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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3상회의 ‘왜곡’보도의 미스터리- 의혹과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별기고] 유승삼 전 서울신문 사장ㆍ전 중앙선거관리위원
  • 관리자
  • 승인 2021.09.2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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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국내 신문은 1945년 12월 27일자에, 그 무렵 모스크바에서 진행되고 있던 미국ㆍ소련ㆍ영국 외무상의 회의 내용 가운데 ‘조선’에 관한 보도를 하면서 어처구니없는 대형 ‘오보’를 냈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사실과 정반대의 오보를 했던 것이다.

국내 신문들의 그 ‘오보’ 사건은 3년의 ‘해방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관훈저널》 2021년 봄 호에서 동아일보 사료연구실장은 〈동아일보 신탁통치 보도 전말- 왜곡은 없었다〉는 제목 아래 “현대사를 조명한 글들의 동아일보의 신탁통치 보도 부분을 바로 잡는데 목적이 있다”며 ‘왜곡’과 ‘조작’은 없었다는 2012년부터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왜곡은 없었다‘ 며 넘어 갈 수 있는 간단한 성격의 것이 결코 아니다.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의 사연처럼 이 문제의 전모와 그 실체적 진실은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다. 많은 연구들이 진행됐지만 의혹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허점과 오류는 동아일보 측의 변명에서만이 아니라 비판적인 시각의 언론 보도와 학계의 논문들에서도 발견된다. 미처 검토하지 못한 새 의혹들도 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언론계도, 학계도 미흡했던 결과이다.

따라서 학계와 동아일보 등이 비판과 변명만을 주고받을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함께 전체적인 진실규명에 나서야 한다. 동아일보 보도에 주로 비난이 집중되고 있고, 동아일보 혼자서 애써 변명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실은 동아일보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보를 사실인양 가장 단정적이고 자극적으로 앞장서 보도한 건 동아일보가 맞다. 그러나 당시 조선일보ㆍ신조선보ㆍ중앙신문ㆍ서울신문ㆍ민중일보ㆍ자유신문과 영자지 The Seoul Times 등도 사실과 정반대의 ‘합동통신발 외신기사’를 실었다. 그렇다면 현재 남아 있는 조선일보ㆍ서울신문ㆍ합동통신 사우회, 그리고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을 통ㆍ폐합해 발족한 연합뉴스 등은 동아일보와 함께 그 대형 오보의 출발점과 보도 경위를 비롯한 전체적인 과정에 대한 규명에 나설 책임이 있다.

신탁통치 정책은 영국ㆍ프랑스ㆍ네덜란드처럼 식민지가 없던 미국이 전후 독립하게 될 지역에서나마 미국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한 국제정책이었다. 미국의 신탁통치 정책은 1943년부터 공공연히 천명되어 왔다. 카이로선언에 등장하는 ‘in due course'라는 표현의 뒤에 자리 잡고 있는 게 바로 ‘신탁통치’ 정책이었다. 상해 임시정부나 국제사정을 접할 수 있었던 인사들은 이를 통해 미국이 신탁통치를 전후(戰後) 정책으로 실시할 계획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임정 측은 세계 요로에 이에 대한 항의를 한 적도 있었다. 또 문제의 기사가 나가기 두 달 전인 10월 20일 미 국무성 J.C.빈센트 극동국장이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가 필요하다"는 노골적인 언급을 한 것이 사흘 뒤 국내 신문에 보도 돼 분노의 여론이 크게 일기도 했다.

그랬는데 불과 한 달 뒤 동아일보ㆍ조선일보 등은 당시의 그런 인식이나 보도와는 정반대 내용의 해외통신 추측 보도를,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사실인 양 지극히 단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1면 머리 등에 대서특필했던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시발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7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계에선 이 보도가 ‘왜곡’을 넘어 의도적인 ‘조작’이 아니었나 하는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몇몇 학자들이 지적하듯 동아일보가 앞장 선 그 ‘오보’가 다목적의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면 그것은 100% 성공했다.

한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저돌적 행동이 제1차 세계대전을 부른 인계철선 역할을 했듯이, 근거가 없고 기사 형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단 두 문장의 허접한 오보 기사가 해방정국에 파국적인 파장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 기사가 촉발한 정치 대립은 해방된 지 겨우 4개월 남짓인 우리 사회로부터 해방의 기쁨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겨레가 완전히 좌와 우의 둘로 갈라져 전국이 암살과 테러가 연속되는 저강도 내전과 같은 상태에 빠져 들었다. 그래서 보수우익 정치인인 안재홍마저 "해방은 8월 16일 단 하루뿐이었다"고 개탄했다.

분열과 대립에 빠져 든 ‘해방조선’은 단합해도 해결하기 벅찬 근본적인 민족 과제들을 증발시켜 역사발전을 스스로 가로막았다. 해방을 맞은 조선의 민족적 과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 과제는 당연히 친일 및 부일 세력의 청산이었다. 한쪽에서는 목숨을 건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는데 일제에 아부해 기생하고 독립운동마저 탄압하던 친일ㆍ부일 세력을 청산해 민족정기와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으뜸가는 건국 과제였다.

두 번째는 한반도에 자주적인 민주통일국가를 수립하는 일이었다. 두 외국군이 진주해 한반도는 분단 상태였다. 따라서 반소(反蘇)니 반미(反美)니 하며 갈라져 다툴 때가 아니었다. 전후 오스트리아처럼 각 정치세력들이 내부적 갈등과 대립은 일단 뒤로 미루고 단합해, 미ㆍ소의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통일국가부터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세 번째는 해방 당시 소작농이 85%에 이르렀다는 통계에 단적으로 드러나는 전근대적인 봉건경제구조를 혁파하고, 일제가 장악했던 산업을 우리 손으로 부흥해 자주 민족경제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아일보 등의 ‘오보’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단합은커녕 온통 ‘반탁’이냐, ‘찬탁’이냐의 대립과 분열의 프레임에 빠져 들었다. ‘반탁이냐’, ‘찬탁이냐’는 원초적으로 잘못된 프레임이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의 핵심은 ‘코리아를 독립국가로 재건하기 위해 임시적인 민주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1항에 위치한 것이다. ‘신탁통치’는 미국과 소련이 그 임시정부와 협력하고 원조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도 최장 5년간이었다. 즉 신탁통치는 부차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잘못 설정된 찬ㆍ반탁 대결 프레임으로 모든 근본적인 민족적 과제들은 비산(飛散)됐다. 오로지 좌우대립만 남게 됐다.

여파는 의미심장했다. 부일ㆍ친일 세력은 ‘반탁’의 간판 아래 ‘정의로운 애국자’로 변신할 수 있었다. 또 그들은 권력마저 장악함으로써 부일ㆍ친일의 청산 문제가 오늘날까지 숙제로 남게 됐다. 학계에서 중도 보수적 입장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도 “반민족세력을 배제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할 해방정국이 좌우대립으로 왜곡”돼 “친일세력이 오히려 민족세력으로 복권되어 도덕적 명분을 획득하였다”고 말했다. 뿐인가. 왜곡 기사가 계기가 된 국내 세력의 분열과 대립은 미국과 소련의 이해를 조정해 오스트리아처럼 통일된 독립국가를 수립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각각의 점령지에서 자신들의 국익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결국 천추의 한이 된 남북분단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통에 민족경제 수립 과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 됐음은 물론이다.
바로 이런 부끄러운 역사적 경과와 그 정치적 함축에 대한 통탄이, ‘오보’ 기사를 76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학계와 언론계가 끊임없이 소환해, 음모론을 비롯한 갖가지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사실과 정반대인 합동통신기사였다

‘오보’ㆍ‘왜곡’ㆍ‘모략’ㆍ‘음모’ㆍ‘조작’ 등등 수식부터가 가지가지인 문제의 기사는 그 탄생부터가 안개 속이다. 캐면 캘수록 판도라의 상자처럼 의혹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발단이 된 문제의 합동통신발 외신기사는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우리에게는 어떤 과정으로 전달되었는가? 합동통신은 어떤 판단과 과정을 거쳐 외신기사를 번역했고 언제 어디어디에 전달했는가? 잘못된 내용의 외신을 확인 않고 번역 배포한 통신과 그를 대서특필한 신문들은 단순 실수인가 아니면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것인가? 또 외신기사부터 정보조작 의도가 있었던 것아닌가? 그렇다면 누가 그런 음모와 모략을 꾸몄던 것인가? 외국통신사? 미국 국무부나 정보기관, 미군정이나 동경 맥아더 사령부 중 어디인가? 합동통신과 국내 신문도 그 음모에 간여했던 것인가? 추리소설의 미스터리와 마주 한 것만 같다. 

먼저, 기사의 국내 발원지라 할 합동통신부터 살펴보자. 갖가지 의혹들이 제기됐으며 기사의 파장 또한 엄청났기에 그 의혹들 하나 하나에 대한 확인과 실체적 진실규명은 당연히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합동통신은 물론 그 후신인 통신사 측에선 이제까지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진상규명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동아일보 블로그는 “동아일보를 비롯한 일간지들은 식민지 시기부터 외신을 싣고 있었고 추측성 기사인 이 기사도 외신을 번역해 제공하는 합동통신의 기사를 그대로 전재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합동통신에 원천적 책임이 있다는 식이다.

당시 합동통신은 AP와 계약을 맺고 있었다. 최근에 와서 동아일보가 문제의 오보 기사를 발신했다고 지목한 UP와 계약한 국내통신사는 없어진 ‘조선통신’이었다. 그러나 정작 UP 기사에 권한을 가진 조선통신은 내용에 대한 의문 등 여러 사정으로 이 기사를 국내 언론에 제공하지 않았다. 계약을 안 해 이용 권한이 없는 합동통신이 UP 기사를 무단 수신하고 번역해 각 언론사에 제공했다는 것이 동아일보 블로그의 추측이다. 그래서 동아일보 기사에서 보는 것처럼 ‘워싱턴발’ 다음에 발신한 외국통신사 이름을 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추측이지만 학계의 의혹이 많은 만큼 합동통신 등은 앞으로의 공동 조사와 증언 등을 통해 이를 확증해야 할 것이다.
UPI(1958년 UP와 INS통신이 합병) 아카이브에 남아 있는 당시 UP 기사는 워싱턴에서 12월 25일 밤에 발신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사를 발신한 워싱턴의 ‘밤’을 오후 6시부터 기산하더라도 서울과 워싱턴의 시차가 14시간이니까 합동통신이 무단 수신한 시간은 26일 오전 8시부터이다. 따라서 이를 번역해 신문사 등에 전달한 시간은 오전 8시~정오 사이였을 것이다.

26일 밤 이승만 박사는 “워싱턴에서 오는 통신에 의하면 아직도 조선의 신탁통치안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라는 방송 연설을 했다. 이 내용 중 ‘워싱턴에서 오는 통신’이 바로 합동통신이 전한 UP통신일 가능성이 높다. AP 등 다른 통신사가 그런 내용의 기사를 보낸 사실은 발견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완범 교수는 이승만 박사가 “미군정의 왜곡된 정보를 제공받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합동통신은 연감이나 사사(社史)를 여러 차례 발간하면서도 이 중요한 모스크바 3상회의 논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오보를 무단 수신해 과장까지 한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오보가 일으킨 엄청난 파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조작’ㆍ‘왜곡’이란 비난을 비껴가려는 것이었을까.

합동통신 측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통에 비판의 화살은 합동통신 기사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단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대서특필한 동아일보에 집중되고 있다. 2004년 동아일보는 한 특집기사에서 "동아일보는 당시 석간이어서 조간이었던 조선일보, 신조선보 등이 27일 조간에 먼저 보도한 뒤 그것을 따라 보도했을 뿐"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 기사를 동아일보가 최초로 보도했다는 일부 학자의 주장은 중대한 오류”이고 “그릇된 전제 위에서 동아일보가 반탁운동 격화의 도화선이 됐다고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잘못된 주장을 한 바도 있다. 2012년에 와서야 동아일보는 블로그에서 석간이 신문 날짜를 하루 앞당겨 표기하는 일제 때부터의 관행에 따라 당시 석간이었던 동아일보는 12월 25일 워싱턴발로 제공된 기사를 26일 오후 배포한 27일자에 실었다고 밝혔다. 즉 27일자로 인쇄된 가판을, 신문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인 26일 오후, 거리와 주요 기관 등에 배포했음을 시인한 것이다. 잘못 쓴 그 신문 특집기사에 대한 정정의 언급은 없었다. 동아일보에 비판적인 학자들마저 동아일보가 석간인 점에만 주목해 "맨 먼저 보도한 것은 조간인 조선일보 등이었으며 동아일보가 몇 시간 뒤 같은 기사를 그대로 실었다"라고 하는 실수를 했다.

석간이어서 한 12시간 남짓 먼저 보도했을 뿐인데 ‘왜 우리에게 비난을 집중하느냐?’는 건 지나친 발뺌이다. 동아일보가 비난의 초점이 된 것은, 합동통신 기사를 가장 먼저 보도했다는 점보다는 사실을 정반대로 왜곡한 ‘가짜기사’를 확인도 않고, 내용보다 한술 더 떠서 단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과 편집으로 대서특필했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합동통신 기사를 보도한 신문들의 제목과 기사 배치를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같은 보수우파 노선의 조선일보보다도 그 표현이 심했다. 합동통신 내용에 덧붙여 ‘2차 가해’를 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동아일보는 그동안 그저 “왜곡은 없었다”며 마치 그 보도가 확인에 소홀했던 단순한 오보인 것처럼 변명하는 데만 주력해 왔을 뿐이다. 그런 입장이었기에 실체적 진실의 전모를 밝히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아 왔다. ‘오보’였긴 했지만 ‘왜곡은 없었다’는 변명조차도 동아일보의 지면을 통해 정식으로 밝힌 적은 없다. ‘동아일보 그룹의 공식 블로그’라고 하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실무자가 변명과 반론을 계속해 왔을 뿐이다.

그래서인가 동아일보 기사에 대한 학계의 비판은 혹독하기 짝이 없다. ‘왜곡 기사’란 표현은 차라리 점잖은 편이다. ‘조작기사’, ‘모략 기사’, ‘대형 가짜뉴스’, ‘역사상 최악의 오보’, ‘한국 언론 흑역사의 시작’, ‘가짜뉴스의 효시’,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극악한 일’이라는 등 극단적인 평가가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도대체 어떤 기사이기에 이렇듯 76년간이나 논란거리가 되는지 기사 문장부터 세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기사는 딱 단 두 문장이다. 동아일보 등에 게재된 합동통신 기사는 다음과 같다.

한자 표기와 맞춤법, 띄어쓰기는 당시 동아일보 기사 그대로이다. 제목만 지면 절약을 위해 일부 생략하고 크기를 줄였다.

우선 외신 표시부터가 의혹을 낳았다. 외신기사는 예나 이제나 ‘발신지’ - ‘날짜’ - ‘발신 통신사 이름’ - ‘기자 이름‘ - ‘수신 통신 이름’의 순서로 표시하는 게 원칙이다. 따라서 문제의 기사는 [워싱턴 25일발 UP 랄프 하인젠 합동 지급보]로 기재되었어야 마땅했다. 기자 이름은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이 기사처럼 주관적인 의견과 추측이 곁들어진 기사라면 UP라는 발신사 다음에 작성한 기자의 이름을 넣는 게 원칙이다. 기사에 책임을 지우기 위한 언론 관행이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보도한 합동통신 기사에는 ‘워싱턴발’이라고 해 놓고 날짜 다음에 있어야 할 발신 통신사의 이름이 없는 것이다. 작성한 기자의 이름 역시 없다. (그러나 합동통신과 같은 UP 기사를 인용했다고 주장되는 성조지에는 의아스럽게도 랄프 하인젠(Ralph Heinzen)이란 기자 이름이 등장한다-성조지 태평양판(The Stars and Stripes (Pacific edition) 기사 참조)

또 기사의 내용을 보면 소식통이 없고 근거도 없이 온통 추측성의 것이다. 그러면서도 뜬금없이 ‘아이티에 대지진’처럼 긴박한 발생 소식을 전할 때나 쓰는 ‘至急報’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의견 기사에 ‘지급보’라는 표현을 넣는 건 이상하다. 전혀 어울리지 않고 느닷없어서 기사가 매우 의도적으로 번역ㆍ작성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동아일보가 기사의 원문이라 추정하고 있는 UP 원문기사에는 URGENT 등 ‘至急報’를 의미할 어떤 단어도 없다. 누군가가 ‘자극’을 위해, 혹은 ‘음모’를 위해 끼워 넣은 것이 분명하다. 음모론의 한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단 두 문장인 기사는 첫 문장부터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 ‘농후하여 가고 있다’, ‘받았다고 하는데’, ‘불명하나’ 등 추측성 표현들이 줄을 잇고 있다. 두 번 째 문장은 ‘~하는데’, ‘~하나’, ‘~있는데’, ‘~하야’, ‘~되는 한’ 등의 접속사로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외신 원문의 여기저기에서 짜깁기한 결과이다. 이 때문에 기사는 167개 글자가 한 문장을 이루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중문ㆍ복문의 만연체(蔓衍體) 문장이 되었다. 요즘 이런 기사는 내용의 사실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기사 형식면에서도 낙제점이어서 결코 그대로는 출고되지 않을 것이다.
문장은 그렇다 치고, 동아일보 등이 보도한 합동통신기사의 가장 큰 문제는 주요 기사라면  필수적으로 밝혀야 할 뉴스의 소스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누가 ‘반즈 미국 국무장관이 소련의 신탁통치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소련은 일국 신탁통치를 주장하여 38도선에 의한 분할이 계속되는 한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다’라는 3상회의 논의와는 정반대의 정보를 기자에게 주었던 것일까?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긴 있었는가. 기자 스스로의 조작인가. 그 어떤 것도 밝히지 않은 기사였으니 그 당시부터 ‘조작’ ‘음모’ ‘모략’이란 의혹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합동통신 기사의 원문이라는 UP 기사에도 뉴스의 소스는 고작 ‘some circles here believed tonight'이라는 구름 잡는 표현뿐이다. 합동통신과 국내 신문기사엔 이마저 생략됐다. 왜일까? 그럼에도 동아일보 등은 이 기사를 1면 머리 혹은 1면 중간 등에 크게 배치하고 확인된 사실인 양 단정적인 큰 제목 아래 보도했다. 음모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사고 있는 이유이다.

이처럼 기사는 내용은 물론 출처ㆍ형식ㆍ문체ㆍ표제 등등 모든 면에서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기사가 사실을 거꾸로 기술한 ‘가짜’기사, ‘왜곡’기사라는 점이다. 이런 기사가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켜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에 집중된 의혹

동아일보의 ‘오보’가 단순히 검증을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된 오보 기사가 아니라 의도적인 ‘왜곡보도’ㆍ‘조작 보도’라는 ‘음모론’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학자는 서울대 국사학과 정용욱 교수이다. 2020년 송건호 언론상을 받은 정 교수는 2003년 《역사비평》에서 “국내에 반탁운동 열기를 몰고 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3상회의의 한국 관련 내용을 보도한 동아일보의 1945년 12월 27일자 머리기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같은 해 출간한 『존 하지와 미군 점령통치 3년』에서는 〈역사의 흐름을 바꾼 왜곡 보도〉라는 제목 아래 한 장(章)을 할애해서 잘못된 내용의 모스크바 3상회의 기사로 촉발된 신탁통치 파동을 상세히 분석했다. 그 분석에서 정 교수는 “보도의 전말과 배후의 많은 부분이 의혹으로 남아 있다”면서 여러 가지 의심이 가고 석연치 않은 점들을 상세히 제시해 음모론에 불을 붙였다. 그는 이어 『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 정책』이란 저서에서는 〈군인과 저널리즘, 그리고 여론공작 : 3상회의 결정 왜곡보도의 전말〉이란 표제 아래 미군정과 맥아더 사령부가 그 기사와 보도의 배후에 있었을 가능성에 여러 근거를 제시하여 음모론을 더욱 확대 심화했다. 기사의 출처와 취재, 전달과정 등 전 과정을 철저히 추적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미군정이나 맥아더 사령부가 기사의 배후일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강하게 내세웠는데 그 골자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당시 언론에 대한 철저한 검열을 실시하던 미군정이 웬일인지 보도를 그대로 방치 묵인했으며, 어떻게 그런 오보가 가능하였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추적을 안 했다. 미군정의 의뢰로 『주한미군정사』를 저술한 레오날드 C. 호그 교수는 “타스통신이 신탁통치 제안자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공개하자 미군정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한국에 신탁통치를 강요하고자 한 것은 소련이고 소련이 비난받아야 한다는 믿음을 한국인들 사이에 조장하려 했고 미 국무성도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고 한 것을 볼 때 미국이 오보에 개입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둘째, 미군정은 반탁 선전과 운동을 방조해 반소련 여론을 조성하고 우익의 정치적 입장을 강화해 미래의 회담에서 미국의 입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존 리드 하지 주한미군사령관은 “흥미로운 것은 반탁소동으로 빨갱이와 우파가 균형을 이루게 되었고 양쪽이 다 우리에게 도와 달라고 우는 소리를 하게 되었다”며 만족해 한 사실이 있다. 실제로 우익은 반탁운동으로 좌익과의 세력불균형을 일시에 만회할 수 있었다.

셋째, 미군정의 신탁통치에 관한 보고서 「신탁통치」에는 성조지(Stars and Stripes)12월 27일자에 랄프 하인젠이 쓴 기사가 실렸는데 그 내용이 동아일보에 실린 합동통신 기사와 같다고 했다. 이는 합동통신ㆍ동아일보 등의 오보기사 출처가 ‘성조지’일 수 있다는 것을 일러주며 오보 소동의 주체를 짐작할 수 있는 중요 사실이다. 전쟁 전문 기자이며 유럽을 무대로 활동한 비전문가인 랄프 하인젠이 어떻게 코리아 관련 기사를 워싱턴에서 보낼 수 있겠는가. 성조지 편집진에서 기사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NYT를 비롯한 미국의 유력 일간지들에는 문제의 기사가 전혀 게재 안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넷째, 합동통신사가 발신 외국통신사를 밝히지 못한 것은 이 기사를 워싱턴의 통신사에서 수신한 게 아니라 성조지에서 인용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합동통신이 성조지의 기사를 외신기사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섯째, 성조지 와 동아일보가 보도한 날짜가 같은 27일이어서 동아일보 기사의 출처가 성조지일 수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도리어 동경과 서울에 동시에 기사를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조직, 즉 미군정이나 동경의 맥아더 사령부가 기사 자료를 합동통신과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동시에 제공했을 가능성을 말해 주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완범 교수는 당시에 좌익 정치인들은 ‘반소-반공의 음모’ (이강국), ‘국제적 통신기관이 오랫동안 준비해 가지고 착수한 모략‘(김오성), ‘통신기자의 모략적 관측보도’(강대호)라고 ‘음모’와 ‘모략’에 초점을 맞춰 비난을 했다고 소개했다.

당사자인 언론사들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는데 소홀했기 때문에 풍부한 내용과 새로운 추측을 담은 정 교수의 가설은 ‘음모설’ㆍ‘조작설’의 표본이 되었다. 이는 여러 저서, 학위 논문, 언론의 특집 기사와 방송에 빈번히 인용되며 정설처럼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정 교수가 제기한 의혹들이 신선하긴 하지만 완전히 입증된 것은 아닌 추정이요, 가설이어서 허점도 드러난다. 무작정 인용을 할 게 아니라 면밀한 검증을 거쳐야 할 것이다.

정용욱 교수 못지않게 모스크바 3상회의 오보 사건에 대해 많은 분석을 제시해온 이완범 교수는 “동아일보에 고의성이나 의도성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의도는 원래의 소스원인 통신사(UP)나 미국의 정책 담당자가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당시 남한 신문은 미국 통신사를 통하여 보도된 왜곡보도를 확인하지도 않고 마구 전재하여 반탁감정을 형성하였다. 당시 언론사를 통제하였던 미군정은 왜 이를 그냥 내버려두었던가? 미국 국무성의 고위당국자가 미국 통신사를 이용하고 사주하여 대중의 반소 반탁감정 형성을 조장한 '음모'가 개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오보가 없었더라면 우익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획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미국은 이를 이용하여 소기의 목적을 훌륭히 달성했던 것 아닌가. 이런 시각에서 좌우대립은 미국의 '민족분열 책동에 놀아난 것이며, 이의 책임은 순진한 좌ㆍ우익 지도자보다는 미국에 있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미국 정책을 모를 리 없는 미국 통신이 그런 보도를 냈다는 것은 이상스런 일”이며 따라서 “미국 정보기관의 조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정 교수의 견해와 거의 같다.

동아일보 사장을 역임한 김학준 박사도 동아일보가 보도한 합동통신의 외신기사가 ‘완전한 오보’임은 인정했다. “미국이나 소련이 모스크바 회의에서 그런 안(합동통신 기사 내용)들을 제안한 일도 없었고 더구나 카이로선언이 코리아의 독립정부 형태를 국민투표로 결정한다고 다짐한 일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동아일보 외에 중도지였던 ‘신조선보’ㆍ‘중앙신문’ㆍ‘서울신문’도 12월 27일에 문제의 합동통신 기사를 보도했다면서 “특정신문이나 우익계 신문들이 특정한 목적으로 ’조작‘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통신사가 “모스크바 3상회의에 관계된 미국 정책입안자들 또는 정책집행자들로부터 부정확하고 심지어 고의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입수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견해를 밝혔다. “사실을 정반대로 왜곡한 책임은 통신사나 미국 관리가 져야 한다”는 이완범 교수의 의견과 통하는 결론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

동아일보는 2012년 블로그를 통해 UPI 아카이브에서 합동통신이 당시 수신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UP 기사의 원문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 UP 기사를 보도했던 12월 26일자 미국 신문 Lodi News-Sentinel과 Washington Times-Herald의 존재도 알렸다. 당시 워싱턴에서 발신된 UP통신의 원문이 남아 있고, 그것을 게재한 신문이 존재한다는 것은 동아일보가 워싱턴발 외신기사를 합동통신사를 통해 받아서 게재한 것이지, 동아일보가 ‘반소(反蘇 )모략’을 위해 기사를 지어낸 것은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합동통신으로서도 동아일보가 블로그에서 변명해 주고 있는 것처럼, 계약을 안 한 UP 기사를 무단 수신해서 기사를 만들었기에 발신 통신사를 표시 안 한 것일 뿐 성조지나 다른 출처에서 제공받은 건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가 생긴 셈이다. 다시 말해 합동통신이나 동아일보 등의 기사가 미군정이나 동경의 맥아더 사령부의 조정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정용욱 교수의 가설에 대한 반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발신 통신사인 UP 이름이 합동통신 기사에 표시 안 된 것은 계약사가 아니라서 발신사를 명기해 서비스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동아일보 블로그의 추측에 대해서는 합동통신 사우회나 그 후신이라 할 연합뉴스 측이 책임 의식을 갖고 조사에 나서 결론을 내주어야 한다.

의혹은 가셔지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합동통신 기사와 원문이라는 UP 기사, 그리고 UP 기사를 보도한 The Stars and Stripes (Pacific edition)를 비교해 보면 합동통신 기사와 관련한 여러 의혹들이 추가로 생긴다.

<UPI 아카이브에서 검색되는 UP 기사 원문>
United Press
WASHINGTON ― A program for the independence of Korea may emerge from the conference of Big Three foreign ministers at Moscow, some circles here believed tonight.
Secretary of State Byrnes went to Russia reportedly with instructions to urge immediate independence as opposed to the Russian thesis of trusteeship.

Korea at present is divided into two zones ― Russian and American ― with the boundary extending along the 38th parallel. There are no indications thus far that the Big Three have reached any conclusions.
U.S. position
The American position is that Korea, long under the heel of Japan, was promised independence in the Cairo declaration two years ago. Meantime, some 43 Korean political parties have amalgamated their interests in a central committee which is led by a "provisional government" headed by Kim Koo. There also is a minority movement which called itself the "people's republic" until a recent crackdown by Lt. Gen. Hodge.
Both groups are opposed to the trusteeship plan and both are demanding unification of Korea by elimination of the military zones.
Under the Cairo declaration, Korea was to be permitted to choose its form of government by national plebiscite, this to be accomplished by regrouping all the political factions behind the two major groups.
The United States, in keeping with State Department policy, has declined to recognize either of the groups as a legal government pending the plebiscite. Both China and France, however, have recognized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which was formed in Seoul in 1919 but has been existing in exile in China.
The military division of Korea split the Russian-occupied northern industrial half from the American-occupied southern agricultural half. In their zone, the Russians have turned over much of the local civil administration to the Korean Committee of Liberation, an organization of Korean Communists formed in Russia a year ago.
There reportedly has been little liaison between the two zones since Korea's liberation. Russia has proposed a single-nation trusteeship over the combined zones which would make the rich farms of the south available to the industrialized north for a definite period before the plebiscite.
At present, the two-zone system prevents political groups on either side of the 38th parallel campaigning in the other zone and it has been Russia's thesis that a national plebiscite is impossible so long as the division continues.

첫째, 동아일보가 기사의 원문이라 하고 있는 UP 기사에는 보는 바와 같이 합동통신에 있는 ‘至急報’(URGENT)라는 표기가 왜 없는가. 합동통신이 의도를 갖고 삽입한 것인가.

둘째, UPI 아카이브의 UP 기사에는 원본이라면서 이상하게 발신 날짜가 나타나지 않는다. 원본임이 맞긴 맞는가.

셋째, 성조지 태평양판 UP 기사에 느닷없이 기사 작성자로 등장하는 Ralph Heinzen이란 이름이 정작 UP의 ‘원문’에는 없는 것은 웬일일까. (성조지 영문 기사 참조)

넷째, 번역된 내용도 원문과 차이가 작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국내 통신사가 외신기사를 받아 번역해 국내 언론사에 전할 때는 직역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합동통신 기사는 직역을 하지 않고 주관적인 견해를 섞어 의역했다. UP가 추측으로 작성한 부정확한 내용을 더욱 더 과장한 것이다. 즉 동아일보에 게재된 합동통신 기사의 첫 문장인 “~표면화 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이 ‘농후’하여 가고 있다”에 꼭 맞는 대목이 원문에는 없다. 고작 “may emerge from", “some circles here believed”라는 표현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관측이 농후하여~’란 표현은 분명히 외신 번역의 관행을 벗어난 과장된 번역이다. 왜 그랬을까? 의혹을 살만큼 번역자의 의도와 시각이 들어 간 것이다.

다섯째, 지면 사정 등 때문에, 외신기사의 일부만을 번역하거나 게재할 때는 앞 문장부터 차례로 필요한 분량만큼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보도 기사는 기본적으로, 작성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부터 앞부분에 차례차례 써나가는 역피라미드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문제의 UP 기사를 게재한 미국의 두 신문도, 한 신문은 앞에서부터 4개 문장, 또 한 신문은 앞에서부터 6개 문장을 차례대로 택해 게재했다. 여기저기서 짜깁기 하지는 않았다(영문기사 참조). 이에 비해 합동통신기사는 특이하게도 여기저기서 내용을 따와 두 문장으로 짜깁기했다(UP 영문 원본기사의 볼드체 부분이 짜깁기 한 곳). 여기에서도 번역에 주관적 의도가 들어간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외신을 신문사 등에 충실히 전해야 할 직무상의 의무를 지닌 수신 통신사인 합동통신이, 계약도 안 한 외국통신사 기사를 무단 번역하면서 왜 이렇게 여러 가지로 이례적인 과욕을 부렸던 것일까?

여섯째, 문장 구문론적 측면에서 볼 때도 의혹을 갖게 된다. 합동통신 기사에 "카이로 선언에서 국민투표로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원칙을 밝혔다"는 것(실은 카이로 선언에서 이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과 "남북이 두 개로 갈라져 있어 통일된 국민투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있다. 이 두 내용은 주제와 언급 주체가 다르며 언급된 시점도 다르다. 다른 문장에서 별도로 언급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 마치 미국과 소련이 같은 문제에 대해, 같은 시점에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한 듯 오해를 하게 두 내용을 한 문장 안에 가져다가 등치시켰다. UP의 원문은 물론이고 조작 기사로 의심까지 받는 성조지 기사에서도 이들 내용은 별도의 단락에 나눠져 있다. 그런데 합동통신은 이곳저곳에서 짜깁기한 뒤 “미국의 태도는 ~있는데 소련은~”이라며 등위 접속사로 연결시켜 미국과 소련을 억지로 대립시켰다. 실수가 아닌 것 같다. 여기서도 합동통신 측의 자의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두 지방지가 UP 기사를 보도했다는 사실은 미국 의회도서관 싸이트에서 확인이 된다. 캘리포니아에서 지금도 발행되는 Lodi News-Sentinel과 1954년에 폐간된 워싱턴DC의 Washington Times Herald이다. Lodi News-Sentinel의 1945년 12월 26일자에는 'WASHINGTON, Dec 25 (UP)'란 표기가 나타난다. Washington Times-Herald에는 'DECEMBER 26, 1945'라는 게재 일자와 UP통신 이름만 보이고 발신 날짜는 안 보인다. 어쨌든 두 미국 신문이 ‘25일 밤’에 발신한 UP 기사를 26일자 신문에 게재한 것으로 보아서는 발신지가 워싱턴이며 발신 통신사가 UP임은 입증된다고 하겠다. 그러면 ‘기사가 동경에서 작성된 것인지 모른다’는 정용욱 교수의 음모론적 추리는 추리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다만 두 미국 지방지에도 성조지에 등장하는 Ralph Heinzen필자 이름은 나타나지 않고 합동통신 기사의 ‘至急報’에 해당하는 표시도 없다는 점에서 정용욱 교수가 제기한 의혹은 명맥을 이어 간다.

또 한 가지, UP 원문에서 성조지가 짜깁기한 대목과 합동통신이 짜깁기한 대목이 유사하다는 것도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만은 없는 수수께끼이다. 정 교수는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고 했지만 비교해 보면 그처럼 똑같지는 않으나 유사한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정 교수는 합동통신 짜깁기 기사와 성조지 랄프 하인젠의 짜깁기 기사가 매우 유사한 이유가 문제의 기사가 맥아더 사령부 등 어느 조직에 의해 만들어져 “동경의 The Stars and Stripes 편집실이나 서울의 합동통신사, 또는 동아일보에 확보되어 있다가 같은 날 동시에 보도”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았다. 대단히 새로운 추리여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의 기사가 동아일보에만 게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 게재한 신문이 동아일보 포함 모두 8개 지나 확인이 되고 이중 신조선보ㆍ중앙신문은 당시 중도 성향이어서 문제의 기사가 이들 신문에도 확보돼 있다가 미군정 등의 계획에 따라 동시에 게재됐다고 보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보다는 합동통신이 UP통신사의 기사를 무단 수신해 짜깁기하고 의역한 뒤 [지급보]라는 자극적인 표현까지 곁들여 ‘1차 왜곡’한 뒤 신문사들에 보냈으며, 그것을 동아일보ㆍ조선일보 등이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에 맞으니까 확인할 생각을 전혀 안 하고 한술 더 뜨기까지 해서 ‘2차 왜곡’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추리일 것이다.

UP 기사를 게재한 미국의 두 신문의 제목은 단지 〈Korea Independence Hinted At Parley〉와 〈May Grant Korea Freedom〉이다. 미국 신문들임에도 UP 기사를 게재하면서 동아일보처럼 사실과 반대로 소련에 신탁통치 방침을 덮어씌우는 제목을 뽑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첫 문장에서 ’조선 독립‘에 관한 제목을 뽑았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편집의 원칙, 제목 뽑기의 원칙이다. 동아일보ㆍ조선일보는 왜 그 원칙을 무시해 ‘조선 독립문제가 표면화하고 있다’는 첫 문장 내용은 애써 외면하고 다음 문장과 맨 마지막 구절에서 제목을 뽑았던 것인가. 합동통신의 가제가 그랬던 것인가. 정용욱 교수 등으로부터 조작 기사를 만들었다는 의심을 받은 The Stars and Stripes의 기사에도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제목을 뽑지는 않았다. 동아일보 등의 기사가 ‘왜곡’이었다고 비난받는 뚜렷한 이유이다. 때문에 동아일보도 음모설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김민환 교수는 동아일보가 “반탁의 그 반공이데올로기로서의 유효성의 측면을 의식적으로 이용했다”는 지적한 바 있다.

Lodi News-Sentinel 12.26.1945
(필자 註: The Lodi News-Sentinel is a daily newspaper based in Lodi, California, United States and serving northern San Joaquin and southern Sacramento counties)
Korea Independence
Hinted At Parley
"WASHINGTON, Dec 25 (UP) A program for the independence of Korea may emerge from the conference of Big Three foreign ministers at Moscow, some circles here believed tonight.
Secretary of State Byrnes went to Russia reportedly with instructions to urge immediate independence as opposed to the Russian thesis of trusteeship.

Korea at present is divided into two zones ― Russian and American ― with the boundary extending along the 38th parallel. There are no indications thus far that the Big Three have reached any conclu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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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hington Times Herald DECEMBER 26, 1945
(필자註 : The Washington Times-Herald (1939–1954) was an American daily newspaper published in Washington, D.C.)
May Grant
Korea Freedom  by United Press
WASHINGTON ―(기사는 Lodi News-Sentinel기사와 꼭 같고, 이 다음 3문장만 더 있음)
The American position is that Korea, long under the heel of Japan, was promised independence in the Cairo declaration two years ago. Meantime, some 43 Korean political parties have amalgamated their interests in a central committee which is led by a "provisional government" headed by Kim Koo. There also is a minority movement which called itself the "people's republic" until a recent crackdown by Lt. Gen. Ho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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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rs and Stripes (Pacific edition)
Thursday December 27, 1945

Big 3 works On Treaty Plan
Hopes To End Impasse On Peace Settlement

~In Washington Ralph Heinzen, UP correspondent, reported informed quarters believed that a program for independence of Korea may emerge from the Moscow conference.

It was pointed out that Secretary of State James F. Byrnes went to Russia with instructions to urge immediate independence of Korea as opposed to the Soviet thesis of trusteeship, UP said. The American position is that Korea be promised a plebiscite to choose its own form of government under the Cairo declaration.

It was noted, the UP story continued, that Russia has proposed a single nation trusteeship over the combined zones of occupation which would make the rich farms of the south available to the industrialized north for a definite period of time before the plebiscite.

    38thDivision

At present, UP said, the 38thparallel divides Korea and the Russians make the position that a national plebiscite is impossible as long as the division is continued.


3상회의에 관한 두 번째 ‘왜곡’보도

동아일보 2012년 블로그는 “27일자 외신기사가 보도된 다음 날짜인 1945년 12월 28일자 1면 사설 ‘민족적 모독’에서 “(삼상)회의로부터 발표된 정식공보(正式公報)가 아니매 그 진부(眞否)는 속단키 어려우며 따라서 비판의 정곡(正鵠)도 기하기 어려운 터…’, ‘아직 진상(眞相)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이후의 진전을 주시하는 동시에 이 이상의 비판을 보류하거니와…’라고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는 변명과는 달리 동아일보ㆍ조선일보 등은 27일자 보도에 이어 29일자에서 3상회의에 관한 ‘두 번째 왜곡’ 보도를 했다.

27일 오보 이틀 뒤 국내에 전해진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의 핵심은 신탁통치가 아니었다. ‘임시 민주정부 수립’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결정이었다. 코리아 관련 조항의 골자는 “1. 임시적인 코리아 민주정부 수립 2. 임시적인 코리아 정부의 구성을 돕기 위한 미군ㆍ소련군 대표의 공동위 설립 3. 임시정부와 협의를 거친 후 임시정부를 원조하기 위한 최고5년의 신탁(후견제)에 관한 협정 체결 4. 미소사령부 대표회의는 2주내 소집”이었다.

즉 3상회의 결정의 핵심은 그것이 바로 제1항에 그 내용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임시적인 코리아 정부수립’이었다. 신탁에 관한 규정이 나중에 있긴 하지만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런데도 왜곡된 ‘AP발 합동’기사를 새로운 촉매로 삼아 우파 세력은 ‘반탁’운동을 더욱더 세차게 몰고 갔다. 여기에 신문 중에서는 동아일보가 가장 큰 작용을 했다는 게 학계의 중평이다.

동아일보 29일자 1면 머리기사에는 〈‘신탁통치 과연실시’=외전이 전하는 모스크바 회의내용= ‘4개국 통치위원회 금후 5개년 계속’〉이란 제목만 있다. 3상회의의 코리아에 대한 결정 핵심인 ‘임시 정부 수립’을 생략돼 있다. 외신 가운데 굳이 신탁통치 항목 하나만을 언급한 [모스크바27일AP합동] 기사를 택해 게재했기 때문이다. 제1항 ‘임시정부 수립’ 내용을 포함해 3상회의 결정 전체를 비교적 정확히 보도한 것은 ‘[워싱턴28일UP발 조선통신]’이었다. 그러나 그 기사는 눈에 띄지 않게 편집했다. 지면에서 보듯 머리기사 아래 〈위원회 설치안 내용〉이란 제목의 3단 기사가 그것으로, 본문을 읽어야 관련 기사인줄 알도록 형식적으로 취급했다. 조선일보 역시 같은 날 〈조선에 신탁제 실시〉, 〈3국 외상회의에서 결정〉이란 제목으로 ‘임시정부 수립’ 내용이 생략된 ‘모스크바27일AP합동’기사를 크게 게재했다. 그래도 조선일보는 [UP발 조선통신] 기사를 〈임시정부수립원조〉, 〈민주적 정당단체를 망라〉란 제목 아래 실었다. 동아일보와는 달리 3상회의 결정내용의 핵심을 제목에 표현하기는 한 것이다. 다만 역시 3단으로 한 옆에 배치했다. 홀대한 것이다. 


동아일보의 왜곡은 당연히 1면 머리가 돼야 할 외상회의 결정 전문(全文)을 2면 2단으로 푸대접한 데서도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3상회의 결정의 핵심이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것이 알려졌는데도 29일자 사설 제목은 그에는 아랑곳없이 〈純血을 蓄積하라 -兄弟의 心臟에 檄한다〉는 섬뜩한 반탁 선동이었다. 아예 지면 전체가 반탁 기사였다. 같은 기사를 게재하면서도 동아일보의 제목은 같은 우파 노선의 조선일보보다도 과격했다. 학계의 비난이 동아일보에 집중되는 또 한 가지 이유이다.

27일자 보도가 정말로 ‘단순 실수’였다면 오보가 밝혀진 뒤에는 정정과 사과가 뒤따라야 마땅했을 것이다. 정정이나 사과는커녕 오히려 더 강한 논조의 사설과 기사가 계속됐다는 것은 27일자 애초 보도부터가 의도적인 ‘왜곡’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28일 사설에서의 한 토막 언급은 알리바이용ㆍ면피용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3상회의 결과를 전한 ‘모스크바27일AP합동’ 기사 자체가 ‘임시정부수립’ 내용을 생략하고 ‘신탁통치’만을 다뤘던 것인지 아니면 합동통신이 의도적으로 ‘신탁통치’ 외의 항목은 빼버려 AP 기사를 왜곡한 것인지는 앞으로 반드시 규명해야 할 중요 사항이다. 당시 AP는 UP보다 훨씬 기사의 신뢰성이 높다는 게 세계 언론계의 평가였다. 그런 AP가 UP보다도 허술한 내용의 기사를 발신했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AP와 계약한 건 우익계 합동통신이었고, UP와 계약한 건 좌익계 조선통신이었다. 우익계 합동통신이 반탁운동을 뒷받침하려고 의도적으로 AP기사에서 ‘임시정부’ 관련 등 다른 항목들은 생략하고 신탁통치 부분만 번역해 배포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좌익계 조선통신이 배포한 UP 기사는 ‘임시정부수립’ 내용을 포함한 3상회의 결정내용 전체를 충실히 담았기 때문에 오히려 푸대접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핵심인 ‘임시정부수립’은 빼고 그 임시정부를 원조할 ‘신탁통치’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것은 27일자 보도에 이어 분명히 ‘두 번째 왜곡’ 보도가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의 신탁통치 왜곡보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한 김동민 교수는 논문에서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이 신탁통치가 주가 아니고 임시민주정부의 수립에 있었음에도 외신을 빙자한 허위 추측보도로 반탁의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그 내용이 소상히 알려진 다음에도 이를 무시하거나 희석시키며 신탁통치에 방점을 찍고 반탁운동을 지속적으로 선동하였다”고 지적했다. 서중석 교수는 실은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한 “국내 신문의 왜곡보도는 이미 12월 24, 25일경부터 있었고 반소반공 선전도 그때부터 있었다”고 했다. 동아일보 24일자 ‘소련이 원산과 청진에 특별 이권을 요구한다’, 25일자 ‘ 미국이 최근 소련에 조선의 통일화를 거듭 종용’ 등의 외신기사를 예로 들었다.


진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오보 문제를 학계나 언론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였다. 민주화의 진전으로 해방공간의 정치, 분단의 역사가 제대로 조명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모스크바 3상회의에 관한 오보 기사가 도마위에 오르게 됐다. ‘반탁이냐, 찬탁이냐’는 국론을 소모시킨 잘못된 의제 설정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를 수단으로 우익이 좌익을 제압하고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왜곡 보도에 대해서는 반성은커녕 오히려 그것을 공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 왔다. 이런 점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가로막고 지연시키는 근본 원인이 됐던 것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의 부족으로 언론의 특집 기사, 사사(社史), 학계의 저서와 논문 등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부정확한 서술들이 여러 개 발견된다. 이를테면 문제의 오보 기사를 논하면서 출처가 UP 기사인데 AP 기사로 잘못 파악한 저서와 논문들도 있다. 워싱턴 25일 밤 발신이면 14시간의 시차 때문에 한국엔 26일 전달될 수밖에 없는데도 25일에 ‘워싱턴발 외신’을 접했다는 착오도 여럿 있다. “1945년 12월 25일 워싱턴에서 날아든 청천 벽력같은 외신”과 같은 조선일보 사사(社史) 내용도 UP가 25일 밤 워싱턴에서 발신해 합동통신이 ‘26일 수신ㆍ배포한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정용욱 교수의 논문과 저서에서도 착오가 발견된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의 현지 발표 시간은 1945년 12월 28일 오전 6시, 한국 시간으로는 28일 정오, 워싱턴DC 시간으로는 27일 밤 10시였다. 이는 뉴욕헤럴드트리뷴ㆍ워싱턴포스트 등 여러 미국 신문에서 확인되며 이완범 교수의 저서에서는 올바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용욱 교수는 모스크바에서 정오, 한국 시간으로 오후 6시, 워싱턴 시간으로 새벽 4시에 발표됐다고 기술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ㆍ뉴욕헤럴드트리뷴ㆍ성조지 등에는 회담이 새벽 3시쯤 끝났으며 반즈 미 국무장관이 모스크바 기후가 너무 나빠 이른 아침 비행기로 런던으로 갔다는 설명까지 기사 속에 있다.

큰 착오는 아니랄 수도 있지만 주요 사건의 발표시간이 잘못 파악된 상태로 방치되는 것은 문제이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이 방면에 정용욱 교수가 워낙 이름을 얻은 탓인지 여러 연구자, 기자들이 정 교수 저서 속의 잘못된 발표 시간을 그대로 베껴 논문을 쓰고 저서도 내며 기사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실은 모스크바 3상회의 발표시간은 『해방3년과 미국1』이란 제목으로 1984년에 번역 출판된 미 국무성 비밀외교문서 안에 있다. 해리만 주소 미국대사가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문 기록에 나타난다.

학계도 학계지만 문제의 발단인 언론이 실체적 진실의 규명보다도 책임 회피와 비판에 대한 변명에 그치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도 집중 공격을 받는 동아일보 혼자서 변명에 나서고 있을 뿐 다른 매체들은 동아일보의 등 뒤에 숨어 남의 일 인양 바라보고 있는 꼴이다. 합동통신이 배포한 잘못된 정보를 확인 않고 게재했을 뿐 ‘왜곡은 아니다’라는 변명은 오랜 역사의 큰 언론사가 취할 자세는 아닐 것이다. 형법에 ‘업무상과실장물취득죄’라는 게 있다. 가령 귀금속상이라면 귀금속 매입 때 장물여부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다고 한다. “설혹 장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장물인지를 확인을 해야 하는 업무상의 세심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는 유죄”라고 대법원은 판결했다. 백보를 양보해 의도적으로 왜곡 보도한 것은 아니라 해도, 가짜 내용을 담은 합동통신 기사를 확인 않고 그대로 게재한 신문들은 업무상 요구되는 주의 의무를 소홀히 했던 ‘장물아비’와 꼭 같다 할 것이다. 동아일보의 경우는 기사 배치나 단정적인 큰 제목 등으로 볼 때 주의 의무는커녕 정치적 의도에 맞는 기사를 만나 ‘옳다구나’ 하고 게재했음이 뚜렷이 감지된다. 그럼에도 동아일보는 오보 기사를 비판한 한 언론과 법적 소송까지 벌였으나 패소한 바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언론인 월터 리프만은 "뉴스와 진실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저널리즘의 가장 큰 의무는 ‘진실추구’이다. 통신 기사를 실었다고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게재한 순간부터는 게재지도 똑같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우리 언론윤리강령은 언론사의 ‘사실 확인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신문윤리실천요강도 보도준칙에서 “보도기사(해설기사 포함)는 ~출처 및 내용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미확인보도 명시원칙’에서는 “~출처가 분명치 아니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부득이 보도할 경우 그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표제의 원칙’에서는 “~표제는 기사내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기사 배치, 제목 내용과 활자크기로 얼마든지 여론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뒤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미스터리 가득한 ‘오보’ㆍ‘왜곡’ㆍ‘모략’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당시 관여자의 증언이 거의 불가능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점이다. 점점 그럴 것이기에 언론계는 학계와 함께 서둘러 이 숙제의 해결에 나서야 한다.

동아일보는 합동통신 기사의 원본으로 추측되는 UP 기사와 그 UP를 게재한 두 미국 신문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는 노력하면 다른 증거 자료들도 찾아낼 가능성이 있음을 일러준다. 또 각종 사료나 당시 간여했던 인사들의 기록ㆍ유품ㆍ그 가족들의 증언 등등을 적극 찾아 나선다면 진상에 좀 더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합동통신 사사(社史)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12월 27일 밤(1945년) 야근을 하던 외신국장 白南鎭은 통신부 차장 崔翰植이 던져준 워싱턴발 AP통신 카피를 들여다보다가 놀라운 뉴스를 발견했다. 이 기사가 바로 탁치 안 보도였다. 南相一 全弘鎭 元瓊洙 白南鎭 등은 구수회의를 열고 ~28일 1편에 보도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아쉽게도 ‘워싱턴 25일 발 UP 기사’를 둘러싼 논의 과정은 아니나 문제의 기사를 논의했을 26일 오전 실무회의의 참가자도 아마 같았을 것이다. 이들이 남긴 증언이나 자료는 없을까? 합동통신 관계자, 그리고 후신이라 할 연합뉴스도 우린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자세에서 벗어나 진실규명에 의무감을 가졌으면 한다.

해외의 비밀자료도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미 국무부 아카이브에서 미 국무부가 일정한 기준으로 비밀지정을 해제해 나가는 자료들을 통해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발굴해 왔다. 최근에는 러시아도 옛 소련 자료에 대한 접근을 부분적으로 허락하고 있다. 더 욕심을 낸다면 북한 자료의 입수도 시도해 볼만 한 것이다.

최근 손석춘 교수가 쓴 『동아평전』에 의하면 당시 동아일보 사장은 송진우였지만 신문 지면을 실질적으로 책임진 사람은 사주 김성수의 처조카인 고재욱이었다고 한다. 고재욱의 관련된 증언이 남아 있지는 않을까? 같은 책은 송진우가 모스크바 3상회의 전문을 받아본 뒤 자신의 신문 보도가 잘못된 것임을 뒤늦게 깨닫고 29일 경교장에서 열린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 회의에서 무조건 반탁운동에 나서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현실론을 폈다고 했다. 책 내용대로라면 27일자 기사가 큰 오보였음을 동아일보 상층부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반탁운동 몰이를 계속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 내부에서 어떤 논의과정이 있었을까.


정정과 사과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왜곡은 아니다’는 주장만을 계속할 것이 아니다. ‘오보’라고 인정한다면 문제의 중요성에 비추어 최소한 그 선에서라도 정식으로 지면을 통해 정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진상규명에도 더 노력해야 한다. 그게 대 신문사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일일 것이다. 너무 시간이 지난 문제라고? 뉴욕타임스는 지난 2014년, 161년 전 기사 제목에서 이름을 잘못 표기했다고 정정을 해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그런 것이 독자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권위지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관련 언론사들이 반성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 없이 앞으로도 자금까지와 같은 발뺌과 변명에만 주력한다면 진실은 계속 어둠에 묻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실제 이상의 의혹과 오해가 빚어지고 동아일보ㆍ조선일보 등과 비판적인 언론 및 학계 사이의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이는 언론계 전체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일이다.

미국의 언론인 리처드 클러맨은 “언론 활동에서 오보로 판명된 거보다 더 고약한 일은 딱 한 가지 한 가지뿐이다. 오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신문인협회 원칙선언은 “중대한 ‘오보’가 생겼을 때는 ‘즉시’ ‘눈에 띄게’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강영철 숙명여대 교수는 “한국 언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오보에 대한 정정이 약하다는 것이다. 정정을 해도 경위나 원인도 밝히지 않고 사실만 교정하는 수준이며 사과도 않는다. 오보를 정정하는 게 매체의 신뢰도에 손상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오히려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한 바 있다고 SBS는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에 놀아나서 특종이라고 보도했던 이라크 대량살상 무기 관련 기사가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사설을 통해 상세한 과정을 밝히며 사과했다. 뉴욕타임스는 “잘못된 기사를 바로잡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은 물론 어떻게 해서 이런 잘못된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게 됐는지를 규명하는데도 계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워싱턴포스트도 1980년 〈지미의 세계〉라는 탐사보도가 허위 기사임이 밝혀졌을 때 사장이 나서 사과하고 사설로 사과문을 썼다. 옴부즈맨의 조사결과를 3쪽 반에 걸쳐 실었다.

시간을 다투어 제작하는 언론에겐 오보의 위험성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필요한 것은 그를 예방할 메커니즘과 불행히도 오보가 발생했을 때 즉시 정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이다. 솔직한 정정과 사과는 앞으로는 실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정정하고 사과하면 신뢰와 명예가 훼손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 반대라는 걸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는 실증해주고 있다.

지난 76년 동안 어느 언론사도 모스크바 3상회의 ‘왜곡 보도’에 대한 사과는 물론 정식으로 지면에 정정 사고(社告)조차 낸 적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언론자유는 책임과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다. 책임은 언론자유를 지키는 방패이다. 언론자유는 어떤 자유보다 소중한 것이지만 책임과 수용자의 신뢰 없는 자유는 방종이다. 언론이 그 책임을 다하고 수용자의 신뢰를 얻을 때 그것은 튼튼한 방패와 갑옷이 되어 자유를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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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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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의빛v 2021-10-10 17:17:26

    ★심석희 선수 응원합니다 심석희 선수 파이팅★

    심석희 선수가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계주 3000m 결승에서
    나이도 가장 어린 막내인 심석희 선수가 너무 잘해서 역전 우승하고
    금메달 따는걸 보고 쇼트트랙 경기를 좋아했던 사람이 심석희 선수를 응원합니다


    ★심석희선수 2014년 소치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계주 3000m 결승 역전우승 동영상보기★

    ★심석희 선수 레전드 역전 우승 금메달 경기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WB_kx8kJi4s

    ★심석희 선수 파이팅   삭제

    • 진실의빛v 2021-10-10 03:56:00

      ★심석희 선수 응원합니다 ★

      어린 심석희 선수가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너무 잘해서
      역전 우승 하는걸보고 쇼트트랙 경기를 좋아했던 사람이 심석희 선수를 응원합니다

      돈 받고 승부조작 경력이 있던 악마같은 조재범이 심석희를 폭행하고 성폭행도 하고
      최민정선수 밀어주라고 특정선수보다 (정황상 100프로 최민정 선수 ) 잘하면 폭행을 더 심하게 했다는데
      당연히 최민정 선수하고 사이가 안 좋은것 아닌가 ??

      당신도 그런 상황이면 먼저 얼마나 상처받고 괴롭겠는가 ??
      먼저 심석희 선수를 고통받게 한놈들이 잘못이고 문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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