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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나눌 수 없다’-5공과의 결별동아일보 대해부 4권 -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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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2.0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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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권좌에 오른 노태우에게는 당장 2개의 숙제가 던져졌다. 모두가 6공(제6공화국) 권력을 탄생시킨 세력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 세력이 노태우 정권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만큼 그들을 약화시키거나 최소한 관리하지 못한다면 노태우의 6공 권력은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 하나는 김영삼, 김대중이 이끄는 야당세력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김종필까지 야당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민주세력은 대통령선거 기간에 김영삼과 김대중으로 분열돼 지리멸렬했지만 그들이 다시 뭉치면 6공은 곤란해 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전두환 5공 세력과의 관계 단절이었다. 노태우 당선의 일등공신은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임이 분명하지만 전임 대통령 전두환의 적극적 지지와 지원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전두환은 노태우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을 뿐 아니라 막대한 선거자금을 지원했고 안기부 등 국가기관을 동원한 관권 부정선거로 ‘당선’을 도왔다. 심지어 그는 노태우 선거캠프가 5공과의 단절을 공약으로 내거는 것까지 용인했다.

그 대신 전두환은 노 정권에서도 ‘상왕’ 노릇을 하겠다는 야욕을 분명히 드러냈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열흘만인 12월 26일 군 인사에서 추종세력을 중심적으로 배치한 뒤, 이듬해인 1988년 1월 16일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을 국회에 제출해 자신이 퇴임하기 이틀 전인 2월 23일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되도록 한 데서 전두환의 뜻은 분명히 드러났다.


6공 조각

전두환이 1988년 2월 25일 퇴임하기 엿새 전인 19일 노태우는 새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총리 이현재, 부총리 이웅배, 외무 최광수, 내무 이상희, 재무 사공일, 법무 정해창, 국방 오자복, 문교 김영식, 체육 조상호….

24명의 장관자리 중 외무, 내무, 재무, 법무, 체육, 건설(최동섭), 체신(오명) 등 7자리가 유임이었다. 동아일보는 2월 20일자 2면 사설(「구시대의 연속인가-그 얼굴이 그 얼굴인 새 조각)에서 “새 시대의 전개를 지켜보아 온 국민들은 새 내각의 면면에서 신선감은커녕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는 느낌을 떨쳐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조각’이라기보다는 ‘개각’이나 ‘보각’에 가까운 인선 결과에서 새 정부의 어떤 의지를 읽기는 어렵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라고 혹평했다.

  (…) 물론 이번 조각을 평화적인 정권 이양기를 무난히 넘기기 위한 과도적인 조치로 관대히 해석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과거로부터 새 시대로 넘어가는 길목이 그렇게 순탄할 수만 없는 사정이고 보면 급격한 충격을 줄이기 위한 완충적인 기간이 설정될 수도 있다고 본다. 따라서 다음 총선거가 끝난 후 본격적인 ‘노 체제’를 출범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간의 과정과 결과를 보면 시대역행적 요소가 끈질기게 도사리고 있음을 느낀다. 국정 쇄신의 중요한 전기를 앞두고 새출발하는 정권치고는 아무래도 ‘구시대의 연속’이라는 인상을 못 벗어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
개각 때마다 흔히 지적되는 지역안배문제는 이번에는 안배보다 ‘편중’에 치우쳤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새 정부가 역시 구정권의 품안에서 배태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발상에 한계가 있는 게 아닌가 믿어지기도 한다. (…)


4·26 총선 공천 작업

노태우의 홀로 서기는 예상보다 빨리 시작됐다. 3월 18일의 ‘4·26 총선’ 공천자 발표가 그 시발점이었다. 5공 정권의 핵심이라 할 권익현과 권정달을 탈락시킨 것이다. 그 날짜 동아일보는 1면 머리에 「당 중진 대거 탈락 / 민정 공천자 발표-현역의원 27명 제외」라는 기사를 실었는데 권익현·윤길중·이상우·권정달·정석모·김상구 등의 이름도 제목으로 뽑았다. 권익현은 전두환· 노태우와 함께 ‘하나회’를 창건한 육사 11기로 노태우보다 먼저 민정당 대표위원을 지낸 인물이었다. 권정달 역시 12·12 쿠데타의 핵심 인물로 민정당 창당과 함께 사무총장을 맡았던 5공의 실력자였다. 김상구도 육사 15기 하나회 멤버로 전두환의 동서였다. 전국구에서는 국회의장 이재형과 총리노신영이 탈락하고 박철언·나창주·박승재·강재섭·이재황 등 박철언이 주도했던 ‘월계수회’ 멤버들이 대거 포함됐다.

  3면 해설기사(「간판스타 없는 새 인물 나열 / 먼 훗날 내다 본 제거-포석의 역학 / 현역 40% 탈락… 재력 중시가 특징 / 군 출신 23명 공천 문민정치 의지 반영 못해」)는 “의정 주역의 대거 배제와 신진 인사의 양적 증가로 노태우 대통령의 친정체제 구축의 인상이 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이 같은 정치질서 재편 구상은 그가 당내 반발에도 불구, 소선거구제 채택을 강력히 주장할 때부터 예견됐던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역시 3면에는 「탈락 충격 후유증 우려 속 여권 변화 큰 관심」이라는 민정당 공천 안팎 스케치 기사를 실었는데 「“노 총재가 완전히 새 판 짜는 것 같다” / “신주류가 구주류 밀어냈다” 논평하기도」등의 소제목을 붙였다.
동아일보 3월 19일자 사설(「민정당 공천 안팎-개혁 의지 뚜렷한 인맥 재구성 못 된다」)은 “노태우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새 시대 새 정치를 기대하고 있는 국민들은 (…)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국민들의 기대에 흡족할 만한 새 얼굴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도 “여권 내의 거물급 인사를 탈락시키고 신구 대통령의 친족이나 측근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은 뼈를 깎는 자선의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새마을본부 비리와 국가원로자문회의

총선 공천을 통해 5공 세력을 어느 정도 정리한 노태우는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을 때림으로써 ‘상왕’을 노리는 전두환까지 떼어 낼 수 있었다. 전경환은 5공 정권에서 새마을본부 회장을 지내면서 숱한 부정부패 의혹을 받았던 인물이다.

검찰의 내사를 받던 전경환은 3월 18일 형에게 알리지도 않고 비밀리에 일본 오사카로 출국했다. 동아일보는 19일자 1면에「전경환 씨 극비 출국 / 어제 오후 대판으로 / 해외 도피 여부에 관심」을 주요 기사로 올렸다. 새마을운동중앙본부의 불법행위 및 비리가 속속 드러나 책임자를 구속 수사하라는 여론이 높은 가운데 사실상 해외 도피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그 날짜 1면 머리기사는「새마을 비리 곧 전면 수사 / 전 전 대통령, 사직당국서 가리도록 요청 / 전경환 씨 소환도 검토; 고위소식통」이었다.

비판 여론이 들끓자 전경환은 형의 지시에 따라 이틀 만에 귀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검찰 수사는 신속하고도 폭넓게 진행됐다. 3월 29일 전경환은 검찰에 전격 연행되어 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동아일보는 그 날짜 1면 머리에 그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제목은「전경환 씨 구속 수감 / 공금 횡령 등 78억 6개 죄목 / 28개 구좌 분산 부동산 매입 사채놀이 / 검찰; 새마을 간부 등 3명 추가 구속 / 비자금 55억 외화 도피 여부도 계속 수사」였다.

2면에는「빗발친 여론에 뒤늦은 고속수사 / 비리 연일 보도… 비밀 출국으로 상황 급변 / 관련 공무원 58명 일반인 2백18명 조사 / 23일 비밀장부 찾아 첫 증거로」등의 제목을 달아 구속 전 수사 10일간의 이모저모를 실었다. 또 사설(「전경환 씨의 구속-핵심 피하는 ‘해명’ 수사는 안 된다」)은 전경환의 범죄 행각을 “무서운 것 없고 막히고 걸리는 데 없는 권력을 등에 업은 행패”로 지칭하면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런데 이 사설은 끝부분에서 5공의 친족 관리 부실을 강조한답시고 “지나간 장기 집권의 독재자 중 이승만 대통령은 친가나 처가 쪽으로 근친이 없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친족 관리에 그래도 흠이 덜 했다고 할 수 있다”고 엉뚱한 주장을 펼쳤다. 박정희 일가에 관한 한 그런 주장은 전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나중에 드러났다. 

동아일보는 4월 1일이 창간기념일이었다. 그 날짜 사설( 」언론정책은 달라지는가-인사와 집행에서도 변화가 확인돼야 한다)은 “언론이 진정 그 본연의 사명을 다 해왔던들 ‘새마을 부정’은 그토록 확대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오늘로 창간 68주년을 맞는 우리는 남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의 죄책을 통감하며 깊은 자괴의 뜻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고 반성했다. 사설은 또 집권 민정당의 대표위원 채문식이 “이토록 새마을문제가 싹트고 커져 사회의 지탄을 받기까지에는 언론의 자율적 기능이 상실된 데도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 것을 상기시키며 “정부 여당은 이제라도 지체 없이 그 명료한 (언론정책의) 청사진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두환은 결국 4월 13일 동생의 새마을 비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과 민정당 총재직 등 일체의 공직을 사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 자신의 아호를 딴 법인 ‘일해재단 연구소’가 국민들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해 그 명칭을 바꾸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못난 동생이 여러 가지 불미스런 일을 저질러 그간 국민들께 심려를 이만저만 끼치지 않아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며 “새 정부가 이제 자리를 잡고 일을 시작하려는 시점에 이런 일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다 보니 새로 나라를 맡은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들에게 죄송함과 책임감을 절실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전두환의 ‘상왕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노태우는 ‘상왕’ 행세를 하려고 집요하게 들러붙던 전두환을 야당과 언론, 여론을 이용해 말끔히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전두환을 직접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정치적 날개를 꺾어 버린 것이다.

동아일보는 4월 13일자 1면 머리에 「전 전 대통령 모든 공직 사퇴 / 원로자문회의 의장․ 민정 명예총장 포함 / “일해연구소 명칭 변경토록, 못난 동생 단속 못해 국민에 죄송”」이라는 기사를 크게 보도하고 2면에는「고육의 ‘자기 정리’」라는 제목으로 전두환의 공직 사퇴 안팎을 정리했다. “신·구 권력 간 파워게임이 종료됐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4월 14일자 사설(「역사의 교훈을 살리자」)은 전두환의 ‘7년 단임 약속 실천’의 가치에 대해 조심스런 재해석을 시도했다.

  (…) 정권 이양이 이루어진 후에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전직 대통령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기는 했지만 이처럼 빨리 그리고 이런 모양으로 사태가 진전되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사퇴 발표가 문제의 종결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보는 견해도 없지 않은 듯하다. (…) 앞으로 또 다른 친족의 비리가 터져 나오면 사태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솔직히 우리는 전직 최고 권력자라고 해서 그 주변 인물의 부정이나 비리를 덮어 두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또한 7년 단임 약속의 실천이 오래 기억될만한 정치적 업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최고 권력자 주변의 부패와 바꿀 수 있는 대가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단임이 주변 인물의 부패나 비리의 면죄부여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단임 실현) 약속이 있었기에 7년 집권이 가능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런 때일수록 국민들은 냉철하고 전지한 자세로 사태 진전을 지켜보아야 한다. 보복심리에 사로 잡혀서도 안 될 것이며 개혁의지를 퇴색하거나 안주해서도 안 된다. 과거의 비리를 파헤치는 데 언제까지 매달릴 것이며 그것이 닿을 마지막 종착점이 어디인가를 한번 생각할 필요도 있다. (…)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의 해외 망명과 시해의 아픔을 경험했다. (…) 한 시대의 장을 잘 넘길 수 있는 민족이라야 다음에 올 시대를 더욱 보람있게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설 내용은 조심에 조심을 거듭한 동아일보의 의견 표시였다. 여전히 전두환의 절대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서려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전두환이 주변 친인척들의 또 다른 비리가 아니라  자신의 비리로, 해외 망명은 아니지만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기까지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시대의 장을 잘 넘긴다는 의미는 철저한 청산을 통해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동아일보는 애써 외면한 것 같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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