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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자유언론실천투쟁 영상기록 [9-4]출소 그리고 동지들과의 영별 (17분 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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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5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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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면회 와서 동아투위 몇 분이 나왔다고 해서 나도 빨리 나가야 하는데, 11월 30일에 교도관이 와서 원래는 오늘 나가야 되는데 14일 더 살고 나가라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78년인가, 77년인가 원주에서 김지하 시인 석방을 촉구하다가 원주구치소에서 이십며칠  구류를 받았는데 지학순 주교님이 어떻게 항의를 해서 14일 만에 집행유예로 나왔어요. 그때 남은 외상값이 14일 정도였던 겁니다. 2층에 방이 한 20개 되는데 결국 나 혼자 남게 됐습니다."

"1975년 3월 17일에 쫓겨난 뒤 현재까지 스무 명이 넘는 분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조민기 피디가 원래 심장이 안 좋았어요. 신장투석도 하고 그랬는데 77년 1월에 돌아가셨죠. 최초의 희생자인데 그때 한빛교회에서 장례식을 민주사회장으로 했습니다.
안종필 위원장의 경우 감옥에서 30분씩 운동을 하는데 79년 여름부턴가 갈 수록 힘들어하기 시작했습니다. 12월 7일 감옥을 나간 뒤 간암 진단을 받았어요. 1980년이 윤년이라 2월달에 29일이 있었습니다. 80년 2월 29일 이날 돌아가셨어요. 나가서 석 달도 못 사신거죠.
홍종민 총무의 경우는 80년 5월 민주화가 돼서 우리도 복직할 수 있지 않겠나 해서 밤새 수유리 명상의 집에서 위원들이 모여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계곡에 웬 수상한 자 둘이 오는데 나중에 보니 북부서 정보과 형사였습니다. 일단 해산을 하고 각자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홍종민 씨는 저하고 둘이서 행동을 하다가 밤이 늦어지니 집에 가겠다며 집에 갔습니다. 착한 사람이라 "난 석방된 이후 한 거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는 거예요. 여러 차례 "일단 지금은 피하는게 좋겠다"고 말렸는데 부득부득 집에 가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다가 결국 남영동으로 연행돼갔고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남영동에서 풀려나온 이후 고문당한 얘기를 우리들한테 잘 안 했어요. 굉장히 건강했던 사람인데 남영동에 한 20여일 끌려갔다온 이후에 심신 아주 허약해졌던 것 같은 느낌을받았습니다. 결국 그게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 진행 : 이명재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
- 출연 : 박종만(동아투위 위원), 김종철(동아투위 위원)
- 총괄 책임 : 김춘효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 부위원장)
- 촬영ㆍ연출ㆍ편집 : 김력균 PD
- 일시 및 장소 : 2017년 6월 15일 국민TV 카페
- 제작지원 : PD연합회, 언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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