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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 참사동아일보 대해부 4권 -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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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2.2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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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정부는 사학 분규 등 학원문제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다. 문교장관 정원식이 맨 앞장에 섰다. 그런 와중에 부산 동의대가 ‘입시부정’ 의혹으로 학내 분규에 휩싸였다. 총학생회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3월부터 점거 농성 시위를 계속했다. 학생들은 5월 1일 가두시위를 벌이다가 학교 앞 가야파출소에 화염병을 던졌다. 경찰은 카빈총으로 24발의 공포탄을 발사했고 시위 학생 중 한 명을 붙잡았다.

이튿날 학생들은 공포탄 발사를 항의하는 학내 시위를 벌이고 교문 밖으로 진출했다가, 교문 근처에서 의경 5명을 붙잡아 학교 도서관으로 끌고 갔다. 3백여 명의 학생들은 심야농성을 벌이면서 연행된 학생들과 의경들을 교환하자고 제안했는데 경찰은 3일 새벽 7백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강제진압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원인 모를 불이 일어나 7명의 경찰이 불에 타거나 도서관 건물에서 떨어져 숨졌다. 이른바 ‘5·3 부산 동의대 사건’이다.

5월 4일자 동아일보 1면은「용산 미군 골프장 내년 이전」이라는 4단 기사가 한쪽 귀퉁이를 차지한 것 말고는 온통 동의대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머리기사는「농성 대학생 방화 경찰 6명 소사/ 부산 동의대 피랍 경찰 구출 중 참사 / 중화상 11명 사망자 늘어날 듯 / 경찰 접근하자마자 기름통 바리케이드에 화염병」이었다. 취재에 한계가 있을 것이 분명한 초동단계서부터 화재가 학생들의 방화로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한 기사였다. 경찰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분명했다. 처음에 그렇게 보도하면 다른 진실에 접근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다른 진실이 나와도 보도를 망설이게 된다.

1면은 그밖에도「동의대에 휴교령」,「청와대 긴급 치안장관회의 / 대학소요 스스로 해결 못하면 정부 개입」「노 대통령 오늘밤 9시 특별담화」「조 치안본부장 사의」등 동의대 사건 관련기사로 도배되었다. 사회면 머리에는「대학 폭력 공권력 투입 강경 진압 / 합수부 “교수 폭행 등 ‘반인륜 사범’으로 처벌” / 기동검거조 ‘주동’ 끝까지 추적 / 극력 과격 학생 50여 명 검거령」이 올랐다. 이 기사 바로 밑에는「전경·피해자 유족 농성 / “장비 없이 무모한 작전 지시로 희생” 항의」라는 3단 기사가 나왔다. 부산시경 기동대 전경과 피해자 가족 등 1백여 명이 “방위장비도 없이 무모한 작전 지휘로 희생이 났다”면서 “이 같은 상황 아래에서는 더 이상 근무할 수 없다”며 연좌농성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4컷짜리 만화 ‘나대로 선생’은 나대로 선생이 동의대에 달려가 “학생 자격 없는 것들”이라고 고함치며 머리띠 두른 학생의 뺨을 때리고 자퇴서를 받는 장면을 연출해 역시 사건의 발생과 경찰 사망의 원인이 온통 학생들에게만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끔찍한 동의대 사건」이란 사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학생들의 방화 때문이었음을 확신하는 듯했다.

  (…) 또 3일 새벽 부산 동의대 시위 현장에서는 시위 학생들의 방화로 출동 중인 경찰 6명이 불이 붙은 도서관 건물에서 소사, 순직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는 시위 현장의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한 부작위식 화염병 투척이 아니라 특정인을 납치 감금해 놓고 이에 방화하는 행동이어서 살인행위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
  근로자들이나 학생들이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농성을 하고 가두시위를 벌이는 것은 오늘날 민주화 과정의 우리 사회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란 것이 사회적 통념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농성이나 시위가 법절차에 따라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정당한 요구를 위한 농성시위라 할지라도 사회의 공공질서를 깨뜨리는 행위나 폭력이 자행되면 이는 민주화라는 목적 자체를 파괴하고 국민생활에 위해를 가하는 반사회적 행위에 다름이 아니다. (…)
  부산 동의대 사건이나 성남시 경찰관 총기 탈취 사건이 폭력시위를 더 격화시키거나 역사적 반동을 촉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권이나 사정 당국은 이들 범인을 철저히 수색해서 엄중한 법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 정당한 시위에 대한 법의 남용도 경계돼야 하지만 불법이나 폭력시위, 나아가 살상시위에 대한 법의 무력화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 사설은 수사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이번 사건이 학생들의 고의적 살인행위라고 못 박고 엄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인 5월 5일자 동아일보 1면도 동의대 사건과 학생 시위에 관한 기사 일색이었다.「동의대생 5명 살인‧방화죄 적용 / 학생회장 등 오늘 구속」이라는 기사가 6단으로 배치됐고 머리기사는「대학 교회 사찰 등서 화염병 제조하면 총학장 목사 주지 신고 의무화 / 대학 공권력 투입 문교부서 결정 / 경찰 위급 때 자위권 강화도 검토」였다.「폭력 확산 땐 비상조치 / 노 대통령 특별담화 대학 공장 혁명기지화 불용」이라는 기사도 6단으로 나왔다. 
 
학생들을 ‘악마’로 만드는 작업과 ‘불쌍한 경찰’ ‘희생자 경찰’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 함께 갔다. 같은 날짜 사회면 머리의 상자기사 제목은「“아빠는 아파서 놀러 못 간대요” / 부산 참사 경찰 가족 울어버린 ‘어린이날’ / 영문 모른 채 병원 뛰어놀아」였다. 한 순직 경찰관의 외아들이 맞이하는 어린이날 스케치 기사였다. 바로 옆에는「억울한 희생 조화 부수며 통곡 / 부산 참사자 빈소 동료 유족들 몰려와 학생‧당국 원망」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사설(「이 참극 다시는 되풀이 말자-‘반폭력’의 분위기부터 마련해야」)에서 “폭력과 좌경, 반문명적 독단과 비인간적 만행을 과감히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설은 “특히 야3당 지도층은 오늘의 위국에서 선후 완급에 대한 현실 인식과 자기 책임을 통감하는 균형감각과 시대정신에 투철한 자기 혁신이 있어야 함을 자각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동의대의 그 끔찍한 참사를 앞에 하고도 ”경찰도 최루탄을 쏘지 말 것이며 학생들도 화염병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한가한’ 양비론을 되뇌고 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인식 착오요 도착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방화를 누가 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사태의 진상을 가린 후 우리의 입장을 밝히겠다”는 따위의 ’한심스런‘ 태도는 폭력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경악에 버금가는 놀라움을 주고 있다“고, 실로 경악할만한 주장을 펼쳤다. 진상을 밝히기도 전에 단죄부터 하는 행위야말로 언론사로서 있을 수 없는 태도 아닌가. 이런 억지는 동아일보가 같은 사설에서 ”오늘 같은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질서와 안정의 확립이다“라고 선언하는 인식체계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동아일보는 ‘진상과 상관없이’ 야당을 폭력 척결의 대열에 끌어넣어야 만족할 것 같았다.  5월 6일자 사설(「폭력과 공권력은 다르다-여야는 반폭력 입법 빨리 완결해야」)은 “노태우 대통령이 3일 동의대 참사와 관련된 담화에서 폭력행위를 ‘국가 제1의 공적’으로 규정하고 단호한 폭력 척결을 선언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라고 환영하고 “우리는 노 대통령의 담화에 앞서 야권 3당 총재들이 최근 ‘폭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이제야말로 정치권에서 ‘반폭력선언’이 하나의 목소리로 제창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 그러나 일부 야당에서 아직도 불법 폭력세력의 난동과 공권력 행사를 동일선상의 것으로 주장하고 있음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권 획득을 위한 정략적 차원의 계산에서 폭력적인 일부 학생들이나 재야세력에 추파를 던지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일부 야당인사들의 행태를 비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같이 국기가 흔들리는 국가적 위기에서조차 폭력과 공권력을 같은 차원에서 논의한다는 것은 당략과 사리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3면에서「학원폭력-실상과 대책」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했다. 첫 회분의 제목은「대학인가 ‘화염병 공장’인가 / 시위 한 차례에 화염병 3천개 터져 / 총학장실마다 점거 몸살 집기 박살」이었다. 동의대생들에게 살인 혐의를 씌울 수 있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기사도 올랐다. 일부에서 “살의를 인정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의대 사건 직후부터 학내 분규는 전국적으로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검찰은 중형을 구형하고 피고인들은 "사건 진상 은폐"를 주장하며 출정 거부를 하고 학부모들이 강제호송을 저지하기 위해 구치소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으나 10월 24일 1명에 무기, 5명에 15~10년 등 36명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동아일보 등 언론이 ‘무조건 폭력 척결’을 외치고 법원이 그것을 추인하는 듯한 형국에서도 야당은 그냥 따라가기만 하지는 않았다.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곳은 김영삼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이었다. 김영삼은 1심이 끝난 10월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부산 동의대 사태와 관련하여 어린 학생들에게 사형 등 중형을 구형한 것은 그 이유가 어디 있든 간에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서라도 여러 가지 의혹을 밝히고 진실을 이 세상에 밝혀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튿날에는 같은 당 의원 박관용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무리한 진압작전을 강행하여 7명의 무고한 전경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 그 정확한 진상의 규명 없이 무려 71명의 학생들에게 실형을 구형하고 3명의 학생에게 사형 구형까지 내렸다. 현 정부가 이 사건을 공안정국의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박관용은 “우리 당 조사에 의하면, 그 화재가 학생들의 화염병에 의해서 발생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하여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여 철저히 재조사하여야 할 것(이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생들을 공안정국의 희생양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고 총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경찰의 무모한 진압작전에 관해 조사할 용의가 없는지 밝혀주시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1990년 2월 21일자 동아일보 사회면에는 항소심 선고공판 소식이 나왔다. 부산고법 형사1부와 형사2부 심리로 열린 그날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6명의 피고인에게 1심 선고량보다 최고 5년에서 1년이 높은 형량을 선고하고 7명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 석방했다는 기사였다. 재판부는 “피고인 대부분이 학생 본분을 망각, 사전에 계획 조직된 범죄를 저질러 인적 물적 피해가 너무 컸으며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며 “진압경찰 역시 최선의 안전성과 피해를 줄이기 위한 사전조치를 취해야 함에도 이를 소홀히 한 점을 인정, 피고인들의 양형을 판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은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02년 4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다. 찬성 의견 측은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에게 방화치사상 등 유죄가 선고되기는 했지만 살인에 고의가 없었고, 중대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없었으며, 통상의 시위 방식에 따라 화염병을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음이 인정돼, 발생한 결과가 중대하다는 것만으로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부인할 사유는 못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순직 경찰관들의 일부 유족들은 헌법재판소에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의 결정 및 그 결정의 근거가 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 조항들(제2조 제1호, 제2호 라목, 제4조 제1항, 제2항 제1호, 제3호, 제7조. 이하 ‘이 사건 조항’)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했였으나 이 역시 5 대 4로 기각되고 말았다. 이후 2009년 들어 해당 법률조항들에 대한 개정 움직임이 한나라당 의원 전여옥을 중심으로 추진되자 동아일보는 2009년 2월 26일자 사설(「불법 폭력 체제부정의 ‘민주화운동’ 왜곡 바로 잡아야」)을 통해 그 움직임을 부추기고 나섰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이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법률이 개정되면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불법 폭력 체제 부정 사건들에 대한 재평가 기회가 마련돼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는 유신 정권 이후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며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하다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해 2000년 8월 설립됐다. 그러나 좌파세력에 장악된 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민주화운동의 진의마저 왜곡한 결정을 다수 내렸다.
  1989년 교내 시위 과정에서 구금된 전경을 구출하기 위해 도서관에 진입하던 경찰을 향해 시너와 석유를 붓고 불을 붙여 경찰관 7명을 숨지게 한 부산 동의대 사건 주동자들을 위원회가 2002년 민주화운동자로 인정하고 국가보상을 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위원회는 “살인에 고의가 없었고 화염병 시위가 통상의 시위방식이었다”는 상식 밖의 이유를 내세워 민주화운동자 결정을 했다. (…) 폭력을 수단으로 좌익혁명을 완수하려는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한 결정이다.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지 않을 뿐더러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에게도 모독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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