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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라운드와 쌀 개방동아일보 대해부 4권 -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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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0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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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열린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일반협정) 각료회담에서 국제교역에서 시장개방 확대, GATT 체제 및 규율 강화, 농산물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분야에 대한 국제규범 제정을 통해 새로운 세계교역 질서를 창설할 목적으로 다자간 협상이 시작되었다.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이 추진된 배경은 1980년대에 들어 세계 경기가 제2차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장기간 침체를 보인 데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등으로 세계 경제의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면서 세계교역질서가 보호주의에 휩싸이게 되어 GATT 체제를 위협한 것이었다. 특히 GATT에서 벗어난 각종 조치의 남발, 반(反)덤핑·상계관세의 남용 등이 GATT의 위상을 위축시켰고, 경제블럭화가 진전되면서 부작용이 우려되었다. 또한 경제의 서비스화 진전에 따른 서비스 교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둘러싼 마찰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규제할 새로운 국제규범에 대한 요구가 미국, EU 등을 중심으로 증대되었다.

UR 협상은 당초 1990년 12월 말에 종결될 예정이었으나,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공동체(EU)가 농업보조금 감축안에 대해 의견 대립을 보임으로써 타결에 실패했다. 1991년 4월 다시 협상이 시작되었고 1992년 11월에는 UR 협상 타결의 최대 과제였던 미국과 EU 간의 농업보조금 감축문제가 EU의 양보로 합의되고, 1993년 7월 도쿄 서방선진7개국(G7) 회담에서 미국·일본·EU·캐나다가 공산품 시장 접근에 합의함으로써 협상 타결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한국의 경우 쌀 수입 개방문제가 협상의 최대 난관이었다. 농협이 1991년 11월 11일부터 12월 23일까지 전개한 ‘쌀 수입 개방 반대 서명운동’에는 1천3백만여 명의 국민이 참여했다. 김영삼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직을 걸고 쌀시장 개방은 결코 않겠다”(1992년 11월 대통령 선거 유세)고 다짐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에도 “한국은 농가소득의 30% 이상을 쌀에 의존하고 있다. 절대 개방할 수 없다”(1993년 1월 일본〈아사히신문〉회견)고 말했다.

협상 마감 시한(1993년 12월 15일)이 다가오면서 사회 내 긴장은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농림수산부장관 허신행은 11월 26일 국회 농수산위에서 “김 대통령의 쌀 개방 불가 의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주무장관인 나도 모르게 쌀 개방 문제를 검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증언했다. 그는 마지막 협상을 위해 12월 2일 출국하는 자리에서도 “쌀의 관세화는 물론 최소 시장 접근도 허용할 수 없다. 한국은 분단국인데다 농업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다”면서 “이 점을 미국과 유럽공동체 대표에게 설득하겠다”고 장담했다.

동아일보도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듯하다. 11월 초 제네바를 방문한 농림수산부 차관보 김광희가 비교역 품목 15개 중 쌀을 제외한 14개 품목의 관세화가 가능함을 강력히 시사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동아일보는 11월 6일자 사설(「이중 잣대의 농산물 개방」)로 “무슨 소리냐. 쌀뿐 아니라 다른 품목들도 지키라”고 호통을 쳤다. 그  사설은 또 “식량 안보의 선은 확실히 지키기 바란다”며 “개방에 따른 교섭 내용, 정책 전개 방향을 국민에게 알려 그 준비에 소홀함이 없게 해야 한다. 잠시의 위기 모면은 더 큰 화를 부른다”고 경고했다. 이후 상황은 정확히 동아일보의 경고대로 흘러갔다.

쌀의 ‘조건부 개방’을 검토한다는 소식은 동아일보 11월 26일자 1면에 처음 등장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방미 중 미국 측에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을 위해 적극 협력키로 약속함에 따라 정부의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3면에 실린 해설기사(「‘신외교’의 ‘신시련’ / 한미 통상 마찰/ 농산물 ‘빗장’ 열리는 소리 / “쌀 개방 등 강력한 압력 받지 않았나” 관측 / 미 실리 큰 금융 지재권 문제도 “발등의 불”」)는양국 정상회담 후 기자들과 만난 대통령 김영삼이 시장 개방의 불가피성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정상회담에서 쌀문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포괄적으로 이야기 하자”며 명확한 답변을 회피, 언급하기 거북한 수준의 요구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UR 협상이 농산물의 예외 없는 관세화를 명시할 경우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체제를 거부하기 힘든 한국으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개방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쌀시장 개방 불가는 김영삼의 대선공약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해서 정부의 입지는 이래저래 매우 좁은 실정이라는 것이었다.

동아는 11월 27일자 사설(「쌀 개방의 소모적 논쟁」)에서 “쌀의 부분개방 여부를 둘러싸고 (…)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과 아직까지 전혀 불가라는 농림수산부장관의 답변이 엇갈린다”면서 “협상 시한이 오는 12월 15일로 임박, 쌀이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높다. (…) 차라리 우리의 부분개방이 필요하다면 (…) 정부는 지금처럼 개방 여부를 둘러싼 국론의 소모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가급적 빨리 그동안의 협상 내용을 공개하고 (…) 그동안 이를 극구 부인함으로써 개방에 따른 준비를 소홀히 한 책임 소재도 가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럼에도 김영삼은 “한 미 ‘쌀 개방’ 합의 없었다”고 우겼으며(11월 27일자 1면), 동아일보는 28일자 3면에 「청와대 속앓이 / “대선공약 지키느냐 국제현실 따르느냐”」「쌀 개방 겉으론 “불가” 속은 “냉가슴” / 급박해진 정부 움직임」등 전혀 다른 뉘앙스의 기사를 내보냈다.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은 11월 30일자 5면에 실린 ‘새아침 새지평’ 난의「밖에서 본 김 대통령 방미」에서 볼 수 있었다.

  지난주 고국의 신문 지면에는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문민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국제정치의 큰 무대 아태경제협력체(APEC)에 등장,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소식과 해설로 가득 찼었다. 클린턴 대통령을 위시하여 미국의 조야, 언론계와 학계가 민주화의 투사, 개혁의 지도자에게 만강의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는 식이다. (…) 그러나 한국의 이 크나큰 성공을 밖에서 보는 시각은 어떠한가. 미국의 신문과 방송은 완전히 딴소리다. (…) 김 대통령이 APEC을 주무른 얘기는 한 마디도 없다. (…)
  방송은 더욱 한심했다. 저녁뉴스에 잠시 그분의 모습이 나타났지만 속보가 없었다. (…) 도대체 미국의 언론이 국제무대에 등장한 한국의 대통령을 이렇게 섭섭하게 대할 수 있는가. (…) 일본과 중국의 그늘에 완전히 가려져서 한국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됐다고 기분 나빠하기에는 한국이 너무 작다. (…) 그나마 김 대통령이 클린턴의 대접을 받고 기사거리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의 유일한 잔재인 북한의 핵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에 말썽을 피우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공동체(EC)의 팔을 비틀려는 클린턴의 고단수 전략에 김 대통령이 들러리 노릇을 했다는 것이 태평양 건너편에서 보는 나의 시각이다. 민족 자존의 주인의식이 투철한 분들은 외세의 눈에 한국이 어떻게 비치는가를 거론하는 것조차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 무슨 사대주의의 망발이냐고. 그러나 이 들을 찬양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쪽으로 상황이 급히 바뀌고 있다. 한국이 미국 언론에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이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나라일 뿐 아니라, 한국 상품에 흥미를 잃었다는 뜻이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그동안 일구어 놓은 것으로 한동안 그럭저럭 견디겠지만, 밖으로 더 크게 뻗어가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질식하고 말 것이다.
  한국 언론이 어느 나라보다 많은 1백50명의 취재팀을 동원하여 ‘김 대통령의 APEC’을 과대 포장하여 국민을 결국 오도하는 일은 없었는지 돌이켜 보도록 감히 고언을 드린다. 과대 포장보다 더 큰 문제는 눈치 보기다. 클린턴의 당면 목표는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의 성사이고 물론 김 대통령은 우루과이 라운드를 지지했다. 자유무역에 힘입어 경제를 일으킨 한국에 있어 UR의 타결이 나라의 이익에 합치하는 것을 어린이도 알 수 있거늘 이것을 제대로 국민에게 당당하게 설득하지 않고 슬글슬금 찬성으로 다가가는 정부와 언론의 줏대 없는 태도는 한마디로 한심하다. 당장 급한 문제는 농산물 특히 쌀의 시장 개방인데 언론이 ‘대통령자리를 걸고’ 이를 막겠다고 한 분을 이제 진정으로 도와줘야 할 것이다. (…)
  APEC을 주도했다는 분이 쌀시장 개방도 막을 힘이 없는가라는 성토가 농민뿐 아니라 온 국민에게서 터져나오는 일이 없도록 언론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보다 정확하고 소상하게 국민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대통령을 돕는 올바른 길이다.

통렬하다. 문제는 이런 날카로운 분석이 국내 언론인이 아니라 ‘김상기’라는 재미 교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동아일보는 그나마 이런 필진을 발굴해서 칼럼을 내보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

동아일보는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향해 속마음을 털어놓으라고 압박을 가하는 태도를 보였다. 11월 30일자 ‘기자의 눈’(「청와대의 모호한 ‘쌀 입장’」)은 “쌀 개방과 관련해 나오고 있는 여러가지 얘기 중에는 정부가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미 이 경우에 대한 내부적 준비를 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는데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딱 부러진 답변을 못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개방이 불가피하다면 불가피한 대로 야당과 국민들을 설득해 나가야 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 최소한 대통령후보나 당선 당시의 말과 다름이 없다거나 상황이 바뀌어 그때의 말을 지키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쯤은 국민에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짜 사설(「국제화 미래화의 조건」)도 “지금 쌀문제에 관한 한 용기를 갖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대통령뿐”이라면서 “지금이야말로 김 대통령이 국민들의 전면에 나설 때라고 믿는다. 대국을 보는 정치, 소신을 갖고 당당하게 호소하고 설득해가며 국민적 힘을 미래지향적으로 결집시킬 수만 있다면 이것이 바로 역사에 남는 큰 정치가 아니겠는가. 그에 비하면 한때의 인기는 잠시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압박했다.

12월 들어 쌀시장 개방문제에 미국이 초강경 입장을 굽히지 않고(12월 3일자 2면「미, ‘쌀 개방’ 초강경 / 캔터 무역대표 / “아시아국 양보해야 UR 타결”」), 국내에서는 개방 반대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는 가운데(12월 3일자 31면「“쌀 사수” 전국서 시위 / ‘개방’ 가시화에 단식 등 격렬 항의」), 집권여당은 슬그머니 ‘개방 불가피론’에 앞장서기 시작했다(12월 3일자 4면「민자 ‘쌀 개방’ 쪽으로 기우나」).

정부가 아무리 부인하거나 입을 다물고 있어도 쌀시장 개방 불가피론은 대세가 되어갔다. 제네바에서 동아일보 특파원 김기만이 12월 4일자에 쓴 ‘기자의 눈’(「할 일 없는 UR 실무협상팀」)이 간접적으로 그런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쌀 개방 문제 실무협상 차 지난달 말 제네바에 온 한국 실무협상팀은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제네바의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 버렸다. 미국 실무협상 대표들과 몇 차례 만났지만 아무런 협상 실권이 없는 국장급 관리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뻔했다. 그런 판에 농림수산부장관 등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정부 고위대표단이 급히 파견됐다. 처음부터 ‘손발 묶인’ 실무협상팀은 더 할 일이 없게 됐다.
  딱하기는 주제네바대표부도 마찬가지다. 쌀 얘기만 나오면 뻣뻣해지고 긴장을 한다. 공식적으로는 모두 ‘노 코멘트’다. 현재 제네바에 와 있는 관리나 학자 중 우리의 목표인 ‘쌀시장 개방 불가’가 관철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듯하다. 적어도 이 같은 상황과 분위기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쌀 문제에 관한 한 기묘한 ‘가면무도회’가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대통령 한 사람의 ‘결단 발표’만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결국 한미 양국은 한국의 쌀시장 개방에 합의했다. 동아일보 12월 6일자 1면 기사(「“쌀 ‘10년 이상 유예’ 합의” 한미 협상 / 수입량 3∼5%보다 낮추기로 / 더 유리한 조건 절충 계속… 12일 최종 발표」)는 “우리나라의 쌀시장 개방은 관세화 유예기간을 10년 이상, 수입 물량은 둔켈 초안인 3∼5%보다 더 낮은 수준에서 한국과 미국 양국이 사실상 합의, 오는 12일 양측이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농업의 대외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농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종합적 보완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고(12월 6일자 1면「농가 직접보조 추진 / 휴경보상제 도입검 토/ 정부 쌀개방 대책 곧 발표」), 야당은 공세에 나섰다(12월 6일자 1면「대통령 사과 촉구 / 민주 방침 /내각 총사퇴 요구」).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되는 데도 대통령 김영삼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에 대해 6일자 ‘기자의 눈’(「김 대통령 ‘쌀 개방 침묵’」)은 “김 대통령에 대해서는 쌀 개방의 최종적인 책임문제가 거론되겠지만 그와는 별도로 ‘갈채 받는 일은 앞장서고 비난받을 일은 빠진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할 듯하다”면서 “국가 중대사에 대해 ‘침묵’과 ‘거짓말’로 일관한 국정의 두 최고책임자가 이를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고 대통령과 총리를 싸잡아 비판했다.

쌀시장 개방 반대의 입장에 선 동아는 개방이 불가피한 없는 상황에 이르자 전방위적으로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12월 7일자 사설(「미국의 쌀 개방 압력을 보며」)에서는 “한국인의 쌀에 대한 애정과 정서가 얼마나 깊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가를 미국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한국민에게는 군사적 안보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쌀의 안보도 중요하다. 우리는 쌀문제로 인해 양국민의 감정이 더 이상 상하는 일이 없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최소한 나머지 개방 협상에서라도 한국민의 이 같은 정서에 더욱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임해줄 것”을 미국에 촉구했다.

12월 8일자 사설(「국회가 발 벗고 나서라」)은 “개혁의 제도화를 비롯, 산적해 있는 국정 현안도 그렇고 북핵문제도 그렇지만 특히 쌀 개방 문제를 포함한 우루과이라운드(UR)의 파고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생존전략을 짜지 않는 한 살아남기 힘들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며 “진작부터 대비하지 못한 잘못은 크지만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중지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국민대표기관인 국회가 주도적으로 맡아 해야 한다”고 국회의 분발을 촉구했다. 재계가 앞장서 농촌 도와야」라는사설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이 한국의 수출에 매우 큰 기여를 하게 된 만큼 재계가 농촌 돕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월 7일 정부의 쌀 개방 정책에 항의하는 쌀·기초농산물 수입개방 저지 범국민대회가 3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됐다. “김영삼은 물러가라”는 플래카드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결국 정부는 12월 9일 쌀시장 개방을 공식 선언했다. 김영삼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쌀을 지키기 위해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을 탈퇴하고 국제적 고아로 혼자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GATT체제를 수용하면서 세계화·국제화·미래화의 길로 나갈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뇌했으나, 고립보다는 GATT체제 속의 경쟁과 협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쌀시장 개방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김영삼은 “그간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으나,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면서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하면서도 “UR 타결로 분명히 우리가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많다. 지금은 힘을 합해 개방에 대비할 일이지, 네 탓 내 탓을 따지며 편싸움을 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쌀 개방에 따른 국론 분열을 막자고 호소했다.

동아일보는 12월 11일 자 5면 전체에 농림수산부장관 허신행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14일 자 6면에는「부끄러운 ‘쌀 외교’」라는 제목으로 민주당 의원 조순승의 특별기고를 내보냈다. 제네바 현지에서 진행된 허신행 인터뷰는「“쌀 한 톨 더 지키기 끝까지 최선” / 최소한의 개방은 불가피한 선택 / 현재의 고통 한국농업 도약 밑거름 / UR 이후 농촌 현대화에 집중 투자 / 쌀은 수천년 농업국가로 지내온 우리 민족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것」「패배주의 극복을 / 누군가 해야 할 일/ ‘제2의 개항’」등 소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주로 협상 주무장관의 변명을 듣는 자리였다.

반면 조순승의「부끄러운 ‘쌀 외교’」는 자신이 제네바의 GATT 사무국에 갔을 때 “한 노외교관은 한국의 외교는 졸렬한 외교였다고 우리에게 충고해 주었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 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시작된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은 우리나라 농촌 개조를 위해서, 쌀의 보호를 위해서 무엇을 해왔다는 말인가. 5, 6공의 위정자들은 자기만 책임을 피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방치해 왔기 때문에 김영삼 정권에 모든 난제가 한꺼번에 닥쳐오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 어떻게 생각하면 현 정권은 전 정권들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하는 것은 불행하게도 김영삼 정권이며 이것을 해결할 때 구국의 외교를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2∼3년 전만 해도 농산물 개방에 반대하는 나라 그리고 우리와 연대할 수 있는 나라들은 많았다. EC·일본·대만·캐나다 심지어는 미국의 일부 중요한 의원들까지도 농산물 개방에 반대했었다.
  이러한 세력들을 규합하여 우리 국익에 맞도록 꾸준한 외교전략을 펴지 못한 것이 외교 실패의 제일 큰 원인이었다. 둘째로 이러한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의 총력을 결집시켜 투쟁해야만 했다. 가능하면 우리같은 약소국가는 통일문제 쌀문제 등은 초당외교를 해야 하며 거국적으로 인물을 등용시켜야 한다. 1천만명 서명운동으로 우리 국민의 의지를 외교에 반영시켜야 했고 야당 의원과 농촌지도자들이 GATT본부 앞에서 삭발한 것을 추한 모습이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결의가 국민 전체의 뜻임을 강대국에 선전했어야만 했다. (…)
  오늘의 우리 외교는 철학의 빈곤, 창의성의 빈곤, 자주성의 빈곤, 일관성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와 같은 중진국이 살 길은 당파싸움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서 국력을 총집결할 수 있는 지도력이며 거국적으로 재야에서 새로운 인물들을 구하여 창의성 있는 경제외교를 펼치는 데 있다. 백만의 대군보다는 한 사람의 위대한 혜안을 가진 외교인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협상 막바지에서 동아일보는 하나는 농림수산부장관 허신행 인터뷰로, 다른 하나는 야당 측 전문가의 특별기고를 통해 나름대로 균형감을 보여주었다.. 12월 13일 드디어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완료됐다. 14일자 동아일보는 1면 머리에 「쌀 10년 유예 1∼4% 수입 / 한·미 ‘개방협상’ 완전 타결 / 개방 첫 해 95년 39만 섬 도입 / 쇠고기 5년 쿼터·관세 20% / 정부 오늘 대외협력위 열어 추인」이라는 제목으로 그 소식을 전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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