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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의 명예훼손 피소사건 1심 판결문(한겨레 제공)한겨레의 명예훼손 피소사건 1심 판결문(한겨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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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0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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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울 중 앙 지 방 법 원 제 2 6 민 사 부 판 결 사 건 2001가합59144 손해배상(기) 등 원 고 1. 주식회사 동아일보사 대표이사 김학준, 김재호 2. 재단법인 동아마라톤꿈나무재단 대표자 이사장 민관식 3. 재단법인 인촌기념회 원고들 주소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 대표자 이사장 현승종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춘추 담당변호사 조윤, 김종률, 김기영, 원희룡, 류용현, 강선희, 이병삼 원고들 소송복대리인 변호사 이준범 피 고 1. 한겨레신문 주식회사 서울 마포구 공덕동 116-25 대표이사 최학래 2. 최학래 3. 정연주 4. 고영재 5. 조상기 6. 고광헌 7. 김이택 8. 김주성 피고 2 내지 8 주소 서울 마포구 공덕동 116-25(한겨레신문사) 피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이돈명, 김창국, 이석태, 김형태, 이정희, 윤영환 변 론 종 결 2004. 10. 15. 판 결 선 고 2004. 10. 22. 주 문 1. 피고 한겨레신문 주식회사, 피고 최학래, 피고 정연주, 피고 고영재, 피고 김주성은 각자 원고 주식회사 동아일보사에게 금 3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01. 3. 14.부터 2004. 10. 22.까지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 주식회사 동아일보사의 피고 한겨레신문 주식회사, 피고 최학래, 피고 정연주, 피고 고영재, 피고 김주성에 대한 각 나머지 청구, 원고 주식회사 동아일보사의 피고 조상기, 피고 고광헌, 피고 김이택에 대한 청구 및 원고 재단법인 동아마라톤꿈나무재단, 원고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각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원고 주식회사 동아일보사와 피고 한겨레신문 주식회사, 피고 최학래, 피고 정연주, 피고 고영재, 피고 김주성 사이에서 생긴 비용은 이를 10분 하여 그 9는 원고 주식회사 동아일보사의, 나머지는 피고 한겨레신문 주식회사, 피고 최학래, 피고 정연주, 피고 고영재, 피고 김주성의 각 부담으로 하고, 원고 주식회사 동아일보사와 피고 조상기, 피고 고광헌, 피고 김이택 사이에서 생긴 비용은 원고 주식회사 동아일보사의 부담으로 하며, 원고 재단법인 동아마라톤꿈나무재단, 원고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피고들 사이에서 생긴 비용은 원고 재단법인 동아마라톤꿈나무재단, 원고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의 부담으로 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 구 취 지 1. 피고들은 각자, 원고 주식회사 동아일보사에 금 5억 원, 원고 주식회사 동아일보사와 원고 재단법인 동아마라톤꿈나무재단에 연대로 금 3억 원, 원고 주식회사 동아일보사와 원고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에 연대로 금 2억 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2001. 4. 9.부터 이 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 연 25%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각 지급하라. 2. 피고 한겨레신문 주식회사는 이 사건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도래되는 18일간에 걸쳐 발행되는 편집이 완료되지 아니한 일간신문 ‘한겨레’에 별지 1 내지 6 목록 기재 정정보도문을 같은 별지의 각 말미에 적은 게재일자, 게재위치, 활자크기 및 모양에 맞추어 각 게재하라. 3. 만일 피고 한겨레신문 주식회사가 제2항 기재의 게재일자에 같은 항 기재 각 정정보도문의 게재를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 같은 피고는 원고들에게 같은 항 기재 정정보도문 1건마다 그 게재일자 만료 다음날부터 이행 완료일까지 매일 각 금 5,000,000원의 비율로 계산한 금원을 각 지급하라. 이 유 1. 기초사실 가. 당사자의 지위 (1) 원고 주식회사 동아일보사(이하 ‘원고 동아일보사’라 한다)는 국내 대표 유력 일간신문인 ‘동아일보’를 발행하는 언론사이고, 원고 재단법인 동아마라톤꿈나무재단(이하 ‘원고 마라톤 재단’이라 한다)은 마라톤 꿈나무 육성과 국내 마라톤 발전을 위해 1995. 12. 설립된 재단법인이며, 원고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하 ‘원고 인촌기념회’라 한다)는 망 김성수의 유지를 기리는 장학사업과 학술사업을 목적으로 1966. 5.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2) 피고 한겨레신문 주식회사(이하 ‘피고 한겨레신문사’라 한다)는 일간신문 ‘한겨레신문’를 발행하는 언론사이고, 나머지 피고들은 피고 한겨레신문사가 별지 기재 제 1 내지 13 기사 내지 사설 및 별지 1 내지 4 만평을 각 보도할 당시 피고 한겨레신문사의 임원, 기자 등으로 재직한 사람들로 그 구체적인 직책과 맡은 업무는 다음과 같다. (가) 피고 최학래 : 대표이사, 한겨레신문의 발행인․편집인 겸 인쇄인 (나) 피고 정연주 : 이사 겸 논설주간, 사설 작성 및 게재 (다) 피고 고영재 : 편직국장 겸 편집위원장(2001. 3. 24. 논설위원으로 전보됨), 편집총괄 (라) 피고 조상기 : 편집위원장(2001. 3. 24.부터 재직), 편집총괄 (마) 피고 고광헌 : 사회부장 기사의 기획, 취재, 작성, 편집 등을 지휘 감독 (바) 피고 김이택 : 사회부차장, 취재, 작성, 편집 등을 지휘 감독 (사) 피고 김주성 : 편집국 소속 직원으로 ‘장군봉’이라는 필명으로 한겨레 만평 ‘한겨레그림판’을 담당한 사람 (3) 한편, 피고 한겨레신문사의 편집국과 논설위원실은 직제상 분리되어 있어 논설주간은 신문의 논조를 지도하고, 논설과 관련하여 필요한 때에만 편집국 산하의 편집위원회와 협의할 뿐 달리 편집국이 작성, 편집, 보도하는 기사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나. 이 사건 각 기사 및 만평의 보도 (1) 김대중 전대통령이 2001. 1. 11.경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한 것을 전후하여 언론사들에 대한 성역없는 세무조사, 소유구조 개선, 신문판매시장에서의 공정경쟁 확보 등을 요구하는 일부 언론, 시민단체, 학계 등의 요구가 거세여 졌고, 이에 국세청은 같은 달 1. 30.경 원고 동아일보사를 비롯한 중앙일간신문사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방침을 전격 발표하였으며, 공정거래위원회도 언론사의 불공정거래행위에 관한 일제조사를 실시하였다. (2) 당시 야당 및 원고 동아일보사를 비롯한 일부 유력 일간신문사들은 국세청 및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와 같은 세무조사 및 불공정거래행위조사가 언론탄압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중단을 요구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 한겨레신문사는 2001. 3. 6.부터 같은 해 4. 26.까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과 같이 사주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신문사들이 정치권력 못지 않은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언론권력’이 성역화되어 있다는 점 등을 비판한다는 의도하에 〈심층해부 언론권력〉이란 제목의 시리즈기획기사를 작성하여 이를 ‘한겨레신문’신문을 통해 연일 게재하였으며, 이로 인해 정부 주도의 언론개혁에 대한 정치권, 언론사, 시민단체 사이의 찬반논쟁이 가열되었다. (3) 피고 한겨레신문사는 위 시리즈기획기사를 제1부 “무한권력 횡포”라는 주제하에 10회에 걸쳐, 제2부 “추악한 과거”라는 주제하에 9회에 걸쳐, 제3부 “언론개혁 해법”이라는 주제하에 6회에 걸쳐 각 보도하였는바, 이 중 원고들이 명예훼손 여부를 문제삼고 있는 기사 및 만평은 다음과 같다. (가) 동아일보사 사옥에 관한 보도 위 시리즈기획기사 제1부 “무한권력 횡포” 중 2번째 기사로 “언론사 사옥은 성역?”이란 주제로 게재되었는바, 소주제별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세종로 광장 건설 문제 : 별지 제1 목록 기재 기사 중 일부, 별지 제2 목록 기재 기사(이하 ‘이 사건 제1 보도’라 한다) ② 지하철 1호선 노선변경 문제 : 별지 제1 목록 기재 기사 중 일부, 별지 제3 목록 기재 기사, 별지 제1 기재 만평(이하 ‘이 사건 제2 보도 및 만평’이라 한다) (나) 동아마라톤 재단 의혹 관련 보도 위 시리즈기획기사 제1부 “무한권력 횡포”의 첫 시리즈로 게재된 별지 제4 내지 9 목록 기재 기사, 별지 제2, 3 기재 만평(이하 ‘이 사건 제3 보도 및 만평’이라 한다) (다) 동아일보 친일 곡필에 관한 보도 위 시리즈기획기사 제2부 “추악한 과거”의 2번째 기사로 ‘동아일보의 친일 곡필’이란 주제로 게재된 별지 제10, 11 목록 기재 기사 중 각 일부(이하 ‘이 사건 제4 보도’라 한다) (라) 기타 보도 ① 한겨레 뒷조사 의혹 관련 보도 : 별지 제12 목록 기재 기사 및 별지 제4 기재 만평(이하 ‘이 사건 제5 보도 및 만평’이라 한다) ② 권 - 언 유착 관련 보도 : 별지 제13 목록 기재 기사(이하 ‘이 사건 제6 보도’라 한다) 〔인정근거〕다툼 없는 사실, 갑 제1호증의 1 내지 5, 갑 제2호증의 1 내지 8, 갑 제3호증의 1 내지 4, 갑 제4호증의 1 내지 3, 을 제20호증의 1 내지 15, 을 제43호증의 1 내지 15의 각 기재 2. 언론의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여부 및 위법성 조각 여부에 관한 판단 기준 가. 명예훼손 여부의 판단 기준 (1) 언론매체의 어떤 기사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여 불법행위가 되는지의 여부는 일반인이 기사를 접하는 통상의 방법을 전제로 그 기사의 전체적인 취지와의 연관하에서 기사의 객관적 내용,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문구의 연결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기사가 독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여기에다가 당해 기사의 배경이 된 사회적 흐름 속에서 당해 표현이 가지는 의미를 함께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2) 한편,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사실을 적시하는 방법으로 행하여질 수도 있고 의견을 표명하는 방법으로 행하여질 수도 있는바, 단순한 의견만을 개진한 경우 이는 개인적 관점으로 받아들여져 그것만으로는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가 저해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나, 어떤 의견이 그 전제로서 사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경우는 물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에 의하더라도 그 표현의 전취지에 비추어 어떤 사실의 존재를 암시하고 또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으면 명예훼손이 된다 할 것이다. 나. 위법성 조각 여부에 관한 판단기준 (1) 위법성 조각 사유 언론기관이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훼손행위를 한 경우에 그것이 공적인 인물에 관한 사항이거나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적시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거나, 그 증명이 없는 경우에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위법성이 없다고 할 것이다. (2) 위법성 판단의 일반적 기준 언론은 국가기관,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수행하고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와 명예보호 사이의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표현의 내용이 사적 관계에 관한 것인가 공적 관계에 관한 것인가에 따라 차이를 두어야 할 것인바, 당해 표현으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 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으로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따져보아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 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간에는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할 것이다. 당해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 의미가 있는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그 평가를 달리하여야 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 (3) 언론사 간 소송에서의 위법성 판단의 특수성 당해 표현이 또 다른 언론사의 보도에 대한 것인 경우에는 어떠한가. 언론이 앞서 본 바와 같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대한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언론사 자신 역시 고도로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 할 당위성이 인정되는바, 언론사는 타인에 대한 비판자로서의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누리는 만큼 그에 대한 비판을 수인하는 범위도 넓어야 할 것이고 게다가 스스로 반박할 수 있는 매체를 소유하고 있는 등의 사정을 고려할 때 언론사의 다른 언론사에 대한 비판은 여느 공인 또는 공적인 사안에 대한 비판보다 훨씬 더 폭넓게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언론사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역할 자체도 언론사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아야 한다. 개개의 언론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의견을 다른 언론사에 의한 비판과 함께 접할 수 있게 됨으로써, 또한 언론사의 활동에 대한 다른 언론사들의 감시가 활성화됨으로써, 다시 말하자면 언론시장 내에서의 상호비판 과정과 독자들에 의한 평가과정 등을 거침으로써, 비로소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의 향상과 이에 따른 올바른 여론형성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언론사의 다른 언론사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국가권력이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이러한 언론시장의 자율적 정화 내지 발전기능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제도적 장치를 통한 규제이거나 민형사상 책임의 추궁을 통한 제재이거나를 막론하고 자유경쟁의 원리에 의하여 작동되어야 하는 언론의 공개시장의 본질적 기능을 제한하고 규제하고자 하는 국가권력의 시도는 배척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언론의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 책임의 성립 여부를 다루는 이러한 사건에 있어서 법원으로서는 그 어떤 공공적 사안의 경우보다도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여야 한다 할 것인바, 구체적으로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명예훼손 책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것인가. 일응 언론 시장의 자율적 기능에 맡겨두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그 불법을 용인할 수 없다고 판단될 정도에 이른 때에만 비로소 법적인 제재가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인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핀다면 우선 공익적 목적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보이고, 어느 정도 구체적인 정황에 근거하였다고 보이며, 또한 이러한 목적과 정황 등에 비추어 합리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쉽사리 명예훼손책임을 인정해서는 아니된다 할 것이다. 한편, 언론사는 여론형성의 주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리를 추구하는 하나의 기업으로서도 존재하는 것인바, 그러한 기업으로서의 언론사에 대한 비판적 표현인 경우, 즉, 상대방 언론사의 언론으로서의 본래적 기능과 무관한 부분에 대한 비판(기사 자체에 대한 비판, 논조에 대한 비판이라면 본래적 기능에 관한 비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업경영상의 비리나 탈세 등을 이유로 한 비판이라면 본래적 기능과 무관한 부분에 대한 비판이라 하겠다)인 경우에는 어떠할 것인지, 이러한 경우에도 위와 같은 기준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아니면 일반 사기업에 대한 비판의 경우와 동일하다고 보아야 하는지 등이 문제가 된다. 영리를 추구하는 하나의 기업으로서의 언론사라 하여도 그 수행하는 영업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일반적인 사기업보다는 그 주체 면에서 높은 공공성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도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에 따라 심사 기준을 달리해야 하는 바와 같이, 기업으로서의 언론사의 경우에도 당해 표현이 어떤 사안에 대한 것인지에 따라 기준을 달리 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할 것인바, 기업으로서의 언론사 내지는 그 언론사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주에 대한 비판으로서 그 내용이 언론사 내지 그 사주가 편집이나 기사에 영향력을 미치는지의 여부나 그 정도, 정치권력과의 친소관계 내지 그것이 기사 등에 미치는 영향, 언론이 지니는 사회적 영향력의 행사 여부나 그 행사의 적법성 등과 같이 앞서 본 언론사의 본래적 기능과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사안에 대한 것이라면, 이러한 부분은 기사의 방향이나 내용 등을 결정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거나 해당 언론사의 기사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판단요소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할 것이므로, 이러한 영역에 대한 비판은 언론사의 본래적 기능과 관련된 사안만큼이나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따라서 그에 대한 명예훼손책임의 성립도 쉽게 인정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역에 대한 비판적 표현의 경우 언론사의 본래적 기능에 대한 판단 기준과 마찬가지로 공익적 목적을 벗어나지 않고 어느 정도 구체적인 정황에 근거하여 합리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쉽사리 명예훼손책임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언론사 사주의 경우로 문제를 확대하여 본다. 언론사 사주의 경우 일반 기업의 사주보다는 일반인들에게 좀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면에서 공인적 성격이 보다 넓게 인정될 수 있다 할 것이고, 따라서 언론사 사주에 대한 비판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으로 올바른 여론의 형성이나 공개적 토론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 등을 따져보아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 할 것이나, 앞서 본 바와 같은 언론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명예훼손법리까지 인정될 여지는 없다 하겠다. 다만, 언론사의 사주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언론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기사의 내용, 방향 등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라면 그러한 사주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기업으로서의 언론사에 대한 비판적 표현의 경우와 달리 취급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할 것인바(앞서 언론사의 경우를 논하면서 이미 언급하였다), 따라서 언론사의 본래적 기능과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는 사안에 대한 것이라면 공익적 목적을 벗어나지 않고 어느 정도 구체적인 정황에 근거하여 합리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쉽사리 명예훼손책임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이 사건의 경우 이 사건 각 보도 및 만평은 원고 동아일보사의 기사 자체에 대한 비판, 논조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원고 동아일보사의 사회적 영향력의 행사 방법, 권력과의 유착관계, 사주의 친일행적 등에 관한 보도로서 원고 동아일보사의 언론사로서의 본래적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항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되므로, 앞서 본 바와 같이 이러한 영역에 대한 비판은 언론사의 본래적 기능과 관련된 사안만큼이나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함이 상당하다. 다만, 이 경우에도 무제한적 비판이 가능한 것은 아님은 앞서 본 바와 같고, 특히 이 사건 보도 중 원고 동아일보사의 현재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멀게는 일제시대로부터 가깝게는 1970년대까지의 원고 동아일보사의 행적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특별기획의 형식으로 보도함에 있어서는 다른 신속한 보도의 필요성이 있는 사안과는 달리 공정하고 객관적인 비판이 될 수 있도록 비판의 근거가 될 만한 자료를 확보함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고, 확보된 근거자료를 일방적으로 왜곡하여서도 아니 될 것이다. 이하에서는 이 사건 각 기사 및 만평이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지 여부 및 위법성 조각 여부에 관하여 그 주된 쟁점별로 차례로 판단하기로 한다. 다만, 원고 동아일보사는 공적 관심사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력 일간지 ‘동아일보’를 발행하고 있는 법인이라는 점에서 원고 동아일보사에 관한 제반 사항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언제나 일반 대중의 정당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므로 설령 이 사건 각 보도 내지 만평이 원고 동아일보사에 대한 가혹하고 불쾌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고, 나아가 그 저변에 피고 한겨레신문사의 상업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각 기사 및 만평의 공공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원고 동아일보사가 관여하는 원고 마라톤재단의 운영실태 및 원고 동아일보사를 설립한 김성수의 친일행적에 관한 사항 역시 일반 대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하에서는 위법성 조각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공공성에 관하여 이를 모두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 별도의 판단을 생략하기로 한다. 3. 이 사건 제1 보도에 관한 판단 가. 기초사실 (1) 서울시는 1952. 3. 25. 서울시내 거의 전역에 걸친 도로계획을 고시하면서 32곳의 교통광장에 관한 계획을 변경․고시하였는바, 이때 고시된 ‘황토현 광장 고시안’에 의하면 현 세종로 일대에 반지름 약 150미터, 면적 70,700(150×150×3.14)㎡ 크기의 원형광장이 만들어지게 되고, 이때의 원형광장 안에는 원고 동아일보사의 사옥 부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2) 위 ‘황토현광장 고시안’은 1962. 2. 8. 건설부 고시 제77호로 그 명칭이 ‘세종로광장 고시안’으로 변경되면서 면적이 당초 계획보다 절반 수준인 33,228㎡로 축소되었고, 이후 1978. 5. 11. 옛 중부소방소 앞 부지 1,300㎡가 가각정리되어 위 ‘세종로광장 고시안’의 광장범위에 포함되었다. (3) 1980. 3. 7. ‘신문로 도심재개발사업’을 위한 건설부 고시안에 따라 세종로 일대의 기존 고시안이 모두 폐지되었다. (4) 한편 원고 동아일보사는 1970. 4. 2. 동아일보 창간 50돌을 맞아 광화문에 새 사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고, 1971년 서울시에서 실시한 여의도 택지(현 원고 동아일보사 문화센터 부지) 3,689평의 불하 공개입찰에 응찰해 금 197,540,000원에 낙찰받으며, 이후 1999년 구 동아일보사 사옥 인근에 지하 5층, 지상 21층 규모의 동아미디어센터 건물을 신축하였다. 〔인정근거〕다툼 없는 사실, 갑 제6호증의 1, 2, 갑 제7호증의 1, 2, 갑 제8호증, 갑 제9호증의 1, 2, 을 제2호증의 1 내지 4, 을 제3호증, 을 제5호증, 을 제6호증, 을 제7호증, 나. 명예훼손 여부 (1) 보도 내용 중 원고 동아일보사가 문제삼는 부분의 요지 (가) 서울시는 1952. 발표한 ‘황토현광장 고시안’에 대하여 원고 동아일보사를 비롯한 토지주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1962. ‘세종로광장 고시안’으로 변경하면서 광장의 면적을 당초 계획보다 절반을 줄었다. 그러나 위 ‘세종로광장 고시안’에 의하더라도 원고 동아일보사의 부지는 여전히 광장계획선 안에 포함되어 있었는바, 원고 동아일보사는 이를 무시한 채 1970. 4. 2. 광화문에 새 사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나) 이에 대해 서울시는 여의도의 1등급 노른자위 땅을 불하해 주기로 하고, 원고 동아일보사로부터 광화문사옥을 여의도로 이전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원고 동아일보사는 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1999. 광화문에 새 사옥을 완공하였는바, 결국 원고 동아일보사를 비롯한 몇몇 언론사만 없었다면 광화문에서 시청 앞은 너비 100m의 넓은 시민광장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2) 원고 동아일보사의 명예훼손 여부 위 보도는 전체적으로 보아 서울시가 시민의 편의를 위해 계획한 시민광장이 원고 동아일보사의 반대와 약속 불이행으로 말미암아 끝내 무산되었는바 이는 공정성과 청렴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인 원고 동아일보사가 언론으로서의 영향력을 부당하게 남용한 결과이며 그 언론권력이 가히 성역이라 할 수 있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주었다 할 것이고, 이로써 일반인들의 원고 동아일보사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었을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다. 진실성 또는 상당성 살피건대, 을 제3호증, 을 제4호증, 을 제6호증, 을 제53호증의 각 기재, 증인 손정목의 증언, 변론의 전취지에 앞서 본 기초사실을 보태어 보면, 1970. 경부터 1975. 경 사이에 서울시 재정기획관 및 도시계획국장으로 근무한 손정목(현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은 위 재직기간 동안 ‘황토현광장 고시안’이 원고 동아일보사를 비롯한 세종로 일대의 지주들의 반대로 그 면적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세종로광장 고시안’으로 변경되기는 하였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광장계획선 내에 원고 동아일보사의 사옥 부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사실, 1970. 4. 2. 원고 동아일보사의 새 사옥 신축과 관련하여 서울시는 세종로 일대의 광장계획을 내세워 원고 동아일보사의 사옥신축에 필요한 건축허가신청을 계속 보류하였던 사실, 그 무렵 원고 동아일보사는 손정목에게 건축허가신청을 받아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이에 손정목은 원고 동아일보사를 찾아가 여의도의 장래성을 설명하고 여의도 토지 불하를 약속하면서 원고 동아일보사에 사옥이전을 권유한 사실, 한편 손정목은 위와 같은 자신의 생각과 직접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1996. 11. 월간 ‘국토정보’지에 서울도시계획이야기 7 ‘전재복구계획(하)’(을 제6호증)라는 제목의 글을, 1997. 12. 월간 ‘국토’지에 서울도시계획이야기 20 ‘여의도 건설과 시가지 형성되는 과정(하)’(을 제6호증)라는 제목의 글을 각 기고한 사실, 한편 피고 한겨레신문사 소속 기자들은 세종로광장계획과 관련된 도시계획 변경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손정목을 찾아가 손정목이 기억하고 있는 바를 청취한 다음, 손정목의 소개로 손정목이 기고한 위 글들을 열람하였고, ‘황토현광장 고시안’의 원형 광장 면적 70,700㎡을 그 중심점을 그대로 둔 채 ‘세종로광장 고시안’ 광장 면적인 33,228㎡으로 줄여보면, 즉 반지름 150m의 원형 광장을 반지름 102m의 원형 광장으로 줄여보면 여전히 그 광장계획 내에 원고 동아일보사의 사옥 부지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위 보도를 하게 된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피고들이 위 보도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주로 손정목의 진술 또는 그의 저서에 기초한 것일 뿐, ‘세종로광장 고시안’의 정확한 결정도면 등과 같은 물적증거에 기초하여 ‘세종로광장 고시안’의 광장계획선 내에 원고 동아일보사 부지가 포함되어 있었는지 여부 등을 명확히 입증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따라서 위 보도의 내용이 진실에 부합한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달리 생각해보면 오랜 세월이 지나 ‘세종로광장 고시안‘의 정확한 결정도면과 같은 확실한 물적증거를 확보하기 곤란한 상황임이 인정되므로(원고 동아일보사는 갑 제5호증의 2의 도면에 의하면 ‘세종로광장 고시안’의 광장계획선 내에 원고 동아일보사 부지가 포함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나, 위 도면만으로는 ‘세종로광장 고시안’의 광장계획선 내에 원고 동아일보사 부지가 포함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곤란하고, 가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문가가 아닌 피고들이 위 도면을 기초하여 원고 동아일보사 부지의 포함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여겨지며, 그 밖에 ‘세종로광장 고시안’이 예정한 광장의 범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증거를 피고측은 물론 원고측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달리 피고들로서도 사실확인을 위한 조사를 더 이상 진행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고, 한편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역임한 바 있는 도시계획분야의 권위자가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진술하고, 그가 발표한 저작물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존재하므로, 진실확인을 위한 목적하에서도 이를 그냥 덮어 둘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공개하여 여론을 환기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 보도는 보도내용 및 그 성격상 신속히 보도되어야 할 필요성이 적다고 보이는 반면, 위 보도로 인해 원고 동아일보사의 명예는 상당한 정도의 훼손이 예상되므로, 위와 같이 명백히 밝혀진 사실이 아님에도 ‘세종로광장 고시안’의 광장계획선 내에 원고 동아일보사 부지가 포함되어 있었고, 원고 동아일보사가 ‘세종로광장 고시안’을 결국 무산시켰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은 일응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하겠고, 피고들이 사실확인을 위해 필요한 조사의무를 다하였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바, 다만 궁극적인 위법성 조각사유의 인정 여부에 관하여는 뒤에서 다시 종합하여 판단하기로 한다. 4. 이 사건 제2 보도 및 만평에 관한 판단 가. 기초사실 (1) 서울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의 11.8km 구간은 1971. 4. 12. 착공이 시작된 이래 기존의 도로나 하천, 교량을 따라 개착식 공법(땅을 위에서부터 파는 공법)으로 공사가 진행되어 사유재산 건물을 헐거나 그 밑으로 지나가는 구간 없이 공사가 완료되었다. (2) 지하철 1호선의 시청역~종각역 구간의 곡선 반경은 약 140m(청량리 방향의 상행선 곡선반경 141m, 하행선이 136m)로 이는 현재 서울 지하철 1 내지 8호선 모든 구간을 통틀어 최급극선 구간에 해당하는바, 이와 같은 급곡선의 구간의 경우 보통의 직선구간이나 완만한 곡선구간에 비해 구간 통과시 탈선의 위험이 있어 속도를 줄여야 하고, 소음이 과다하게 발생하며, 레일의 마모가 심해 자주 레일을 교체하여야 한다(직선구간 레일교체 주기 약 10년, 시청역~종각역 구간 레일 교체 주기 약 3년). (3) 서울지하철 1호선이 완공되기 직전인 1974. 7. 8. 공포된 대통령령 제7201호에 의하면 지하철 선로의 곡선반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60m 이상(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135m)으로 설계되도록 되어 있다. (4) 지하철 1호선의 시청역~종각역 구간의 곡선 반경을 160m으로 할 경우 지하철 1호선 노선은 원고 동아일보사의 사옥 건물 밑을 통과하게 되고, 곡선 반경을 250m 이상으로 할 경우에는 원고 동아일보사 사옥의 뒤편 동쪽인 무교동과 서린동 일대를 통과하게 된다. (5) 지하철 노선의 설계과정은 통상 처음 노선을 산정하는 단계에서는 관련 기술자들이 현장을 답사하여 노선의 통과가능성을 조사하고 노선에 대한 측량을 하여 지형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건설규정에 맞게 선형을 확정하게 되고, 그 후 도시계획과정을 거쳐 도시계획시설로 결정하게 된다. 〔인정근거〕을 제8호증, 을 제9호증의 1, 2, 3, 을 제10호증, 을 제11호증, 증인 백영현의 증언 나. 명예훼손의 여부 (1) 보도 및 만평의 내용 중 원고 동아일보사가 문제삼는 부분의 요지 서울시는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할 당시 시청역~종각역 구간을 동아일보 사옥을 헐고 지나가는 완만한 곡선의 노선으로 설계하였으나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동아일보측의 반대로 직각에 가까운 급곡선을 그리는 노선으로 수정하였고, 이로 인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소음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잦은 레일 교체 등으로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 (2) 원고 동아일보사의 명예훼손 여부 위 보도 및 만평은 원고 동아일보사의 반대로 지하철 1호선의 노선이 원고 동아일보사를 빗겨 가는 것으로 설계가 변경되었고, 이로 인해 혈세가 낭비되고,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면서 그 과정에서 원고 동아일보사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겠는바, 이로써 원고 동아일보사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었을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하겠다. 다. 진실성 또는 상당성 앞서 본 기초사실에 의하면, 서울지하철 1호선의 설계기준상 곡선반경은 160m 이상이어야 함에도(위 설계기준상의 곡선반경은 지하철 1호선 노선을 설계함에 있어 실제 적용되었던 기준이 지하철 1호선이 완공될 즈음 대통령령에 의해 사후적으로 명문화된 것으로 보인다), 시청역~종각역 구간의 곡선 반경은 약 140m의 급곡선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이고, 한편 서울지하철 1호선 건설지(을 제8호증)에 의하면 ‘광화문에서 동아일보 사옥을 피하기 위해 급곡선 삽입’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사실이 인정되며, 증인 백영현의 증언에 의해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을 제9호증의 1, 을 제11호증, 을 12호증, 증인 백영현, 정광섭의 각 증언에 변론의 전취를 보태어 보면, 당시 지하철건설본부장으로 재임한 김명년은 시청역~종각역 구간 공사와 관련하여 곡선반경을 완만하게 그리며 원고 동아일보사 사옥 밑을 지나는 방안에 관하여 원고 동아일보사의 임원과 수 차례 협의를 한 사실, 피고 한겨레신문사 소속 기자들은 1977년부터 지하철건설본부에 근무하면서 지하철 설계와 시공감독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한 백영현을 찾아가 시청역~종각역 구간이 급곡선으로 건설된 경위에 관하여 취재를 하였는바, 위 백영현은 취재기자의 질문에 대해 당시 설계기준, 지리적 여건, 당시의 기술 수준과 소요 공사비 문제 등에 비추어 보면 곡선반경을 160m로 설계하여 지하철 1호선이 원고 동아일보사 사옥 밑을 지나가는 것이 최적의 노선임에도, 원고 동아일보사의 반대로 인해 현재와 같이 급곡선으로 설계된 것으로 알고 있고, 이와 같은 사실은 지하철 공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는 취지로 대답을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러한 사실들에 비추어 보면 시청역~종각역 구간의 선형이 당시 서울지하철 1호선의 설계기준(곡선반경 160m 이상)에 못 미치는 급곡선으로 결정된 데에는 다른 여러 원인(당시의 기술 및 공법의 수준, 소요 공사비 문제, 지리적 여건 등)도 작용하였겠지만 원고 동아일보사측의 반대가 상당한 변수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는 있다 하겠다. 그러나 피고들은 이에서 더 나아가, 위 보도 및 만평의 요지에서 본 바와 같이 마치 이미 존재하는 지하철 노선 설계안이 원고 동아일보사의 반대로 변경되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고 있는바, 신속한 보도의 필요성도 없는 이러한 사안에 대하여 서울시가 원고 동아일보사의 반대에 굴복하여 어쩔 수 없이 현재의 노선으로 지하철 1호선을 설계를 변경하였다고 볼 만한 뚜렷한 증거도 없이 위 백영현의 추측에 근거하여 원고 동아일보사를 ‘오만’한 언론사로까지 매도하여 그 명예를 손상한 것은 지나치다 할 것인바, 다만 궁극적인 위법성 조각사유의 인정 여부에 관하여는 뒤에서 다시 종합하여 판단하기로 한다. 5. 이 사건 제3 보도 및 만평에 관한 판단 가. 기초사실 (1) 원고 동아일보사는 1993. 1. 경 황영조 선수의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제패를 기념하는 사업, 원고 동아일보사의 별도 재단법인인 ‘동아꿈나무 장학재단’ 소유의 경기 양평군 소재 임야 32만 평(이하 ‘이 사건 임야’라 한다)에 마라톤 전용 훈련코스와 연수원 기념관 등을 건립, 운영하는 사업 및 원고 동아일보사가 주최하는 동아마라톤 대회를 국제대회로 승격시키기 위한 사업 등을 수행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로 하고, 이를 사고를 통해 적극 홍보하는 한편, 설립될 재단의 사업 수행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모금운동을 벌였다. (2) 위와 같은 경위로 1995. 12. 원고 마라톤 재단이 설립되었고, 위 모금운동의 결과 2000. 12. 31.을 기준으로 총 4,934,274,214원이 모금되었는데, 이자 등 수입으로 금 3,941,350,831원이 발생하여 원고 마라톤 재단의 기금자산은 금 6,629,508,556원으로 불어났다. (3) 이 사건 임야는 원래 농림․준농림지역인데다 시설물 건립이 강력히 규제되는 수질보전특별대책 1 권역으로 묶여 있는 지역이어서 전용 마라톤 훈련코스와 연수원 기념관 등을 건립,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설용지지구로의 용도변경이 필요한바, 원고 마라톤 재단이 양평군으로부터 이 사건 임야의 일부에 관한 국토이용계획변경 결정을 받은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가) 원고 마라톤 재단은 1995. 3. 22. 이 사건 임야에 타원형으로 마라톤 코스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서를 양평군에 제출하였으나 ‘타원형’ 개발계획은 불가하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나) 같은 해 4. 22. ‘공공시설 입지 승인신청’을 하였으나, 마라톤 코스가 공공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다) 같은 해 11. 23. 국토이용계획 변경 대상 면적을 늘리고, 이 사건 임야에 눈썰매장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포함한 국토이용계획변경신청서를 제출하였으나, 눈썰매장과 같은 불필요한 시설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라) 1997. 2. 13. 국토이용계획변경을 다시 신청하면서 대상면적을 14만 9천 ㎡로 줄여 신청하였고, 양평군은 이를 승인하여 1997. 6. 해당 면적의 국토이용계획을 변경하는 결정을 하였다. (4) 원고 마라톤 재단은 매년 사업계획 및 실적 보고서를 종로구청에 제출하였는바, 1996.부터 2002.까지 제출한 사업계획 및 실적 보고서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실제 집행된 내역 ① 동아마라톤지원금으로 1996년 금 2억 7,065만 원, 1997년 금 3억 5,000만 원, 1998년 금 3억 원, 1999년 금 3억 원, 2000년 금 5억 원, 2001년 금 3억 원, 2002년 금 5억 8,000만 원을 각 집행하였다. ② 마라톤 코스개발비 명목으로 1996년 금 993만 원(거래업체 양평군), 1997년 1억 1,260만 원(거래업체 양평군), 1998년 4,250만 원(거래업체 천일기술단)을 각 집행하였다. (나) 사업계획서에는 포함되어 있으나 실제 집행이 되지 아니한 내역 ① 1997년 훈련장건립비로 금 1억 원, 1998년에 전문훈련장 건립비로 금 5천 만원, 1999년, 2000년에는 각 코스개발비로 금 3천 만원을 각 집행하겠다는 내용의 사업계획서가 종로구청에 제출되었으나, 각 해당 연도에 실제 집행되지 않았다. ② 원고 마라톤 재단은 2001. 1. 30. 이사회를 개최하여 이 사건 임야의 매입 계획을 의결하고, 2001년에는 동아마라톤지원금으로 금 3억 원을, 기념관 및 훈련장 부지구입비로 금 15억 원을, 대한육상연맹 지원금으로 금 2,000만 원을 각 집행하겠다는 내용의 사업계획서를 종로구청에 제출하였으나, 위 동아마라톤지원금만 실제 집행되고 나머지 기념관 및 훈련장 부지구입비 및 대한육상연맹 지원금은 집행되지 않았다. (5) 원고 동아일보사는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꿈나무장학재단’의 활동에 대하여는 해마다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구체적인 사업내역을 소개하였으나 원고 마라톤 재단의 활동 내역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밝힌 바가 없다. 〔인정근거〕다툼 없는 사실, 을 제13호증의 1, 2, 을제41호증의 1, 2, 3, 을 제58호증의 1 내지 8, 을 제59호증의 1 내지 25, 이 법원의 종로구청장에 대한 사실조회결과 나. 명예훼손 여부 (1) 위 보도 및 만평 중 원고 동아일보사 및 원고 마라톤 재단이 문제삼는 부문의 요지 (가) 원고 동아일보사 및 원고 마라톤 재단은 이 사건 임야에 마라톤 훈련장 건립하겠다는 약속을 앞세워 국민성금을 통해 40억 원이라는 거금을 모금하였으나 모금된 돈의 사용처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즉 위 원고들은 지금까지 모금한 거금의 돈으로 자사 마라톤대회 지원 사업에만 성금의 1/3이 넘는 돈을 지원하였을 뿐 우선 추진사업으로 내세웠던 마라톤 전용훈련장 건립 사업 등은 8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그 부지 매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특히 마라톤 전용훈련장 건립 예정지인 이 사건 임야는 수질보전특별대책 1 권역으로 묶인 상태여서 애초 불가능한 사업을 내세워 모금활동을 벌인 것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된다. 원고 마라톤 재단의 이와 같은 기금운용에 대해 대한육상연맹은 기금운영권을 넘겨받는 문제를 검토하는 등 불만을 제기하고 있고 국세청도 원고 마라톤 재단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는바, 원고 마라톤 재단은 언론사 세무조사와 피고 한겨레신문사의 취재가 진행되자 종로구청에 2001. 사업계획 및 실적보고서를 냈으며, 처음으로 양평 마라톤 훈련장 건립사업을 사업계획서에 포함시켰다. (나) 원고 동아일보사 및 원고 마라톤 재단은 이 사건 임야를 개발하기 위해 이 사건 임야에 대한 규제를 풀기 위해 환경부와 양평군에 여러 차례 강력한 요청을 하는 등 무리한 용도변경을 시도하였고, 나아가 그 과정에서 이 사건 임야에 마라톤 육성과는 무관한 눈썰매장을 설치해 영리 목적의 사업을 추진하려한 것이 드러나 마라톤 육성과는 무관한 곳에 국민성금을 사용하려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원고 동아일보사측의 해명과는 달리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의 사업계획서에는 마라톤 전용 훈련장 건립과 관련된 사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 원고 마라톤 재단은 2000년 육상연명에 매년 1,000만 원 내지 2,000만 원씩 지원하기로 하고 처음으로 1,000만 원을 지원금으로 지급하고도 2000년 사업실적에 이를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한편 원고 동아일보사측은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꿈나무장학재단’의 활동에 대하여는 거의 해마다 한 차례씩 지면을 통해 구체적인 사업내역을 소개하면서도 원고 마라톤 재단의 활동 내역에 대해서는 종로구청에 형식적인 보고서를 제출하는 외에는 이를 밝히고 있지 않은 바,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국민성금의 조성과 운영 과정이 불투명하고 매끄럽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 원고 동아일보사 및 원고 마라톤 재단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 (가) 위 보도 및 만평은 원고 동아일보사 및 원고 마라톤 재단이 동아마라톤 대회 지원에만 열을 올리고 당초 약속과는 달리 마라톤 전용 훈련장 건립과 관련된 사업은 이를 제대로 추진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초 마라톤 전용 훈련장 건립 약속의 순수성과 약속실현의 의지를 의심할 만한 여러 정황들(이 사건 임야는 수질보전특별대책 1 권역으로 묶인 땅이라는 점, 이 사건 임야는 원고 동아일보사가 운영하는 또 다른 재단의 소유라는 점,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시작하자 사업계획서에 마라톤 전용 훈련장 건립과 관련된 사항이 처음 포함되었다는 점, 이 사건 임야에 마라톤 육성과는 무관한 눈썰매장을 설치하려 한 점, 육상연맹이 원고 마라톤 재단에 불만을 표시하였다는 점 등)을 적시하고, 나아가 국민성금의 조성과 운영과정이 불투명하고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여 위 원고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고 있음이 인정된다. (나) 그런데 위 원고들은 더 나아가 원고 마라톤 재단이 이 사건 임야의 국토이용변경계획을 승인받는 과정에서 환경부, 양평군에 무리한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음에도, 피고들은 마치 위 원고들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였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여 위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피고들이 별지 제5 목록 기재 기사의 소제목으로 ‘용도변경 잇단 압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별지 제9 목록 기재 기사의 큰 제목으로 ‘용도변경 집요한 줄다리기 2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사실은 인정되나, 별지 제5 목록 기재 기사의 해당부분 기사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원고 마라톤 재단이 이 사건 임야의 규제를 풀기 위해 환경부와 양평군에 여러 차례 ‘강력한 요청’을 하였다는 내용에 불과하고, 별지 제9 목록 기재 기사는 원고 마라톤 재단이 양평군에 수차례 용도변경을 신청한 끝에 2년여 만에 최종 허가를 받게된 과정을 자세히 소개한 내용일 뿐이며, 위 각 기사 본문 어디에도 원고 동아일보사 또는 원고 마라톤 재단이 환경부, 양평군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였다는 취지의 표현이 발견되지 않으므로, 소제목 또는 큰 제목에서 ‘압력’ 또는 ‘집요한 줄다리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만으로는 원고 마라톤 재단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였다는 사실을 적시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할 것이므로, 이 부분 원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고 하겠다. 다. 진실성 또는 상당성 (1) 앞서 본 기초사실과 위 보도 및 만평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원고 동아일보사 및 원고 마라톤 재단이 국민성금으로 자사 마라톤대회 지원 사업에만 대부분의 돈을 집행하고 마라톤 전용훈련장 건립 사업 등은 8년여가 지나는 동안 부지 매입조차 하지 아니한 사실, 원고 마라톤 재단이 이 사건 임야에 눈썰매장을 설치해 영리 목적의 사업을 추진하려한 사실, 이 사건 임야는 원고 동아일보사가 운영하는 별도 재단의 소유이고, 수질보전특별대책 1 권역으로 묶여 있던 땅이라는 사실, 원고 마라톤 재단의 활동 내역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밝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각 진실에 부합한다고 할 것인바, 그렇다면 위 보도 및 만평은 그 주요 내용이 대체로 진실에 부합하거나 진실한 사실에 기초한 의혹제기라고 봄이 상당하고, 나머지 부분에 다소 사실과 다른 부분 또는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더라도 피고들에게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명할 정도의 위법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2) 이처럼 위 보도 및 만평은 그 주요 내용이 대체로 진실에 부합하거나 진실한 사실에 기초한 의혹제기라고 이해되지만, 이하에서는 위 보도 및 만평의 내용 중에서 원고 동아일보사 및 원고 마라톤 재단이 보도의 진위 여부를 적극 문제삼으며 다투는 부분에 관하여 따로 살펴 봄으로서 위와 같은 결론을 보충하기로 한다. (가) 위 원고들은 마라톤 코스개발비 명목으로 1998년 4,250만 원, 1999년, 2000년에는 각 금 3천 만원을 각 집행하겠다는 내용의 사업계획서가 종로구청에 제출된 바 있음에도, 피고들은 원고 마라톤 재단이 종로구청에 제출한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의 사업계획서에 마라톤 전용 훈련장 건립과 관련된 사항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보도하였는바,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별지 제7 목록 기재 기사를 살펴보면 마라톤 코스개발비 명목으로 1998년 4,250만 원, 1999년, 2000년에는 각 금 3천 만원을 각 집행하겠다는 내용의 원고 마라톤 재단의 사업계획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면서도 전용훈련장 사업계획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바, 이는 피고들이 위 마라톤 코스개발비가 마라톤 전용 훈련장 사업계획과 무관한 것으로 오해한 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피고들이 위와 같이 위 마라톤 코스개발비가 사업계획서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아니한 채 그대로 보도하였다는 점, 앞서 본 바에 의하면 원고 마라톤 재단은 1999년, 2000년 마라톤 코스개발비를 사업계획서에 포함시켰지만 실제 집행은 하지 않았다는 점, 피고들은 전용훈련장 사업의 진행을 부지 매입 및 공사착공으로 한정하여 이해한 나머지 코스개발비는 전용훈련장 사업계획과 무관하다고 이해하였을 뿐 취재로 알게된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숨기려 한 것은 아니라고 여겨지는 점, 코스개발비 지출계획이 동아마라톤 지원금 지출계획에 비해 현저히 소액이라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사업계획서에 마라톤 전용 훈련장 건립과 관련된 사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취지의 보도는 대체로 진실에 부합하거나 적어도 피고들이 진실하다고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나) 또한 위 원고들은 국세청의 원고 마라톤 재단에 대한 세무조사 방침은 2001. 1. 31.에 전격적으로 발표되었고, 원고 마라톤 재단은 그 바로 전날인 2001. 1. 30. 이사회를 개최하여 이 사건 임야의 매입 계획을 의결하는바, 세무조사가 들어가자 훈련장 부지구입비를 사업계획서에 포함시켰다는 취지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다툰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김대중 전대통령이 2001. 1. 11.경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한 것을 전후하여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실시를 요구하는 등의 여론이 있었다는 점, 원고 마라톤 재단이 종로구청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시기는 국세청의 세무조사발표 이후일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세무조사 들어가자 부지매입계획을 사업계획서에 포함시켰다는 취지로 보도하였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큰 무리가 있다고 보이지는 않고, 또한 이 사건 제3 보도 및 만평의 주된 취지는 원고 마라톤 재단이 전용훈련장 건립 등을 약속하고도 원고 동아일보사의 동아마라톤 대회 지원에만 막대한 돈을 집행하고 8년여 동안 마라톤 훈련장 부지 매입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비난의 여론이 있자 2001년에 와서야 부지 매입 자금으로 15억 원을 계상하였음을 지적하려는 데에 있다고 이해되고 이러한 지적은 앞서 본 바와 같이 대체로 진실에 기초한 것으로 볼 것인바, 이러한 이 사건 제3 보도 및 만평의 주된 취지에 다소 벗어나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원고 마라톤 재단의 부지 매입 결의 사이의 선후관계 또는 인과관계를 오해하고, 이에 기초하여 의혹을 제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의혹제기가 별도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다) 다음으로 원고들은, 2000년 육상연명에 지급한 1,00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한 것은 원고 동아일보사이지 원고 마라톤 재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고들은 마치 원고 마라톤 재단이 지원금을 지급하고도 이를 실적보고서에 반영하지 않는 등 기금운영을 부실하게 하고 있다는 취지의 허위보도를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살피건대, 을 제 22호증의 1(이대원과의 전화녹취록), 2(이규섭과의 전화녹취록), 을 제44호증의 각 기재, 증인 정광섭의 증언, 변론의 전취지에 앞서 본 기초사실을 보태어 보면, 피고 한겨레신문사 소속 정광섭 기자는 육상연맹 위원장 겸 원고 마라톤 재단 이사인 이대원, 육상연맹 사무국장 이규섭을 차례로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육상연맹 내부 일각에서 원고 마라톤 재단의 기금운용에 불만의 목소리가 있고, 심지어 기금운영권을 되찾아 오는 방안까지 논의된 적이 있으며, 대한육상연맹측이 원고 마라톤 재단측에 수차 마라톤 꿈나무 양성을 위한 지원금을 요구하여 2000년부터 매년 1,000 내지 2,00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받기로 약속 받고 그 해 곧바로 1,00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받았음을 확인한 사실, 그런데 원고 마라톤 재단의 2000년 실적보고서에는 대한육상연맹에 대한 지원금 집행내역이 없고, 그 대신 2001년 사업계획서에 육상연맹에 지급할 지원금으로 금 2,000만 원이 책정되어 있는 사실(위 원고들은 2000년에 지급된 육상연맹 지원금은 원고 동아일보사가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2001년부터 지원 주체가 원고 동아일보사에서 원고 마라톤 재단으로 갑자기 바뀌었다는 것인지, 바뀌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하여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이 각 인정되는바, 사정이 이와 같다면 피고들이 육상연명에 지급된 1,000만 원의 지원금이 원고 마라톤 재단의 돈으로 믿은 데에는 그럴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이에 기초하여 원고 마라톤 재단이 기금운영을 부실하게 하고 있다는 취지의 의혹제기를 하여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6. 이 사건 제4 보도에 관한 판단 가. 기초사실 (1) 동아일보 체육부 이길용 기자는 1936. 8. 25.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주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딴 사건을 보도하면서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수상 사진에서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워 이를 보도하였다(이를 편의상 ‘일장기 말소 사건’이라 칭한다). (2) 일장기 말소 사건에 대해 일본 경찰은 이길용 기자 등 8명을 구속하였고, 조선총독부는 원고 동아일보사측의 책임을 물어 동아일보의 무기정간을 명하는 처분을 내렸는바, 그 후 이길용 기자 등은 앞으로 언론기관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경찰에 제출하고 구석에서 풀려났다. (3) 동아일보사가 1976년 발간한 〈인촌 김성수전〉은 일장기 말소 사건에 대한 당시 원고 동아일보사의 사주 인촌 김성수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보전 이사실에서 이 사실을 전화로 연락받은 인촌은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점점 험악해져 가는 시국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 해도 무기정간이 내릴 것은 틀림없었다. 제2, 3차 무기정간 처분의 이유가 되었던 외국인의 메시지나 축사의 비가 아니었다. 제1차 무기정간을 가져온 ‘삼종신기’도 간접으로 그것을 건드렸던 것이고, 또 시대가 그때와 달랐다. 몇 달 전 동경에서 이른바 황도파 장교들이 내대신 사이또오, 장상 다까하시 등 중신을 살해한 소위 2.2 사건 때도 그들이 내세운 구호가 국체명징이었고, 국기는 그 국체의 상징인 것이다. 급히 동아일보사로 오는 자동차 속에서 인촌은 히노마루 말소는 몰지각한 소행이라고 노여움과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린데서 오는 순간의 쾌와 동아일보가 정간되거나 영영 문을 닫게 되는데서 오는 실을 생각하여 그 답은 분명하였다. 산란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던 인촌은 도중에 문제의 신문을 구해서 그 사진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민족의 정기가 농축되어만 가고 변절하는 유명무명의 군상이 늘어가는 세태를 볼 때, 히노마루의 말소는 잠자려는 민족의식을 흔들어 놓은 경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에 대한 탄압은 민족대표지로서 쾌히 지고 가야할 십자가라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4)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대의에 죽을 때-황민됨의 책무 크다’라는 김성수 명의의 친일 논설이 1943. 11. 매일신보에, ‘문약을 버리고 상무기풍 조장하라’라는 김성수 명의의 친일 논설이 1943. 8. 5.자 매일신보에 각 게재되었다. 나. 명예훼손 여부 (1) 위 보도 중 원고 동아일보사 및 원고 인촌기념회가 문제삼는 부분의 요지 (가) 일장기 말소 사건에 대하여 원고 동아일보사의 당시 사주였던 김성수는 몰지각 한 소행이라고 생각하여 노여워 하였고, 동아일보사는 이길용 기자와 관련자들을 쫓아내었다. (나) 김성수는 1943.경 매일신보에 기고한 친일논설들을 통해 일제를 찬양 등 친일행적을 보였다. (2) 원고 동아일보사 및 원고 인촌기념회의 명예훼손 여부 위 보도는 원고 동아일보사인 발간하여 온 동아일보의 친일 곡필을 밝히겠다는 의도하에서 이루어 진 것으로, 동아일보를 창간, 경영한 김성수의 친일행적을 적시함으로써 원고 동아일보사와 원고 인촌기념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고 있음이 인정된다. 다. 진실성 또는 상당성 (1) 원고 동아일보사 및 원고 인촌기념회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 〈인촌 김성수전〉의 전체적인 내용은 일장기 말소 사건을 접한 김성수가 처음에는 동아일보의 폐간 사태를 우려하여 이일용 기자의 행위를 몰지각한 소행으로 생각하여 노여워하였으나, 곧이어 민족혼을 일깨운 행위로 생각하고 이일용 기자의 행위를 지지하였음을 기술하고 있음에도, 피고들은 일장기 말소 사건에 대한 김성수의 반응을 보도함에 있어 의도적으로 〈인촌 김성수전〉의 일부 내용 만을 발췌하여 김성수를 친일파로 매도하였다. (나) 이길용 기자 등은 일제에 언론기관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쓰고 동아일보에서 자진 사퇴한 것이지 동아일보사가 쫓아 낸 것이 아니다. (다) 매일신보에 김성수 명의의 게재된 친일논설은 사실은 매일신보 기자인 김병규가 김성수의 이름을 빌어 대필한 것이다. (2) 판 단 먼저, 〈인촌 김성수전〉의 일부 인용 문제에 관하여 보건대, 별지 제10목록 기재 기사의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위 기사는 전체적으로 동아일보의 친일적 보도행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그 주를 이루면서 이러한 동아일보의 친일적 보도행태를 당시 사주였던 김성수의 친일행적과 연관시키기 위해 그의 친일행적에 관한 여러 일화 중의 하나로 일장기 말소 사건에 대한 그의 반응의 일부를 소개한 것으로 보이는바, 피고들이 독자들에게 보도내용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인용하였음을 밝힌 〈인촌 김성수전〉의 관련부분 내용은 일제치하에서 민족적 장거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단선적인 입장에 머무를 수만은 없었던 언론사 사주로서의 복잡하고 괴로운 심경이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의도에 맞는 부분만을 발췌하여 그 주장의 근거로 삼은 것은 책임 있는 언론사로서의 보도태도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인다. 다음으로, 동아일보사가 이길용 기자 등을 쫓아 내었다는 표현에 관하여 보건대, 을 제23호증의 1, 2, 3, 4의 각 기재에 의하면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가 무기 정간처분을 받은 이후 당시 동아일보사 사장 송진우는 조선총독부 등을 찾아가 일장기 말소 사건은 기자의 독단으로 저질러 진 것에 불과하니 동아일보의 정간처분을 해제해 줄 것을 요청한 사실, 그 후 원고 동아일보사는 1937. 6. 2. 동아일보를 속간하면서 ‘지면을 쇄신하고 대일본제국의 언론기관으로서 공정한 사명을 다하고 조선통치의 익찬을 다하겠다’는 취지의 속간사고를 게재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으나, 이러한 정도의 인정사실을 근거로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킨 일장기 말소 사건의 한 주역인 이길용 기자와 관련자들을 동아일보사가 쫓아내었다고 적시한 것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지나친 표현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궁극적인 위법성 조각사유의 인정 여부에 관하여는 위 〈인촌 김성수전〉 관련 부분과 함께 뒤에서 다시 종합하여 판단하기로 한다. 끝으로 김성수 명의의 게재된 친일논설이 사실은 김성수가 직접 쓴 글이 아니라는 주장에 관하여 보건대, 가사 문제의 친일논설들이 김병규의 대필에 의한 글들이라 할지라도, 위 원고들이 자인하는 바에 의하면 김병규는 친일논설들을 게재하기에 앞서 김성수에게 글의 내용을 보이고, 김성수가 그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도록 한 이후에 대필한 친일논설을 매일신보에 게재하였다는 것인바, 김성수가 만인이 보는 신문에 자신의 이름으로 글이 게재되리라는 사정을 잘 알면서 사전에 글의 내용을 확인하고 그 게재를 용인하였다면 그와 같은 경위로 게재된 글은 김성수 자신의 글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여겨지므로, 피고들이 김성수가 위 친일논설을 기고하였다고 보도한 것은 진실에 부합하거나 피고들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다만, 피고들이 이러한 내용의 보도를 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이들의 주장 사이의 틈은 이렇게 크다’는 식으로 마무리를 지어 마치 김성수가 변명의 여지없이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를 하였고 후에 이러한 과거행적에 대하여 변명으로 일관하였다는 듯한 표현에까지 이르른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 보이기도 하나, 위 보도의 주된 내용이 일제 말기에 친일적 논설들을 통하여 친일행적을 보였다는 점에 있고 위 부분은 이를 다소 과장하면서 마무리 지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이상 이 부분 보도에 관하여 피고들에게 어떠한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하겠다. 7. 이 사건 제5 보도 및 만평에 관한 판단 가. 명예훼손 여부 (1) 위 보도 및 만평 중 원고 동아일보사가 문제삼는 부분 (가) 자신들의 부도덕한 행태와 치부가 드러나자 족벌신문들은 그동안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들을 괴롭혀온 수법대로 자사 기자들을 동원해 〈한겨레신문〉에 대한 뒷조사를 한다거나,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별지 제12 목록 기재 기사 중 일부). (나) ‘족벌신문’이라고 이름을 적은 두 남자가 검은 색안경을 쓴 채 망원경으로 한겨레신문사 건물을 정찰하고 있고, 그 옆에 ‘옛 안기부직원’이라고 지칭된 남자가 “오, 또 저것들 뒷조사해? 예전에 우리도 광고탄압하고 별 수 다 써봤는데... 잘해봐. 파이팅”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그린 만평(별지 제4 기재 만평) (2) 원고 동아일보사의 명예훼손 여부 위 보도 및 만평은 원고 동아일보사가 과거 정보기관 직원들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의 뒷조사를 하고 다니는 집단으로 표현 또는 묘사하여 원고 동아일보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이에 대하여 피고들은 위 보도 및 만평에서 지칭하는 족벌신문은 조선일보를 지칭하는 것이고 원고 동아일보사 또는 동아일보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다투나, 위 보도는 명백히 ‘족벌언론사들’로 그 대상을 복수로 지칭하고 있다는 점,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 한겨레신문사는 위 보도 이전에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동아일보를 그 직접 상대로 하여 〈심층해부 언론권력〉이란 제목의 시리즈기획기사를 연일 보도하여 왔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보도 및 만평이 지칭하는 족벌신문사들에는 원고 동아일보사도 포함되어 있음을 보통의 독자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나. 진실성 또는 상당성 그러므로 살피건대, 피고들은 을 제38호증의 1 내지 3의 각 기재를 근거로 조선일보사가 피고 한겨레신문사의 직원들의 뒷조사를 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사정만으로는 원고 동아일보사가 피고들의 뒷조사를 하였음을 인정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원고 동아일보사가 피고들의 뒷조사를 하였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8. 이 사건 제6 보도에 관한 판단 가. 기초사실 (1) 1974. 10. 24. 동아일보사 기자 180 여명이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떤 외부 간섭도 배제한다’는 내용의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나섰고, 그 후 당시 유신정권하에서 금기시되던 유신반대시위 등에 관한 기사가 동아일보를 통해 보도되기 시작하였다. (2) 1974년 12. 경부터 원고 동아일보사와 광고계약을 체결한 광고주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한꺼번에 계약을 해지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계약체결을 기피하는 사태(이하 ‘광고탄압사태’라 한다)가 발생하여 원고 동아일보사는 광고란이 백지인 상태로 신문을 발행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원고 동아일보사는 같은 달 27.경 동아일보의 광고란에 독자들의 광고게재를 부탁하는 ‘동아일보 신문광고 피아르1’을 실었는바, 이후 독자들로부터 성금기탁과 격려광고 의뢰가 쇄도하였다. (3) 독자들의 성금과 격려광고가 줄을 이었으나 원고 동아일보사의 경영상태는 현저히 악화되었고, 이에 원고 동아일보사는 경영악화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1975. 2. 28. 주주총회를 개최하여 임원 7명을 사임하도록 하여 그들의 급여등 경비를 절감하는 한편, ① 일부 사원들의 거듭된 사규문란 행동(위계질서 문란 행위, 무허가 집회 개최 행위, 무허가 유인물 배포행위 등)을 주시하면서 모든 방법을 다하여 조속히 사내의 질서와 기강을 확립하고, ② 원고 동아일보사의 여러 기구들 중 불요불급한 사업과 기구를 정비하고 기타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경영을 합리화한다는 내용의 결의를 하였다. (4) 위와 같은 주주총회결의에 따라, 원고 동아일보사는 같은 해 3. 8. 심의실, 편집국 기획부와 과학부, 출판국 출판부 등 3부 1실을 폐지하고 소속사원 18명을 해임한다고 공고하였다. (5) 한국기자협회 동아일보사 분회(이하 ‘기협분회’라 한다) 및 그 집행부 보좌기관인 자유언론실천 특별위원회(이하 ‘실천특위’라 한다) 등에서 활동해온 사원들은 위와 같은 원고 동아일보사의 기구축소 및 해임조치에 대해 반발하면서 원고 동아일보사측에 집단해고의 철회를 요구하였으나, 원고 동아일보사측은 같은 달 10. 기존 방침을 고수하는 한편, 장윤환 전 기협분회장 등 2명을 허가를 받지 않은 유인물을 배포하고, 이동욱 주필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해임하였다. (6) 위와 같은 2명의 추가해임에 대해, 기협분회 소속 일부 기자들은 같은 달 12.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경영진의 대량해고를 자유언론을 주장, 실천하는 기자들을 구조적 제도적으로 제거하려는 작업으로 비난하는 한편, 해직사원 20명의 복직을 요구하며 제작거부를 결의한 후, 편집국, 공무국 등을 점거하여 농성을 시작하였다(이후 원고 동아일보사의 사원은 크게 제작거부파와 제작참여파로 나뉘었다). (7) 원고 동아일보사는 신문 및 방송의 제작이 제작거부파의 점거농성으로 파행으로 치닫자 기협분회 간부 전원을 포함한 17명을 추가로 해임하는 한편, 같은 달 13. 동아일보 사고를 통해 ‘광고탄압이라는 외우와 사원들이 하극상을 함부로 하는 내환 속에서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인사조치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8) 원고 동아일보사가 같은 달 17. 농성중인 사원들을 강제로 해산시키자, 강제해산된 다음날인 같은 달 18. 해임기자들과 제작거부 및 점거농성에 가담했던 사원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 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라 한다)를 결성하고 출근을 거부한 채 매일 아침 회사 정문에 도열하여 시위를 벌였다. (9) 원고 동아일보사는 같은 달 27. 제작거부파 직원 12명을 추가해임하고, 7명을 무기정직시키는 한편, 강제해산 이후 출근을 거부하는 사원들에게 같은 달 31.까지 출근할 것을 종용하는 서한을 발송하였다. (10) 원고 동아일보사는 같은 해 4. 11. 그 때까지 출근을 거부하는 사원 75명에 대하여 무기정직 처분을 내렸는바, 이로써 원고 동아일보사는 1975. 3. 8. 기구축소를 이유로 18명을 해임한 이래 5. 1.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49명을 해임하였고, 84명에 대하여 무기정직 처분을 내렸으며, 무기정직 처분을 당한 사원들 대부분은 6개월이 지나도록 복직명령이 없어 해임되었다. 〔인정근거〕갑 제17호증의 기재, 증인 김인호의 증언 나. 명예훼손 여부 이 사건 제 1 보도내용 중 원고가 문제 삼는 부분의 요지는 ‘동아일보의 당시 사장인 김상만은 유신정권의 광고탄압에 적극적으로 싸울 의지가 부족했고, 자유언론실천운동을 펼치며 유신정권에 맞서 싸운 기자들은 정권과 결탁한 사주에 의해 해직되었다’는 부분인바, 위 내용은 원고 동아일보사가 당시 독재정권과 결탁하여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기자들을 해고하였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이로써 원고 동아일보사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었음이 인정된다. 다. 진실성 또는 상당성 (1) 먼저 위 보도 내용 중 동아일보의 한 관계자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김상만 사장이 광고탄압에 적극적으로 싸울 의지가 부족했다고 적시한 부분에 관하여 보건대, 을 제27호증의 기재 및 증인 김인호의 증언에 의하면, 위 보도 내용은 피고 한겨레신문사 편집국 기자 권혁철이 1972년부터 1977년까지 원고 동아일보사의 광고국장으로 재직한 김인호를 인터뷰한 후 그의 진술을 왜곡하거나 과장함이 없이 그대로 보도하였음이 인정되고 또한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원들이 제작거부파, 제작참여파 등으로 나뉘고 많은 사원들이 해임 내지 무기정직까지 당하기에 이른 점을 고려하면 김상만 사장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싸울’ 의지가 ‘부족’했다는 정도의 판단을 내릴 수는 있다고 보이는바, 적어도 피고들이 위 보도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2) 다음으로, 사주가 유신정권과 결탁하여 유신정권에 맞서 싸우던 기자들을 해임하였다는 부분에 관하여 본다. 살피건대, 원고 동아일보사가 1975. 3. 8. 18명의 사원들을 해고한 이래 한 달여 동안 무려 130여 명의 직원에 대하여 해고 또는 무기정직처분을 내린 일련의 조치들은 일응 광고탄압사태로 빚어진 극심한 경영난을 타개하고 일부 과격한 사원들의 제작거부, 점거농성, 출근거부에 대한 징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한편, 당시 원고 동아일보사가 광고탄압사태로 인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최초 18명을 해고한 것은 일응 적법한 경영상의 판단이라 하더라도, 이후 허가를 받지 않은 유인물을 배포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추가로 2명을 해고한 것은 경영난 타개와는 무관하게 사내 질서 기강을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내려진 조치로 보이는바, 이로 인해 원고 동아일보사의 사원들이 제작참여파와 제작거부파로 나뉘어 대립이 시작되고, 제작참여파와 경영진 사이에도 갈등이 증폭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는 점, 당시 자유언론을 주장하는 기자들이 주로 제작거부와 점거농성에 참여하면서 20여 명의 해직사원들의 복직을 요구함에 대해, 원고 동아일보사측은 대화를 통한 원만한 사태 해결보다는 강제해산과 해고, 무기정직처분 등 강경한 조치들로 일관하며 무려 130여 명에 이르는 기자 및 사원들을 해고하였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 동아일보사가 해고 또는 무기정직처분으로 일관한 조치는 최초 경영난 타개를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하여도, 그 과정에서 최초의 의도가 변질되어 종국에는 사내 질서와 기강을 확립한다는 명분하에 당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주도하며 유신정권과 긴장관계에 있던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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