노무현 정권을 향해 극렬한 비난을 퍼부은 것이었다.


‘현 정부는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건달 정부’

동아일보는 2005년 11월 5일자 5면 머리에 서울대 명예교수 안병직이 정치웹진 <뉴라이트 닷컴>과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를 ‘평가’한 독설의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현 정부는 한마디로 건달 정부다. 국내정치는 물론 국제정치에서도 아무 하는 일이 없다.” (·····)
  -대북 유화정책의 문제는···.
  “ (···) 한마디로 대북 포용정책은 대북용이 아니라 대남용인 셈이다. 북한이 개혁 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 주민들의 노예화는 필연적이다. (·····)
  -김정일 위원장의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한국 내에서 상당히 반향을 얻고 있다.
  “식민지를 경험했던 국가라면 민족주의가 이데올로기로서 호소력을 갖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민족주의가 제국주의 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는 성공적이었지만 민족주의만으로 근대국가를 건설한 나라는 없다. 노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강조하지만 유럽연합(EU)과 같이 세계가 하나의 지역 단위로 묶여가는 판국에 자주국방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년 예산안을 보면 복지 분야 예산은 2배 이상 늘었는데,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줄었다.
  “이 정부는 지금이 불황인지 아닌지도 인식을 못하지 않는가. 얼마나 무능한지 알 만한 일이다. 이번 재선거에서 지고도 반성을 못하고 있잖은가. 원래 재생의 가능성이 있어야 반성도 되는 거다. 반성을 못할 정도로 능력이 없는 것이다.”
  -개선의 여지는 없는지.
  “사고가 안 나도록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 앞부분에서 안병직이 “1970년대 대표적 경제사학자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언제부터인지 보수적 성향으로 바뀌어 ‘뉴라이트’의 핵심 인물로 자리잡은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노무현의 ‘말투’ 트집 잡기

동아일보 논설위원 권순택은 2007년 2월 8일자 34면에 「언품(言品)도 대통령의 조건이다」라는 칼럼을 실었다. 노무현의 말에 ‘품위’가 전혀 없다고 ‘훈계’ 조로 비판한 글이다.

  (···) 노무현 대통령이 부러워하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정말 말을 잘한다. 개인적 능력도 중요하지만 당대 최고의 연설문 작성자를 옆에 두고, 철저한 준비와 완벽한 연출이 따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노 대통령도 논리적이고 말을 잘한다는 평판을 받던 인물이다. 그런데 왜 그의 말은 늘 그 자신과 다수 국민의 마음을 베는 양날의 칼이 되는가.
  대통령의 말은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과거 정권과 공무원 탓이나 변명보다 스스로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며, 다짐과 약속이 주조를 이뤄야 한다. 그런데 그는 성난 얼굴로 존재를 과시하던 야당 정치인 시절의 행동과 “반미면 어때” “마누라를 버려야 합니까” 식의 ‘안티 어법’을 버리지 못했다. (·····)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외국의 대통령실과 부처 기자실 운영 실태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진짜 해야 할 일은 외국 대통령들이 어떻게 연설에 성공했는지 그 비결을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유권자들은 차기 대통령 선택 기준의 하나로 ‘말’과 연관된 자질과 언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5년 동안 지겹게 보고 들어야 할 사람의 말이 아닌가. 지금부터 꼼꼼하게 뜯어봐야 한다. 말재주나 연설 능력이 후보 선택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겉만 번지르르 한 말재주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성 표현에 속지 않을 정도의 지혜도 필요한 일이다.

이 칼럼의 필자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 박정희가 담화를 발표할 때마다 국민을 향해 독재자 특유의 억압적 말투를 쓰던 시기에 동아일보는 그것을 비판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즉석연설이나 대화를 하면서 문법이나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남발하던 전두환의 ‘언품’을 지적했는가?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표준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대중의 조롱을 받던 김영삼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을 했는가?

동아일보 2007년 9월 3일자 사설(「노 대통령, 또 선거법 위반에 수사 지침 내리나」)은 노무현의 ‘막말’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원수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막말 잔치를 벌일 때마다 이를 일일이 반박하기도 솔직히 지겹다. 그러나 그가 PD연합회 창립기념식 축사에서 한 발언은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그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 “의혹이 있다고 하는데 진실이 어느 것인지 추궁하지 않는다. 우리는 위장 전입 한 건만 있어도 장관이 안 된다”며 언론을 비난했다. 민주신당 손학규 예비 경선후보 캠프에 대해서는 “범여권으로 넘어온 사람한테 줄 서 가지고 부채질 하느라고 아주 바쁘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건너가면 안 되고 그 사람은 건너와도 괜찮냐”라고 반문했다.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를 규정한 헌법과 법률을 명백히 위반한 발언이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 경선 기간에 이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를 비난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세 차례나 경고를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영상 메시지만 보내달라는 모임에 직접 찾아가, 자신의 말대로 ‘실물’을 보여주며 고의적으로 선거법을 위반했다. 민주주의국가의 근간인 법치주의 원칙을 거듭 훼손하는 노 대통령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이번에도 경고만 하고 말 것인가. (·····)
  (···) 언론에 대한 막말은 노 대통령의 편집증 같은 것이라서 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인식과 말의 결함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로는 고칠 수 없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이다.

노무현이 이명박과 손학규를 겨냥해서 했다는 비판은 당사자들이 선관위에 고발하거나 선관위가 인지해서 조사한 뒤 결론에 따라 법원에 고발할 사안이다. 동아일보가 먼저 나서서 ‘고의적’인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결’을 내리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명백히 어긋난다.

그리고 “언론에 대한 막말은 노 대통령의 편집증 같은 것”이라는 주장은 그가 정신적으로 ‘이상’을 가진 인간이라는 단정이나 다름없다. 노무현이 보수언론을 상대로 한 말들이 왜 ‘편집증’의 결과인지를 의학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뒷받침했어야 옳다.


‘봉하마을에 퍼붓는 국고’

노무현의 대통령 퇴임을 3주 앞둔 2008년 2월 4일자 동아일보 2면 머리에는 「예산처 ‘진영읍·봉하마을 495억 사업’ 명세서 제출」이라는 기사가 올랐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과 봉하마을에 건설 중인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관련 시설’에 총 495억 원의 나랏돈이 배정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여기에는 노 대통령 내외가 살 집과 비서진 등이 머물 것으로 알려진 연립주택 건설비는 포함되지 않았다. 기획예산처가 최근 작성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제출한 <봉하마을 지원사업>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업에는 국고 211억 원, 김해시 등이 갹출한 지방비 284억 원 등 495억 원이 투입된다. 이 보고서는 예산처가 각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제출받은 관련 예산을 취합한 것이다.

이 기사의 부제목은 「‘관광객 쉼터’ 16억·생태공원 60억 / 공설운동장엔 야간 조명시설도 / 웰빙숲 30억···생가 복원 9억···안길 정비 8억··· / 비서진 연립주택 건설비는 별도···예산 더 늘 수도」이다.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보수언론에는 ‘노무현의 아방궁’이라는 비난이 나오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국가예산처가 대통령직인수위에 그런 보고서를 낸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노무현이 돌아가서 살게 되는 봉하마을은 ‘아방궁’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액의 ‘나랏돈’을 들이지 않았음이 입증된 것이다.

동아일보는 2월 18일자 35면에 「봉하마을에 퍼붓는 국고, 숭례문에 돌려라」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귀향 환영행사가 당초 계획보다 축소된다고 한다. 행사추진위원회가 ‘요란한 귀향 쇼’라는 비판여론을 의식해 내린 결정이다. 행사비용을 1억3000만 원에서 6500만 원으로 줄이겠다지만, 이것 역시 역대 대통령의 사저 귀환행사와 비교하면 지나치다. 마지못해 축소하는 듯한 제스처에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더욱이 총 495억 원이 드는 경호경비 시설, 생태공원, 웰빙숲, 시민문화센터, 전통테마마을의 건립 및 조성, 공설운동장 개보수는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드는 예산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의 지방비를 제외한 국고 및 행정자치부 특별교부세 지원 규모만도 211억 원에 이른다. 이 돈을 왜 국민이 세금에서 부담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사실상 무산시킨 정부의 최고책임자인 노 대통령이 ‘내 논에만 물 대기’를 하는 모양새다. 노 대통령 사저와 봉하마을에 대한 터무니없는 예산 지원에 대해 차기 정부가 특별감사를 벌여 그 진상을 밝혀야 한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가 살겠다는 것 자체는 평가받을 만했다. 그러나 봉하마을 일대에 국비와 지방비를 퍼붓는 것을 보고 노 대통령의 생각이 순수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노사모의 성지로 만들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
  시민단체 회원들이 봉하마을에 찾아가 국고 211억 원을 차라리 숭례문 복원비로 쓰는 것이 낫겠다는 주장을 폈다. 봉하마을과 사저를을 꾸미기보다는 소실(燒失)된 숭례문을 복구하는 데 쓰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다.
  노 대통령과 측근들이 이쯤 해서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명예로운 결단을 내려주기 바란다. 국민이 세금 때문에 얼마나 힘겨운지 이제 알 때쯤 되지 않았는가.

연합뉴스가 2014년 5월 23일자에 보도한 기사(「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5년 봉하마을의 변화」)는 동아일보 사설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2002년 12월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까지는 김해지역에서도 변두리에 속했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2008년 2월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귀향하면서 봉하마을은 유명해졌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했다.
  봉화산 자락에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 퇴임한 대통령이 기거할 사저와 종합복지관, 연립주택, 경호실 등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마을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히 사저는 노 전 대통령 퇴임 이전부터 ‘아방궁’ 논란을 빚으면서 국민적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3991평방미터 부지에 들어선 지하 1층, 지상 1층, 건축면적 1277평방미터 규모의 사저는 ‘ㄷ’자 모양의 황톳빛 외벽에 유리창을 갖춘 독특한 구조였으나 호화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아방궁 논란도 사그라졌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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