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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ㆍ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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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2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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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닌 드보르작. 사진 출처 = 위키백과

드보르작은 험상궂게 생긴 얼굴 덕분에 프라하 음악원 교수 시절 ‘불독’이란 별명을 얻었다. 학생들은 그를 보면 “불독 지나간다”며 킥킥대곤 했다. 드보르작은 학생들을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그래, 나 불독 맞다, 음악을 섬기는 불독이지.”

학생들이 볼 때 드보르작은 종잡을 수 없는 교수였다. 작곡 실습 시간에 곡을 제출하면 “쓸데 없이 복잡하다”며 간결히 고쳐오라고 요구했고, 교수의 지적대로 고쳐 오면 “아무 내용도 없는데 이게 무슨 음악이냐”며 퇴짜를 놓아서 학생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한번은 수업 중 모차르트 얘기가 나왔다. 드보르작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모차르트는 누구인가?” 대답하는 학생이 없자 드보르작은 앞자리 학생의 팔을 붙들고 창가로 끌고 가서 유리창을 열어 제치며 말했다. “모차르트는 저 태양과 같은 존재다.”

모차르트와 드보르작 음악이 비슷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겠지만, 모차르트가 보여준 사랑과 평화,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은 낭만시대 음악가들에게 언제나 이상향으로 남아 있었고, 드보르작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든 위대한 작곡가들은 자기만의 새로운 음악어법으로 자기 시대의 정서를 표현했지만, 모차르트가 제시한 음악의 유토피아는 변함없이 음악가들을 잡아당기는 구심력이었다. “모차르트는 태양과 같은 존재”란 말은 드보르작에게 음악사의 핵심 키워드였을 것이다. 

드보르작의 생애에는 모차르트와 비슷한 점이 하나 있다. 모차르트는 만하임에서 만난 소프라노 알로이지아 베버를 사랑했지만 거절당했고, 몇 년 뒤 그녀의 동생 콘스탄체와 가까워져서 결혼하게 된다, 드보르작은 1865년 젊은 여배우 요제피나 체르마코바를 사랑했다. 두 사람은 같은 극장에서 일했고, 피아노 레슨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졌다. 드보르작은 요제피나에게 〈사이프리스〉라는 연가곡을 바쳐서 애틋한 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스트리아 귀족인 카우니츠 공과 결혼했고, 드보르작은 얼마 후 그녀의 동생인 안나 체르마코바와 결혼했다. 드보르작과 모차르트, 두 사람은 원래 사랑한 여성과 맺어지지 못하고 그 동생과 결혼한 점이 똑같다. 모차르트가 알로아지아와 음악 동료로서 우정을 유지했듯, 드보르작도 카우니츠 공작부인이 된 요제피나와 평생 따뜻한 우정을 나누었다.

낭만시대 첼로 협주곡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B단조는 요제피나를 향한 사랑, 그 기념비다. 이 작품은 장대한 규모와 기술적인 완성도는 물론, 고귀하고 영웅적인 정서로 가득하며, 특히 드보르작의 아름답고 고결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에 깊은 감동을 준다.

드보르작은 뉴욕에 머물던 1894년 11월 이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때 요제피나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작곡을 서둘러서 이듬해 2월 완성했다. 드보르작이 하루 빨리 체코에 돌아가고자 한 것은 그녀의 임종을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이 곡의 2악장에 요제피나가 생전에 좋아한 〈네 개의 가곡〉 Op.82 중 첫 곡 〈홀로 있게 해 주세요〉의 주제를 두 번 넣어서 그녀를 기렸다. 드보르작이 체코에 돌아온 것은 1895년 4월 27일이었고 요제피나가 세상을 떠난 것은 한 달 뒤인 5월 27일이었다. 따라서 드보르작이 그녀의 임종을 지켰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드보르작은 자신의 귀국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고, 이 때문에 그가 요제피나의 마지막 순간을 보았는지 여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드보르작은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이 협주곡 피날레의 끝 부분에 〈홀로 있게 해 주세요〉 선율을 한 번 더 넣어서 애도의 마음을 표했다.

이 곡을 초연한 첼리스트 하누스 비한은 기술적인 이유로 여러 군데 수정을 요구했지만 드보르작은 극히 일부분만 고쳤다. 특히 피날레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드보르작은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피날레는 마지막 호흡처럼 디미누엔도로 사라지다가 오케스트라가 크레센도로 이어받아서 폭풍처럼 끝나야 하며, 이 아이디어는 타협할 수 없다.” 요제피나의 임종에 바치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대목이기 때문이었다.

드보르작 첼로협주곡 B단조 Op.104
첼로 야노스 스타커, 안탈 도라티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유투브 검색어 Dvorak Cello Concerto Starker

https://youtu.be/KQtZvXdGo38

1악장 ‘알레그로’는 영웅적인 주제를 클라리넷이 제시하고 이를 현악 파트가 받아서 발전시킨다. 호른이 연주하는 두 번째 주제(링크 2:20)는 인디언의 전통 선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서정적 멜로디로, 전통 5음계로 된 우리 가곡 〈뱃노래〉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 간다” 대목과 비슷하다.

2악장 ‘아다지오 마 논 트로포’(느리게, 하지만 지나치지 않게, 14:55)는 클라리넷이 부드럽게 주제를 노래하면 첼로가 이어받아 고귀하고 우수어린 정서를 펼친다. ‘노래하는 악기’ 첼로의 서정성과 드보르작의 고결한 사랑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대목이다. 파국을 알리듯 오케스트라가 통곡하고 울부짖으면(17:34), 첼로 솔로가 〈홀로 있게 해 주세요〉 주제를 두 번 변주한다(17:48).

3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링크 26:00)는 흑인 영가 선율과 보헤미아 민속춤의 리듬을 활용한 찬란한 피날레다. 고귀하고 영웅적인 정서가 춤추듯 펼쳐지고, 마지막 대목에서는 드보르작의 지시대로 ‘디미누엔도’(점점 여리게)로 사라지다가 다시 크레센도(점점 세게)로 고양된 뒤 단호하게 마무리한다. 

훗날 브람스는 드보르작의 이 협주곡을 듣고 “이런 곡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내가 작곡했을 텐데…” 탄식하며 후배의 걸작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순간 브람스의 뇌리에 자기 첼로 소나타 Op.99을 초연한 첼리스트 하우스만의 얼굴이 떠올랐음 직 하다. 브람스는 그를 위해 첼로협주곡을 써 주겠다고 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늙은 브람스는, 드보르작의 이 협주곡보다 더 나은 곡을 쓸 수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 협주곡에 삽입된 〈홀로 있게 해 주세요〉는 원래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가곡이었지만, 크리스티안 폴테라가 첼로 독주곡으로 편곡한 것도 자주 연주된다. 폴테라 자신이 연주한 녹음으로 들어보자.

드보르작-폴테라 〈홀로 있게 해 주세요〉
첼로 독주 크리스티안 폴테라
유투브 검색어 Dvorak Leave me alone Poltera

https://youtu.be/l0RTfd5K7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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