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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자초한 ‘대연정 파동’동아일보 대해부 5권 -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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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7.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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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임기가 절반에 가까워지는 2005년 7월 28일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200자 원고지 52장의 편지를 통해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大聯政)’을 제안했다.

동아일보는 그 내용을 7월 29일자 1면 머리에 크게 보도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열린우리당 당원 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이 같이 제안했다. (···)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은 실질적으로 정권교체 제안”이라며 “한나라 은 당장 나라가 결딴이라도 날듯이 걱정하는데 ,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얼른 국정을 인수해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라면서 대연정 제안의 수용을 촉구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이양하는 대신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지역 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정치적 합의만 이뤄지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구성하고 그 연정에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하며 선거법은 여야가 힘을 합해 만들면 된다”면서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권을 내놓고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위헌적 발상’이라며 즉각 거부했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은 “차라리 한나라당과 합당하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합법적 선거를 거쳐 당선된 대통령,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를 구성한 노무현이 “정권을 한나라당에게 넘겨주겠다”고 공언한 것은 그 이유와 배경이 어떻든 간에 선뜻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딱하다’

동아일보는 7월 29일자 27면에 「국민은 연정 안 돼 힘든 게 아니다」라는 사설을 올렸다.

  (···) 얼핏 보기에는 ‘지역 구도 해결’을 정치적 소명으로 삼고, 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선언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깔린 ‘승부수 선수 치기’나 다름없다. 국정의 정도를 걷고 경제와 민생을 살려냄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특유의 ‘판 흔들기’로 정권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술수가 엿보인다.
  노 대통령은 “연정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여소야대 구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결국 여소야대를 뒤집는 것이 연정의 궁극적 목표임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또 명분은 ‘지역구도 해결’이지만 요컨대 여당에 유리한 선거제도를 이끌어 냄으로써 다수 여당으로 계속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
  그 자신이 “한나라당도 당장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지만”이라고 전제하는 것 자체가 정치공학적인 포석을 하고 있다는 증빙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실현 가능성보다 정치 공세에 무게를 두고 전술을 구사하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는 셈이다. 이런 행태야말로 국민이 노 대통령에게 실망하는 대목이요, 그의 도덕성을 의문시해온 이유다. (·····)
  다행히 많은 국민은 노 대통령의 승부 수법에 익숙해져 있고 어느 정도 내성을 갖고 있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탄핵 횡재’로 과반 의석을 얻은 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보인 행보, 그리고 노 대통령의 지지도 추이를 국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번 제안은 ‘386 정치’의 본색을 보여주는 생뚱맞은 카드다. 국민은 연정이 되지 않아 힘든 것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바로 이튿날인 7월 30일자에도 「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딱하다」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제도 개혁과 이를 위한 연정’ 집착이 도를 넘고 있다. ‘독선적인 아집’이라는 느낌까지 주는 단계에 이르렀다. 국정 전반에 대해 누구보다 냉철한 균형감각을 발휘해야 할 대통령이 외곬으로 빠져드는 듯해 국민은 불안하고 힘들다.
  노 대통령은 어제 긴급 기자회견에서 “지역구도 해소를 통해 정치를 재건 축하겠다”는 자신의 구상은 “어느 때인가 국민이 동의하고, 어떤 정치인도 거역할 수 없는 공론이 될 것”이라면서 “이 제안을 귀담아 듣지 않고 거역하면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확신이 극단에 이르고 있음을 감지하게 하는 발언이다. 대통령의 독선과 오만, 심지어는 협박으로 받아들일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면 여야 간의 논의를 통해 절충점을 찾고, 국민을 향해 설득 경쟁을 해나가면 될 일이다. 2008년 총선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런데도 왜 지금 이 문제를 들고 나와 경제난과 생활고에 지친 국민을 더 힘들게 하는가. (·····)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행태는 한술 더 뜬다. 대다수 여론은 물론이고 친노 매체들까지도 반대하는 연정 제의에 대해 ‘고뇌에 찬 결단’이라며 연일지지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연정에 반대하는 의원과 당원들을 찬성 쪽으로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니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보다 더한 ‘제왕의 칙령’이 되고 있다는 자조마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집권 반환점을 목전에 둔 참여정부의 참 모습이다. 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눈에 뭔가 씌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행태들이다.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이 ‘지역구도’에 따라 좌우되는 한국 정치의 지형을 바꾸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임은 명백했다. 노무현 자신이 경남 출신이면서도 1991년의 ‘3당 합당’ 때 ‘정치적 사부’인 김영삼을 따라 가지 않고 야권에 남았을 때 그의 정치의식은 ‘지역구도 타파’에 바탕을 두고 민주화를 추진하는 데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데 한나라당을 향해 ‘대연정’을 하자고 파격적인 제안을 하면서 그가 내세운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은 2008년 총선과 2009년 대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한나라당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이 분명했다.

동아일보는 노무현이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사용한 투박한 용어들과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특이한 어법을 문제 삼아 그에게 ‘독선적 아집’ ‘협박’ ‘제왕의 칙어’ 같은 말로 공격을 퍼부었다.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는 8월 1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의 ‘연정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강서구 염창동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나라를 구하는 길은 연정이 아니라 도탄에 빠진 민생부터 살려내는 것”이라며 대연정론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에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지역주의라는 기득권에 집착하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반박하는 등 대연정론을 둘러싼 여야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박 대표는 이날 “선거제도를 고치기 위해 대통령이 권력까지 내놓겠다는 것은 헌법 파괴적이며 노 대통령은 국민이 부여한 신성한 권력을 야당과 흥정하는 도구로 쓰려 한다”며 “대통령이 말 한마디로 나눠주는 권력은 받을 의사가 조금도 없다”고 강조했다(동아일보 8월 2일자 8면).

동아일보 8월 2일자 사설(「연정론 접고 평상 국정에 충실하라」)은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정치게임이 아니라 평상의 국정”이라고 주장했다.

  어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지역구도 해소가 가능한 선거제도 마련’을 전제로 노무현 대통령이 내놓은 대연정 제안을 ‘헌법 파괴적 발상’이라며 거부했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제안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과 개별 접촉을 갖고 설득에 나서는 등 ‘연정 총공세’를 펴고 있다. 국민과 상대 당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데도 자기 논리에 도취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
  지금은 노 대통령이 연초부터 강조했던 경제와 민생 살리기에 몰두할 때다. (···)
  노 대통령이 지난달부터 편지와 간담회를 통해 5차례나 연정론을 편 배경에는 국민과 야당의 냉담한 반응에 대한 오기도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국민은 대통령이 정치게임의 논리를 접고 경제와 민생 챙기기를 중심으로 국정 어젠다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정치게임이 아니라 평상의 국정이다.


“노 대통령이 어제도 제공한 ‘내 생각’ 뉴스”

노무현은 8월 18일 대연정과 관련해 “야당에 정식으로 정치협상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27개 중앙 언론사 정치부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갖고 한나라당의 거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대연정을 추진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치협상 제안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연정은) 이미 끝난 문제다. 한나라당 당론을 확실하고 뚜렷하게 밝혔기 때문에 더 논할 이유가 없다”고 일축해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여러 방법으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며 “합당하자는 말이 아니고, 대연정이 안 되면 대연정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어떻든 정책 합의라도 이뤄 나갈 수 있는 변화를 가져와야 된다”고 밝혀 야당과의 공조도 함께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동아일보 8월 19일자 2면).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27면에 실린「노 대통령이 어제도 제공한 ‘내 생각’ 뉴스」라는 사설을 통해 노무현의 언동을 희화화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중앙 언론사 정치부장단과 취임 이후 처음 가진 간담회에서 연정론 등 정국 현안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이 “국민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쪽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16일 청와대 비서진에 “차라리 ‘식물대통령’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라며 자신의 ‘진정성’이 전해지지 않는 데 대해 답답함을 토로한 것과 같은 맥락의 발언이었다. 
  노 대통령은 또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면 이 제도에서도, 저 제도에서도 실패한다”며 사회의 ‘지도력 위기’도 거론했다. “우리는 대화가 안 되는, 정상적 민주주의 운영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노 대통령이 이런 말 뒤에 꺼낸 의제(어젠다)는 여전히 ‘국민 생각과 동떨어진’ 대연정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이 들어 볼 것 없다고 해서 거부한 것 같은데, 수준 있는 이론을 갖춰 거부해 주면 정치 수준이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비꼬는 듯한 말까지 했다. 이쯤 되면 노 대통령의 ‘마이 웨이’가 갈 데까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동안 연 론의 허구성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언론과 야당이 수없이 지적했다. 오죽하면 한나라당도 “입이 아파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을까.
  이날 노 대통령이 생산한 ‘내 생각’ 뉴스는 연정론뿐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국가정보원 도청 문제에 대해서도 “정권이 책임질 과오는 없었다”고 정리했다. 하지만 DJ 측으로부터는 “국민이 혼란스러울 것”이란 반응만 돌아왔다. (·····)
  국민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이제 정치게임의 논리를 접고 민생의 질 향상에 전념해 달라는 것이다. (···) 대통령 말에 짜증내기에도 지친 국민들의 인내심을 더 시험하지 말기 바란다.

노무현은 8월 23일 지방신문 편집국장 33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3시간 남짓 동안 200자 원고지 167장 분량의 말을 했다. 다음은 노무현의 발언 요지이다.

  그동안 국정을 수행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점이 내 생각과 다르게 국민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일부 중앙 언론과 나는 내가 정치를 하는 동안 내내 관계가 좋지 못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가 그런 언론으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일이고 지금도 나를 대통령으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부 언론이 있어서 우리 생각이 국민에게 바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것은 내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 참여정부가 출발하면서 기존의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고쳐보자 해서 좀 버겁게 일을 시작하다 보니까 초반부에 언론과의 사이에 상당한 갈등 관계가 있었다. 후반기에는 언론과의 관계에서 새롭게 생산적인 경쟁 관계를 추진하려고 한다. 새로운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런 목표를 고려해서 선임할 생각이다. (·····)
  (임기 절반을 지낸) 소회를 얘기하면 일은 잘한 것 같다. 그런데 국민에게 별로 지지는 못 받고 있다. 하나는 지지를 못 받아서 섭섭하고, 또 하나는 내가 좀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나한테 책임이 있는 것은 말솜씨가 별로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말로써 생긴 이미지의 손해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 때문에 국정 솜씨가 많이 깎이지 않았는가 해서 아쉽다.
  연정은 구조적으로 지역구도를 좀 고치자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정치 술수로 이해되면서 어려운데, 하반기에는 여기에 집중할 것이다(동아일보 8월 25일자 5면).


‘노 대통령 발언 불길하다’

  노무현은 대통령 임기 절반을 맞이한 8월 26일 KBS 1 TV의 「참여정부 2년 6개월, 대통령에게 듣는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저의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엊그제 발표로 29%”라며 “책임정치를 하는 나라에서 29% 지지도를 갖고 국정을 계속해서 운영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하는 문제에 대한 국민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의 정치제도는 내각제가 아니어서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통해 재신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여론조사 결과를 갖고 대통령직을 불쑥 내놓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없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연정 제안과 관련해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은 파트너이지 극복의 대상은 아니다”라며 “(한나라당이) ‘연정 그 정도 갖고는 얽혀서 골치 아프니까 권력을 통째로 내놔라’라고 하면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연정 제안은 음모가 없으며 (한나라당이) 연정을 받기 싫으면 분열구도 극복을 위한 정치협상이라도 하고, 연정이 위헌이면 선거제도에 대한 협상을 하자는 것이 한나라당에 대한 요구”라고 더붙였다(동아일보 8월 26일자 1면).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35면에 「임기 후반 첫날, 노 대통령 발언 불길하다」라는 사설을 올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KBS TV에 나와서 밝힌 시국 인식과 처방은 ‘국민의 생각 뒤집기’ 바로 그것이었다. 임기 후반 첫날의 길었던 발언 어디에도 겸허하고 진솔한 ‘내 탓’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가진 자들의 저항과 이를 부채질하는 언론, 그리고 자신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야당에 있다는 것이었다. (·····)
  그의 연정에 대한 집착도 여전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29%에 불과한 상황에서 책임정치는 불가능하다”면서 연정이 난국 타개의 길이라는 주장을 거듭 밝힌 것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이처럼 줄기차게 연정을 거론하는 것은 민주국가 지도자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독선이고 아집이다.
  노 대통령은 또 “(한나라당이) ‘연정 그 정도 갖고는 얽혀서 골치 아프니까 권력을 통째로 내놔라’라고 하면 검토해 보겠다”면서 “나한테 (이보다) 더 큰 요구가 있으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정권을 아예 내놓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 발언이다.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연정이 위헌이면 선거제도에 대한 협상을 하자는 것이 한나라당에 대한 요구”라고 말했다. 이러니 국민만 헷갈리고 불안한 것이다. 심지어 국민을 상대로 “협박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다. 이래서 대통령 임기 후반부의 출발점이 불길하게 느껴진다. 


물거품만 남긴 ‘대연정 제안’

8월 30일 노무현은 청와대에서 가진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3시간 남짓 동안 대연정에 관한 토론을 벌였다. 동아일보는 8월 31일자 4면에 그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 만찬에는 열린우리당 의원 145명 중 131명이 참석했다.
  만찬 후 일부 의원들은 “가슴이 답답한 시간이었다. 대통령과의 거리를 확실히 확인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의원은 “임기 단축 발언은 대통령이 언제든지 결단만 내리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야당에 권력을 줄 수 있다’는 이전의 발언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라며 “참석자 상당수가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 대통령은 만찬 인사말에서 “나의 새로운 제안은 내 전 정치 인생을 최종적으로 마감하고 총정리하는 단계에 들어서서 마지막 봉사를 하려는 것이다. 기득권의 포기, 희생의 결단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임기 단축 검토’ 배경을 설명했다. (·····)
  송영길 의원은 “굳이 연정론을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별 차이가 없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지역 문제보다 더 큰 차원에서 동북아 문제나 남북 문제를 다뤘으면 좋겠다”고 연정 반대를 언급했다.
  장영달 의원도 “의원들은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게 되면 우리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것은 아닌지, 과연 지역구도 타파가 가능한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초 발언자로 지정돼 있지 않던 임종인 의원이 손을 들고 “어떻게 광주학살의 주체와 손을 잡을 수 있겠느냐. 한나라당은 기득권 수구 세력, 친일 분단 반민주 세력의 후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 마무리 발언 요지: 한나라당이 과거에 고문하고 독재하고 인권유린하고 부정부패하고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대통령직선제를 네 번째 해오면서 일정한 지지를 받으며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정통성을 부정만 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 (···) 정치는 선택의 예술이다. 나는 늘 선택을 해 왔다. 선택의 경력으로 치자면 세계 최고의 원로적 경지에 있을 것이다. 우리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새로운 정치문화와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수 있다고 전제된다면 2선 후퇴나 임기 단축을 통해서라도 노무현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지와 결단도 생각해봤다.

동아일보 8월 31일자 31면에는 「노 대통령, 여 의원들 ‘진정성’ 받아들여야」라는 사설이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자신의 연정론 제안에 대해 “나의 전 정치 인생을 최종적으로 마감하고 총정리하는 단계에 들어서서 마지막 봉사를 하려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마지막까지 연정 실현에 ‘다 걸기(올인)’를 하겠다는 비장한 선언 같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의 기류는 전혀 달랐다. 만찬 도중 발언에 나선 6명의 의원 중 5명이 한나라당과의 정책 노선 차이 등을 이유로 연정 반대론을 폈다고 한다. 이에 앞서 경남 통영에서 워크숍을 마친 뒤 채택한 결의문에서 의원들은 “경제 활성화와 양극화 해소가 참여정부 후반기의 최우선 과제”라며 연정론과 관련해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관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연정론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중단하고 민생의 질을 높이는 데 전념하겠다는 선언이다. (···)
  의원들의 비판은 지역구를 갖고 민심과 호흡하는 의원들이 ‘여론과 동떨어진’ 청와대보다는 국민 여론에 한발 더 가까이 있음을 입증한 대목이다. 그동안 대통령의 한마디에 우르르 몰려다니던 여당 의원들이 민심의 소재를 살펴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자세로 바뀐 것이라고 믿고 싶다.
  문제는 아직도 연정론에 대해 오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고 있는 노 대통령의 태도다. 그러나 의원들의 결의문 내용처럼 지역구도 해결을 위한 선거구제 개편 문제는 정치권의 공론을 모아 여야 간에 협의해 나갈 사안이다.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켜 가며 연정을 고집해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제라도 노 대통령이 의원들의 ‘진정성’을 받아들여 연정론에 대한 집착을 털고 연초 다짐처럼 ‘경제 다 걸기’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노무현은 9월 7일 청와대에서 대연정을 논의하기 위해 박근혜와 회담을 가졌다. 동아일보는 9월 8일자 1면 머리에 올린「노·박 하나도 합의 못했다 」라는 기사를 통해 회담 내용을 보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7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민생경제를 위한 초당적 거국내각’ 구성을 제의했으나 박 대표는 “권력을 국민이 줄 때만 부여받을 수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박 대표와의 회담에서 연정과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구제 개편, 민생경제 문제 등 국정 현안 전반을 논의했으나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이날 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연정 다음에 또 다른 수가 있느냐”는 박 대표의 물음에 “(한나라당이 연정을) 안 받는다면 안 받는 대로 전략 같은 것이 있지 않겠느냐”고 답해 모종의 수순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한나라당이) 민생경제를 걱정하니 이 분야를 맡든지···. 국정을 다 한나라당이 맡아도 국정엔 지장이 없을 것”이라며 “민생을 살리기 위한 초당적 내각 구성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
  이에 박 대표는 “연정의 한 형태가 아니냐. 연정은 합의의 국정 운영인데 노선이 달라서 되겠느냐. 앞으로 연정 말씀은 하지 말아 달라”면서 노 대통령에게 국민이 원하는 민생문제에 보다 관심을 가져 줄 것을 당부했다.
  지역구도 극복과 관련해 노 대통령은 “선거제도를 손질하면 정치의 분열구도는 해소될 수 있다. 중·대선거구제가 아니라도 다른 방법이 있다”고 선거구제 개편 논의를 촉구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선거구제를 바꿔서는 결코 지역구도를 완화시킬 수가 없다”고 반대했다. (·····)
  특히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대통령은 뭘 했느냐”는 박 대표의 질문에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호남당’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노무현과 박근혜의 회담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자 동아일보는 9월 8일자 35면에 「연정 접고 ‘민생정치’ 경합하라」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연정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여소야대와 지지율 추락 탓에 국정 운영이 곤란하다는 말도 더는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과 여당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음을 자성하고, 헌법에 따라 책무를 다함으로써 임기 전반의 실정을 만회하기 바란다. 이것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가진 어제 회담을 지켜본 대다수 국민의 요구라고 우리는 믿는다. (·····)
  노 대통령은 “먹고살기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는 박 대표의 말에 “국정의 1순위는 항상 경제이며 정치개혁은 2순위”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석 달 가까이 되뇌어 온 연정론과 자신의 거취에 대한 발언이야말로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워 민생을 더욱 힘들게 했다. 경제가 위기에 빠진 것은 여소야대 때문도, 지역감정 때문도, 초당내각이 구성되지 않아서도 아니다. 이념 지향적, 아마추어적, 포퓰리즘적 행태와 실사구시를 외면하고 정치게임에 몰두한 ‘정치 과잉’이 빚은 결과다.
  (···) 노 대통령이 계속 아집을 버리지 않는다면 민생경제는 더 어려워지고, 민심은 대통령에게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에서 돌아와 개헌론 공세나 민주노동당·민주당과의 ‘소연정’ 카드를 내놓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걱정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국민은 인내의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여건 야건, 민생정치 경쟁에서 이겨 민심을 잡는 쪽에 미래가 있다. 

노무현이 일으킨 ‘대연정 제안’ 파동에 관해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부정과 긍정으로 나뉘었다.

  2005년 9월 4일 성공회대 교수 김동춘은 열린우리당 신진보연대 출범식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적 취약성이 정권의 위기를 불러왔다”며 “(연정 제안은) 목표와 수단이 바뀌었다. 오기와 배짱, 열정과 도덕심만으로 이끌어 가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최종 목표는 지역주의 극복이 아니라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고, 지역주의는 그 최종 목표를 이루는 데 큰 걸림돌일 뿐인데,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은 목표와 수단이 전치(轉置)됐다”고 말했다. (···)
  반면 상지대 교수 김정란은 한 인터넷 매체에 쓴 글에서 “보수언론들은 원래 대통령을 깎아내리고 모독하는 일이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행동하는 집단이니 제쳐놓더라도, 진보적 언론과 진보 지식인들까지 나서서 대통령을 때리는 데 여념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의 진정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며 “진보 지식인들의 몰이해는 참으로 바라보기 무참하다”고 밝혔다(<한국현대사산책-2000년대편 3권>, 365~366쪽).

노무현의 ‘진정성과 굳은 의지’와는 관계없이 ‘대연정 제안’은 정치권과 언론에서 무수한 논란을 일으킨 뒤 아무런 결실도 없이 대중의 관심권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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